004화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형님이 날 좀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내 글을 압니까… 뭘 압니까…….”
“흐으음…….”
“그러지 말고 내 이번에 글공부도 좀 하겠으니…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형님.”
이의방은 진심이었다.
겉으로 하는 사과가 아니었다.
이준의는 그때의 이의방에게 이리 말하였다.
너에게 큰 죄가 있다면 세 가지다.
하나는 임금을 쫓아내어 죽이고 그 저택과 첩을 취함이고, 둘은 정서의 아내이자 태후마마의 여동생 임씨를 위협해 간통함이고, 셋은 국정을 마음대로 하고 사람을 너무 많이 때려죽인 것이 너의 큰 죄 세 가지다.
이를 들은 이의방이 분노를 터트린 것이었다.
그리해서 형을 멀리해버린 이의방이었고, 동생 이린마저 듣기 싫은 소리만 한다고 다른 데로 보내버리면서 무소불위를 행세하였다가 이렇게 이의방은 형을 찾은 것이었다.
이준의는 이의방에 진심 어린 사과로 인해 끝내 풀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하하하!”
기분이 좋았다.
형제, 피붙이가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한때는 정말로 안 볼 생각까지 했던 이의방이었지만, 내심 그게 불편하였던 이의방은 형의 말에 모든 것이 풀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우리 형제… 이 자리에서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형님! 잘 좀 부탁드리오!”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며 이준의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다시 뭉쳐봅시다. 뭉쳐서 이 나라를 이끌어 봅시다. 형님!”
“그래. 그렇게 하자.”
이준의와 이의방은 다시 합심하여 국정을 이끌어 보기로 하였다.
“하아!”
이의방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웬 한숨이냐.”
“저 형님… 혹시 우리 집안에 이성계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습니까?”
“누구…? 이성계……?”
이의방에 물음에 이준의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우리 집안 사람이면 내가 모를 리가 있나. 그리고 있다면 개경에 찾아왔겠지.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아, 아닙니다… 그냥 이성계라는 이름을 얼핏 들어본 거 같아서요.”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형님, 이번에 군을 재정비해야겠습니다. 형님께서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그리하지. 하하하.”
이준의는 이의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 * *
중방의 모든 장수들이 모인 자리였다.
원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정중부의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장군직을 가진 이들 몇몇은 이의방의 편이었다.
벼슬보다는 현재 힘이 센 자가 중방의 수장이었으니 말이다.
“위위경, 중방 회의를 소집하였으니 이제 무슨 이유로 소집하였는지 말을 해보게나.”
정중부의 말에 위위경은 웃으며 답하였다.
“군을 정비하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중방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군을 제대로 정비를 한 적이 있습니까.”
군을 정비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대체 군을 정비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중방의 수장들은 위위경을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군을 정비하는 척하며 실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누가 뭐라 하여도 현재 실권자는 이의방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대장군 이광정! 위위경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을 하는 이광정의 말에 다른 장수들도 눈치를 보며 속속히 답하였다.
“소장 조원정 또한 위위경의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소장 석린 또한 위위경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장수들이 속속히 이의방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하자, 정중부는 이의방에게 물었다.
“위위경… 어찌하여 군을 재정비한다고 하는 것인지 그 연유부터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언제 우리가 군을 제대로 정비를 안 한 적이 있는가?”
“사리사욕에 눈이 먼 상태로 군을 정비는 하였지… 언제 국방에 관해서는 한 적이 있습니까?”
“뭐, 뭐라?”
정곡을 찔러버린 이의방의 말 한마디가 중방의 원로 장수들을 모조리 입을 다물게 하였다.
모두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정중부는 이의방에게 물었다.
“어찌하긴요. 훈련시켜 장성으로 군을 보내어 국방 수비를 바로 해야지요. 애초에 우리가 거병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걸 너무 잊고 있었다는 생각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의방의 말에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조정에서 권력을 다투고 있을 때 백성들은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상장군, 거병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고 저는 북방으로 갈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
이의방의 말에 정중부는 머릿속이 텅 비는 기분이 들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왜 거병하기 전에 권력을 내려놓자고 하는 건지 대체 이해가 안 됐다.
자신의 말을 마친 이의방은 자리에 앉았다.
평온한 이의방의 얼굴을 보자, 정중부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의 모든 것을 문신들에게 주게 된다면 자신들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니 말이다.
덜컹.
방문이 열리며 문신들이 안으로 들어서고 이의방의 형제들 역시 안으로 들어왔다.
“자, 모두들 앉으시오.”
“예. 위위경.”
문신들이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이의방은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내 이번 일만 잘 처리된다면 나는 저 북방으로 가 국경을 살피고, 군사를 재점검할 예정이오. 그에 따라 지방군의 상태도, 지방관의 상태도 모두 확인할 것인데 그 전에 문관, 무관의 관직부터 정정하고 관직을 대등하게 해야 할 것이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 *
관직을 대등하게 한다.
그건 곧 무신들의 차별 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경인년 거병 후에 해야 했던 일들을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다.
문신들을 다 때려죽인 후 권력을 전부 나누었던 탓에 대부분이 일자무식이니, 나라가 돌아가기는커녕 권력욕만 생기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다시 잡아보고자, 의논하기 위해 중방 회의를 소집한 이유이기도 하였다.
“문신들의 관직은 건드리지 않고, 무신들의 관직에 손대어 황제 폐하의 허가를 받는 것이 어떠한지요.”
“그리해야지요. 하하하! 문하시중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이의방의 물음에 문하시중 정중부는 두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위경의 뜻대로 하시게.”
정중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중방 밖으로 나갔다.
기탁성 경진 등의 정중부를 따르는 이들도 모두 정중부의 뒤를 따라 나갔다.
이에 이의방은 인상을 쓰기는커녕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온건파 정중부로서는 강경파 이의방을 현재 어떻게 할 수 없었으니, 이의방의 뜻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처음 이고와 이의방의 권력 싸움으로 인하여 이의방은 이고를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이의방은 온건 무장세력과의 타협하에 중방에서 정무를 보았으나,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이의방의 뜻대로 행해졌다.
역시나 지금의 상황도 같은 상황이다 보니, 불만이 있어도 반항은 하지 못한 채로 정중부 중심으로 온건파들이 나간 것이었다.
“모두 들으시오. 우리 무신들의 최고직은 상장군이고, 2군 6위로 군이 편입되어있는 가운데… 문신들의 최고직은 정1품이고, 무신의 최고직인 상장군은 정3품이오. 이것부터 다시 잡아봅시다. 상장군을 문하시중과 같은 종1품으로 하고 싶은데 의견을 듣고 싶소.”
이의방의 말에 먼저 문극겸이 말하였다.
“군부의 최고 지휘관이 상장군이라 하면… 2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6위는 어찌할 것입니까? 6위에 모든 상장군들이 모두 개인적으로 지휘를 하는 데 있어 나중에는 한 대에 뭉칠 것이고, 적을 만난다면 계급 자체가 뒤죽박죽될 것인데요.”
문극겸에 말에 이준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오?”
“2군은 황제 폐하의 친위군이니, 상장군이 있어도 문제가 없지만…….”
문극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기탄없이 말하시오. 내 사돈의 말은 들을 테니.”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문극겸은 말하였다.
“무신들이 용호군과 응양군, 상장군이 되어 권력 싸움을 하게 된다면 황실은 그야말로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극겸의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용호군, 응양군은 황제의 친위군이자, 황실과 황성을 지키는 군대였다.
황제의 명 한마디면 모든 것을 할 군대이지만, 현재는 황제를 협박하기 위한 위협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자신이 그리하였으니, 어찌 모르겠는가.
거기에 태자비까지 세웠지 않은가.
“그럼 어찌 하는 게 좋겠소. 내가 개경을 비운다면 만약의 사태는 대비를 해둬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믿을만하고… 목숨까지 내걸어 황제를 지킬 무장이 있어야 하지요.”
“두경승.”
이의방은 그럴만한 인물을 단번에 답하였다.
두경승, 견룡 장군.
견룡이란 용호군, 응양군에 속해 있는 이들을 말했다.
즉, 견룡이 용호군에 속해 있으면 용호군.
응양군에 속해 있으면 응양군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그들이 입고 있는 갑주의 문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응양군, 일명 공학군이라고 불리는 자는 갑주의 문양에 학이나 매가 들어간다.
더불어 갑옷 속에 입는 옷도 다르다.
겉옷 상의에는 붉은색을 띠는 옷감과 더불어 검은색과 흰 띠를 테두리 부위에 감싸 갑옷을 입어도 응양군임을 알 수 있었지만, 용호군은 청색을 띠는 옷감에 붉은 띠와 노랑 띠가 들어갔다.
그리하여 둘 다 같이 견룡이라 불려도 어느 군 소속인지 아는 것이다.
“현재 응양군의 상장군 자리가 비어있으니… 견룡장군 두경승을 응양군의 상장군으로 하는 게 어떻겠소이까.”
이의방의 말에 이의방을 따르는 부장들이 살짝 서운함을 느낀 듯했다.
솔직히 응양군의 상장군 자리는 자신이 떼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한 이가 있는 데 그게 바로 조원정이었다.
그동안 위위경 이의방을 극진히 모셔왔으니, 그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위경이 두경승을 거론하자, 조원정은 서운함을 느낀 것이었고 다른 이들 역시 서운함을 느꼈다.
“아니… 자네들은 왜 뭘 씹은 표정인가… 서운해 그러한가?”
이의방은 대충 부하들의 눈치를 살폈다.
부하들을 두고 두경승을 거론하였으니, 안 서운해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 조원정, 석린 등과 같은 장수들은 좀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 꿈 생각만 하면 절로 치가 떨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