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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46화 (146/199)

146화 내우외환

146화 내우외환

긴박한 소식에 의연의 눈동자가 굉장한 속도로 움직였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이 날 정도였다. 속이 바짝 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유학을 전하러 왔건만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왕 대인이 나를 죽이려는 게 분명하다.’

괜한 생각이 아니었다.

현재 돌궐을 둘러싼 정세는 유학을 전하며 정치적 공간을 확보할 만큼 한가하거나 평화롭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구려군이 장성을 넘고, 아파가한이 배신하고, 외곽의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굵직한 사안이 연이어 발생했다.

“대사 아니, 선생이라고 해야 하나? 어째서 아무런 말이 없소?”

이계찰의 목소리는 참으로 날카로웠다.

의연은 심장이 철렁거렸으나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소승이 나설 상황이 아니라고 여겼을 뿐입니다.”

“그렇소? 전과는 참으로 다르오?”

“소승의 의견을 듣고 싶으면 그리 말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말고요.”

이미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계찰과 관계를 잘 구축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있을수록 일은 지독하게 꼬여버릴 것이니 오히려 강경하게 대응하는 게 현명했다.

‘지계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친고구려 노선을 취할 수 없다. 그리하는 순간 이계찰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더불어 고구려 조정의 판단이 어떠한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듣지 않아도 돌궐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키길 바랄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의연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섣불리 의견을 피력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으나 굳이 말하라고 하니 어찌 바라만 보겠습니까. 아니, 애초에 이 사안이 심각할지라도 대응법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반기를 든 세력은 강력하게 진압해야지요. 미온적인 태도로 대처하면 어찌 대카간께서 북방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독할 정도로 원론적인 말이었다. 한데, 내분의 분란이 발생했을 때 원론이야말로 가장 큰 힘을 내는 법이었다.

‘돌궐이 본국의 팽창에 신경 쓸 여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계찰이 답하기 전에 지근찰을 바라보며 재빨리 말했다.

“시일을 끌수록 문제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사의 말이 참으로 지당하오.”

“실은 소승이 속세에 있을 때는 제법 괜찮은 귀족의 자제였습니다.”

“대뜸 무슨 말씀이시오?”

“고구려에서 귀족을 살아간다는 건 내전을 대비하고 익힌다는 걸 의미하지요. 소승에게는 저들을 제압할 묘안이 있습니다.”

“이보시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이계찰이 끼어들며 소리쳤으나 의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의견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한데, 내키지 않으면 여기까지 하지요. 다만, 의아한 건 대인께서는 빠른 진압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군요.”

“공은 가만히 좀 있으시오!”

“뭐, 뭐요?”

“시끄럽소! 어찌 담소를 나누는 곳에 난입하여 제 고집만 내세우는 것이오? 일단 들어나 보는 것이외다. 대사. 어서 말씀하시오.”

지근찰은 핏대까지 세웠다.

이는 그의 처지가 어려워졌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작금의 정세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한 것이다.

“박고와 동흘라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 일이 어찌 대카칸만의 일이겠습니까. 차기 지존도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때마침 군량도 넉넉하니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처라후는 고구려로부터 5만 석을 지원받았다. 의연은 자연스레 이를 상기시킨 것이다.

“남은 건 아파가한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돼지 떼의 일이 그에게는 큰 앙금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소. 이 일을 어찌해야겠소?”

“지금 당장 그와 싸우는 건 하책입니다. 우선 유화책으로 설득하는 게 옳습니다.”

“그게 가당키나 하겠소?”

“애초 고구려와 손을 잡고자 한 무리였습니다.”

“그렇긴 하오. 사실 아파가한은 처음부터 흑심을 품고 있었소.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고구려에서 그에게 다시 성의를 보이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고구려가 어찌······허. 설마?”

의연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소승이 고구려인입니다. 직접 가서 아파가한을 만나겠습니다.”

“허. 고구려의 밀사로 위장하겠다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다. 소승이 상황을 다시 재정립하겠습니다. 그 뒤 적절할 때 알리겠습니다. 하면, 어찌 손쉽게 제압하지 못하겠습니까. 만일, 이리한다면 수나라는 대경실색하여 다시는 딴마음을 품지 못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묘안이었다.

혼란스러움이 단번에 정리되는 것만 같았다.

남은 건 오직 한 곳이었다.

“고구려의 팽창은 어찌 경계하는 게 좋겠소?”

“그들을 경계하는 건 결국 돌궐의 위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부를 먼저 정리해야지요.”

“음.”

“대인. 어차피 고구려는 수나라를 도발했습니다. 머지않아 크게 다툴 것인데 어찌 돌궐을 탐하겠습니까. 즉, 고구려는 국력을 돌궐에 투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배제해도 무방합니다.”

“참으로 합당하오.”

지근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연의 손을 잡았다.

“대사께서 고생해주시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의연은 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유학의 전파는 얼어 죽을.’

왕고덕을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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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무언가 어쩐지 부족한 것만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살짝 뒤틀렸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머릿속이 간질거릴 뿐 정확하게 무언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네.”

번뇌에 휩싸였을 때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고흘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그의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다. 마주 보고 있노라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본능의 경고가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고흘의 눈동자를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고양성이 유일했다.

“장군의 고견을 들어야겠군요. 그런데 출정하겠다고 하시면 참으로 애석할 것 같습니다.”

“허. 자네는 대체 나를 어찌 보고 그런 말을 하는가? 설마 내가 북평으로 보내달라고 하겠나?”

“아니라고 하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음.”

입맛을 다시는 걸 보아하니 지독하게 전장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긴 했다. 평양 도성에서 편히 살며 훈수나 둘 수 있는 경력과 나이인데도 끝없이 전장에 나서고자 하니 말이다.

“그래서 장군께서 무엇을 알고 있으십니까.”

“이보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게. 오직 전쟁의 관점으로만 작금의 정세를 살펴보게.”

“소인이 전쟁에 재주가 없습니다.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만일, 내가 돌궐의 대카간이라면 요동을 타격할 것이네.”

“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동시에 고개까지 저으면서 말했다.

“장군. 돌궐은 현재 원정을 감행할 여력이 없습니다. 아니, 수나라를 타격하여 세폐를 얻어낼 목적이라면 온 힘을 다할 수는 있으나 철옹성이 몰려 있는 요동으로 원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으나 돌궐로서 고구려는 매력적인 타격 대상은 아니었다.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은 적은데 군사력은 비상식적으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수나라와 당나라가 목숨을 걸고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한 건 천하관의 확립이 원인이다. 애석하게도 돌궐은 이런 영역은 크게 관심이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고흘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네 상당한 착각을 하고 있군.”

“무슨 말씀입니까.”

“고구려가 수나라와 비교할 때 물자가 부족한 건 사실일세. 한데, 제압할 수 있다면 어찌 만리장성 이남보다 통치가 어렵겠는가?”

“제압할 수 있느냐가 문제지요.”

“해서, 내가 이 문제는 전쟁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한 것일세.”

“도통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고흘의 표정은 무겁고 진중해졌다. 더불어 평소 부르짖던 기승전 선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말은 고구려 최고의 무장으로서 철저한 분석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러하니 나 역시 자세를 제대로 취하고 경청하는 게 옳았다.

“천하에서 가장 군사력이 강성한 세력이 바로 돌궐이었네. 하지만, 최근 그들의 처지가 참으로 비루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이때 아군이 만리장성을 돌파하여 북평을 점령했네.”

“본국의 팽창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군사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내가 외교는 잘 모르지. 하지만, 북평 점령으로 요동의 방비가 다소 허술해진 것도 사실일세. 그러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공세를 펼쳐야지. 안 그런가?”

일견 타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했다.

그러나

“돌궐에 변고가 생길 때 기민하게 대처하려면 요동을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우리가 돌궐을 선제공격하는 시나리오가 나왔다.

“변고라.”

“고구려가 온 힘을 다해서 그들을 분열시키고 있네. 언제라도 일이 터질 것이네. 이를 바라만 볼 것인가?”

“아닙니다. 반드시 개입해야지요.”

“그렇지. 그들이 공격해올 수도 있고, 우리가 공세를 펼칠 수도 있네. 그러니 요동에 최고의 정예군을 배치해야 하는 걸세.”

타당했다.

아니, 후련했다.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던 부족함이 바로 이것이었다.

“생각해보게. 우리는 북방의 패권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군사 행동은 수나라를 겨냥하고 있네. 이건 참으로 모순이 아니겠는가?”

“옳은 말씀입니다.”

“돌궐에서 발생할 변고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곧장 안학궁으로 가겠습니다.”

“허. 이 사람아. 뭐가 그렇게 바쁜가.”

“예?”

“병력을 보내긴 할 건데, 누가 갈 건가?”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러나 고흘의 말이 더 빨랐다.

“아니, 한수 유역을 연결하는 도로도 확충하고 있네. 이뿐인가? 철광에도 인력을 투입하고, 경작지도 더 확보하고 있지 않은가. 백성들은 참으로 바쁘다네. 이러한데 엄청난 대군을 요동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겠나?”

“······.”

“그러면 최소한의 병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장군.”

“이보게.”

고흘의 목소리는 열기로 가득했다.

눈동자도 불타고 있었다.

“내가 다 양보했네. 하지만 돌궐만은 아닐세. 이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

“어쩌면 나의 마지막 전장일 수도 있네.”

“······장군.”

“나를 보내주게.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네.”

나는 머뭇거렸다.

이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입술을 깨물며 답변하지 못했다.

“보내주게. 간절하게 청하는 것일세.”

더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내 표정에서 승낙의 의미를 읽었을까?

고흘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1만 명이면 충분하네.”

천하에서 1만 명으로 돌궐을 견제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은 고흘이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감히 웃거나 고개를 저을 수는 없었다.

허언이 아닌 완벽한 진실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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