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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94화 (194/199)

194화 고구려(3)

194화 고구려(3)

넝쿨째 굴러온 복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이계찰만 넘어와도 엄청난 성과인데 이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가한이 그리 말했소?”

“그렇소.”

처라후가 대카간 아사나 섭도의 뒤통수를 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간 물심양면 최선을 다해서 무상으로 지원을 한 성과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이런 쾌거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정말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기쁨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구려.”

“하하하. 미안하오. 한데, 기쁜 건 사실이라서 어쩔 수 없소.”

“참으로 씁쓸하구려. 본국의 분열을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말이외다.”

“이거 왜 이러시오? 귀공은 이제 우리 고구려인이오. 그러니 나와 함께 즐거워하는 게 옳지 않겠소?”

이계찰은 처라후가 대카간에 등극할지라도 돌궐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다 보니 아예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러면 나와 함께 고구려의 영광을 축하하는 게 맞긴 하는데,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한 번에 정리되는 게 아니라서 나도 더 보채지는 않았다.

“대군의 출병을 포함한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소. 내용만 잘 전달해주시오.”

“그리하겠소.”

“다시 한번 더 격하게 환영하오.”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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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을 살펴보던 양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도 궁금하십니다.”

을지문덕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양광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고구려군은 혼자 뭘 저렇게 읊조리는 것이오?”

“불법이지요.”

“불법? 사찰에서 익히는 불법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전장에서 적과 싸워야 할 병사들이 왜 불법을 익히고 있는 것이오?”

“정확하게는 고구려의 적을 물리치기 위한 의식이라고 하지요. 본국은 우리 병사들의 훈련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정신적으로 힘을 주는 것도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양광은 황당했다. 병사들에게 불법을 외우게 하는 게 대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

그런데 무시할 수는 없었다. 광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고구려군의 돌격은 이미 수나라에서도 회자하였다.

“한데,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것 같군요.”

“소식이라니요? 무슨 말이오?”

“본국이 돌궐의 내전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밀사가 왔지요.”

이어지는 을지문덕의 말에 양광은 말문이 막혔다. 엄청난 변수가 발생하거나 최악의 전운이 아닌 이상 승리가 확정된 개입이었다.

“의도치 않게 귀국과 또 겨루게 되었군요. 수나라는 대카간을 지원하니 말입니다.”

“이 전쟁의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고구려가 돌궐의 절반을 삼키는 겁니까.”

“하하하. 글쎄요. 끝에 가봐야 알 수 있겠지요.”

을지문덕은 호탕하게 웃으면 의미심장한 말을 할 뿐 구체적인 언급은 생략했다.

“또 오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여유를 부리며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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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억지로 웃을 이유도 없고 무조건 웃을 만한 세상이었기에 계속 웃었다.

“양광을 잘 흔들었나?”

“예. 원래도 수나라에 불만이 많았을 것인데 정세의 변동으로 고민이 더 깊어졌을 겁니다. 한데, 대인. 그를 어찌할 생각입니까.”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지. 이대로 죽여도 좋네. 한데, 이왕이면 그를 활용하여 수나라도 분열시키는 게 가장 적합하지 않겠나?”

을지문덕은 다소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할 만한 게 내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으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 어려웠다. 수나라가 연전연패했으나 분열될만한 싹이 자라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의문을 가질 필요 없네. 나 역시 아직 어떤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건 아닐세. 계속 길을 찾고 있을 뿐이네. 수나라의 내분은 양광이 잘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황제 양견의 실책이 거듭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문제는 황제의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을지문덕의 말대로 양견의 능력은 뛰어났다. 중국의 절반을 통치하면서 천하의 모든 세력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명군이라는 건 늘 상대적이었다. 패배하거나 몰락한 군주들이 늘 암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쟁하는 세력의 군주가 더 뛰어나거나 정세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무너질 때도 있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신라의 김백정만 해도 절대 암군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패배하면서 신라를 분열시켰으니 후대의 평가는 아주 차가울 것이다.

양견이라고 하여 다를 건 없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황제라고 할지라도 이 공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문덕. 만에 하나 돌궐 분열에 성공한다면 천하에 수나라와 협조할 세력이 없어지는 걸세. 모두가 양견에게 창칼을 들이밀 건데 그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나?”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정세라는 건 늘 변수가 발생하니 어찌 우려하지 않겠습니까.”

매번 느끼지만, 을지문덕은 전술을 펼칠 때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과감했다. 그러나 전략은 신중하게 접근했다.

적과 창칼을 겨누고 싸우는 전장과 외교의 틀을 아예 다른 각도로 접근했으니 대단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적과 타협할 생각도 없으니 이대로만 잘 성할 경우 원 역사 이상으로 고구려의 거목이 될 것 같았다.

논의를 이어갈 때였다.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불청객이 나타났다. 나는 정말 놀랐고, 을지문덕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오늘만 기다렸습니다!”

바로 의연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예기가 담겨 있었다. 고생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았다.

“아니, 자네가 여기는 어찌 왔는가? 아. 대돌궐 외교의 최전선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의연은 씩씩거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슬쩍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쳐서 냉큼 시선을 돌렸다.

“대인. 소승에게 할 말이 없습니까?”

“이보게. 진정하게.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 그저 강물이 흘렀을 뿐이네. 콸콸 소리를 내며 바다로 향하는데 어찌 막을 수 있겠나?”

“오. 소승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는데 참으로 태연하게 답변하시는군요.”

“그 일은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왕도로 돌아가면 크게 대우할 것이니 마음을 풀게. 한데, 돌궐에 우리 유학을 잘 보급했나? 내가 참으로 궁금하다네.”

“대인의 농에 소승이 관세음보살과 결별할 것 같습니다. 살심이 솟구친다는 말이지요.”

사람의 말에서 순도 100%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의연을 한참이나 더 달랬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정황상 의연이 진짜 식겁한 건 사실이었으니 이리하는 게 옳았다.

지켜보던 을지문덕은 피식거리며 웃기만 하다가 적당할 때 슬쩍 개입했다.

“한데, 아파가한의 도움을 받은 겁니까?”

“아. 그렇게 되었네.”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돌궐에 매료되어 함구하고 싶으나 자네의 말을 들으니 고향이 고구려라는 걸 다시 깨달았네. 어찌 비밀로 하겠는가.”

“하하하.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간······.”

의연의 말이 이어질수록 을지문덕은 감탄했다. 천일야화보다 더 다이나믹한 시간을 보내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먼 산을 쳐다만 봤다. 정말 고생했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 나의 뇌리를 자극했다.

“아파가한은 우리와 동맹을 체결했다고 여긴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많은 난제가 있었으나 소승이 매 순간 기가 막힌 임기응변으로 여기까지 이끌고 왔습니다. 한데, 본국은 어찌할 겁니까.”

“아. 돌궐의 내전에 개입할 것이네. 가한이 원군을 요청했거든.”

“혹시 그리되면 돌궐이 두 개로 나뉘게 되는 겁니까?”

“특별하게 변수가 없으면 그리되겠지.”

“아파가한 측에서 크게 항의할 겁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나?”

“대인. 아파가한이 수나라와 다시 손을 잡을까 우려하는 것이지요. 영원한 적은 없는 게 천하의 정세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와 손을 잡고 돌궐을 모두 장악할 꿈을 꾸는 사람이 아파가한이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처라후를 지원하여 돌궐이 분열되면 다시 수나라와 손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기존의 질서일 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어려울 것이네. 수나라는 그동안 신뢰를 크게 잃었네. 약조한 걸 제대로 지킨 적이 없는데 아파가한이 미치지 않은 이상 우호를 체결하지는 않을 것이네. 압박해서 세폐를 받아내면 또 모를까.”

객지로 파견 나갔던 의연은 수나라가 외교 정책이 불신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는 걸 모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대카간을 지원하는 것도 아닌데 아파가한이 왜 항의하겠나?”

“음. 하면, 이리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대 돌궐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자네의 의견을 어찌 귀담아듣지 않겠나? 묘안이 있다면 서둘러 말하게.”

“만에 하나 돌궐 분열이 성공하면 외교 정책에서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쉽게 균열이 발생하게 될 단서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

“맞는 말이지. 그러면 본론을 꺼내 보게.”

“본국과 돌궐이 합을 맞춰서 대 수나라 외교를 함께 진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쉽게 말해서 수작질을 차단하자는 것이군.”

위계와 위계가 만나서 여기까지 흘러왔지만 잘 포장해서 현실로 만들긴 해야 했다. 우리 역시 아파가한과 굳이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의연의 말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 같이 사이좋게 손잡고 수나라의 고혈을 짜내자는 말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전 세계가 단결하여 수나라를 경제 식민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긴 하지. 한데, 지극히 우리 관점이 아니겠나? 또한, 외교라는 건 결렬되면 전쟁보다 더 증오하게 만들기도 한다네.”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수나라의 비상을 차단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음.”

그래.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

“알겠네. 일단 전쟁부터 마무리하지.”

“한데, 승산은 있습니까? 대카간이 절대 만만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네 우리와 손을 잡은 처라후를 잘 모르는군.”

처라후의 용맹은 돌궐에서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가 고구려의 지원을 받으며 전면에 나서고, 서쪽에서도 적이 압박하는데 대카간 아사나 섭도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의 팽창 정책을 마무리할 전쟁이 될 수도 있다네. 그러니 온 힘을 다해서 고구려의 패권을 확장해야겠지.”

돌궐의 분열 자체가 고구려의 국익이지만 구체적으로 확보할 과실은 필요한 법이다.

지금부터 이를 위해서 움직일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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