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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70화 (70/199)

< 70화 천하삼분지계 >

70화 천하삼분지계

진나라 황제 진욱의 얼굴은 환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참으로 기쁜 소식이 전해졌기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사가 또 있을까 싶었다.

“하늘의 기운이 우리 진나라에 집중되고 있도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천하의 정세가 이토록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면 무엇이겠사옵니까.”

고구려 사신단의 일정을 수행하고 온 위정의 보고는 그야말로 최고의 쾌거였다.

“선전포고라니. 하하하. 고구려가 수나라에 선전포고하였소. 내가 너무 기분이 좋소.”

주라후 역시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는 하늘이 진정으로 우리를 돕는 것이다.’

불안했던 요소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황제는 의욕을 되찾았고, 천하의 정세가 너무나도 유리하게 움직였다.

“하온데, 폐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위정이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진욱과 주라후는 의아하여 쳐다봤다. 사신단의 정사가 이리 나온다는 건 고구려에서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왜 그러시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고구려에서 요구가 있었사옵니다.”

“요구······?”

진욱은 의아했다.

‘본국과 고구려가 무언가를 요구하여 주고받을 관계였던가.’

괜히 불안해졌다.

만일, 고구려가 정세의 유리함을 근거로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했다면 참으로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위정은 잠시 눈치를 살폈다.

‘모든 걸 폐하께 고할 수는 없다. 이는 내가 무덤까지 들고 가야 할 일이다.’

오만했던 막리지 왕고덕을 떠올리니 수치심이 치솟았으나 지금은 대의를 생각할 때였다. 철저하게 실리만 따져야 한다.

“본국이 백제를 압박하길 바라였사옵니다.”

“백제?”

“그러하옵니다. 양국은 대대로 앙숙이 아니옵니까. 그러니 본국이 백제를 압박하여 수나라와 단교하길 바라였사옵니다.”

“그건 우리 역시 바라는 바요.”

“하오나 백제에서 수용할 가능성이 없사옵니다.”

“하면, 우리가 백제와 단교해야지요. 이 정도 성의면 고구려도 탓하지 않을 것이외다.”

어차피 백제는 천하의 정세에 아무런 보탬도 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러니 부담 없이 강력하게 압박할 수가 있었다.

“하온데, 폐하. 백제를 강하게 자극하면 오히려 수나라에 더 구애하고 나설 수도 있사옵니다. 만일, 성난 백제가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한다면 우리로서는 참으로 난처하옵니다.”

주라후가 군사적 측면의 시야를 제시했다.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작금의 정세에서 백제가 고구려의 발목을 잡으면 진나라도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공의 의견도 옳소. 하면, 어찌하는 게 좋겠소? 사실 타이른다고 하여 될 일도 아니지 않소이까.”

“상황을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하겠으나 백제는 신라와 앙숙이옵니다. 만일, 본국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백제를 압박하게 한다면 고구려는 큰 짐을 덜게 될 것이옵니다.”

“고구려 역시 신라와 적대관계가 아니오?”

“신라는 작은 나라이옵니다. 그러하니 양국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사옵니다. 또한, 고구려 역시 수나라 원정을 준비하는데 남쪽에 시선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탈은 없을 것이옵니다.”

주라후의 의견은 합당했다.

진욱은 흡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백제를 압박하되 신라에는 사신을 보내어 신라왕을 달래어 백제로의 공세를 명하겠소.”

“참으로 지당하신 하교이옵니다.”

모든 것이 순탄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위정은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불안함이 씻은 듯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왕고덕의 오만함만 홀로 감내하면 외교의 성과는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한 가지가 더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실은 고구려가 참으로 처지가 어려웠사옵니다.”

“고구려는 백성이 사납고, 군사력이 강할 뿐이외다. 영토는 좁고, 물산이 부족하니 늘 처지가 어려운 건 당연하오.”

“하여, 본국의 여러 장인을 청하였사옵니다.”

“장인이라.”

“그러하옵니다. 간곡하게 본국을 배우고자 하였으니 신이 뿌리치기 참으로 어려웠사옵니다.”

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자의 지원도 아니고, 장인 몇 명을 보내는 것인데 무엇이 대수겠소?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외다. 서둘러 준비하여 고구려에 황은을 내리겠소.”

주라후 역시 특별한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장인 몇 명을 보내는 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폐하. 하오면 신은 북벌을 더 철저하게 준비하겠사옵니다.”

“하하하. 그리할 줄 알았소이다. 보시오. 기다리니 천명이 다가오지 않소이까.”

그간 북벌을 서둘렀던 일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혜안을 보이셨기에 일이 이토록 잘 풀리게 되었사옵니다.”

“하하하. 이리되었으니 북쪽의 대군이 남하할 때 아군이 북벌을 단행하면 모든 건 순탄할 것이외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가장 완벽하게 준비하시오.”

“응당 그리할 것이옵니다.”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일이 말끔하게 정리됐다. 하여, 진나라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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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의는 평양 도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무려성에 잔류한 상태였다.

천하의 정세가 참으로 묘한 흐름을 보이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러할 때 섣불리 행보를 결정하면 탈이 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길어졌기에 잘게 미간을 찌푸리는 일이 잦아졌다.

“대인. 모든 게 순탄한데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음.”

고정의는 을지문덕을 빤히 쳐다봤다.

“서일의 벗이라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벗과 벗이 이토록 출중하니 참으로 보기 좋군.”

“허. 대인께서 소장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 겁니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일찍이 거란족과 협상할 때 자네가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일이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네.”

“소장이 계속 부끄럽습니다. 대인.”

을지문덕이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자 고정의는 피식 웃으며 말을 돌렸다.

“돌궐이 무슨 생각인지 짐작하기 어려워서 체할 것 같네. 어떤가. 자네가 내 속을 좀 다스려주겠나?”

“······소장이 말입니까.”

“여기에 자네 말고 또 누가 있나?”

“음.”

“응?”

“사실 수나라 황제의 상황을 고려해본 적이 있습니다.”

“오. 그런가? 그 또한 흥미로운 일일세. 그래. 말해줄 수 있겠는가?”

“그의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서 말해보게. 사실 나는 머릿속이 멍해서 가늠하는 게 어렵다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고구려에서 고정의의 혜안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가 모르면 고구려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인께서 순수하게 내 생각이 궁금하시구나.’

어쩌면 을지문덕에게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어떤 형식일지라도 이는 고정의에게 정세의 흐름을 배울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크게 기뻐하며 의견을 말했다.

“변방도 아니고 기주의 내부에서 대패했습니다. 한데, 침묵하면 북방의 분열을 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필요한 서두를 자르고 시원해서 좋군. 그래. 이이제이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음. 한데, 돌궐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겠는가? 이번에 아주 이를 갈고 있지 않은가.”

“대인. 본국과 돌궐은 공동의 적을 두고 있기에 군사동맹을 체결하였습니다. 한데, 수나라가 적인 이유가 양국은 다릅니다. 고구려는 고구려만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돌궐은 돌궐만으로 생존을 꾀할 수 없습니다.”

고정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수나라는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로서는 현재 가장 중요한 건 양국의 동맹을 끊어내는 겁니다.”

“하면, 어찌하겠는가?”

“돌궐이 싸우지 않을 상황을 만들 겁니다.”

“세폐를 다시 내밀겠군.”

“그렇습니다. 필시 그리할 겁니다.”

“그건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네.”

고정의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하지만 을지문덕의 그에게서 아무런 심각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는 분명 큰일인데도 이러하니 참으로 의아했다.

“궁금하겠군. 돌궐이 이탈할 수도 있는데 내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돌궐과 어디까지 손을 잡을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긴 했네. 우리는 뒤에서 약탈하는 게 주된 목표인데, 전쟁이 발발하면 수시로 원군을 보내달라고 하소연할 것도 훤히 보였고 말일세. 이는 참으로 귀찮은 일이긴 하지.”

애초 고구려는 전선에서 피를 흘릴 생각이 없었다. 정확한 이권을 취할 생각이었다.

“자네 그거 아나? 먹을 수 없는 떡이 있고, 먹어도 되는 떡이 있다는걸.”

을지문덕은 특별한 대꾸를 하지 않고, 차분하게 경청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들어야 할 때라고 여긴 것이다.

“수나라는 우리가 먹을 수 없는 떡일세. 어차피 우리가 도모할 수 없는 곳이지. 기껏해야 세폐나 받겠지. 한데, 이는 늘 끝이 좋지 않아. 왜? 남이 바치는 풍요로움에 취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일세. 자네 돌궐이 왜 휘청이고 있는지 아나?”

“일러주시면 새겨듣겠습니다.”

“밥상을 차릴 생각은 없고, 늘 차려주는 것만 먹어버릇해서 그런 것일세.”

“······.”

“아무리 강대한 군사력이 있으면 뭐 하나? 밥상을 안 차려주면 홀로 일 년도 버티지 못하는데. 참으로 한심하지 않나?”

당대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한 돌궐을 향한 고정의의 평가는 참으로 야박했다. 그만큼 그는 냉소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받아먹을 때는 받아먹더라도 알아서 차려 먹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걸세. 볼수록 답답하고 한심하다네.”

“······.”

“이보게. 만일, 우리 고구려가 돌궐의 힘을 취하면 어찌 될 것 같나?”

“존재가 곧 천하로 규정될 것입니다.”

“그렇지. 응당 그리될 것이네.”

고정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고구려는 고구려대로 30만의 대군을 운용할 수 있네. 여기에 돌궐의 40만을 보태면 70만의 대군을 운용할 수 있지 않겠나? 우리가 이 힘을 통제한다면 누구도 이 땅을 범할 수 없을 것이네.”

“대인의 말씀은······.”

“먹으면 체하는 서토와 달리 돌궐은 먹어도 되는 떡일세.”

고정의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을지문덕은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돌궐의 분열을 꾀하십니까?”

“그래도 좋고, 아예 다 잡아 먹어버리면 더 좋고.”

“······.”

참으로 담대한 계획이었다.

아니, 경천동지 그 자체였다.

이를 생각지도 못하였던 을지문덕은 말문이 막혔다. 멍한 표정으로 고정의를 바라만 봤다.

“북방을 오롯이 제패한 고구려와 하북의 수나라. 그리고 남쪽의 진나라.”

“······.”

“천하가 이리 개편된다면 고구려는 새로운 천년을 도모할 수 있는 걸세.”

이는 곧

“천하삼분지계일세.”

천하삼분지계였다.

“이 천하에 백제와 신라의 자리는 없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들은 자격이 없기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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