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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60화 (160/199)

160화 수조권과 관료제(1)

160화 수조권과 관료제(1)

하늘이 우리를 보고 방긋 웃는 게 분명했다. 제후국으로 파견되었던 고대원은 순탄하게 군량을 확보한 것이다.

큰 문제도 없었고 우리의 원안대로 일이 추진되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현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미친 사람처럼 웃는 것이었다. 아니, 기쁨에 취한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때였다.

세상만사가 어찌 이토록 순탄할 수 있단 말인가.

고구려가 천하를 움켜쥐는 행복한 상상에 휩싸여 있을 때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

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고구려가 고향이었으나 어릴 적 모종의 사유로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호적을 합리화한 장 의원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면 원래는 고구려인이었어야 하는 장 의원을 반겼다. 아니, 거두절미하고 놀라움을 격렬하게 표출했는데 이는 참으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하겠다.

“성과가 있었다는 말인가?”

“허. 어찌 아십니까.”

“이런! 정말 성과가 있었나?”

“하하하! 과연 그렇습니다.”

고구려 외상 의술의 발전을 진두지휘하는 장 의원이었기에 볼 때마다 성과를 재촉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정말 성과를 가져왔다고 하니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끌어안고 만세 삼창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하하! 나는 알고 있었네. 오늘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었네. 나는 참으로 난 사람이 아닐 수 없네!”

“아니, 소인이 해낸 것인데 어찌 대인께서 자찬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기쁜 일이니 어찌 고개를 끄덕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자네는 참으로 탁월하군. 그나저나 사정을 말해보게. 어떤 수준인가.”

“말도 마십시오. 그간 소인이 가른 배가 수십구가 넘습니다. 모조리 기록했습니다.”

귀화 1호인 우리 장 의원은 참으로 자신만만했다. 그의 세계에 실수는 실패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보다 듬직할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장 의원은 정말 고구려인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강렬한 끌림은 존재할 수가 없다.

“대인. 외상 의술에 관해서는 ‘우리’ 고구려가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소인은 손목을 걸 수 있습니다.”

“하하하! 계속하게. 나는 밤을 지새우더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네.”

“의서를 편찬할 수 있습니다.”

“허. 정말인가?”

특정 지식을 책으로 꾸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식인이라고 하여 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데 의서의 편찬을 제안했다는 건 말 그대로 의상 의술을 집대성했다는 걸 의미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장 의원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으니 내가 어찌 탄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시에 제자도 육성해야겠군.”

“바로 그렇습니다. 고구려의 외상 의술을 만발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아주 환상적일세. 과연 자네는 고구려의 귀족답게 참으로 오색찬란한 발상을 보여주는군. 그 안목에 내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고구려가 천하를 상대로 포효하는 이때 외상 의술의 도입과 발전은 가장 적합했다.

“크게 알려 자네의 제자를 확보할 것이네. 또한, 의과를 시행하여 합격한 자는 귀족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니 어찌 가볍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유학자나 농학자가 되면 고구려의 관리가 된다. 그러나 이들은 엄밀히 따질 때 하급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농학자와 유학자를 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외상 의술을 익혀 의과를 통과한 의원은 귀족으로 규정할 것이다.

이는 고구려의 기풍이나 풍토가 현실적인 요소를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나의 강렬한 의지를 느꼈을 장 의원은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

“대인. 소인은 지금 전율하여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인께서 보고 계시기에 감히 눈물을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자네의 청산유수를 보니 과연 우리 고구려 혈통이라는 걸 다시 알 수밖에 없었네. 내가 보고 들을 때마다 너무나도 자랑스럽네.”

“하하하! 부끄럽습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면 이제는 구체적인 지침을 내릴 때가 되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것이었다.

“태생, 국적 그리고 신분 따위는 전혀 개의치 말게. 자네가 딱 봤을 때 눈빛이 괜찮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면 그 순간부터 바로 자네 제자일세. 알겠나?”

“오. 바로 멱살 잡고 가르침을 내리면 되는 겁니까?”

“당연한 말을 의문형으로 하면 내가 섭섭하지 않겠나?”

“소인이 아직도 부족합니다.”

“큭. 그러니 잘 듣게. 인원도 제한을 두지 말게. 백 명이어도 좋고, 천 명이어도 좋네. 필요한 약재는 모두 지원할 것이고 시체도 다 구해주겠네. 그러니 자네는 외상 의술의 무궁한 번영과 발전만 생각하게.”

“이후 그들은 어디에서 활약합니까.”

“외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역시 전장이 아니겠나.”

“소인이 너무 뻔한 말을 했습니다. 크게 반성하겠습니다.”

장 의원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순탄하게 이뤄졌다. 남은 건 역시 재원의 확보였다. 물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고구려에서 관리나 귀족이 입에 풀칠하게 하는 것보다 쉬운 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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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를 시행한다는 건 단지 의원을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보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의원도 관리의 영역에 포함하는 것이기에 그들을 먹여 살릴 비용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고구려는 당장 비용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사방팔방 나가는 재원이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채권이었다. 그런데 이자를 내거나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채권이 있다면 어찌 사용하지 않겠는가.

전근대에 이런 방법이 하나 있었다. 내가 떠올린 건 바로 수조권이었다.

땅이 아니라 조세를 징수할 권한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는 조정이 당장 비용을 사용하지 않기에 부담감이 없다. 또한, 농지를 따로 관리할 비용도 필요하지 않았기에 현재 고구려로서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무슨 말이오?”

고양성의 반문에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 현재 고구려는 곡식을 군량으로 사용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옵니다. 그렇다고 하여 과거를 치른 관리들에게 귀족처럼 식읍을 나누는 것도 적합하지 않사옵니다. 하여, 신은 수조권을 청하게 된 것이옵니다. 이리만 한다면 그들을 어찌 책임지지 못하겠사옵니까.”

“내가 어찌 모르겠소이까. 한데, 막리지의 말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오. 수조권이라고 하셨소?”

“그러하옵니다. 나라에서 징수할 조세의 권한을 관리에게 위임하는 것이옵니다. 그들은 지정된 농토에서 조세를 징수하여 녹봉을 대체할 것이옵니다. 이러하니 어찌 조정과 왕실에 부담이 가겠사옵니까.”

나의 제안에 고양성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유학자, 농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의과까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조정의 부담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조권을 보급하여 집행한다면 어려움이 크게 해소될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폐하. 이리한다면 관리가 농지의 생산력을 올리고자 더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옵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분명하니 어찌 머뭇거릴 수 있겠사옵니까.”

수조권을 확고하게 도입할 수만 있다면 고구려에도 관료제가 튼튼하게 구축될 수 있다. 아무리 안 좋은 방향을 찾고자 해도 찾을 수 없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런데 고양성의 표정이 참으로 애매했다. 무언가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어찌하여 그러시옵니까. 폐하.”

“잠시 막리지의 의도를 생각하고 있었소.”

“신의 의도라고 하셨사옵니까.”

“그렇소.”

대관절 이는 무슨 경우란 말인가.

상대의 의도를 영 모르겠는 건 내가 할 말이었다. 하여, 나 역시 눈을 껌뻑이며 쳐다봤다.

“막리지. 이 문제는 조금 더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소.”

격하게 동의할 줄 알았는데 보류를 언급했다.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폐하······?”

내 표정에 담긴 당혹감을 느꼈을까?

고양성은 달래듯 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막리지의 의도는 알겠소. 이참에 유학자, 농학자, 의원을 중심으로 하여 관료제를 구축하자는 것이 아니오?”

“응당 그러하옵니다. 관료제야말로 왕권의 기둥이 될 것이옵니다. 하온데, 어찌하여 반대하시는 것이옵니까?”

“반대가 아니라 더 논의하자는 말이외다.”

“폐하.”

“막리지. 이 문제를 나와 더 말하는 건 의미가 없소.”

“······.”

“여러 의견을 수용하시오. 어쩌면 시기상조일 수도 있고, 크게 탈이 날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외다.”

그 말을 끝으로 고양성은 축객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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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다 깨다 계속 생각해도 고양성의 반응이 왜 그렇게 미지근했는지 아예 알 수가 없었다.

지금껏 고양성이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의문은 오래 걸리지 않아서 해결됐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영역에서 말이다.

나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진정하게.”

“대형. 이건 진정할 일이 아닙니다. 수조권이라니요? 귀족들이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날 겁니다.”

돌궐 전문가 고식은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평소와는 아예 다른 그의 태도는 수조권을 둘러싼 상황이 내가 생각한 영역과는 아예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했다.

“그들이 격분하기 전에 황급히 달려온 겁니다.”

일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고식은 청부업자처럼 귀족의 불만을 내게 들고 와 전하고, 협상을 펼쳤다. 이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할 때 고식을 찾는다는 의미였다.

사실 중량감이 있고, 논리정연한 고식은 청부업자로서 딱 적합한 위치였고 역량도 있기는 했다.

나는 고식을 재차 달래면서 말했다.

“수조권은 귀족과 무관한 일일세. 그들의 농지도 아닌데 왜 반발한다는 건가? 내가 잘 설명해줄 수 있네.”

“허. 대형. 설마 내가 수조권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지요. 이를 정확하게 이해했기에 반대하는 겁니다. 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 땅에서 수조권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이는 없습니다.”

이토록 단호한 고식은 경험한 적이 없었다. 돌궐에 대해서 말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더불어 고식과 귀족들이 말하는 수조권의 본질과 반대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제대로 말해보게. 듣고 타당하지 않으면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네.”

“타당하지 않다고 여기실지라도 이번에는 한 수 물리셔야 할 겁니다. 이는 대형께서 경험하신 반대 중 가장 거대할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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