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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18화 (118/199)

118화 무너지는 북방(1)

118화 무너지는 북방(1)

수나라 사신이 남신라로 가서 무슨 말을 할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면 알아서 우리 욕하면서 잘 떠들 것이다. 무조건 갔을 것이다. 어차피 돌아가려면 우리 당항성을 거쳐야 하니 말이다.

편안하게 남쪽을 바라봤다.

남북조 신라와 한수의 4개국.

그리고 아직 어지러운 백제.

이만하면 남쪽은 평정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아예 변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백제가 무언가를 취하면 다소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소.”

고양성의 지적대로 백제는 여전히 강국이긴 했다. 그들이 힘을 키워서 다시 비상하면 남쪽의 정세가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백제가 각 잡고 움직인다면 남북조 신라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게 변수라면 변수였다.

“최악의 경우, 백제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외다.”

“폐하. 그러면 다른 방법을 취하면 해결할 수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한수 4국에 일러 백제의 약탈을 명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어차피 그들은 이제 북신라를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옵니다.”

“음. 나쁘지는 않소만.”

“폐하. 어차피 백제는 본국이 전력을 다해야만 제압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북방을 오롯이 취하면 어찌 백제가 더 저항할 수 있겠사옵니까.”

여기서 백제까지 우리가 손을 대는 순간 북방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애초 나와 고구려의 목표는 삼국통일이 아니다. 북방의 패권이었다. 또한, 나는 삼국통일은 북방의 패권을 확보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확보할 부수적인 결과로 바라봤다.

100만의 대군을 운용하는 고구려를 백제와 신라가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그러니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는 명확한 것이었다.

“하하하! 사실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소이다. 어차피 우리가 오늘 논의할 핵심이 모든 걸 다 덮어낼 것이니 말이오.”

“바로 그러하옵니다.”

그랬다.

오늘 우리는

“이앙법이 성공했다고 들었소.”

성과를 말하는 자리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우리 고구려의 독창적인 농법, 이앙법이 성과를 내었사옵니다. 진실로 감축드리옵니다.”

주지했듯이 이앙법은 무혈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 농법이었다. 고구려는 가장 반가운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이외다. 한수 유역은 이앙법이 적합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던데 막리지는 어찌 생각하시오?”

“번국에 일러 이앙법을 집행하게 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본국이 직접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옵니다.”

“음.”

“폐하. 어차피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여 관개 시설을 축조해야 하옵니다. 그러니 미련을 거두시옵소서. 하옵고 아직 고구려 땅만 하더라도 무궁무진하옵니다.”

“그건 그렇소만.”

진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고양성을 비롯한 고구려인에게 이앙법은 그야말로 마법의 농법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폐하. 요동의 성과만 하더라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사옵니다.”

그랬다.

요동의 개간 사업은 실로 괄목한 성과를 내었다. 국유지에서만 인건비를 제외하고 수십만 석의 쌀을 확보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요동의 경작지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장계가 기쁨과 환희를 담아서 미친 듯 올라왔다.

이를 처리하는 농업부는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매일 야근했다.

어디 성과가 이뿐이겠는가.

기쁘고도 슬픈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단이 부족하옵니다.”

양잠업의 일이었다.

귀족들은 조세를 비단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수확량이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었기에 예상보다 많은 비단이 필요했다.

“끙. 그건 막리지가 좀 알아서 하시오.”

“아니, 폐하. 이는 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가 없사옵니다.”

“거. 그러니까 뭐 하러 여인들에게 양잠업을 하라고 했소? 감당도 못 할 거면서.”

“······신이 일부러 그랬사옵니까?”

“내가 다 나설 수 있는 양잠업은 아니외다.”

그랬다.

귀족의 조세를 확보하려면 양잠업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고구려 여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한 양잠업에 입을 댄다는 건 사실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눈치를 보다가 공주에게 양잠업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 했다가 종일 시달렸소. 어찌나 격렬하게 싫다고 하던지······.”

“애초 공주에게 그리 이르신 폐하께서 잘못하셨사옵니다.”

“그래도 공주라면 여인들을 잘 통제하여 양잠업을 수행할 수 있을 줄 알았소.”

“허. 혹시······.”

“그렇소. 공주가 ‘폐하께서 신의 정치적 생명을 끊으시려는 것이옵니까? 참으로 너무하시옵니다!’ 이러면서 노발대발하더이다.”

“이런.”

평강공주가 물러설 정도면 고구려에서 양잠업을 강하게 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음. 한데, 꼭 방법이 없는 건 아니외다.”

“무엇이옵니까?”

“내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태자와 부마가 나선다면 제법 효과가 있을 것 같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태자인 고대원은 아이돌 수준으로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온달도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용맹하기에 남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평강공주와의 러브스토리로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떻소?”

“음. 한데, 위험부담이 크옵니다.”

“위험부담이라고 하였소?”

“차기 지존과 최고의 무장이 일년내내 앉아서 여인들과 양잠업을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사옵니다.”

“······.”

“감당하실 수 있사옵니까?”

“음. 그건 곤란하오.”

“그러니 전력의 절반을 투입하는 게 어떻사옵니까.”

“음. 우선 태자를 보내리다. 어차피 백성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니 말이외다.”

“실은 신도 그리 여겼사옵니다.”

온달은 뻘쭘하게 있다가 팬 미팅만 하다가 올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고대원은 팬 미팅하면서 성과도 창출할 것이다.

“그나저나 서토도 수확의 계절이니 우리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소?”

“물론이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모두 단단히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고양성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일제히 약탈을 감행하라고 하시오.”

“바다와 육지 모두 진행하겠사옵니다.”

“윤허하오.”

수확의 계절, 이는 곧 약탈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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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遊牧).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않고 가축을 이끌고 이동하는 생활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흔히 유목은 날씨와 큰 연관이 없다고 여긴다. 가령 비가 오지 않아 수풀이 없으면 비가 내리는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유목은 농경보다 자연의 영향을 더 강력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잉여 생산물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였기에 체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가뭄(흑재), 한파, 폭설(백재)의 재해와 낭해(겨울철 늑대가 가축을 습격하는 것)와 가축의 전염병 등이 있다.

이 중 초원의 가뭄은 초지를 줄어들게 한다. 하여, 가축이 아사하거나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초원의 가뭄은 초지가 완벽하게 파괴되는 것이기에 황무지가 광범위하게 번지게 된다. 즉, 유목민은 생존 기반 자체가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겨울의 폭설도 초지를 완전히 뒤덮기에 가축이 아사한다. 굶주림에 가축은 병이 번져 죽게 된다.

유목민은 상대적으로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힘이 미약했다. 그러기에 한번 무너진 초원의 기반은 회복하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리고 지금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초원에서는 우레와 번개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땅까지 내려서 초원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미 초원 전역에 비가 내린 지가 오래였다. 지독한 가뭄이 몇 개월간 이어졌기에 초지는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땅이 불모지로 변하였고, 가축은 폐사가 진행됐다.

그러니까 지금 천하의 패권에 가장 근접했던 돌궐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누가 외부에서 흔든 것이 아니었다.

오직 ‘기근’이 원인이었다.

자체적인 힘이 아니라 늘 외부의 물자 유입으로 세력을 유지한 ‘군사 강국’에 불과한 돌궐은 이를 막아낼 역량이 없었다.

아사나 섭도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수, 수나라에서는 어찌하여 세폐가 당도하지 않는 것인가!”

“머지않아 당도할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이러다가 다 굶어 죽게 생겼다. 한데, 하는 말이 고작 기다리라는 것인가!”

줄곧 수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했던 지근찰의 안색은 노랗게 변해버렸다.

‘수나라에서 운송되는 시간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역정만 나더러 어쩌라는 것인가.’

내심 억울하였으나 지금 괜한 말을 한다는 건 대카간의 노여움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지, 지금 양들이 모두 죽었어. 우리에게 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가?”

“······.”

“초원이 모조리 붉어졌단 말이니라!”

지근찰은 고개를 숙이며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재해가 올해만 있었던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거늘 어찌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인가.’

사실 초원에서 재해는 5년 혹은 10년을 주기로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간 대카간은 권위를 유지하며 돌궐을 통제해왔다. 한데, 아사나 섭도는 유독 동요가 심했다. 이러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과거에는 내외부의 도전이 없었기에 초원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돌궐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외교적으로 수나라의 세폐를 약조 받았으나 당도하지도 않았기에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실존하는 위협이 있었다.

바로

“고구려와 혈맹을 체결한 뒤 교류가 전혀 없었습니다.”

고구려였다.

이계찰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그들은 이미 우리 돌궐이 수나라와 동맹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한들 바뀌는 건 없소. 그들이 언제 북방을 넘봤소? 수나라의 세폐를 최대한 확보하면 아무런 탈이 없소.”

“참으로 답답하시오!”

이계찰은 지근찰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와 혈맹을 체결한 뒤 기주를 초토화한 고구려요. 그런데 우리가 대뜸 수나라와 동맹을 체결했소. 그들이 이를 모를 것으로 생각하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하! 그들이 우리와 수나라의 협공을 우려하지 않을 것 같소?”

“······.”

“그런데 지금 초원은 대기근이 발생했소. 묻겠소. 고구려가 수수방관할 것 같소?”

이계찰은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일, 고구려와 우호적 관계라도 어떻게든 유지했다면 아무런 탈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너무나도 저열하게 관계가 차단되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논의는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고, 고구려가 수만 마리의 돼지를 아파가한에게 지원한다고 합니다.”

“!!!”

외교의 실패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지금 돌궐은 기반이 송두리째 흔드는 기근이 발생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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