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화 (1/159)

001화

“현수야, 아직 안 자냐?”

“네. 반 친구들이랑 채팅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카톡을 날려대는 중인 아들 녀석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럼 산에나 올라가서 약초 좀 캐와라. 백숙이나 해 먹게.”

“아, 무슨 산에 올라가요… 그냥 마트 가면 되잖아요.”

만사가 귀찮은 듯 현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하였다.

“운동도 할 겸 갔다 오라는 거지. 그리고 우리 집안이…….”

“아 좀… 그만! 나도 알아요. 대대손손 약초꾼 집안이란 거… 거기다가 그 약초로 일구어낸 대기업이라는 거!”

“그럼 그 자부심을 잃지 말고 얼른 다녀와.”

“아, 알았으니까 좀만 있다 출발할게요…….”

현수가 투덜거리면서 말하자, 현수의 아버지는 돌아서며 문을 닫으며 나갔다.

[아, 미치겠음. 아빠가 백숙해 먹는다고 산에 가서 풀 뜯어 오라 하네. 돌겠네…….]

[ㅋㅋㅋ 개고생 ㅊㅋㅊㅋ 잘 다녀와라. ㅋㅋㅋㅋ]

[오~ 백숙ㅋㅋㅋ 근데 애초에 마트 가면 되는 거 아니냐? 개고생한다.]

[역시 약초꾼 피는 못 속이는 듯 ㅋㅋㅋㅋㅋ]

친구들이 채팅으로 투덜거리는 현수를 향해 놀려 대었다.

[아오… 내가 회사만 물려받으면 이 시골살이 청산한다. 회사 서울로 아니면 판교로 다 옮겨버릴 거야. 공장만 놔두고. 집은 별장으로 써야지.]

[대단한 포부인데? ㅋㅋㅋㅋㅋ]

[근데 마트에서 손질된 재료 넣어 백숙한 거하고, 자연인이 직접 채취한 풀떼기 넣고 먹는 백숙은 다르겠지?]

[뭔 솔? 거기서 거기임. 맛은 똑같음. 내가 너희들 우리 집 안 데려오는 이유가 와도 할 게 없음 ㅋㅋㅋㅋㅋ 오면 나랑 풀 뜯으러 다닐 수도 있어 ㅋㅋㅋ]

[미친… 안 간다 ㅋㅋㅋ]

[me too.]

[놀러 갔는데 풀을 뜯으라고? ㄷㄷ 그건 아닌 듯.]

[야, 제일 짜증 나는 건 부처손이라는 약초인데 이게 절벽에서만 자라거든? 그거 캐오라고 할 때 진짜 식겁함. 장비 들고 올라가야 함. 개빡셈 ㅠㅜ 근데 부처손만 있는 게 아니야. 그거 찾으면서 석이버섯도 캐야 함.]

[와… 극한직업이네?]

[그래서 네가 벽 잘 타는 거였구나. 어쩐지… 남다르더라.]

[재수가 없으면 벌 만나. 그냥 X대는 거임.]

[?!]

[?]

현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채팅을 치지 않고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었다.

[야… 현수야… 너 아프면 야매 치료 가능하지?ㅋㅋㅋ]

[완벽히 가능할 듯 ㅋㅋㅋㅋㅋ]

[얘들아, 아프면 병원 가지 말고 현수한테 가라. 진짜 의사 뺨친다 ㅋㅋㅋㅋㅋ]

[ㄹㅇ임?]

[와… 넌 그냥 의대에 가면 떡상할 듯.]

[의대? ㄴㄴ 현수 사학과 갈 거임. 쟤 역사 X나 좋아함. 역사 시험 치를 때 현수한테 물어보면 X나 잘 가르쳐줌.]

[음… 난 역사 좋아하지는 않는데 너튜브로 그냥 봄. 심심풀이로 ㅋㅋㅋㅋㅋ]

[역사는 당연히 삼국지 아님?]

[삼국지 중국 역사 아님? 난 한국 역사 말한 거야 X신아.]

현수는 친구들의 채팅 반응을 보며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장롱 안에 있는 가방을 꺼내어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오래된 약초에 관련된 책 한 권과 어릴 때 인터넷을 이용해 구매한 성인 잡지, 그리고 로프가 들어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현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새알 초콜릿을 두 개와 초코바 하나를 집어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고 가방을 멨다.

[나 이제 풀떼기 뜯으러 감. 그리고 역사 좋아하기는 하는데… 내가 뭘 가르치기는 가르쳐. 나도 X나 틀릴 때 많은데. 그리고 사학과 가려는 것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임. 암튼 난 나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근데 현수 성적으로 사학과 가능함?]

[쟤 돈 주고 갈걸? 돈 주고 가면 가능할 듯 ㅋㅋㅋㅋㅋ]

[X친새끼 ㅋㅋㅋㅋ]

* * *

“후…….”

땅이 젖어있다.

이런 날 산행은 진짜 조심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크게 넘어져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냥 가지 말까?”

이상하게 집을 나오자마자 산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아침 해가 완전히 뜨면 갈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집에 간다고 해도 언제 잠이 올지도 모르니, 현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산으로 올라갔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백숙에 넣을 재료들을 캐다가 현수는 어느덧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슬슬 지치고 배도 고파와서 석이버섯이 많이 나오던 그 절벽 근처로 자리를 이동해 앉았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자, 저 멀리 보이는 집과 마을 그리고 구석진 곳에 있는 공장도 눈에 들어왔다.

현수는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어 봉지를 뜯고 한입 베어 물고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도 떴으니까… 이제 안 미끄럽겠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다시 빙 돌아 내려가기 귀찮았다.

현수는 초코바 봉지를 대충 가방에 넣더니 절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안전장치 하나 없이 자신감 넘치게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한발 한발 안전하게 내디디며 손으로 벽을 짚었다.

그렇게 험한 절벽도 아니었을뿐더러, 한 사람만 더 있어도 빠르게 내려올 수 있는 그런 절벽이었다.

절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오던 현수는 자주 내려오던 방식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돌리니 눈에 확 들어오는 약초가 보였다.

“X발… 저거 산삼이냐?”

약초는 불과 몇 걸음만 가면 손에 닿을 듯 보였다.

자세히 가봐야 알겠지만, 눈에 딱 들어오는 모습은 분명 산삼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몇 걸음만 가서 확인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위험하지만, 몇 걸음만 조심스럽게 몸에 절벽을 딱 붙이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가까이 다가와 살피자, 그건 정말로 산삼이었다.

“오! X발!”

산삼이 맞는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절벽을 짚고 있던 한쪽 손을 산삼을 향해 손을 내밀자, 산삼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한 발자국 더 가야 하나? 싶은 거리였지만, 현수는 지금 이 상태에서 한 발짝 더 가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몸만 더 살짝 기울여 산삼을 향해 손을 더 뻗었다.

투둑!

순간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예상은 정확했다.

“으아아아!”

미끄럼틀을 타듯 현수의 몸이 그대로 쭉 미끄러지며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였다.

* * *

식은땀이 흐르면서 소름이 끼치는 순간이었다.

고려의 개국 공신들이 모두 나와, 유유히 걸어오는 인물에게 ‘이 난신적자(亂臣賊子) 이성계!’라고 하면서 외치던 순간, 위위경이 깨어났다.

꿈이 너무 생생하여 도저히 잊히지 않는다.

“…이성계?”

손가락질을 받던 이가 대체 누구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꿈을 본 기억에서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나아가던 한 장수가 당당하게 걸어가며 한 옥좌 위에 올라서 있었다.

영 기분 나쁜 꿈이었다.

“하아…….”

스륵─

“위위경, 무슨 일이시옵니까!”

“아, 아니네… 아니야.”

이상한 소리에 군막으로 들어선 이의방의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침상에 앉아있는 이는 보현사의 난을 일으킨 주역 이의방이었다.

올해 나이 53세.

거병 당일이 48세의 견룡행수였던 이의방은 의종을 폐위시킨 후, 명종을 옹립하여 벽상공신 흥위위 섭대장군 지병부사 전중감겸위위경이었다.

다른 이들은 이름 대신 짧게 줄여 위위경이라 부르곤 했다.

그리고 위위경은 지금 현재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러 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서경에서 패배하였고, 퇴각하여 개경 코앞까지 온 상태에서 수도로 돌아가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 이상한 꿈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캬하!”

조위총에게 패한 것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위위경은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상위에 있는 술을 들이켰다.

“으아아아아!”

“응!?”

술을 들이켜는데 주위에서 군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

위위경은 갑주도 없이 자신의 검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냐!”

쉭!

쉬쉬쉭!

불화살이 빗발처럼 군영으로 날아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기습공격이었다.

하지만 조위총이 직접 여기까지 와서 기습공격을 할 일은 만무하였다.

군사들은 불이 붙은 채로 군막에서 뛰쳐나오고 있었고 고통에 엎어지며 군영 곳곳에 불을 옮기기 시작했다.

개경이 코앞인데 기습공격을 당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단정 지은 위위경의 불찰이었다.

“어떤 놈이냐!”

순간 불바다가 되어 가고 있는 군영을 보고 있던 이의방은 검을 뽑아 들었다.

“위위경… 피하십시오… 피하셔야 합니다!”

이의방의 부장이 뛰어와 피하라며 소리쳤다.

“이의방을 죽여라! 죽여라!”

한쪽에서는 이의방을 죽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자신의 군사들을 사정없이 베고 찌르며 죽여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의방의 군대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계속 군영 전체가 그대로 불바다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고, 끝내 몇몇 부장은 이의방을 데리고 피신하였다.

얼마 후, 개경 인근 산기슭에 도착하였다.

“위위경… 위위경!”

부장이 급히 달려와 보고하였다.

“알아보았느냐! 어느 놈이 감히!”

“…정균입니다.”

“뭐…? 뭐라고!?”

정균.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군사를 일으켜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이었다.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곧장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다. 개경에 내 사람들이 있으니 난 개경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니 됩니다. 지금은 위험합니다. 지금 군사도 없이 들어가셨다가는…….”

짜악!

“닥쳐라! 내가 누구이냐! 벽상공신 전중감겸위위경 흥위위 섭대장군이다! 대체 어느 놈이 개경으로 들어간 나를 죽이겠느냐!”

이의방은 부하의 뺨을 후려친 채 분노하였다.

“나다!”

“뭐!?”

푸욱!

“커허헉!”

뒤를 돌아보자, 자신의 또 다른 부장이 뒤에서 단검으로 찔러 버렸다.

“죽어라! 이노오오옴!”

“이… 이런!”

푸욱!

“커헉!”

이번에는 앞에서 자신을 이곳까지 피신시킨 부장이 복부를 찔러 버렸다

“네, 네놈이…! 나… 나를…….”

옆에 항시 데리고 다녔던 부장이 망설임 없이 자신을 배신하였다.

부장이 단검을 비틀어 복부에서 다시 빼려 들자, 이의방은 부장을 밀쳐 내 버리고는 꽂힌 단검을 빼서 부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도망치는 다른 부장 역시 쫓아가 목에 단검을 박아 버렸다.

“으아악!”

칼에 찔려 온몸이 욱신거림을 느낀 이의방은 곧장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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