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북평 전투(5)
156화 북평 전투(5)
장손람의 말은 정확한 원론이었기에 반론을 꺼낸다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매서운 눈으로 장손람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 모습은 장손람의 심증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되었다.
‘온달이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시간을 끌고자 하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북평의 정세가 엄중하기에 을지문덕이 찾아와 사정을 세세하게 설명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기에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을지문덕이 북평을 장악한 건 명확한 사실이다. 하면, 지금 당장 진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밖에 없다.
‘그 이후 을지문덕까지 죽이고 요동으로 진군한다면 어찌 변방이 안정되지 않겠는가.’
이토록 간단한 일인데도 이연이 이리 반응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모든 의문이 확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손람은 이연에게 더는 시간을 주지 않기로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소. 공은 지금 당장 전격적인 진군으로 황명을 수행하시오.”
“······.”
“왜 말이 없소?”
장손람이 다그쳤다.
하지만, 이연은 그의 말대로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지그시 바라봤다.
“대군을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이보시오!”
“지금 북평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소. 내 말이 틀렸소?”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저들이 북평의 혼란을 보고 온 이들이오. 이보다 확실한 게 어디 있소?”
“조금 전의 말을 듣지 못했소?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오. 한데, 어찌 10만 대군의 운명을 맡길 수가 있소이까.”
한 치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이연의 태도에 장손람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하! 내가 다시 말해야 하오? 고구려가 분열되었소. 북평에서 혼란에 빠졌다는 말이오! 이는 우리에게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할 수 있소. 한데, 누가 이겼는지가 대체 왜 중요하다는 것이오?”
“만일, 이 일이 온달의 계책이라면 어찌할 것이오?”
“뭐요?”
“온달이 이 모든 걸 주도하고 있다면 아군은 대체 어찌 되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돌격했다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건 불 보듯 뻔하오. 내 말이 틀렸소?”
물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과할 정도의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도출할 수 있는 일이었다.
즉, 정말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기에 이연이 지나치게 억지를 부린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손람은 거친 어조로 경고했다.
“진군을 더 미룬다면 나는 이 일을 황도에 알릴 수밖에 없소. 잊지 마시오. 황명을 거역하는 건 대역죄와 다르지 않소.”
“알리시오.”
“이보시오!”
“내 말을 똑바로 들으시오!”
결국, 이연이 고함을 지르며 죽일 듯이 노려봤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기에 장손람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10만의 대군을 동원했소. 한데, 패배한다면 어찌 될 것으로 생각하시오? 북평을 고구려에게 넘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내 말이 틀렸소? 공은 지금 고구려가 내분에 휩싸였다고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소. 하여,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의심할 수밖에 없소. 왜 그런지 아시오?”
“······.”
“묻겠소. 을지문덕이 공에게 거병을 언급한 적이 있소?”
없었다.
군권은 온달이 장악하고 있기에 애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없었소. 왜? 병력을 동원하여 온달을 제압할 수 있다면 진작에 시도했을 것이니 말이외다. 한데, 그러하지 않았소. 아시겠소? 이 모든 건 온달의 계책일지 모른다는 것이외다.”
“공이야말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시오.”
장손람 역시 듣고만 있지 않았다.
“하! 저들은 북평에서 패배를 원하오. 철수가 아니라. 그래서 본국에 손을 내민 것이오. 그래야만 내전의 명분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외다.”
장손람 역시 절대로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이연은 이를 악물며 노려봤다.
‘황명을 직접 받아온 인물이다. 아무리 군권을 앞세울지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군권은 자신에게 있지만, 구체적인 작전이 적힌 황명을 내미는 장손람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분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급소를 찌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공의 반응이오. 을지문덕이 대체 왜 거병하여 온달을 죽인다는 말이오?”
“뭐요······?”
“두 사람은 모두 평양계 귀족이오. 결국, 우리와 손을 잡는 무리라는 것이오. 한데, 을지문덕이 온달을 죽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소. 한데, 공은 이에 대한 의문을 전혀 가지지 않고 진군을 꾀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하오.”
장손람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온달의 전향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를 함구하는 게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온달이 국내계로 전향했다는 사실도 모르시오?”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그러자
“하! 만일, 그랬다면 온달의 힘이 더 강해졌을 것이외다. 원래도 그를 어찌하지 못한 을지문덕이 수를 썼다는 것이오?”
이연 역시 조롱했다.
‘참으로 저열하구나. 말을 이렇게 지어내다니.’
장손람을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등을 돌렸다. 더는 대화에도 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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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은 불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강하게 속마음을 꺼냈다.
“문덕.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나? 내가 너무 답답해서 그런다네.”
“대형께서는 대외적으로 세상을 뜬 상황입니다. 한데, 버젓이 활보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어찌 모르겠나. 그래서 자네의 말대로 바깥세상을 보지 않고 이대로만 있네. 그런데 내가 물어본 건 이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언제까지 이래야 하느냐는 걸세.”
“음. 대형께서 그동안 부지런히 씨름하셔서 많은 이가 분노했습니다. 그들 모두 대형께서 전사했다고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즉, 어떻게든 적진으로 말이 또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전까지는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온달이 고통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을지문덕은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허.”
“그리고 어차피 일이라고는 씨름밖에 없지 않습니까.”
“······나도 그건 알지만, 너무 무료하네. 내 이렇게 자네에게 간곡하게 호소하는데 어찌 이러나?”
군권을 가진 사람은 온달이었으나 을지문덕을 전폭적으로 신뢰했기에 모든 작전을 일임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온달 역시 을지문덕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그러하니 이렇게 통 사정을 하는 상황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물론, 을지문덕은 작은 인정도 베풀지 않았기에 온달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대국을 논의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나저나 저들의 상황을 더 파악해야 하지 않아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이미 혼란은 그들의 몫이니 말입니다.”
“음. 거기서 한 가지를 더 보태면 될 것 같네만.”
“좋은 생각이 있습니까?”
“사실을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걸세. 가령 내가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명확한 사실 말일세.”
그리고
“자네가 서찰까지 보내면 금상첨화겠지.”
온달이 빠른 마무리를 요구했다.
조금 전처럼 툭 던지는 말이 아니라 전략, 전술적 관점에서 타당성을 갖춘 것이었기에 을지문덕도 깊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을지문덕이 동의했다.
“하하하. 바로 시행하게. 너무 무료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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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장손람에게 호통을 치긴 했으나 상황이 복잡하게 흐르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미치겠군. 이대로 진군했다가 공성전이라도 치르면 낭패가 아닌가.’
영토를 공격해온 적과 싸우는 일이다. 그들과 공성전을 펼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무혈입성이 방침처럼 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온달이 북평을 장악한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대로 진군할 수도 없고, 마냥 지연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그때였다.
“대인. 누군가 서찰을 전했습니다.”
부관의 말에 이연의 눈이 커졌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에 곧장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고구려인이 가져왔나?”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됐다.
어차피 서찰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허.”
과연 을지문덕이 보낸 서찰이었다.
이연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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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황도와 황명을 언급했으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다시 황명을 받는다는 건 황제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이연이 불충하고 무도한 것이지만, 정치라는 영역에서는 황명을 들고서도 그를 제압하지 못한 것도 엄연히 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연이 황명을 거역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보하여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표면으로 도출된 사안은 결국, 작전을 두고 발생한 이견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연을 찍어 누를 방법이 없었기에 장손람의 부담감은 커졌다.
‘고구려와 내통한다는 증거를 확보해야만 할 것인데.’
억지로라도 이를 찾기만 하면 된다. 그를 경질할 수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전투는 진군만 해도 이기는 상황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고민이 깊어질 때 서찰이 전해졌다. 북평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을지문덕이었다 장손람은 황급히 내용을 확인했다.
“이, 이럴 수가 있나······.”
장손람의 손과 목소리는 격하게 떨렸다.
“오, 온달이 북평을 장악하여 피신했다니······.”
내용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져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그때였다.
“당장 진군할 것이외다!”
군막으로 뛰어 들어온 이연이 외쳤다. 장손람은 핏발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어림도 없소이다.”
“대뜸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아직은 때가 아니외다.”
장손람의 말에 이연은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토록 진군을 주장하다가 막상 공격을 언급하자 이렇게 나온다는 건 상식의 선에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것이오? 혹시 나를 조롱하는 것이오?”
“지금 나를 조롱하는 것이오?”
“그건 내가 할 말이오. 아니지.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오?”
이연은 모든 상황을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자는 내 발목을 잡는 게 전부다.’
그게 아니면 이리 나올 수가 없었다.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나는 황명을 수행하고자 진군하는 것이오. 공이 더 막을 명분은 없소.”
“내 말에 답하시오.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오?”
온달이 승리했다. 그는 적이다.
이 사실이 명확해지자 이연이 공격을 언급했다.
이는 필시 어떤 사유가 있는 것이다.
수나라의 국익과는 무관한 불쾌한 이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선봉에 서겠소. 공이 본진을 이끌고 오시오.”
이연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이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