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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40화 (140/199)

140화 우리의 소원은 통일(2)

140화 우리의 소원은 통일(2)

을지문덕.

어쩌면 천하를 바라보는 시야가 좁을 수도 있다. 향후 백 년을 좌우할 대계를 수립할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아니, 아무리 을지문덕이라는 넉 자가 거대할지라도 이제 막 출사한 그가 지금 내 앞에 있는 고정의, 고식, 연자유의 식견과 감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단지 내가 원 역사의 을지문덕이 어떠했는지 알기에 그의 말을 맹신한다는 참으로 어리석다는 건 분명하게 인지하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을지문덕은 중국의 정보가 전해지기도 전에 요동 전선의 강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다소 무리한 실무적인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핵심적인 건 정세를 정확하게 분석한 그의 안목이었다.

더불어 요동 전선 강화가 단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당연한 것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을지문덕이 내게 주장했던 시절 전후는 고구려의 국운이 점차 강성해졌기에 누구도 요동 전선의 강화를 공식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즉,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또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저 정세를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간단하게 정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고, 을지문덕도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을지문덕의 말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내가 한발 양보하리다. 한데, 공들도 그래야 하오.”

“이번 사안에 중재안이 있다는 것이오? 허. 좋소. 무엇이오?”

“우리의 팽창이 수나라에 압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만······.”

고정의는 말끝을 흐렸다. 말처럼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일단 들어보시오.”

“그리하리다.”

지금은 내 생각을 꺼내서 사안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 해서,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수나라가 진나라를 도모하여 서토를 통일하오. 그때 우리도 북방을 통합하오. 그 뒤는 어찌 되오? 고구려와 수나라의 진검승부가 남은 것이오? 서로 제 영역을 확장하고 통일을 도모한 뒤 힘을 겨루는 게 대체 무엇이라는 말이오?”

상대방이 통일할 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주는 게 아니면 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적의 세력이 가장 강성해지는 걸 바라만 보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승패를 떠나서 나는 이 방법이 너무나도 회의적이었다. 진심으로 곤란하다고 여겨졌다.

“물론, 우리가 공세를 펼칠지라도 수나라가 끄덕하지 않고 통일을 도모할 수는 있소. 또한, 그리하다가 우리는 북방의 일을 도모할 시기를 놓칠 수도 있소. 한데, 말이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천하의 패권을 도모하고자 손을 뻗은 우리가 수나라가 서토를 통일하는 건 수수방관하며 바라만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외다.”

불행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말을 이었다.

“북방도 도모하고, 수나라의 통일도 제압할 방법.”

이런 방법이 존재할까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존재했다.

가장 고구려답게 생각하니 너무나도 쉽게 도출되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소.”

말했다.

“고구려답게 합시다.”

가장 고구려다운 방법.

“위기는 오직 공세로 돌파하는 것이외다.”

이는 바로

“요서를 넘어 북평군을 점령하지요.”

선제공격이었다.

“전처럼 약탈하거나 군사적으로 타격하는 게 아니외다.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북평군을 고구려의 영토로 삼는 것이오.”

“······.”

“하여, 기주의 북방에 고구려의 깃발이 꽂히게 하는 것이외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팽창이 수나라를 압박하는 방책이 아니겠소이까.”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른 이들을 설득하고,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멈추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 무능력한 대카간 아사나 섭도의 입지를 더 위축시킬 수 있소. 이는 북방에 우리 고구려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소?”

“왕 막리지. 그리했다가는 수나라와 정면충돌할 수도 있소. 이를 인지하고 있소?”

당연했다.

영토를 빼앗긴 수나라 황제 양견이 노발대발하며 대군을 출병시킬 수도 있다.

이 역시 해답은 간단했다.

고구려는

“하면 또 어떻소.”

상대의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원 역사의 영양왕이 통일 중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감행하지도 않았다. 이 나라는 원래 이렇다.

그때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고정의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찰나 팽팽한 긴장감이 내 몸을 감쌌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간 유려한 외교를 주장하였소. 하여, 고구려가 치밀하게 계책을 수립하며 한 걸음씩 조심히 걸었소이다. 한데, 갑자기 이리 나오면 내가 입장이 뭐가 되오?”

“······.”

“하하하. 한데, 너무 맞는 말이외다. 그렇소. 우리 고구려가 언제부터 상대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나아갔소. 또한, 싸움을 피하는 순간 고구려는 고구려가 아니외다.”

그의 호탕한 웃음이 듣기 좋게 울렸다. 어느새 그의 미소는 진해졌다.

나 역시 미소로 화답하며 말했다.

“하면, 모두 동의하는 것이오?”

“하하하. 고구려가 고구려의 길을 간다는데 누가 반대하오?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무례한 것이외다.”

“이런. 내가 또 실언했소.”

상황은 순탄하게 정리됐다.

하면, 이제 마무리하는 게 옳다.

“백제를 타격하러 간 강이식이 돌아오면 곧장 서토로 보내리다.”

“하하하! 좋소. 오랜만에 수륙 양면으로 공격하오.”

심지어

“만리장성 이남이라. 참으로 좋소.”

중국 본토로 진군하는 것이었다.

고구려인들의 심장이 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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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물론, 상당히 부담스럽고 위험한 작전일 수도 있었다. 여차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반대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특히, 고양성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하하하! 다 동원하시오. 안 그래도 만리장성을 치워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찰나였소.

무조건 승리만으로 생각하는 그는 과연 고구려의 태왕이었다.

사실 모두 이리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우리는 온달을 중심으로 하여 장성 이남에서 거대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간이 고구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렇듯 역사라고 할 수도 없는 최근의 일이었기에 고구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순차적으로 전쟁 준비는 시작됐다.

군량부터 외상 의학까지.

확인할 부분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대군을 이끌 장수가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당연히 온달이 총책임자였다. 고흘이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먼 산을 쳐다보면서 무시해줬다.

그런데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온달이 아니었다. 바로, 을지문덕이었다.

“묻겠네.”

“편히 이르십시오.”

“나는 요서에서 북평군까지 오롯이 고구려의 영토로 삼고자 하는 걸세. 한데, 이를 해낸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이겨 점령한다고 할지라도 저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묻는 걸세. 이를 잘 해결할 수 있겠나?”

“솔직히 답하지요. 백 승을 가져올 수는 있으나 통치는 어찌할 능력이 없습니다.”

너무 솔직했다.

그런데 여러 번 언급했듯 을지문덕은 천상 무장이었다. 통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언급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즉시 우리의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 체계를 바로잡을 것이네. 물론, 자네가 적의 공세를 부지런히 막아야 할 것이네.”

“부마께서도 함께 가십니다. 어찌 패배가 있겠습니까. 한데, 관리를 북평군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고구려 전역으로 파견하느라 수가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끙. 쉽지는 않겠지. 그런데 해야지.”

점령지를 확고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관리의 통치 체계를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고 군사 점령 상태로만 둔다면 민심을 장악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빠르게 시도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으니 어찌 가볍게 대할 수 있겠는가.

“문덕. 무슨 일이 있어도 차별은 불가하네.”

“물론입니다. 점령지의 백성은 모두 우리 고구려의 백성이 될 겁니다. 한데, 말입니다.”

“말하게.”

“혹시 파견하실 관리 중 수장은 누가 됩니까.”

“음. 생각해둔 이가 있는데 관리는 아닐세. 이번에 관등을 내릴까 싶네.”

“설마······?”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 설마가 맞을 걸세. 가서일을 보낼 것이네.”

“하하하!”

을지문덕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가 이토록 기뻐하는 건 정말 처음 봤다.

“백만 대군보다 듬직하군요.”

단지 벗이기에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가서일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든다고 하니 다행이군.”

“하하하! 그가 소인을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걱정될 뿐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겠나.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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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창의 핏발 선 눈에는 노기가 잔뜩 담겨 있었다. 지금껏 이토록 화가 난 적이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소이까!”

그간 백제를 쥐락펴락했던 귀족들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부여창의 노기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들 고개를 숙이거나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하!”

“······.”

“고구려의 수군이 기벌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소. 한데, 우리 수군은 대응도 하지 못했소. 전멸이라는 말이외다. 전멸.”

그랬다.

고구려의 군선 300여 척이 대뜸 기벌포를 공격한 것이었다. 결과는 부여창의 말대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였다. 그러니까 백제 수군의 주력이 무너진 것이다. 단 하룻밤에 말이다.

적의 기습이라는 건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것이니 어찌 신하를 탓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번에 등장한 적이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고구려는 머지않아 내분이 발생할 것이라고 떠들던 귀족들이 이 상황을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목리문차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여창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답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폐하. 수군은 평양계 귀족의 슬하에 있사옵니다. 하온데, 신과 밀약을 체결한 고정의는 국내계 귀족이옵니다.”

“고정의가 공과 밀약을 체결했소? 백제가 아니라?”

“화, 황공하옵니다. 신이 실언했사옵니다.”

목리문차는 이번 고구려 외교를 다녀온 뒤로 확고부동한 주화파가 됐다. 즉, 전쟁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며 때를 노리자는 입장이었으니 당장 신라를 정벌하려는 부여창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됐다.

한때 근왕파였던 그의 모습은 이미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 이 일에 대해서 책임진다는 말을 꺼내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참담할 뿐이외다.”

경멸감이 잔뜩 담긴 부여창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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