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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36화 (136/199)

136화 제해권

136화 제해권

옛날에 임금님 귀는 대나무 숲이라고 했다. 아무리 불필요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군왕은 어진 마음으로 귀를 열어 신하와 백성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좋은 뜻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임금님 귀는 대나무 숲이 아니었다. 그냥 대나무에 불과했다.

“폐하. 대체 왜 이러시옵니까.”

“내가 뭘 했다고 이러시오?”

나는 분명 신하였으나 감히 오만상을 찌푸리며 군왕을 쳐다봤다. 불경죄로 잡혀갈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감정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폐하. 대체 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이옵니까.”

“허. 내가 언제 막리지를 탓했다고 이러시오?”

“하온데 대체 왜 이러시옵니까.”

“막리지야말로 왜 이러시오? 내가 억울해서 살 수가 없소.”

“······.”

정말로 말문이 턱턱 막히고 말았다.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그러나 이렇게만 있으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섣불리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나 역시 사람이었기에 무의식중에 실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짧게라도 조금 전의 대화를 되새겨봤다.

-막리지. 수군을 확충하는 게 어떻소?

-수군이라고 하셨사옵니까?

-그렇소. 당장은 이대로라도 충분하지만, 장차 수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외다. 그러하니 어찌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참으로 합당하옵니다. 하온데, 이미 친위대의 규모가 5천여 명이옵니다. 또한, 사병까지 다 보탰을 경우 육군이 30만 명에 이르옵니다. 이러할 때 수군을 대규모로 확충하는 건 무리가 있사옵니다.

-······

-점진적으로 확충하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

-신이 잘 해내겠사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게 다요?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됐소. 가보시오.

-······.

대충 이런 대화였다.

아. 아니다.

대화는 뒤로도 더 이어졌다.

-음. 하오시면 신은 물러가겠사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어찌 물러가지 않소?

-······지금 물러가겠사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어찌하여 이러시옵니까.

-대체 퇴궐은 언제 하시오?

-신은 그저······.

-어처구니가 없소. 진심으로.

이런 대화였다.

대체 내용만 보면 누가 태왕과 막리지의 대화라고 여기겠는가. 되새겨도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실언하지 않았다. 고양성이 이상한 것이다.

마음을 다시 부여잡고 말했다.

“분명 폐하께서 수군의 확충을 이르셨사옵니다.”

“그랬소.”

“하여, 신이 격하게 동의했사옵니다.”

“허.”

“아니, 대체 왜 이러시는 것이옵니까. 정확하게 하교해주셔야 신이 알지 않겠사옵니까. 하온데, 계속 탓만 하시니 참으로 당혹스럽사옵니다.”

“허.”

“······.”

알게 되었다.

이래서 고구려가 내전을 자주 일으킨 것이다.

나도 방금 내전을 떠올렸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치욕스러웠소.”

“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일찍이 우리 고구려는 백제의 사신이 서토로 갈 때 바다에서 잡아냈소. 이를 잊으셨소?”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천하의 바다가 곧 고구려의 내해였던 시기가 있었사옵니다.”

“허. 내 말을 대체 어찌 들으시는 것이오? 과거의 영광이나 곱씹자는 말이 아니지 않소이까. 나는 수나라의 사신이 당항성에 올 때까지 전혀 몰랐던 우리의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소.”

이런.

나와 고양성은 전혀 관점이 달랐다.

나는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군의 확충을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성이 요구하는 건 단지 전투에서 싸워 이길 강군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고양성은 지금 제해권의 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고양성이 제해권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고구려를 더 강성하게 하고자 과거의 황금기를 모델로 삼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이 땅에서 산다고 하여 천하가 오직 땅으로만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소. 바다까지 오롯이 취해야만 패권을 확보했다고 선언할 수 있소이다.”

아니, 어쩌면 정립하지 못했을 뿐 이미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우리가 바다를 다시 통제하지 못한다면 어찌 패권을 운운할 수 있겠소이까.”

이러면 내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제해권을 바라보는 군왕에게 전투의 승리만을 말하는 건 대화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신의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수군의 확충에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겠사옵니다.”

“확충하여 서해를 확실하게 우리의 바다로 만들어야 하오. 나는 서토의 무리가 마음대로 바다를 탐하는 게 참으로 꼴 보기가 싫소.”

그나저나 다 알겠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넓고 넓은 바다에서 수나라의 움직임을 포착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니 말이다.

그런데

“막리지가 동의했으나 이른 시일 안으로 우리 군선의 수를 1,000여 척으로 확충하시오.”

고양성이 미친 소리를 했다.

“이리하면 수군의 규모가 최소 5만 명에 이를 것이외다. 이 정도는 되어야만 서해를 확실하게 우리의 바다로 취할 수 있지 않겠소?”

“폐하.”

“물론, 어려움은 있을 것이외다. 한데, 막리지. 장담할 수 있소?”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서해를 장악하지 않고, 서토를 제압할 수 있느냐는 말이외다. 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오. 특히 백제는 여전히 서토와 외교를 수립하고 있소. 이 또한 괴이하지 않소이까? 북방을 바라보는 이때 우리는 후방의 안전을 더 확실하게 해야 하오. 그러하니 백제의 바닷길을 차단할 필요가 있소. 내 말이 틀렸소?”

다 맞는 말이긴 한데 목표치가 너무 거대했다. 현재 규모에서 3배가 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해권 확보라는 건 너무나도 옳고 타당한 대의였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신이 바다를 폐하께 안겨드리겠사옵니다.”

“좋소.”

나는 분명히 말했다.

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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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봐도 강이식은 천상 군인이었다. 절도 있는 자세와 군더더기 없는 말투까지 딱 그랬다.

“소인을 찾으셨습니까.”

역시 용건 중심의 간결한 대화를 선호하는 강이식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밥은 먹었나?”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먹게.”

“괜찮습니다.”

“먹게.”

“괜찮습니다.”

이건 뭐 기계와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용건이나 꺼냈다.

“폐하께서 서해를 원하시네.”

“소인이 준비하겠습니다.”

“······진정하게.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네.”

“대인. 조금 전에 분명 폐하께서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론이 아니면 무엇이 본론이겠습니까.”

“애석하지만, 전혀 아닐세. 왕명은 서론에 불과하네.”

“허. 그렇습니까? 그러나······.”

“아아. 진정하게.”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강이식의 불타는 충심을 진정시켰다.

“왕명을 결사 관철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일세. 한데, 무작정 덤빈다고 해서 이뤄지는 건 아니지 않나? 폐하께서 서해를 원하신다고 하여 무작정 군선을 이끌고 출병하여 바다를 종횡할 수는 없는 것일세. 나는 자네가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여기고 있네.”

“······.”

“음. 이럴 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나?”

“소인이 조금 어지럽긴 합니다.”

“됐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이 대화를 더 하면 마음이 아파질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제해권의 확보였으니 말이다.

“바다는 땅과 달라서 명확하게 관할을 선언하는 게 쉽지 않네. 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가 항상 있을 수도 없으니 말일세.”

“그렇습니다. 하지만, 항로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이를 장악하면 어찌 서해를 확보하는 게 어렵다고 하겠습니까.”

“그러자면 지금 규모의 수군으로는 어림도 없지 않겠나?”

“군선을 더 건조하실 생각입니까?”

“그것도 진행해야지. 그러나 어찌 그것만으로 서해를 가질 수 있겠나?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일세. 생각해보게. 우리가 평화롭게 군선을 건조할 동안 저들은 그냥 하늘만 쳐다보고 있겠나?”

“늘 그렇지만, 그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인은 너무나도 답답합니다. 그들은 왜 우리를 따라 하는 겁니까?”

“그렇지. 바로 그것일세. 나 역시 불편하다네.”

“과연 대인께서는 천하의 정세를 명쾌하게 해석하시는군요. 소인이 오늘도 크게 배웁니다.”

이러니까 대화가 참으로 잘 통했다. 나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게. 아무리 우리가 이를 악물고 군선을 건조한들 수나라보다 빠르고 많이 수행할 수 있겠는가?”

“어렵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실제로 그들의 군선이 본국의 몇 배는 될 것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 그래서 오늘 우리의 대화가 중요한 것일세.”

나는 본격적으로 정확한 핵심 혹은 구체적인 작전을 하나씩 언급했다.

“나는 우리가 천하에서 가장 많은 군선을 가질 방법을 알고 있네.”

“무엇입니까. 당장 이르시지요.”

“천하에서 가장 많은 군선을 건조할 수 없다면 적의 군선을 모조리 없애면 되는 걸세.”

나의 단호한 말에 강이식의 눈이 커졌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허. 참으로 묘안이십니다.”

“암. 배가 없으면 바다로 나올 수 없으니 자연스레 우리가 서해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과연 그렇습니다. 소인은 벌써 심장이 설레고 있습니다. 적의 군선을 모조리 불태우고, 건조 시설까지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이리한다면 자연스레 우리가 서해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

1,000척의 군선을 가질 수 없다면 적의 군선을 100척 미만으로 줄이면 되는 것이다.

이리하면 우리의 군선이 천하에서 가장 많아진다. 이것이야말로 제헤권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현재 우리가 바다에서 견제해야 할 나라는 수나라와 백제일세. 그런데 이들은 지금 서해에 오롯이 신경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일세.”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동방, 서토, 북방으로 나눌 수 있는 천하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작금의 천하로 규정하는 그 어떤 이론에도 서해 혹은 바다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바다에 집중하기 전에 인접한 적국을 제압하는 게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고, 정세였으니 말이다.

바로 이럴 때 우리가 먼저 바다를 취한다면 천하의 패권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전권을 주겠네.”

“전권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강이식의 입가가 묘하게 떨렸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라도 나서서 그의 기쁨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줘야 했다.

“300여 척에 이르는 군선일세. 자네가 잘 이끌게.”

“미칠 것 같습니다. 하면, 서토로 갑니까.”

“아닐세.”

당장 그리할 필요는 없다.

바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역시나 시작은 동방의 위계가 아니겠는가.

“백제로 가게.”

“이런. 그들의 수군을 무너뜨리라는 것이군요.”

“그렇지. 어차피 그들이 신라와 바다에서 싸울 것도 아닌데 군선이나 수군은 불필요하지 않겠나? 가뜩이나 나라 살림도 어려울 건데 억지로 유지하는 걸 보니 내가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네. 어떤가. 자네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겠나?”

“물론입니다. 소인이 능히 해내겠습니다.”

“당장 출병하게.”

아.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보탰다.

“불필요한 교전은 피하게. 우리는 백제를 훈계하는 것이지 싸우는 건 아니니 말일세.”

“소인이 심장에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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