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농자천하지대본(1)
19화 농자천하지대본(1)
‘일찍이’ 청나라 사람 호위는 ‘똥은 가지를 무성하게 하며, 재는 뿌리를 튼튼하게 하여 벼 줄기가 튼튼하게 하여 벼 줄기가 푸르고 무성해진다. 철은 잎의 성장을 재촉하고, 유황은 뿌리를 튼튼하게 하여 벼 줄기가 건장하여 창고가 가득 찬다.’라는 노래를 소개한 바 있다.
이는 이 시절 농가에서 질소, 인산, 칼륨, 철, 유황의 5원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참으로 위대한 일이었다.
나 역시 시대를 앞선 위대한 가르침을 전할 것이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시비법이라는 건 비료를 만들어서 마음대로 사용하는 게 아닐세.”
“대인께서 이미 계절과 토양의 성질에 따라서 나눠 사용하는 게 법도라고 하셨습니다.”
권농 후계자 이문진은 자세가 곧았다.
허리를 굽히지 않았고, 붓을 잡은 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자고로 배우는 학생의 자세가 이렇게 훌륭하면 강사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러하다네. 장기간 논이 침수되는 곳은 중화해야 하기에 재를 뿌려야 하네. 그러나 재거름은 밭에 시비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네.”
“특별히 논에 효과가 있는 재거름이 있습니까.”
“정확하게는 자주 침수되는 논이라고 하지. 음.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조개 재거름일세. 이를 시비하면 잡다한 풀이 생지기 않고 벼만 무럭무럭 자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이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나 역시 그의 필기 속도에 맞춰가며 말을 이었다.
“숙분은 시의, 토의, 물의에 따라 구분된다네.”
“시의란 무엇입니까.”
“시의란 절기에 맞춰서 시비함을 의미하는 것일세. 봄에는 사람 똥, 가축 똥이 좋으며, 여름에는 초분, 강바닥 진흙 거름, 가을에는 화분, 겨울에는 조개 재거름 따위가 적합하다네.”
“토의란 무엇입니까.”
“기맥에 따라 흙의 성질이 다르다네. 그러하니 비옥도에 따라서 시비해야 한다는 의미일세. 수분이 많은 땅은 화분, 모래땅에는 초분과 강바닥 진흙 거름, 논에는 재거름, 높고 건조한 땅에는 돼지똥을 사용해야 하지. 또한, 염분이 많은 땅에서는 절대 똥을 사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네. 하면, 곡물이 자라지 못하니까.”
“음. 거름의 종류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면, 물의란 무엇입니까.”
“작물마다 다 성분이 다르다네. 논에는 재거름을 사용하되, 맥이나 조는 검은콩 비료나 묘분, 채소나 과일에는 사람 똥과 깻묵류 비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걸세.”
대략적인 설명을 끝냈다.
이제는 질의응답 시간이었는데 필기를 멈춘 이문진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한데, 재도 효과가 있습니까?”
“그렇다네. 왜 그러는가?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인데? 아니, 애초에 다른 건 말하지 않고 굳이 재를 언급한 이유가 있을 것 같군.”
“도성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바로 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쭤본 것입니다.”
“나는 자네가 당장 그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네.”
“집마다 아궁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재가 매일 나오지 않겠습니까.”
아차.
내가 이걸 놓쳤구나.
이 시절 고구려 귀족은 온돌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당장 나만 해도 온돌이 아니라 난로를 사용했다. 입식 문화가 보편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대부분 온돌을 사용했는데, 아궁이에 땔감을 넣었을 것이니 재가 매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네가 자랑스럽다네.”
“부끄럽습니다. 대인. 그런데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백 가지라도 물어보게.”
“조금 전 여러 시비법을 언급하셨습니다. 한데, 굳이 인분을 가장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료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될 것이네. 이 중 가장 중요한 10가지가 있는데 사람의 똥, 가축의 똥, 초분, 화분, 강바닥 진흙거름, 뼈와 조개 재거름, 묘분, 사분, 검은 콩거름, 가죽 털거름이 있네. 이 중 으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분일세. 심지어 천지에 넘쳐나고 있으니 어찌 먼저 사용하지 않겠나?”
“그 말씀은 차차 인분의 가치가 오르면 다른 비료를 제조하실 수도 있다는 겁니까?”
“물론일세.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인분부터 보급하는 게 옳겠지.”
이문진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계자 수업을 마무리할 때였다.
대뜸 혜자가 방문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똥 냄새와 일치되어 썩어가던 사람이 말끔해졌다. 모처럼 사람이 멀쩡해져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대사. 드디어 열반(涅槃)에 이르게 되셨소? 그래서 준비하는 것이오?”
“하하하. 소승은 원래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부처님께서 조금 더 있다가 오라 하셨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대사가 모시는 부처님은 참으로 괜찮은 분이 분명하오. 언젠가 시간 내어 꼭 뵙고 싶소.”
“하하하. 말만 하십시오. 소승이 중간에서 잘 중재하겠습니다.”
“됐소. 그런데 갑자기 말끔해진 이유가 무엇이오? 별로 어울리지는 않소.”
“안 그래도 그 일로 왔습니다. 최근 확보되는 인분의 수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아니, 갑자기 수량이 줄어들다니요? 어디서 큰 전쟁이 발생하여 사람이 죽지 않는 이상 가능할 수가 없소.”
“그렇습니다.”
“뭐요? 전쟁이 발생했다니?”
혜자가 염주를 만지작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눈앞에서 이러고 있으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본격적으로 인분 확보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그 말을 하려고 전운을 고조시킨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분이 크게 줄었습니다.”
“거참.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더니 똥오줌만 가져간다고 시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늘.”
“사실 방법은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인분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방법을 알리지 않아도 결국은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때가 언제냐는 것이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게 아니긴 한데, 당장 언제 알아낼 수 있을지도 기약할 수 없는데 저러니 웃겨서 그러오. 저랬다가 인분의 악취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니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귀족들이 식객을 적극적으로 모아내고 있습니다. 그들로 시험을 치러 방법을 알아내려는 듯합니다.”
“오. 그렇소? 이건 또 좋은 소식이구려.”
“게다가 몰락한 귀족이 중심인 듯합니다. 그들이라면 따로 글자를 익히지는 않아도 될 것이니 말입니다.”
웃으며 턱을 긁었다.
이렇게 바로 효과가 나오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잠시 생각해봤다.
이를 어찌할까 싶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긴 합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가져가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아. 되었소. 그냥 마음껏 가져가라고 하시오.”
“허. 대인. 그러면 ‘우리’가 확보할 인분이 줄어들 겁니다. 이는 실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승려가 참으로 욕심도 많소.”
“대의를 위해서라면 욕심도 가져야 하는 게 불자의 자세이지요.”
이 사람은 승려가 아니라 정치를 해야 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언변이 좋고, 구렁이도 쌈 싸 먹는다.
“대사. ‘우리’는 나와 대사까지가 ‘우리’라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다른 사람의 거름까지 제조해준 것이외다.”
“허. 참으로 명쾌하군요.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작지에 사용할 거름만 확보하면 되겠군요.”
“그렇지요. 인분을 옮기고 제조하여 나누는 것 자체가 시간이며 인력이외다. 이 공정을 뺄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것이외다. 다들 알아서 잘 만들 것이오.”
“하면, 제조 방법을 알려주실 겁니까.”
“물론이오. 한데, 아직은 아니외다.”
고구려 전역으로 번져야 할 농법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아니, 그 전에 또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듣고만 있던 이문진을 불렀다.
“이보게.”
“예. 대인.”
“혹시 유학을 익힌 이를 알고 있나? 아니라면 글자만 알아도 충분하네.”
“소생처럼 한미한 가문의 출신 중 유학자가 제법 됩니다.”
“다 데려오겠나?”
“감사합니다.”
더 빠르게 시험을 치르고 일을 진행하면 귀족들도 더 속도를 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내게 농법을 배워가려는 건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으니 말이다.
“아. 대사.”
“이르시지요.”
“남향으로 건물 하나 지어야 할 것 같소.”
“부처님께서는 남향을 참으로 좋아하시지요.”
“아쉽지만 부처님께서 양보하셔야겠소. 새 건물에서는 유학을 가르칠 것이오. 신경 써서 지어주시오.”
“음. 부처님께서도 남향을 좋아하십니다.”
“······일전에 한 약조는 지키리다. 사찰 하나 크게 지어주겠소. 남향으로.”
그때 이문진이 슬쩍 끼어들었다.
“대인. 소생이 그쪽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당장 섭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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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 무슨 말을 나오지도 않았다.
“며칠 뒤면 당도할 겁니다. 돼지 천 마리가 말입니다.”
연자유가 친절하게 다시 말 안 해도 이미 내 머릿속에는 돼지 천 마리의 위용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니, 설마 이렇게 빨리 구해올 줄은 몰랐다.
고구려, 이 나라 대체 정체가 뭘까?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폐하께 직접 청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렇지. 내가 그랬네.”
“조만간 소도 올 겁니다. 수백 마리는 됩니다.”
“······.”
“한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할 수 있겠냐니?”
“사육을 몰라서 안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말로만 들었을 때는 별로 체감이 안 됐다.
그러나 오늘 막상 보니 왜 고구려가 굳이 사육에 집중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기회비용 자체가 달랐다. 울타리를 치거나 외양간을 지어 정성스레 키우느니 말 타고 가서 가져오는 비용이 훨씬 저렴한 것이었다.
아니, 마음만 먹으면 돼지 천 마리를 며칠 만에 구해오는 나라에서 무슨 사육을 고민했겠는가.
그러나 장점은 더 장점으로 만드는 게 세상 사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확보하기 쉬운 가축이라면 모아서 몇 배로 늘리면 된다.
그래서 고구려 사방에서 가축이 춤을 추게 하면 이게 곧 국력의 증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자면 역시 연자유가 필요했다.
내가 한국 시절에 전통 농법을 공부했다고 한들, 고구려의 내정에 대해서 연자유보다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자고로 현지인의 도움이라는 건 늘 필요한 법이다. 더욱이 그 현지인이 뛰어난 능력자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일세. 자네 계속 이렇게 할 건가?”
“제가 뭘 말입니까.”
“아니, 계속 반대만 하지 않나? 고구려 최고의 내정가라는 사람이 말일세.”
“······.”
농업 진흥책을 입안했을 때부터 연자유는 내키지 않아 보였다.
정확하게는 경작지를 고루 분배할 때부터 그랬다고 해야 할까?
왜 이러는지는 알고 있으나 굳이 내가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허공을 휘젓는 토론이 될 것이니 말이다.
연자유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간 고구려가 사육을 보급하지 않은 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육하지 않아도 필요한 수량은 확보했으니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알고는 있었다.
이런 미친 수준인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말이 헛돌고 있다.
“엄청난 비용이 필요합니다. 인력도 상당히 들어갈 것이고요.”
계속 같은 상태였다.
연자유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지 말게. 나는 자네가 왜 이렇게 반대하는지 알고 있네.”
“무슨 말씀입니까.”
“사병을 걱정하는 게 아닌가?”
“······.”
“그건 내가 처리해줄 수 있네. 그러니 협조를 해주겠나?”
“방책을 먼저 듣고 싶군요.”
“그러니까······.”
내 말이 이어질수록 연자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좋습니다. 해보지요.”
드디어 연자유의 동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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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동그래진 백성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게 꾀죄죄한 사람이 있었다. 물에 들어가면 구정물이 잔뜩 나올 것만 같았다.
평소 깔끔한 모습과는 달랐으나,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이문진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이 그를 알아보는 건 어려웠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집에 측간을 두라는 건가?”
“바로 그 말일세. 작은 구덩이라도 꼭 마련해야 할 것이네.”
“정말 값을 치르고 인분을 구해가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인가.”
“물론일세. 심지어 자네들 중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네.”
백성들은 놀라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쑥덕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문진은 엷게 웃었다.
“믿지 못할 수도 있네. 한데, 자네들 잘 보게. 최근 귀족들이 수레에 인분을 잔뜩 실어 가지 않던가?”
“그건 그랬지.”
“언제 귀족들이 의미 없는 행동을 하던가?”
“그건 아니지. 꼭 이익이 되는 행동을 했지.”
“바로 그것일세. 조만간 도성에서 인분을 구하기 힘들면 자네들의 측간에 모습을 보일 것이네. 이때 값을 치르면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속는 셈 치고 내 말을 한 번 믿어보게.”
긴가민가하는 표정들이었으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일단 시도는 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문진은 엷게 웃으면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집마다 아궁이에 재가 잔뜩 쌓여 있을 것이네.”
“아. 정말 치우는 게 귀찮아 죽겠네. 그러고 보니 자네 몰골이 마치 재를 치우다 온 것 같군.”
“실은 그렇다네. 그런데 이걸 버리지 말고 잘 모아두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당장 치워야지.”
“내 말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네. 그러나 나는 될 수 있으면 자네들이 재를 버리지 말고 측간 근처에 잘 모아두길 바란다네.”
강요는 할 수 없다.
결국, 판단은 저들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때였다.
“난리가 났네!”
누군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절했던지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문진도 잔뜩 긴장했다.
“왜 그러나? 백제 놈들이 쳐들어왔나?”
“백제가 왜 오나? 할아버지 시절 철 지난 이야기를 왜 하나? 지금은 신라 놈들이 쳐들어오지.”
“두 놈이 한 편이잖아.”
“허. 이보게. 두 놈이 붙어먹었는데 우리가 진작에 갈라치기 했네. 그런데 이게 대체 언제 이야기인데 아직도 모르나?”
“그랬나? 잘했군. 아니, 그러면 한 놈이라는 말인데 더 해볼 만한 게 아닌가? 이참에 내려가자고.”
백성들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다.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리는 건 덤이었다.
그새 고함을 지르던 사람은 지척에 이르렀다.
그런데
“도성 밖에 돼지를 사육한다고 하네! 그것도 천 마리나!”
그의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뭐? 천 마리?”
“어? 미쳤네?”
“아니, 귀족이 또?”
백성들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니, 돼지는 왜 키우나? 가서 잡아 오면 되는데?”
“돼지 키울 사료는 어디서 나오나? 사람도 먹을 게 없는데 돼지 먹이게 생겼나?”
“거참. 귀족들은 대체 왜 이렇게 생각이 없나? 죽을 때까지 이해를 못 하겠어.”
“아니, 그냥 남쪽으로 가자니까 돼지는 왜 키우나?”
“그렇게 자신이 없나?”
“솔직히 우리가 못 싸워서 진 적은 없지. 귀족이 작전 이상하게 짜서 우리를 죽을 자리에 딱 모아둔 거긴 하지.”
“요즘 드는 생각인데 갈수록 얻어걸려서 이기는 느낌이긴 해.”
돼지 사육의 소식은 백성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리고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군.”
더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 들렸다.
보나 마나 강제로 동원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품삯도 주고, 돼지도 준다는데?”
자고로 고구려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품삯은 좋은데 돼지를 받아서 뭐 하나? 돼지가 얼마나 많이 먹는데.”
“우리가 돼지를 먹어야지. 왜 돼지를 먹이냐?”
“당장 달려가야겠군.”
“자네는 남쪽으로 가게. 돼지 고기 싫어하지 않나.”
“생각이 바뀌었어. 그리고 고구려에 돼지고기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있으니까 먹자는 거지.”
“내가 먼저 가겠네.”
백성들의 움직임은 참으로 분주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문진은 등을 돌리며 엷게 웃었다.
“농자천하지대본. 농업이 백성을 모두 먹여 살린다는 말. 점차 백성들이 또 다른 생계의 수단이 생길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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