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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25화 (25/199)

25화 고구려 사람들(2)

25화 고구려 사람들(2)

평양도성 민가의 근처에는 수레와 인부들이 가득했는데 묘하게도 집주인과 대치하고 있었다. 집주인인 사내가 단호하게 외쳤다.

“아니 될 말이외다.”

그는 덩치가 ‘소’만 했으며 목소리는 참으로 우렁찼다. 게다가 인상도 예사롭지 않았고, 얼굴과 여기저기에 흉터가 가득했다. 세상은 이런 흉터를 자상이라고 불렀다.

인부들이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인솔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보게. 어째서 안 된다는 말인가?”

딱 봐도 복식부터가 달랐다.

하지만, 그를 쳐다보는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귀족이오?”

“그건 아닐세.”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오? 미리 말하는데 내가 배산 전투에서 서토 놈들을 수십 명 죽였소. 이 자상은 모두 그때 생겼소. 혹시 경험해보셨소? 사지 멀쩡하고 자상하나 없는 걸 보니 아닌 것 같소만.”

“······몰라봤소. 그리고 반말은 사과하리다.”

“초면에 예의는 좀 지킵시다. 웃으면서 일하면 서로 좋은 거 아니겠소?”

“······그리하겠소.”

순식간에 분위기가 확 기울었다.

이렇게 상황이 더 흘러가는 건 옳지 않았기에 인솔자는 멋쩍게 웃으며 어물쩍 말을 꺼냈다.

“그런데 냄새나는 인분을 우리가 치워주겠다는데 어찌하여 안된다는 것이오?”

“거. 누구를 바보로 아시오? 이거 전부 비료로 사용할 거 아니오?”

“······어찌 아셨소?”

“내가 어디 남쪽에서 온 줄 아시오?”

“······.”

“허. 왜 말이 없소? 하면, 내가 신라인처럼 생겼다는 말이오? 하! 모두 들으셨소? 이 자가 나보고 신라인처럼 생겼다고 했소!”

“이, 이보시오. 내가 언제 그랬소?”

“듣기 싫소! 썩 나가시오!”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으로 말하자 인솔자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움이 가득했고, 이마에는 진땀이 흘렀다.

그때 다른 무리의 인부 중 한 명이 나섰다. 특이한 건 그 역시 덩치가 소만 했고, 여기저기 자상도 보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배산에서 오셨소?”

첫 일성도 예사롭지 않았다.

사내는 그를 딱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설마······?”

“하하하! 여기서 전우를 만나는군.”

“하하하! 이 좁은 평양 도성에서 어찌 모르고 살았는지.”

“내 말이 그 말일세. 아니, 우리끼리 종종 모이는데 자네는 어찌 안 나오는가?”

“아니, 우리도 종종 모이는데?”

“이런. 모임이 따로 결성됐나 보군.”

“평양 도성이 생각보다 넓으니까.”

“암암. 평양 도성이 넓지 않으면 어디가 넓을 수가 있겠나.”

두 사람의 대화는 참으로 화기애애했다.

조금 전과는 아예 결이 달랐다.

“해서, 어떤가. 인분 내게 넘기는 건?”

“자네가 전우이긴 한데, 그냥 주는 건 어렵네.”

“이 사람아. 나를 어찌 보는 것인가. 어찌 전우의 귀한 물건을 그냥 가져가겠나? 당연히 값을 치를 것이네.”

“역시. 칼을 휘둘러 본 사람이 대화도 잘 통하는군.”

“암. 우리는 전우가 아닌가.”

이보다 따뜻한 훈풍은 없다.

전우는 포근하게 웃으면서 측간을 바라보더니 화들짝 놀란 시늉을 했다.

“이런. 아직 재를 치우지 않았군. 좋네. 내가 특별히 함께 치우겠네. 이 정도는 해야지. 전우인데.”

“멈추게.”

“응?”

“전우라서 말로 한 걸세. 아니었으면 이미 사지 중 하나가 잘려 나갔네.”

“험험. 무슨 말인가.”

“저걸로 똥재 만든다는 거 알고 있네.”

전우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러나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똥재? 그런 게 있었나? 하하하. 난 몰랐네.”

“음. 뭐. 알겠네. 믿어 줄 테니 값을 치르게.”

“암. 그래야지. 당연히 그러겠네.”

어색해질 뻔했던 분위기는 다시 아름다워졌다.

인부들이 인분과 재를 옮기는 걸 바라보던 사내가 슬쩍 물었다.

“한데, 자네 어디서 일하나? 인분과 재를 구하는 걸 보니 귀족 가문에 속한 거 같은데.”

“가장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군. 나는 부마께서 거두셨네.”

사내의 눈동자가 커졌다.

“허. 이럴 수가 있나. 안 되겠군. 재는 그냥 가져가게.”

“그래도 되겠나?”

“내 평생 그분처럼 용맹한 분은 본 적이 없네. 귀신처럼 패배의 길로 우리를 인도했던 귀족들과는 다르셨지. 게다가 우리가 배산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분의 공이 아니었나. 그러니 이건 목숨값일세. 그러나 다음부터는 제값을 치르게. 나는 계속 살아야 하니까.”

“허. 자네의 높은 의리는 부마께 꼭 말씀드리겠네.”

“영광일세.”

아름다운 대화로 상황이 마무리됐다.

모두 해산했는데 한 명만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참으로 진중했는데, 가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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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牛耕).

소 두 마리와 사람 4명이 한 조를 이뤄 경작하는 농법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소 6마리가 보였다.

이건 대체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아무리 눈을 비벼보더라도 사람은 없고 소가 6마리였다.

우경(牛耕).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소의 힘을 이용해서 경작하는 농법으로······.

“대인! 그냥 소인이 쟁기 끌고 달리면 안 됩니까?!”

맙소사.

소가 말을 한다.

“대인! 답답해서 못 해 먹겠습니다. 그냥 소는 잡아먹고, 쟁기는 소인이 끌겠습니다.”

맙소사.

동족상잔의 비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예고한다.

“예. 대인. 대체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소인들이 쟁기 끌겠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소를 잡고 뭐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싸우면 소인이 이깁니다.”

“소인도 자신 있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건 안다.

그런데 진짜 소처럼 일하고, 소처럼 성과를 낼 것만 같은 기세였다.

게다가

“보십시오!”

“······.”

말문이 막혀버렸다.

쟁기를 직접 질질 끌고 다닌다.

고구려인들의 용력(勇力)이라는 건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아니, 이건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타고난 걸까? 후천적인 노력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물론, 중요한 건 아니었다.

왜?

이들이 바로 연자유가 특별히 엄선하여 ‘모집’한 500마리의 소로 경작하고, 훈련하며 장차 고구려의 최고 정예병을 성장할 삼천 전사였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바로 저들을 생계를 책임질 둔전(屯田)이었다.

우선 경작 준비를 제대로 한 뒤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빙그레 웃으며 소와 겨루겠다고 고함지르는 전사들에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등을 돌렸는데 가서일이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 뭐 하나?”

“고구려의 일상과 변화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벽화에 기록하려고?”

“그렇습니다.”

“참으로 부지런하군. 그나저나 저번에 말한 건물의 설계도는 어찌 되었나?”

내가 가서일을 부른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사립학교의 건축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잠시 미뤄졌으나 빠르게 시작해야 할 일이긴 했다.

“다 만들어서 대인의 사랑채에 두고 왔습니다.”

“정말 부지런하군.”

“한데, 어디로 가십니까?”

“나온 김에 귀족들은 경작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볼까 하네.”

“소생이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일세. 벽화 그려야지.”

“감사합니다.”

가서일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귀족의 경작지에 도착했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최대치의 생산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에 거는 기대가 컸다.

또, 수확량의 5할을 바쳐야 하는 악독한 계약서까지 있으니 얼마나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잘 경작하고 있겠는가.

빙그레 웃으면서 확인했다.

“······.”

그러나 세상은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바로 지금, 이곳처럼 말이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대체 뭐 하는 짓인가?!”

나의 등장에 농부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노발대발하니 모두 눈치를 살폈다.

“하.”

아니, 백성들은 완벽하게 일을 잘하는데 귀족이라는 사람들이 대체 왜 이 모양일까.

하지 말라는 짓은 왜 이렇게 부지런히 잘하는지 모르겠다.

“데려오게.”

임차인을 불러오라는 말인지 모를 정도로 아둔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어디 여기만 이러하겠는가.

안 봐도 뻔하다.

“싹 다 데려와.”

귀족 소집령을 내렸다.

“바로 여기로.”

개망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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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십 명의 귀족이 모였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온달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내 말을 제대로 들어 먹은 게 확실했다. 그나저나 귀족들은 모두 영문을 모르겠는지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참 한심했다.

그러나 화를 잠재우고 그냥 이죽거렸다.

“일전에 내가 석회 살충제의 사용에 대해서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 이를 기억하는 자는 지금 말하라.”

나는 분명히 이를 전달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

“내가 말한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그러니까 지금 귀족들은

“1년 농사를 다 망칠 수 있다.”

농사를 망치려고 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을 입안한 지금, 첫 1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러나 이건 실제로 경작하는 이들이 충실하게 따라와야만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최대 경작지를 임대해간 귀족이 이런 식이라면 처참하게 실패할 게 뻔했다.

“내가 일전에 분명히 말했네. 살충제로 거름의 효과를 볼 곳은 물이 차가운 하전(下田)이라고 말일세. 한데, 지금 이 땅을 보게. 이곳이 하전인가?”

“······.”

“나는 분명 하전이 아닌 곳은 살충의 용도로만 사용하라고 했네. 한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여기에 석회로 시비한다는 건 내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으로 간주해도 되는가?”

“대인. 그것이 아니라······.”

“유학자들에게 일러 인분 거름도 넉넉하게 제조할 수 있게 했네.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게.”

“······.”

한 명씩 쳐다봤다.

모두 내 시선을 피했다.

보아하니 내 말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자네들 대체 이유가 뭔가? 나는 자네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

“그래. 다다익선이니 그냥 있는 대로 사용한 것인가?”

“소, 송구합니다.”

“내가 이래서 자네들에게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네. 무슨 말인지 아는가?”

“······.”

“무조건 많이 사용한다고 하여 좋은 게 아닐세. 분명히 듣게. 시비법이라고 하여 모두 똑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네. 논과 밭이 다르고, 평양 도성과 국내성이 다르다는 것일세.”

이거 이대로 마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귀족들은 보나 마나 또 사고를 칠 게 뻔했다.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있었다.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는데 귀족들이 알아서 도와주는구나.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싸늘한 눈으로 쳐다봤다.

“내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자네들과 계속 함께 할 수 없네.”

“대, 대인. 오해가 있으십니다.”

“오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차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충분히 유의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새로 전할 말이 있네. 내 말을 따르겠나?”

“물론입니다.”

“모두 여기서 손 떼게.”

“예······?”

모든 귀족의 몸이 굳었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손 떼라고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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