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고구려의 길(2)
15화 고구려의 길(2)
왕권 강화를 시도하는 군왕을 탓할 수는 없다.
이건 그들의 본능이자 DNA였으니 말이다.
또한, 군주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왕권 강화라는 수단은 상당히 타율이 높았다.
늘 태평성대를 도출하는 정답이 아닐지라도 높은 확률로 정답에 수렴하는 근삿값을 얻어낼 수 있는 방책이었기에 옹호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아니, 왕권 강화는 궁극적으로 백성을 향한 귀족의 직접 지배 수단을 늘 억제하고 줄이기에 손을 들어주는 게 옳다.
그러나 작금의 고구려는 이렇게 간단한 도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직 왕권 강화로 모든 악을 퇴치하고, 만병을 고치던 시기는 이미 끝났다.
지금은 문제의 난도가 너무나도 올라갔고, 단순 연산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과정이 복잡했다.
더하고 빼고, 곱하며 나누는 게 수학의 기초라고 할지라도 방정식과 함수는 새로운 공식을 배워야만 풀어낼 수 있다. 단지, 가감승제라는 단순 연산에 능하다고 하여 절대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정답은커녕 근삿값도 도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익히지 않는다.
내가 만난 고구려는 딱 이런 생태였다.
단지 암산만 뛰어났다.
장수왕이 했던 방식만 답습하는 것이다.
곱하기는 잘하는 데 연립 방정식은 하지 못하고, 나누기는 잘해도 인수분해를 배우지 않은 학생이 미분과 적분을 잡고 씨름하는 상황이었다.
미분과 적분을 보면서 구구단만 적어 내린다고 성적이 잘 나올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우등생이었던 과거만 되새기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과거 우리 고구려의 국운이 크게 흔들렸던 때가 있소. 참으로 처참하고 치열했던 역사였소. 서쪽의 연이 동진하고, 남쪽의 백제가 북진하니 당시 고구려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소. 결과, 국내 도성은 함락되었고, 태왕께서는 전사하셨소.”
고국원왕 치세의 고구려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혼란스러웠다.
연나라의 집요한 공세에 도성은 함락당했고, 백제 근초고왕의 북진으로 고국원왕은 전사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힘겹게 수습한 건 소수림왕이었다.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의 치세에 이르면서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는 내가 아는 역사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고구려의 태왕이 말하는 고구려의 역사를 듣게 되었다.
“외침으로 발생한 존망(存亡)의 기로였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으나 당시 고구려는 태왕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단결했소.”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참으로 위대한 역사였사옵니다.”
“그렇소. 참담한 패배로 국세가 흔들렸으나 누구도 책임을 묻고, 헐뜯거나 다투지 않았소. 모두 손을 잡고 다시 고구려를 일으키자고 공고하게 단합한 것이오. 그토록 엄혹한 시기를 넘고 기어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오직 이러한 이유였소.”
귀족 연립 체계인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의 고구려였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고구려의 역사가 이러했소. 생존을 위해서 달렸으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외다.”
“어찌 생존을 위한 방책이었다고 이르시옵니까.”
“막리지.”
언제부터였을까?
고양성의 입가에 작게나마 걸려 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고구려의 태왕이 고구려의 역사를 말하는 지금, 미소를 지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국운이 흔들렸던 고구려를 지탱한 건 국내도성의 귀족들이었소. 그들은 반목하지 않았고, 오직 싸웠으며, 충성했고, 죽음도 불사했소. 만일 그들이 작게라도 혹은 짧게라도 국치를 언급하며 정사를 어지럽혔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소? 고구려는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외다.”
“······.”
맞는 말이었다.
소수림왕이 내실을 다질 때 고구려 귀족의 주류였던 국내도성의 귀족들은 그 어떤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고양성의 말대로 오직 고구려의 부흥을 위하여 숨을 죽이며 살았다.
그러나 장수왕의 치세에 이르러 그들은 완벽하게 토사구팽의 처지가 되었다.
장수왕의 왕권 강화는 당대의 태평성대를 이뤘으나 현재 고구려의 뇌관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계와 국내계의 뿌리 깊은 반목의 시작이기도 했다.
또한, 강성해진 고구려의 국세가 이룬 재화의 크기는 전과 달랐는데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국내계 귀족의 분노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고구려의 선대 태왕 중 100년의 치세를 이루며 강대한 국세를 만방에 떨치신 분은 계셨으나 백년대계를 수립하신 분은 없으시오.”
그래서
“우습게도 고구려는 국세가 강해졌으나 내부의 단결이 취약해졌소.”
고구려는 더 첨예한 정쟁과 내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성역일지도 모르는 찬란한 황금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었다.
“귀족에게 태자의 태생은 고구려의 국세보다 중요하며, 태왕의 정책은 불협화음의 시발점에 불과하게 되었소.”
토사구팽의 역사를 기억하는 국내계 귀족에게 태왕은 믿을 수 없는 존재였으며, 평양계 귀족은 갑자기 나타나 모든 금화를 훔친 도적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들은 늘 태자 책봉을 주시했고, 여의찮으면 서슴없이 내란을 일으켰다. 선대 시절 내란으로 숙청한 귀족‘만’ 2,000여 명이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단지 무모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만들어준 그들만의 생존 DNA가 발동한 결과였으니 말이다.
“나는 들었소.”
“······.”
“내가 태자가 되자 반란을 일으킨 국내 도성의 귀족은 ‘태왕과 평양계 귀족이 합심하여 국내 도성의 씨를 말리고자 신라에 영토를 내어준 것이다’라고 까지 했소.”
태자 책봉 직전 신라는 무서운 기세로 함경도까지 북상했었다.
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큭. 한수 이북으로 치고 올라오던 신라가 대뜸 변방으로 북상하는 게 수상하다는 말도 나왔소. 태왕과 평양계 귀족이 자신들의 거점만 방비하려고 한 결과라고 했소. 모두 허언이었으나 뿌리 깊은 고구려의 반목을 말해주는 가장 단적인 사례였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다.
그런데 이런 음모론이 정치적으로 유효한 명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국내계 귀족이 국시 ‘남진’의 사수를 부르짖는 건 신라의 북상이 만들었던 공포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즉위한 나는 도무지 이 갈등을 풀어낼 수가 없었소.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기에 나의 선택지는 결국, 왕권 강화였소. 그러나 더는 갈등을 유발해서는 아니 되기에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왕권을 강화했소. 참으로 고단한 시간이었소. 결과, 작금의 왕권은 귀족이 감히 넘볼 수 없으나 이 또한 한시적이오. 태자가 즉위하면 어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소.”
찬란한 황금기는 내면에서 엄청난 비극을 잉태했다.
즉, 누가 태왕이 되는가에 따라서 내란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법칙이 된 수준이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고양성도 이를 겪었다.
물론, 당대에 이르러서는 고양성의 뼈 깎는 노력으로 고대원의 태자 책봉은 무탈했다. 그러나 차후 어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부단히도 노력하던 어느 날 알게 되었소.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더는 커질 수가 없다는 걸 말이외다. 더 늘리자면 수천 명을 죽여야 하는데, 이는 너무나도 무의미하고 우매한 짓이었소. 해서, 내가 태자에게 내어준 길은 백성이었소.”
이미 고구려의 권력은 공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해서, 고양성은 태자의 입지를 더 공고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압도적 민심을 선택한 것이었다. 즉, 고대원을 향한 백성의 열광은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고양성의 치밀한 계획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더 다행스러운 건 누구도 이 사안의 본질을 모른다는 것이었소. 평양계도 모르고 국내계도 모르오. 천운이라면 천운이오.”
“······.”
고양성은 여전히 씨름에 열중하는 고대원과 농부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은 이어졌다.
“처음에 나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소. 어찌하여 고구려는 서토에서 발생하지 않는 문제가 이토록 많은 것일까. 우리의 국세가 이렇게 강성했는데도 어찌하여 이러한가.”
되돌아보면 참으로 치열한 역사였다.
“그러나 나는 이 고민을 더 이어갈 수가 없었소. 고구려가 흔들리는 난세에 태왕이 되었으니 말이오. 나는 서토와 영원한 우호를 수립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지 않소. 그들은 우리가 조금만 흔들리면 언제라도 허를 찌를 것이니 말이오. 그래서 고민을 줄이고 현실의 고구려를 부여잡았소.”
“······.”
“이렇게 고구려는 여전히 걸어가기에 바쁘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더라도 걸어야 하오.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상상할 수 없는 방해가 있더라도 걸어야 하오. 이것이 우리 고구려의 숙명이오.”
“······.”
“하여, 우리는 국시가 전쟁이었소.”
나라, 고구려의 해답은 전쟁이었다.
태왕, 고양성의 해답은 왕권 강화였다.
“아직은.”
아직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막리지가 내게 농업의 진흥을 말하였소.”
“그러하옵니다.”
“176개의 성이 아닌 광활한 고구려의 영토를 모두 경작하겠다고 했소.”
“그러하옵니다.”
“나는 기뻤소.”
“어찌하여 기쁘셨사옵니까.”
“광활한 새로운 경작지의 탄생은 단지 국고만을 채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오. 이를 통치해야 할 관리의 탄생이며, 더 나아가 근왕 세력의 눈부신 출발이 될 것이기에 기뻤소.”
고양성은 가감승제로 풀지 못한 문제를 이렇게 다가가고 있었다.
물론, 큰 오류가 있었으나 이를 지금 언급할 필요는 없다.
“남진 혹은 패권을 포기하려는 게 아니오.”
“······.”
“하지만, 고구려의 태왕으로서 어깨에 올린 역사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소.”
“······.”
“나는 이제 고구려가 새로운 길에 도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오.”
“······.”
“기대하오. 막리지가 주창한 ‘농자천하지대본’이 이 나라 고구려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말이외다.”
“······.”
“고비 때마다 거문고로 내 심신을 안정시켜주듯 막리지가 새로운 전기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은 것이오.”
“······.”
“그래서 동의했소. 나의 부족함이 고구려가 나아갈 길을 틀어막고 있었기에 막리지의 방법에 손을 들어준 것이오.”
되돌아본다.
고양성과 을지문덕의 말대로 고구려의 역사는 투쟁과 투쟁의 기록이었다.
왕이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정쟁과 내란 그리고 숙청.
왕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외세의 도발.
그래서 고구려는 전쟁을 심장에 새겨야 했다.
전쟁은 고구려의 동서남북을 유일하게 하나로 묶어내는 장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이데올로기가 전쟁이었다.
모든 의문이 해결됐다.
그리고 나는 해답을 얻었다.
“태왕의 위력을 사해에 떨치려면 전쟁에서 이겨야 하옵니다.”
“그렇소.”
“고구려의 건재함을 입증하려면 전쟁에서 이겨야 하옵니다.”
“그러하오.”
“농자천하지대본은 단지 수확량의 증대 혹은 넉넉한 군량미 혹은 국고의 풍요로움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리 말하였소. 하면, 말해주시오. 그 본질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기반이 없는 고구려라고 여겼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고구려는 고구려의 방식으로 내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수백 년간 닿지 못한 위치에 고양성이 손을 뻗었다.
이는 전인미답의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구려의 역사 그리고 고구려의 태왕에게 화답하기로 했다.
“더는 숙청하지 않아도 되는 역사.”
왕권 강화가 곧 숙청이 아닌 역사.
“더는 내란이 발생하지 않아도 되는 역사.”
모든 병력이 국방을 지키는 나라.
“고구려, 이 석 자가 곧 패권인 천하.”
‘누구’에게 공인받지 않아도 되는 패권.
“영원한 절정의 패권.”
천하 만민에게 존재가 곧 패권으로 새겨진 고구려.
“이를 만들 수 있는 천하제일의 보검이옵니다.”
그러하니
“신은 그저 농업만 진흥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단지 농업 혁명만 도모한다고 하여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처음 내가 혼자서 한 설계는 도입부터 틀렸다.
고양성이 만들어둔 설계도에 색을 칠해야 한다.
고구려가 쌓아온 모든 역사에 또 하나를 올릴 것이다.
방법은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고구려는 가능하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모든 사서에 영세불변의 패권을 상징하는 석 자로 기록될 것이옵니다.”
하여, 묻는다.
고양성의 길이 틀렸는가?
아니다.
그의 길은 현명하며 적절하였고 옳았다.
이제
“그러하니 되돌아보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내가 진심으로 화답해야 할 때였다.
“폐하의 길은 옳았사옵니다.”
‘당신의 길은 옳았노라고’ 말이다.
이유와 방법을 물어본다면 말할 것이다.
그런데
“고맙소.”
답변은 절대적인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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