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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77화 (177/199)

177화 세계대전(7)

177화 세계대전(7)

퇴각은 순조로웠다. 큰 피해도 없었고, 적의 움직임도 확실하게 파악했다. 일차적으로 이번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적을 제압할 방책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또한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됐다. 적장 온달은 지나칠 정도로 호전적이기 때문이었다.

다 좋았다.

그런데

“자, 장군! 적이 아직도 추격 중입니다.”

온달이 아직도 뒤를 쫓고 있었다.

‘대체 왜 따라 오는 것이더냐!’

지긋지긋했다.

심지어 제대로 공격도 하지 않고 스멀스멀 따라오기만 하는 꼴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장군. 어찌해야 합니까.”

저 멀리서 보일 듯 말 듯 대놓고 따라오는 적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굳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교전을 펼치는 것인데 수적 열세를 극복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야전에서는 더 그렇다.

달해장유는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절대로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만일, 배수진의 결의로 적을 막아야 한다면 기어이 나서겠으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참을 수 있었다.

“더 속도를 내도록 하라.”

“장군. 자칫 잘못하면 대열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적과 교전을 펼칠 수는 없다. 최대한 빠르게 본군과 합류하는 게 옳다.”

타당한 말이었기에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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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은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당혹스러워 숨통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연신 한숨을 쉴 때 곤혹스러움이 담긴 사만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인. 어찌해야 합니까.”

그 역시 이 상황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와 대전을 치르고 있는데 돌궐이 남하했다는 소식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엄중한 상황일수록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폐하께서 대인에게 판단을 위임하셨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이대로 고구려와 결전을 치를 건지, 회군을 할지 말입니다.”

“돌궐은 황도를 향하고 있네. 이를 가볍게 여길 수 없네.”

“그렇습니다만 아군이 이대로 회군을 결정할 시 고구려군이 기주 전역을 타격할 겁니다.”

“알지. 그래서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걸세.”

그리고 돌궐의 남하 소식을 들으니 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온달의 행동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긴 했네.”

“그렇습니다. 마치 몰이 사냥하듯 행동하지 않습니까.”

“돌궐의 남하가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의미하겠지. 즉, 아군의 발목을 최대한 잡아서 황도 공격을 유리하게 만들어내려는 걸로 파악할 수 있네.”

“실은 소장도 그리 여깁니다. 고구려와 돌궐이 치밀하게 연계하여 공세를 펼친 게 분명합니다.”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결국, 퇴각하면 고구려 군이 더 지독하게 추격하겠군. 지금처럼 따라오는 게 아니라 맹렬하게 공격하면서 말일세.”

“예. 하면, 아군은 반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아군의 발목은 잡히는 것일 터.”

무슨 선택을 하더라고 고구려군이 압박을 가한다면 결론은 한 가지였다. 고경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북경의 탈환을 미룰지라도 고구려군에 큰 손해를 입혀야만 상황이 해결되겠군.”

“그렇습니다.”

“출병을 준비하게. 온달을 압박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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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하듯 달해장유를 추격하던 온달은 어느새 병력을 뒤로 물렸다. 수나라의 본군이 대대적인 진군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논의하는 주된 안건은 수나라군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돌궐의 남하라.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군.”

“그렇습니다. 수나라군의 행보가 갑자기 바뀐 이유가 설명됩니다.”

“끙. 아쉽군. 달해장유가 전열을 흔들면서 다급하게 퇴각하여 총공세를 펼치려고 했건만.”

“대형께서 너무 욕심을 내셨습니다. 타격을 줄 기회는 넘치도록 많았는데 말입니다.”

“전멸시키려고 했지.”

온달은 아쉬운 듯 여러 번 입맛을 다셨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원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논의를 길게 할 필요가 있겠나?”

“또 무슨 돌발 행동을 하려고 하십니까.”

“아니, 무슨 말을 그리 서운하게 하는 것인가. 돌발 행동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방책일세.”

“그래요. 무엇입니까. 소제가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

“생각해보게. 돌궐의 아파가한이 남진했다면 수나라의 대군을 퇴각하지 못하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즉, 그들의 의지로 퇴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막아내겠다는 말일세.”

참으로 기괴한 건 온달이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입가가 덩실덩실 걸려 춤을 추는 미소가 그의 감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적이 수적 우위를 믿고 저돌적으로 다가오니 내가 나서겠네.”

“천천히 오고 있습니다. 곡해하지 마십시오.”

“계속 이리할 생각인가?”

“아무리 그래도 10만 대군입니다. 섣불리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자네가 더 보태줘야지. 1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네.”

온달의 요구에 을지문덕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을 궤멸시키는 게 아니라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니 치밀한 계책을 수립하는 자신보다는 온달의 판단이 합당했다.

그러나 아예 제안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대형. 굳이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적당하게 압박을 주고받으며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들이 참지 못하고 먼저 공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때는 싸워야겠지만 말입니다.”

“음.”

“시일이 지날수록 다급해지는 건 수나라군입니다. 우리는 손해 볼 게 없지요.”

“맞는 말이군.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온달이 흔쾌히 동의하자 을지문덕은 당황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아니, 대형께서 이리 쉽게 동의하시니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하하하. 이보게. 굳이 우리 병사들의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않겠나?”

“이런. 우문현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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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어느 순간 물러났던 고구려군이 다시 모습을 보였는데 규모가 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족히 3만은 되어 보였다. 여전히 수적 우위가 있었으나 섣불리 충돌했다가는 상당히 피해가 예상됐다.

만일, 고구려와 겨루는 것이라면 능히 해볼 만한 싸움이지만 지금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여 회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돌궐 전선이 어찌 되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기에 너무나도 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고구려군의 현재 움직임을 고려할 때 돌궐과 연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확신으로 번졌다. 돌궐의 공세와 발맞춰서 총력전으로 전환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대로 회군하면 고구려군은 기주 전역을 삼키고자 할 건 불 보듯 뻔했다.

넓은 기주 땅을 고구려가 감당할 역량이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이미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만리장성을 넘었던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던 무리 중 누구도 미래와 역량을 연결하여 고민하지 않았다.

백년대계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광활하고 비옥한 땅이 우선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미칠 노릇이다. 이미 싸울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대인!”

사만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더 불안한 사실은 그의 옆에는 황도에서 온 관리도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진나라의 주라후가 후량을 제압했습니다.”

“뭐······?”

“주라후가 1만의 병력을 이끌고 본국으로 향하다가 진군로를 돌려 후량을 기습했습니다.”

고경의 안색은 급격하게 흐려졌다. 주라후처럼 뛰어난 무장이 대뜸 후량을 점령했다는 건 의도한 바가 분명했다.

“이런.”

의도가 읽혔다.

승전을 통해서 병력을 증강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더불어 골치 아픈 후량까지 제압한 것이었으니 진나라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프군.”

특히 남쪽의 진나라에서 주라후가 군권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이라도 된다면 수나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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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황도의 공기는 차가웠고 분위기는 침통했다. 국운이 휘청일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무엇하나 제대로 해결되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천하의 모든 세력이 수나라를 공격했고, 나름의 대책을 수립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지금껏 모든 위기를 슬기롭고 당차게 해결했던 황제 양견이었으나 작금의 위기는 도무지 해결할 방안이 보이지 않았다.

“폐하. 돌궐의 대군이 파죽지세로 진군하고 있사옵니다. 황도의 대군이 당도했는데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진나라의 주라후가 언제 다시 북진을 감행할지 모르옵니다. 황급히 대군을 보내어 반드시 방비해야 하옵니다.”

“고구려 전선의 대군도 쉽사리 회군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좋게 설명해서 이 정도였다.

실제로는 하나씩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참담했다. 특히, 돌궐 전선은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은 선택해야 할 때이옵니다.”

장손람이었다. 방책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묘안이 있는듯한 그의 말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폐하. 적의 수를 줄여야 하옵니다.”

“제압할 상대는 없으니 화친을 의미하오?”

“그렇사옵니다. 돌궐의 아파가한은 신의를 저버렸기에 대화를 할 수 없사옵니다.”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자는 것이오?”

“진나라 황제는 우매하나 욕심이 많사옵니다. 후량을 점령하였기에 그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이니 어찌 대화가 통하겠사옵니까. 본국이 사신을 보내면 필시 오만하게 행동할 것이옵니다. 적합하지 않사옵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고구려였다. 양견의 표정은 굳었고, 분위기도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러나 장손람은 개의치 않으며 말을 꺼냈다.

“폐하. 지금 본국이 화친할 수 있는 곳은 고구려가 유일하옵니다.”

“······.”

“돌궐은 황도를 노리고, 진나라는 본국의 영토를 탐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고구려는 아니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우리의 영토를 점령했소. 한데, 뭐가 아니라는 것이오?”

“고구려는 북평의 지배권만 인정해주면 더는 욕심내지 않을 것이옵니다. 설령 기주를 탐하더라도 설득할 수 있사옵니다.”

장손람은 절박한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옵고 고구려만 설득할 수 있다면 기주에 발목이 잡힌 10만 대군을 이동시킬 수 있사옵니다. 부디 신의 뜻을 윤허하여주시옵소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소?”

“신은 이미 고구려 외교를 경험했사옵니다. 능히 해낼 수 있사옵니다.”

“폐하. 신 역시 같은 생각이옵니다.”

소위 역시 장손람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결국, 양견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고구려와 화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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