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구려가 농사도 잘함-24화 (24/199)

24화 고구려 사람들(1)

24화 고구려 사람들(1)

국내성 인근.

수십 명 아니 100명은 훌쩍 넘는 병력이었다.

한 명, 한 명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련된 육체는 가히 일당백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고, 눈빛은 누구라도 마주하면 오금이 지릴 정도로 사납고 날카로웠다.

“······.”

“······.”

“······.”

“······.”

상당한 인원이었으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참으로 고요했다. 심지어 산길이었고, 습기조차 상당한 흙이었기에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나 그 흔한 거친 숨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습기를 품은 흙을 밟으며 이동했기에 무게가 실린 발걸음 소리만이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심지어 100여 명이 넘은 인원이 대열을 정확하게 맞춰가며 이동하였고, 간격도 정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사방을 에워싼 팽팽한 긴장감은 이들의 현재 활동에 어떤 각오로 임하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만일, 지금 누군가 앞을 가로막는다면 눈 감고 뜰 새도 없이 사지를 찢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기세도 담겨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백 전을 치른 정예 강군이었다.

이들 지금 누구도 없는 산을 넘고 있었다.

평양 도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으면서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부우우우우웅!

앞서간 수색 병력으로부터 신호가 들렸다.

100여 명의 병력은 눈을 번뜩이며 무서운 속도로 돌격했다.

가히 파죽지세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위치에 당도한 그들은 일제히······

“여기 있다!”

“여기도!”

“여기 많다!”

땅을 팠다.

그들의 손에 잡힌 건 황충의 알이었다.

그리고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곳곳에서 신호가 울렸고

“찾았다!”

“찾았어!”

“여기 있다!”

“여기도!”

“이쪽에 많아!”

사방에서 비슷한 외침이 들렸다.

이 산에만 현재 2,000여 명의 병력이 땅을 파고 있었다.

-----

십수 마리의 말이 바람을 가르며 맹렬한 속도로 달렸다.

그런데도 올라탄 이들은 작은 흔들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말을 타는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하늘 아래 이토록 말 안장에서 편히 있는 이들도 드물 것이다. 이런 속도와 안정감이라면 가로막는 적의 보병을 아예 압살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선두로 달리던 이가 오른손을 하늘로 향해서 뻗었다.

그 즉시 뒤따르던 십수 마리의 말이 일제히 좌우로 뻗으며 선두를 중심으로 추행진을 펼쳤다. 송곳보다 더 날카로운 기세였고, 작은 허점도 볼 수 없는 정교함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완벽에 가까운 기마술이었다.

백만 대군조차 돌파할 맹렬한 기세를 보이던 추행진은 다시 선두에 선 이가 손을 들자 일제히 진영을 바꿨다. 좌익과 우익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가면서 학익진을 펼쳤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누구라도 이 포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듯한 철통같은 기세였다.

그리고

“지금이다!”

선두의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우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모든 기병이 일제히 말에서 뛰어 내렸다.

다만, 특이한 건 그들의 손에는 병장기가 아니라 몽둥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더 괴이한 건 그토록 맹렬하게 말이 달리던 곳의 지척에는 광활한 평야가 이어진 게 아니라 ‘울타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놈의 새끼들이!”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돼지 새끼들이 어디 도망치려고!”

“그냥 있으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왜 도망을 치는 건데?!”

그들의 무지막지한 매질에 노출된 건 탈출이 미수로 끝난 수퇘지들이었다.

-퍼어억!

-퍼어억!

-퍼어억!

실로 매서운 매질이었다.

만일, 사람이었다면 이미 목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랬다.

홀로 울타리도 부숴버릴 것 같은 사나운 수퇘지들이었으나 말을 타고 달려온 이들의 매질 앞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냥 두들겨 맞고만 있었다.

그러나

-꿰에에엑!

-꿰에에엑!

-꿰에에엑!

후회와 공포가 점철된 돼지들의 울음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서일은 팔짱을 낀 채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빛이 참으로 빛났다.

-----

10명 남짓한 인원은 땅과 몸이 딱 붙을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했다. 주변의 풀과 나무 따위는 혹시 모를 모습까지 완벽하게 가렸다. 남은 건 오직 숨소리였으나 이 또한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귀신도 속을 정도로 완벽한 위장이었기에 만일, 이들과 적대하는 이가 이곳을 지나간다면 필시 큰 화를 당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토록 낮은 자세였으며, 주변의 산천초목이 사방을 감싸고 있는데도 앞을 주시하는 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가릴 수는 없었다. 또한, 바람 소리의 방향조차 파악하는 청력은 무언가의 움직임 따위는 너무나도 우습게 파악할 수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매복이었기에 그 누구라도 이를 미리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공격 범위에 진입하는 순간 황천길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

“······.”

“······.”

어떤 낌새를 느낀 것인지 원래도 낮은 자세였는데도 더 낮게 몸을 내렸다. 그러나 눈동자는 여전히 사방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조장으로 보이는 이가 왼쪽 어깨를 슬쩍 내렸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이를 감지하지 못한 이는 없었다.

그리고

-위이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벌떼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켜

-촤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악!

미리 준비한 모래흙을 뿌렸다.

실수라는 건 존재할 수 없었기에 날아가던 벌떼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지금일세!”

조장의 외침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달렸는데 각각의 손에는 쑥빗자루와 표주박이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벌들이 피신한 수목 사이로 달려간 그들은 갑자기 차분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쑥 빗자루로 벌떼를 표주박에 쓸어 넣었다. 실로 신중한 움직임이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조장의 손에는 천이 들려져 있었다.

마무리를 위한 도구였다.

“모두 고생했네. 매복은 성공적이었어.”

오늘도 성과가 컸다.

나머지 20개 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편, 멀찍이 있는 나무 위에서 웃으며 마무리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의 눈은 참으로 밝았다.

가서일이었다.

-----

하늘에 태양이 보이면 낮이라고 하며, 보이지 않으면 밤이라고 한다.

여기 200명의 사내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애잔하게 바라봤다. 종일 고된 일정을 수행했을 것이니 조금이라도 빨리 밤이 오는 걸 바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얼마 안 남았네.”

“그렇지. 조금만 더 있으면 낮이 끝나는 걸세.”

“지긋지긋한 태양을 안 봐도 된다는 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네.”

“우리가 모두 한 마음이 아니겠나?”

······

“적어도 확실한 건 태양은 생긴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세.”

“나는 원래 어릴 때부터 밤을 좋아했네.”

200명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한 마디씩 태양을 저주했다.

한두 명도 200명이 이토록 일치단결한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대동단결이라는 건 바로 이들을 향해서 말하는 게 아닐까.

필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 집중하게!”

누군가가 외쳤다.

드디어

“태양이 사라지고 있네.”

완벽한 일몰이 시작됐다.

태양이 사라지는 장엄함은 참으로 위대했다.

모든 이가 그 현상에 압도되어 멍하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태양이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본격적으로 해가 저물어 밤이 시작되자 누군가가 선창했다.

“밤이 되었네. 주경야독에 괴로워하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들게.”

그 즉시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좀이 쑤셔서 책을 못 보겠네.”

“황충 새끼들 잡으러 가자고.”

“이걸 많이 잡아야 서토에 하루라도 빨리 가는 거지?”

“아니, 근데 들어보니까 주경야독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거라던데?”

“정신 차리게. 우리는 책을 보는 게 일이고, 황충의 알 구하는 게 공부일세.”

“자네는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인재가 분명하네.”

고된 일과가 끝난 이들의 푸념과 더불어

-터억!

-터억!

-터억!

-터억!

······

-터억!

-터억!

200권의 서책이 하늘을 날았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즉시 누구도 미련을 두지 않고

“우오오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오오!”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민첩하며 노련했하였으며 참으로 경쾌했다.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석양을 바라보며 축 늘어져 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다만, 오직 한 명만이 움직이지 않고 뛰어가는 200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웠으나 그의 눈동자는 유독 빛났다.

가서일이었다.

-----

이문진의 표정은 아이처럼 해맑았다.

첫인상도 그랬지만 볼수록 다른 귀족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다. 단지, 풍기는 분위기나 느낌만 그러한 게 아니라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아예 틀린 듯 보였다.

이렇게 접근하지 않으면 도무지 지금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쁜가?”

“물론입니다. 소생들이 경지를 관리한다는 건 귀족이 인분을 가져오면 시비법을 일러준다는 게 아닙니까. 이는 백성이 인분과 재로 수익을 내는 겁니다.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문진은 백성에게 재와 인분을 확보하라는 말을 꾸준히 전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백성들도 조금씩 동참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옥마다 축적해둔 수량이 상당했다. 또, 이러하니 자연스레 공용 화장실은 전보다 인분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귀족이 알아서 인분을 구해야 할 시기가 되었으니 자연스레 백성의 수익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참으로 색달랐다.

고구려의 위정자들은 백성을 도외시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문진의 기쁨이 참으로 달라 보였다는 의미였다.

“한데, 이토록 빠르게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애초 식객이 글자를 익히면 과거 시험을 치른다고 하셔서 더 시일이 지나야 할 줄 알았습니다.”

“천하가 요동치는데 어찌 모든 걸 완벽하게 꾸릴 수 있겠는가. 비록 내실은 한 걸음 양보하게 되었지만 외치는 더 튼튼하게 되었으니 탈은 없지 않겠는가?”

“그렇긴 하지요.”

이미 황충의 알과 돼지 그리고 벌을 확보하는 일은 가히 군사 훈련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진행됐고, 모두 성공적이었다.

문서로도 느껴졌다.

정말이지 이 나라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인간 흉기가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불가능한 성과들이었다.

하여, 농신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문진 역시 이를 떠올렸는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구려 전역에 제조법을 보급하는 건 역시 식객이 성장한 뒤가 되는 겁니까.”

“어차피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건 막을 수 없지. 누구라도 자기 식객이 과거 시험을 통과하면 농법을 알게 될 것이니 말일세. 이걸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생각도 없네. 나는 그저 고구려에 이런 능력을 갖춘 이가 1,000명은 되길 바랄 뿐이니 말일세.”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