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화
“어찌 되었소?”
정균이 다른 장수에게 급히 묻자,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정 장군.”
“장군, 수색하시지요. 저희와 내통한 부장들이 지금쯤이면 이의방을 죽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군에 종군한 승려 종참의 말에 정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게. 반드시 이의방의 목을 가져가야 하네. 그래야 전부 정리를 할 수 있어.”
“예! 장군!”
종참은 정균의 명에 의하여 곧장 군사들을 이끌고 산 위로 향하였고. 정균은 말 위에서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게. 자네 여기서 뭐 하는가. 자네도 어서 산으로 올라가 수색하는 게 어떤가.”
“음…….”
송유인이 다가와 말하자, 정균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되었습니다. 매부. 이의방은 절대 이 산에서 내려올 수 없을 거요.”
정균은 확실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의방의 최후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의방은 산 중턱에서 횃불을 들고 자신을 찾고 있는 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균… 이노오오옴…….”
이의방은 주먹을 불끈 쥐며 정균을 정말로 죽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치명상을 입었지만, 나무에 몸을 의존하면서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러다 주마등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헛웃음을 보였다.
* * *
다음 날 아침.
군사들이 이의방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균과 송유인, 이광정, 종참은 한자리에 모여서 의논에 들어갔다.
콰앙!
“아직도 못 찾은 게 말이나 됩니까! 군사가 자그마치 3천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의방의 수하들 또한 중방과 함께 한다는 뜻을 보였소이다!”
“알고는 있지만… 정 장군… 땅으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걸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이광정의 말 한마디에 송유인 또한 인상을 찡그렸고 종참 또한 인상을 찡그렸다.
다 죽여 놓은 호랑이를 찾을 수가 없으니, 현재 중방으로 붙은 이의방의 수하들이 알게 되면 정말 골치가 아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찾아야지요.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겠소!”
보다 못한 정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갔다.
한편, 정중부는 정균이 벌인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말 없이 지켜보며 중방으로 붙은 이의방의 수하들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이의방이 죽느냐 사느냐.
거기에 따라 자신과 가문이 도륙이 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중부는 속으로는 내심 이의방이 죽기를 원하였다.
이의방이 자신을 부추겨 난을 일으키게 했던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뿐더러, 자기가 실권자인 것처럼 횡포를 부리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명을 제대로 따르지 않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다른 대장군들이 자신의 편이기에 그나마 이의방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의 상태 모두가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 모르는 가시방석 같았다.
덜컹!
문이 열리자, 견룡대장 두경승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게 대체 무슨 변고랍니까! 문하시중의 자제… 정균이! 정말 위위경을 죽였다는 겁니까!”
두경승은 극도로 대노한 듯 보였다.
“견룡대장은 진정하고 앉게나.”
“대답해주시오소서! 문하시중!”
“이보시오. 견룡대장!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조원정 또한 견룡대장에 맞서 외쳤다.
아직까지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닌 두경승이었다.
황실과 황제를 지키는 견룡대장으로서, 현재 이 상황은 자칫 황제와 황실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경승은 중방에 앉기는커녕 곧장 밖으로 나가 부장들에게 명을 내렸다.
“속히 군사를 집결하여 궁문을 단단히 닫아걸어라! 내 명 없이 궁에 들어오는 놈들은 그 자리에서 선참후보(先斬後報)하라!”
“예! 대장군!”
“저, 저런!”
완전히 들으라고 대놓고 소리치며 명을 내린 두경승에 조원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문하시중, 지금 우리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걱정거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용호군 대장군 이의민 말이옵니다.”
“걱정할 거 없네. 이의민이 온다고 하여도 그전에만 끝을 낸다면 이의민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여차하면 폐주를 시해한 역적이라며 주살할 수 있을 것이니 두려울 것도 없네.”
정중부의 말에 조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원정을 따르는 장수들 또한 고개를 숙인 채 서로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하자, 정중부는 그런 그들을 피식 웃었다.
* * *
“으어어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저택에서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난 이의방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만한 것들을 되짚어 보았다.
수십만에 이르는 대군이 고려의 국경을 넘어 백성들을 살육하고 태우고 약탈하였다.
또한 다른 권력자가 권력을 찬탈하고 자신의 권위만 내세우며 군사 하나 내보내지 않았던 것들.
거기에 가장 믿었던 자들의 배신까지.
전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똑똑히 기억나는 말은 있다.
‘기회를 주겠다.’라는 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이게 대체…….”
그리고 이상하게 칼을 맞았던 곳이 아프지도 않자, 상처를 살펴보니 씻은 듯이 없어졌다.
“하… 꿈인가?”
꿈 치고는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들이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꿈을 통해 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고려의 미래까지도…….
“하아…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인생의 부귀영화가 덧없이 사라져 버린 꿈을 꾸고 나니, 뭐라고 해야 할지 정말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짹짹짹.
새소리가 아침임을 알리는 듯 울자, 이의방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는 노복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의방은 곧장 노복을 불렀다.
“여봐라.”
빗자루질하던 노복이 이의방의 부름에 곧장 빗자루를 버리고 달려와 허리를 숙이었다.
“예. 위위경…….”
“오늘이 며칠이냐.”
“예, 8월 초이옵니다.”
“몇 해이더냐.”
“예… 위위경. 명종 4년이옵니다.”
“뭐, 뭐라!?”
이의방은 깜짝 놀랐다.
명종 4년이면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키기 약 넉 달 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승려 수천여 명을 도륙 낸 후에 사찰의 재산을 자신의 창고에 넣어두지 않았는가.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면 그때로 돌아와 다시 삶을 살고 있을 게 아닌가.
똑같은 현실을 두 번 맞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생각을 하며 위위경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먼저 정씨부터… 도륙을…….’
이의방은 속으로 정중부 부자부터 도륙을 내버릴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문득 왜 정균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과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이 있기에.
이의방은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서 물을 따라 시원하게 한잔 마시며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정균을 중랑장까지 앉혀 놓았다.
아버지가 상장군 문하시중인데 하급관원으로는 있을 수 없어 종4품의 중랑장 직으로 올려 준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의방이었다.
지금 당장 정균에게 쫓아가서 무엇이 불만인지 당장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등을 돌리었던 부장들은 더욱더 쳐 죽이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며 이의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봐라~”
이의방의 외침은 밖에 있는 노비들이 모두 들을 만큼 충분하고도 넘쳐났다.
“예! 위위경!”
집안의 노비들이 전부 이의방 앞에 모여들었다.
“집안 창고를 모두 열어 제물과 곡식을 마당에 놓아 보거라. “
“예, 위위경.”
위위경, 이의방의 명을 받은 노비들은 곧장 움직였다.
이의방은 겉옷만 걸치고서 밖으로 나갔다.
* * *
아침 일찍 나온 상황.
이의방은 호위도 없이 도포 자락 하나만 걸치고 나와서 이곳저곳을 살피었다.
이렇게 조용히 혼자 나와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였다.
“배고파… 어머니… 배고파요…….”
배가 고프다며 떼를 쓰는 아이의 목소리에 천천히 한 민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급히 돌렸다.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보려고 혁명을 일으켰더니, 이들을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의방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
주위를 둘러보면 한곳에서는 굶고 있고, 한곳에서는 산에서 캐온 칡뿌리를 팔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사가는 사람은 정작 없고 지나가는 병졸이 칡뿌리를 강탈하는 모습이 보이자, 이의방은 눈을 부라렸다.
“이 빌어먹을 놈의 자식아!”
이의방의 외침에 밖에 나와 있는 이들이 이의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느 놈!”
이의방의 얼굴을 본 순간, 병졸은 그대로 얼어 버렸다.
벽상공신 흥위위 섭대장군 지병부사 전중감겸위위경 이의방이 지금 자신 앞에 있다.
권력의 상위권에 있는 자가 지금 자신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쳐 죽일 듯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위위경!”
병졸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이 빌어먹을 놈이…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이 빌어 처먹을 놈아!”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위위경!”
잘못 한 건 아는지 이마를 몇 번이나 땅에 처박고 있는 병졸을 본 이의방은 차마 군율로 병사를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게 자신과 군부 수장들의 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자행할 군사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의방은 무언가 다짐이라도 한 듯 그대로 몸을 돌아섰다.
“그만 일어나 저 아낙에게 사죄하고, 배상해주거라! 안 그러면 네놈을 능지처참해버릴 것이다!”
“예! 위위경!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위경!”
군사의 말을 듣고서 곧장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퍽!
“…….”
털썩!
뛰어가던 아이가 이의방에 도포 자락에 나물죽을 부어 버렸다.
이미 식은 나물죽이어서 뜨겁지는 않았지만, 값비싼 비단으로 만든 도포 자락에 잔뜩 얼룩이 졌다.
아이의 잘못에 당황한 부모는 놀란 듯 털썩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리,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달라며 절규하듯 말하는 아이의 부모에 꾸짖기는커녕, 이의방은 엎어진 아이를 일으켜 주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예…….”
“하하하. 자…….”
이의방은 허리에 차고 있던 옥패를 떼어서 아이에 손에 쥐여 주었다.
“자, 받거라. 너의 나물죽 값이다.”
“…….”
“…….”
일순간 아이의 부모는 할 말을 잃었다.
값비싼 옥패를 아이에 손에 쥐여 준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옥패는 백청옥이었다.
희귀하고 솜씨 좋은 장인이 깎아 감히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는 그 옥을 아이에게 준 것이었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어디론가 가버렸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요… 위위경 나리!”
뒤에서 들리는 고맙다는 소리에 위위경은 말없이 입꼬리를 올리었다.
기분이 좋았다.
백성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릴 정도로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거병 혁명 이후 민심을 한번 잡아보겠다며 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으나, 실패하였고 결국에 권력에 찌들어 버린 자신을 느끼는 계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