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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48화 (148/199)

148화 동상이몽

148화 동상이몽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다.

물만 마셔도 속이 불편하고, 누워 있으면 등이 아플 것만 같았다. 또한, 가만히 앉아서 숨을 쉬기만 해도 목이 따가웠다.

‘평생 이토록 숨이 막히는 순간은 처음이군.’

소위의 손바닥에는 이미 땀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백제왕 부여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쾌함과 언짢음이 잔뜩 실린 상태였다. 이를 느낀 소위는 복잡하고 불편한 속을 겨우 진정시켰다. 하지만, 목울대로 넘어가는 마른침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찌하여 수나라 사신단이 고구려 수군과 함께 본국의 기벌포에 당도했는지 너무나도 궁금하오. 어떻소? 이를 세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소?”

“폐하. 본국의 사신단은 바다에서 고구려 수군에게 잡혔을 뿐입니다.”

“그건 이미 여러 번 들었소. 그러니까 바다에서 그들과 만나 함께 온 것이 아니오? 본국과 고구려의 관계를 모르지 않을 수나라 사신단이 굳이 이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것이외다.”

“폐하. 소인 역시 고구려의 속내가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백 번을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소위는 진심이었다.

또한, 그의 말도 모두 진실이었다.

그러나 부여창의 눈동자는 가늘어지기만 했다.

“일국의 사신단을 대표하는 정사라면 최소한 상대방이 믿을 만한 말을 꺼내야 하는 게 아니오? 한데, 지금 한 말은 대체 무엇이오? 외교의 기본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소만?”

“그건······.”

“그건?”

부여창의 태도는 고압적이었다.

소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 가볍게 여겼던 백제 외교가 이토록 첩첩산중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고구려 수군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이미 양국의 외교는 위계가 상실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철저한 외교적 관점으로 얻어낼 건 얻고, 내어줄 건 내어주어야만 했다. 전처럼 관직과 글자 몇 자 적어 내리는 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폐하. 본국이 만일 고구려와 손을 잡았다면 어찌 그토록 무모한 행동을 하겠습니까.”

“그걸 내가 묻고 있소. 지금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하는 것이오?”

“폐하. 이 모든 건 고구려의 모략입니다.”

“모략?”

“그렇습니다. 본국과 백제를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소위를 지그시 바라보는 부여창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명백한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공의 말은 반대로도 가능하오. 고구려가 이간질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하오? 더 유려하게 접근할 수도 있는데 말이외다.”

말꼬리를 잡는 저열한 화법이었다.

소위는 너무나도 큰 수치심이 밀려왔다. 일찍이 이런 수모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황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인내를 발휘하게 했다.

“300척의 군선을 동원하여 기벌포를 초토화한 고구려 수군이 수나라 사신을 데려왔소. 나는 이 사안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있소.”

“······.”

“양국이 이 나라 백제를 조롱하는 것이오.”

“폐하.”

“아니라면 여긴 왜 왔소?”

“본국의 폐하께서는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벌하고자 하십니다.”

“하하하!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부여창은 광인처럼 박장대소했다.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동원하여 소위를 비웃는 것이었다.

이처럼 모욕적인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오히려 소위는 무언가 이상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백제 왕이 굳이 나를 이렇게 망신 주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외교적으로 가까워질 생각이 없다면 문전 박대할 일이다. 또한, 진실로 고구려와 손을 잡았다고 여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백제는 굳이 왕도의 출입을 허락했다. 심지어 국왕을 알현하고 있기도 했다.

상황을 살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왕과 귀족들을 살폈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양측의 미묘한 기류가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원론을 떠올렸다.

‘백 보 양보하여 본국이 고구려와 동맹을 체결했다고 할지라도 백제가 감히 따질 수가 있는가?’

어림도 없다.

백제는 동방에 속하는 일국에 불과하다. 천하의 모든 세력은 동방은 곧 고구려였다. 그러하기에 백제가 감히 불평과 불만을 쏟아낼 수는 없다.

‘한데 지금 백제 왕은 본국의 결정을 추궁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의문은 증폭되었다.

남은 건 상황의 재정립이었다.

소위는 숨을 몰아쉬며 부여창을 슬며시 바라봤다.

“본국은 고구려를 정벌할 겁니다.”

“하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외다. 한데, 나더러 어쩌라는 것이오?”

“요동은 본국이 취하겠습니다. 이남은 백제의 영토로 삼으시지요.”

부여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응당 밀약으로 체결해야 할 내용이다. 진심이라면 나와 독대를 청해야 한다. 그런데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저런 말을 꺼냈다는 건 거짓이라는 것이다. 한데······.’

의문이 한 가지 생겼다.

굳이 저런 공격적인 거짓은 왜 말하는 걸까?

답은 한 가지였다.

진실과 거짓 혹은 아직 진실이 아닌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고구려 정벌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토 분할은 아직 황제와 논의한 것이 아니겠지.’

남은 사실 역시 한 가지였다.

‘여기서 굳이 언급하는 이유라. 그렇군. 소위가 나의 의도를 파악한 것이로다.’

애초 귀족들은 분노하며 소위를 내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여창은 굳이 이 자리를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나라 사신을 압박하며 왕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지금 소위는 이를 파악하고 건수를 던진 것이었다.

‘참으로 유능한 인사로군.’

수나라 황제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로잡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건 참으로 좋은 일이오. 한데, 다소 모호하게 들리오.”

“폐하께서 원하시는 걸 이르십시오.”

“본국이 고구려 정벌에 힘을 보태겠소. 하면, 수나라도 신라를 압박해줘야 하지 않겠소?”

소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백제 왕은 나를 상대하며 왕권을 키워내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백제의 내부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되새겨보면 백제의 선왕이 전쟁에서 패하여 전사했다고 한다. 하면, 왕권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처절하게 왕권을 강화하려는 부여창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참으로 시원시원하오.”

“그렇다면 본국은 폐하께서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당연히 그리할 것이오.”

부여창의 호언장담에 소위는 내심 안도했다.

‘되었다. 백제는 본국의 지원을 받고자 최선을 다해서 고구려를 압박할 것이다.’

중간에 일이 틀어졌다고 여겼는데 결과적으로 일이 더 잘 풀렸다.

‘영토 분할은 어차피 의미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요동을 무너뜨리고 평양 도성을 점령하면 백제는 가치가 없어진다. 그때 힘을 내어 사비 도성까지 무너뜨린다면 동방을 확고하게 지배하는 것이니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백제 왕 부여창은 오늘의 약조를 금과옥조로 여길 것이니 반드시 고구려의 후방을 꾸준하게 교란할 것이다.

한편, 대화를 완벽하게 주도한 부여창은 흡족하게 웃으면서 귀족들의 동향을 살폈다.

‘수나라가 실제로 군사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나는 손해 볼 게 없다.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하게 나의 권위를 보인 것이니 말이다.’

지금 부여창이 주력해야 할 건 고구려가 아니라 분열된 신라였다. 온 힘을 다하여 신라를 상대해야 하는데 고구려를 견제할 여력은 없었다.

‘영토 분할? 우습구나. 고작 신라도 영토 분할의 약조를 지키지 않는다. 고구려를 무너뜨린 수나라는 어찌하겠는가? 영토를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군을 더 남하시켜 본국까지 도모하고자 할 것이다.’

수나라 사신을 상대로 위엄을 보이면서 왕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귀족을 따로 모아서 수나라의 간교한 속내를 논파하며 국왕으로서 역량을 다시 입증할 것이다.

아주 흡족했다.

그때였다.

“폐, 폐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령이었다.

그리고

“벼, 변방이 약탈당했습니다!”

적의 공세가 알려졌다.

하필이면 이럴 때 말이다.

부여창은 험악하게 노려보며 물었다.

“신라군의 규모는 어찌 되는가?”

“신라가 아닙니다.”

“뭐라?”

“거란국과 말갈국 그리고 고막해국입니다.”

“!!!”

대화를 듣던 소위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백제의 꼴이 말이 아니구나.’

단지 변방이 약탈당한 걸로 이리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백제 귀족들의 분위기와 허둥지둥하는 왕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동반자로서 참으로 적합한 상대였다.

전체적으로 부족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능력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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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황제 양견은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럴 수는 없소이다!”

그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그러나 노기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기에 폭발하듯 고함을 질렀다.

“가, 감히 고구려가 장성을 넘어 북평을 점령하다니!”

그랬다.

고구려군의 공세가 전해진 것이다.

물론, 그들과 치열한 쟁투를 펼친 세월은 짧지 않았다. 하지만, 장성을 넘어서 점령지를 확보한 건 천년의 역사에서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전무후무한 일이 바로 자신의 치세에 발생했기에 양견은 수치스러웠다.

그래서인지 화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분노에 온몸이 잠식당하는 것만 같았다.

“이를 그대로 둘 수가 없소. 만리장성은 절대로 적의 영토에 존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외다!”

단호하게 외쳤다.

“응징할 것이외다.”

양견의 눈동자가 신하들을 담았다.

그런데 이연이 티 나지 않게 시선을 슬쩍 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이연이 이내 눈을 마주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착각했다고 여겨질 정도로 묘한 행동이었다.

“신을 찾으셨사옵니까.”

이연이었다.

다만, 그의 화법은 참으로 괴이했다.

“신이 나서겠사옵니다.”

듣기에 따라서 떠밀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양견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0만의 대군을 내릴 것이외다. 고구려를 반드시 격멸하시오.”

“신이 북평을 되찾겠사옵니다.”

“기세를 살피어 요동까지 진군해도 좋소.”

“신이 잘 살필 것이옵니다.”

모호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양견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신하의 언행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천하의 정세를 살펴야 할 중대한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돌궐의 문제도 처리할 것이외다. 아파가한과 체결한 밀약을 집행할 것이외다.”

하지만, 단지 이렇게만 진행할 수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고구려가 감히 장성을 넘을 수 있었던 건 돌궐과 마찰이 없기 때문이오. 그들이 동맹을 파기하면서 관계가 험악하기는 하지만 군사적 충돌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외다.”

말이 장황했으나 핵심은 한 가지였다.

“대카간 아사나 섭도에게도 소량의 물자를 보탤 것이오. 여러 상황으로 고립된 그는 본국의 도움에 감격하여 고구려를 압박할 것이외다.”

결과, 얻는 건 명확했다.

“저들의 분열 꾀하고 황제의 권위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겠소.”

덧붙였다.

“천하의 주인은 황제라는 걸 확실하게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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