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또 다른 전설의 준비(2)
63화 또 다른 전설의 준비(2)
중대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러나 열정적인 강의가 있기에 남몰래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의연의 강의는 유학의 재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손목을 걸 수 있는데 공도와 맹도의 말은 절대로 저런 뜻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고구려에 오면 고구려가 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막상 유학이 이리되는 걸 보니 혜자가 일궈낼 불교는 어찌 될지 참으로 기대가 되었다.
그나저나 더 가슴이 뿌듯한 건 우리 유생들의 학구열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학문적으로 대단한 수준을 바란 건 아니었으나 의연의 강의에 발맞춰 지적 수준이 수직상승하고 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자고로 국가가 주도하는 모든 행위는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행동도 인생관에 따르는 것인데 일국의 통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국가 단위로 집행하는 약탈에 철학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홀로 미소 짓고 있을 때 하늘을 날릴 것만 같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대인께서 오셨습니까!”
강의를 마치고 나타난 의연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잔뜩 실려 있었다. 얼굴도 참으로 밝았고, 눈동자는 빛났다. 그런데 나라도 이러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성과가 좋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하하. 말해보게. 이토록 성과가 훌륭한데 내가 어찌 듣지 않겠는가.”
“대인. 유학은 불교의 신묘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음?”
“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철학적 오묘함을 우리에게 많이 배웁니다. 고승 중 유학에도 뛰어난 이가 많은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한 마디로 사상의 심오함이 현재 유학은 불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대뜸 이래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 내게 바라는 게 있지 않나? 왜 이리 말을 돌리나?”
“우리 유생이 열의는 있으나 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 암기는 잘하나 이해력이 부족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야 하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서책을 보고 알아서 이해하면 얼마나 좋을지······.”
사실 의연의 유학을 듣지 않고 알아서 이해하는 게 더 이상했다. 그나저나 이만하면 충분히 의사를 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슬며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내용을 정리해서 주게나. 서책으로 인쇄하겠네.”
“과연 대인께서는 탁월하십니다.”
“됐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의연의 방식으로 유학을 정리하여 고구려 전역에 보급해야 우리는 사상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한데, 여기까지는 어찌 오셨습니까. 소승이 유학을 전하는 내용을 보고 듣고자 오시지는 않으셨을 거니 말입니다.”
사실 내가 직접 찾아온 건 이례적인 일이긴 했다.
고양성을 제외한 모든 이가 나를 찾아오는 세상이니 말이다.
심지어 평강공주도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굳이 의연을 보러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중요한 사안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유생들도 본격적으로 유학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나?”
“음.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만, 굳이 언급하신다는 따로 생각하신 게 있다는 것이군요. 소승이 반드시 관철할 테니 일러주십시오.”
“내가 백 번을 생각해봤네. 학문을 익히고, 농법을 장려하며, 고구려의 기층을 통치하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유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본분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간쟁이 아니겠는가?”
간쟁이라는 말에 의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강력하게 표출한 것이다.
“간쟁이라고 하셨습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해야 하는 그 간쟁이요?”
“잘 아는군. 나는 바로 이 연좌의 기풍을 우리 고구려 유생들의 심장에 뿌리내리고자 하네.”
“허. 대인. 연좌는 감히 군왕의 통치에 집단으로 항의하는 겁니다.”
고개까지 세차게 저으며 염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한데 연좌를 보급하시다니요. 이는 아닙니다. 고구려가 다시 사분오열될 겁니다. 칼로 싸우던 내전 대신 세 치 혀로 싸우는 지루한 다툼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고구려에 내전이라는 건 암흑의 역사나 다름이 없었다. 이를 상기한 의연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졌다.
“대인. 차라리 내전이면 조속히 결과라도 나올 겁니다. 국력이 소모될지언정 장기적인 분열에 휩싸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좌를 도입하시면 끝나지 않는 싸움이 1년, 10년, 100년간 이어질 겁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세력을 천하 사방에 두고 있는 우리 고구려로서는 바람직한 기풍이 아닙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어불성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내전보다 국력을 갉아먹겠는가. 그런데도 의연이 이리 논리를 펼친 건 그만큼 연좌나 간쟁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은 내가 잘 알겠는데 이는 참으로 짧은 생각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걸세.”
“아니, 소승이 말입니까? 관세음보살께서 깜짝 놀라실 겁니다.”
“자네보고 깜짝 놀라셨을 걸세.”
“그럴 리는 없습니다.”
잡설이 길다.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네. 일단 듣게.”
딱 잘라서 말하니 의연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멈췄다.
“잘 들어보게. 지금은 당연히 아닐 걸세. 그러나 훗날 고구려의 태왕이 굴욕적인 외교를 선택할 수도 있을 걸세.”
“허. 대인. 그건 평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 고구려가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의연은 황당함을 감추지 않았다.
당대를 살아가는 고구려인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아니다. 원 역사의 영류왕이 바로 예시였다. 물론, 이곳의 고구려에서도 영류왕이 즉위할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이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찌 장담할 수 있나? 단지 외교만이 아니라 고구려의 전통을 훼손하는 결단이 내려질 수도 있네. 이는 누구도 섣불리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닐세.”
고구려는 고구려만의 기풍이 있듯, 고구려 유학도 고구려 유학의 기풍을 확실하게 세워야 하는 법이다. 자고로 기풍이라는 건 시작부터 올곧게 바로 잡아야 하는 법이다.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정하지 않았다.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불필요한 논쟁은 거두겠네. 고구려가 어찌 그리할 수 있느냐가 아닐세.”
미래의 고구려를 지금 우리가 상상할 필요는 없다.
원 역사의 고구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완벽하게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고구려가 잘못된 길을 갈 수 없게 해야 하는 것이네.”
바로 오늘부터 고구려가 다른 길로 갈 수 없도록 하면 된다.
이게 가장 원칙적인 행위다.
“나는 이를 위한 백년대계를 지금부터 꾸리고자 하는 것일세.”
“음. 쉽사리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정치란 늘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니 어찌 무조건 불가라고 하겠습니까. 일단 소승은 대인의 의견을 경청할 것입니다.”
“좋은 자세일세. 잘 듣게. 만일,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귀족은 선택지가 많지 않네. 여러 이권과 고민이 있기 때문일세.”
“그렇지요. 귀족이 태왕의 결정을 무턱대고 반대하면 사달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면,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겠지.”
가령 연개소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곳의 고구려에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건 곤란하다. 고구려는 오직 강건한 태왕의 지도로 나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유생은 아닐세. 이 나라 고구려의 유생은 기득권이 아니라 기층을 뒷받침하는 존재일세.”
“우리 유생은 태생부터 기득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절반 이상의 유생이 일자무식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탐하지 않는 오직 고구려의 유생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바로 그들이 기득권이 아닌 오직 신념으로 들떠 일어서야 할 것이네. 연좌라는 형식으로, 외교란 무엇인가를 이르는 것일세.”
의연은 뒤늦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대인께서 생각하시는 연좌는 오직 고구려의 길이 어긋날 때만 나서는 것이군요.”
“물론일세. 군비를 축소하고, 대외 온건책을 펼치거나 혹은 고구려 백성의 이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거나. 바로 이럴 때만 연좌할 수 있는 것일세. 이는 영세불변의 조종성헌으로 남겨야지.”
“좋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 고구려의 유생들이 구차하게 자잘한 일로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누가 시켜도 안 할 겁니다. 긍지가 하늘을 찌르지 않습니까.”
시원하게 일이 진행됐다.
의연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소생이 연좌의 기풍을 확실하게 세우겠습니다. 하하하! 설레는군요. 이를 잘 세우기면 한다면 고구려는 영원히 이 길을 달릴 것이니 말입니다.”
“한 가지가 더 있네.”
“오. 무엇입니까? 서두르시지요. 관세음보살께서 당장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유학자라면 경전보다 도끼가 필수일세.”
의연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사의 각오가 느껴지는 반대였다.
“허. 대인. 하면, 우리 유생들은 기병이 아니라 부월수로 고려하신 겁니까?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부월수가 못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약탈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요. 보병이니 말입니다.”
“왜 생각을 그리하나?”
“허. 설마······부월수가 말을 탑니까?”
“아니 될 이유는 없는 것일세.”
이런 사안은 절대로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여,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잘 듣게. 오늘부터 도끼는 유생들의 전유물일세.”
“그 말씀은 고구려의 편제를 변경하시는 겁니까?”
“그러하다네. 부월수가 곧 유생이며, 유생이 곧 부월수일세. 하여, 도끼는 고구려 숭무의 상징이 될 것이며, 근왕의 심장이 될 것이며, 충심의 가치로 우뚝 설 것이네.”
이는 과연 무엇인가.
“무릇, 고구려의 유생이라면 연좌에 도끼를 들고 간언할 때 결사로 나서야 하는 것일세. 이를 지부상소라고 하는 것일세.”
지부상소는 오직 유생의 일이다.
그러하니 유생이 아닌 자, 절대로 도끼를 잡을 수 없다.
패권의 학문, 유학을 사수하는 건 오직 부월수다.
“아울러 지부상소는 군왕에게 목을 치라는 의미일세. 가볍게 나설 일이 아니지.”
“목을 치라는 의미라. 결사로군요.”
“그러하다네. 향후 강대한 적과 싸울 때 고구려 최고의 정예군, 부월수가 나설 것이네. 지부상소를 통하여 군왕께 청하여 적을 기어이 쓸어버리겠다는 다짐이자 출정식이 될 것이네. 이를 윤허하지 않으시면 목을 치라는 결사의 의미일세.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나는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니 이제 고구려의 유생은 누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시작하도록 하게.”
그들의 손에 올려진 도끼, 이를 곧 고구려의 상징이자 최고의 위력으로 세운다.
하여, 부월수는 고구려의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부월수의 지부상소, 이것이 바로 고구려 유학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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