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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71화 (171/199)

171화 세계대전(1)

171화 세계대전(1)

자고로 세상만사라는 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일이 이 정도로 잘 풀리면 하늘의 기운이 응집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사신을 파견한 것도 모자라 자네가 직접 왔다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네. 그래. 그간 별고 없으셨나? 백제의 참담한 소식은 늘 앉은 자리에서 흥미롭게 듣고 있네.”

목리문차의 표정은 눈에 띌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바라만 봐도 즐거워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뭘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나? 아. 고 막리지 아니라 내가 나와서 놀란 것인가? 사실 처음에는 고 막리지가 자네를 만나는 방법을 고민해봤네. 그런데 이리하면 계속 속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소모적이지 않겠나?”

“······.”

“그래도 자네가 서운할까 싶기도 했지. 하여, 고 막리지가 주도하는 회담의 중간에 내가 깜짝 방문할까 싶었다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자네의 즐거움을 위해서 복잡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준엄한 결론을 내렸지 뭔가.”

“······.”

목리문차의 표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홀로 두면 짐을 싸서 백제로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내가 다 이해하네. 분명 내가 실각했다고 여겼을 것인데 너무 멀쩡하게 돌아다녀서 놀란 게 아니겠는가?”

“······숨기지도 않는군.”

“하하하! 이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가 다시 왔네. 하면, 이미 본국이 외교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걸 의미하는데 뭐 하러 더 속이나? 힘들고 재미도 없을 게 분명한데 말일세.”

“······언제 어디부터 하. 아니겠군. 처음부터 나를 희롱한 것이겠군.”

“애석하게도 그렇다네.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자네의 추론이 너무 완벽해서 그럴 수가 없었네. 이건 내 탓이 아닐세.”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계속 이어가자 목리문차의 안색은 점차 보기 좋게 썩어버렸다. 참으로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그래. 백제에 무슨 변고가 있어서 직접 온 것인가?”

언젠가는 백제에서 사신단을 보내리라 예상했다. 물론, 일방적인 희망으로 끝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 눈앞에 목리문차가 있으니 예상은 적중한 것이다.

“나를 조롱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겠으나 백제 내부의 여러 문제가 있으니 쉽사리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을 걸세. 그런데도 직접 온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군.”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서 왔네.”

“그러니까 자네가 아니라 다른 이가 와도 될 건데 왜 직접 왔는지 벌써 여러분 묻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답답하군.”

“하. 몰라서 묻나?”

“우리 정도 사이 되면 굳이 속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지. 그러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게 참으로 좋지 않겠나?”

“모략으로 외교를 어지럽힌 이가 할 말은 아니군.”

“지금부터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보자는 말이었네. 과거는 잊자는 말이지.”

어차피 주도권이 내게 넘어온 상황이었다. 칼자루를 들고 요리조리 던지며 말을 하니 목리문차라도 더 버틸 재간은 없었다.

“협상을 능동적으로 이끌자면 내가 와야 하지 않겠나? 고 막리지와 밀약을 체결한 것도 나였으니 말일세.”

“이런. 그런데 내가 나와서 계획이 틀어졌겠군.”

“표면상으로는 그렇지. 한데, 나는 오히려 자네가 나와서 더 낫다고 생각했네.”

“허. 왜 그런가?”

“자네가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으면 모처럼 찾아온 본국과의 우호적인 국면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니 말일세.”

목리문차는 노련미를 과시하며 꼬인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내고 있었다. 내심 감탄하며 쳐다봤다.

“본국의 군선이 기벌포를 타격했을 것이니 이 책임은 실각한 왕고덕에게 있다고 천명했겠지. 이번에 체결할 동맹의 대상은 국내계일 것이고.”

“암. 한데, 자네가 이렇게 멀쩡하다는 건 기벌포 공격이 고구려의 뜻, 그 자체라는 걸세. 하면, 나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 어쩌겠는가. 자네가 잘 협조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음.”

“고구려 역시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는 걸 바랄 것일세. 수나라와 정면충돌이 머지않았으니 말일세.”

국제 정세를 분석하여 백제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해서, 무엇을 바라는가.”

“고구려의 농법을 전해주겠나?”

“이런. 차라리 쌀을 달라고 하지 그러나?”

“그건 의미가 없지. 먹으면 사라질 쌀이 아닌가. 더욱이 지금 백제에 군량이 부족한 것도 아닐세. 그러나 농법은 다르지 않겠나? 차분하게 국력을 키울 수 있는 비기가 될 것인데 말일세.”

자세와 관점이 너무 당당해서 착각할 뻔했다. 고구려와 백제가 오랜 동맹 관계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목리문차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백제를 어찌 믿나?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양국의 역사가 참으로 험난한 것 같네만.”

“그건 피차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현재 고구려가 우위에 있지 않네. 당장 한수의 제후국에 명하여 본국을 공격할 수도 있네.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양국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일세.”

청산유수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원래도 달변가였는데 절박함까지 보태지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나 역시 이번 외교에서 제대로 된 협상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네. 내가 왜 직접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었나? 그래. 더 솔직하게 말하지. 나 역시 귀족의 대표에 불과하네. 그들이 내게 조건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그런데도 썩 내키지 않네. 솔직히 우리는 백제의 갈등이 이렇게 해결될 줄은 몰랐기에 당혹스러운 것도 있다네.”

“허. 대체 어떤 결과를 원한 것인가?”

“아. 신라처럼 나눠지길 바랐다네.”

“······.”

“뭘 그렇게 놀라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로 했기에 보조를 맞출 뿐인데 말일세.”

정말로 아쉽긴 했다.

진심으로 나와 고정의는 백제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서 오늘까지 달려왔다. 그토록 원대한 꿈이었기에 노심초사하며 잠도 안 자고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귀족 중심 국가로 타협을 봤다고 하니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그때 적절하게 개입해서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한 해결을 보려고 했다네. 한데, 이리될 줄이야. 별로 원하는 흐름이 아닌 건 사실일세.”

“진정 실성하셨나?”

“그게 할 말인가? 거참. 똑바로 말해보게. 자네도 본국의 내전을 기대하지 않았는가. 한데, 내가 백제의 분열을 바라는 건 틀린 건가?”

“······.”

“우리가 먹고 살려니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지만 원래는 이런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칼을 들고 휘두르는 전장에서 만나야지. 안 그런가?”

목리문차의 눈이 점차 가늘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죽거리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농법은 어림도 없네. 다른 걸 제안하게.”

“무엇을 원하나? 제시하면 나도 고려하겠네.”

“왜 이러나?”

“어차피 농법이라는 건 시간이 흐르면 전해질 수밖에 없네. 지금 억지로 끌어안고 있겠다고 하여 무엇이 바뀌겠는가. 다만, 나 역시 하루라도 빨리 또 전문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 자네에게 청한 것이지.”

“음.”

“그런데도 이리 나오는 건 내게 원하는 게 있다는 거겠지.”

“이런. 티가 났나 보군.”

“서두르지. 서로 대화를 길게 하고 싶은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 목리문차가 정말 시원시원해졌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백제가 바다를 막았으면 좋겠네.”

“허. 이런 요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이리하지 않으면 백제는 여전히 잠재적 위협국일 수밖에 없네. 그러나 바다가 막힌 상태라면 사정은 달라지지.”

고구려가 바다를 장악하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어찌 하루 이틀에 가능하겠는가. 더불어 백제는 언제라도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우리의 후방을 타격하겠노라 할 수가 있다. 실제로 대군을 움직이지 않더라도 수나라의 호승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행위였기에 미연에 차단하는 게 가장 좋다.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군선이 궤멸적 피해를 봤기에 일으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네. 딱히 손해를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달리 말하면 군선 건조를 하지 말라는 의미겠지.”

“자네의 명쾌한 분석에 내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

목리문차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왜국과의 외교는 가능해야 할 것이네.”

“그건 뜻대로 하게. 우리가 그 나라까지 신경을 쓸 이유는 없네.”

“그리하지.”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무엇인가.”

“대외적인 위계는 본국이 위일세. 이는 분명하게 해야지.”

“불합리한 요구로 본국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수용할 수 있네.”

“약탈을 금지해주지. 이 정도면 외교로 평화를 도모했다는 결론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리하지.”

목리문차와의 회담은 아주 순탄하게 마무리됐다. 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 역시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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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갈래로 북평의 정보를 파악했다. 더 긴 시간이 지나기 전에 북평의 내부를 흔들기 위해서였다. 성공한다면 외부에서 공격할 때 큰 도움이 될 건 분명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내부에서 호응할 세력을 구하는 게 쉽지 않사옵니다.”

“하. 고구려가 북평을 점령한 지 10년이 됐소? 50년이 됐소? 한데, 모두 고개를 돌렸다는 게 말이 되오?”

“지난 전투에서 상당한 숙청이 감행되었사옵니다. 더불어 현재 고구려군이 기주를 약탈하여 북평의 관리와 백성에게 나눠주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민심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하!”

양견은 소위의 말을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론적으로 물자의 보급과 분배로 외세의 통치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소위는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폐하. 북진을 심사숙고해주시옵소서.”

“어림도 없소. 이미 출병을 명하였는데 거둘 수는 없소. 내부에서 호응할 세력이 없다면 우직한 힘으로 성문을 돌파하면 되오.”

이미 수나라는 10만의 대군을 북상시킨 상황이었다. 더불어 수나라의 내놓으라는 명장들이 모두 참가했기 때문인지 양견은 패배를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이리되었으니 보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겉으로만 보면 패배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소위는 무언가 계속 불안했다.

그의 안색을 본 양견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길 수 있소. 10만으로 어렵다면 20만을 보낼 것이며 이조차 안된다면 30만을 보낼 것이외다. 나는 기어이 북평을 되찾을 것이니 우려하지 마시오.”

“폐하. 신은 그래서 우려하는 것이옵니다. 이번만 해도 상당한 국력을 소모하게 되었사옵니다. 어찌 반길 수만 있겠사옵니까.”

“진나라를 염두에 두고 있소? 어차피 그들의 황제는 암군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소. 있으나 마나 한 나라이기에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소.”

“······.”

“북평을 되찾은 뒤 온 힘을 다하여 진나라를 도모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데

“폐하!”

갑자기 들린 다급한 외침이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나라의 주라후가 북진을 시작했사옵니다!”

정말 듣기 싫은 내용이 울렸다. 지금으로서는 최악의 정보였다. 차라리 모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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