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고구려의 별(1)
4화 고구려의 별(1)
집으로 돌아왔지만,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연자유가 나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형님.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지요.”
“응?”
“우경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아닙니까?”
“아. 어찌 알았나?”
“하하하. 제가 어찌 형님의 속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우경을 더 보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다른 방법을 찾기도 어렵지만 말입니다.”
어렵긴 어렵지.
그런데 이건 고구려인들의 기준에 불과하다.
고대의 농법을 총망라한 뇌를 가진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고구려 농법의 가장 큰 문제는 소도 아니고 돼지도 아니었다.
나는 고구려의 흙을 만져보며, 냄새를 맡으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고구려는 시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었다.
애석하게도 고려 시대에 시비법이 보급되었다는 우리 사학자들의 학설은 진실이었다.
그러면 시비법을 도입하면 어찌 되겠는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시비법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전근대 시비법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인분이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에 그러할까?
영화로운 조물주의 오묘하신 솜씨에 감탄하며 상기하노라니 자고로 똥오줌으로 만드는 비료의 원액 중 인분보다 좋은 건 없다.
일찍이 농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논쟁이 있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후한 사람 응소였다. 그는 ‘비료? 물에 황토 성분이 넘치는데 왜 그렇게 고생하지?’라고 말하며 다른 농학자들을 비웃었다.
이 말을 들은 당나라 사람 한악은 ‘선배님? 그건 섬서성의 경수에서만 가능한 일이지요.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이기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동네에 흐르는 물을 비료라고 퉁치는 건 농학자로서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닙니까?’라며 조롱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 똥, 저 똥 다 사용해봤는데 사람 똥도 소똥처럼 채소의 비료로 사용할 수 있더라 이겁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남송 사람 진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나도 사람 똥으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참으로 효과가 좋았습니다.’라고 하였으니 마침내 인분 비료가 집대성되었다.
이 위대한 논쟁으로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시기’였다.
인분이 본격적으로 비료가 된 건 무려 남송 시대였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수백 년을 앞선 선진 농법이며 선진 비료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인분이 뒤늦게 비료로 사용된 부분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지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수확량을 폭증시킬 방법이 있네.”
“정말입니까?”
“물론일세.”
“아니, 평소 농업에 크게 관심이 없으셨는데 갑자기 어찌 생각해내셨습니까?”
“평소에 관심이 많았는데, 티를 내지 않은 것일세. 한데, 이를 해내려면 자네가 협조를 해줘야 할 것이네.”
“좋습니다. 뭐든 협조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인분으로 거름을 주는 걸세.”
“예?”
“똥오줌으로 거름을 만들 것일세.”
“······.”
연자유의 안색이 똥처럼 변했다.
흐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건 덤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인분은 수백 년을 앞선 고급 비료의 원액이었기에 이 시절 똥오줌은 혐오의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연자유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나는 진지했다.
“허. 자네 지금 나를 믿지 못하나? 똥오줌만 있으면 콩을 10배는 수확할 수 있네.”
“거참! 밥 먹는데 계속 똥 이야기하면 어쩌라는 겁니까? 형님. 이제 밥 한 끼 내어주는 싫어지신 겁니까? 그래서 이렇게 눈치를 주는 겁니까? 내가 가난해서 여기에 옵니까? 밥 먹으면서 국사를 논하려는 것이지요.”
이해는 됐다.
자고로 시대를 앞선 이는 늘 고달픈 것이다.
“한 숟갈 뜨기 전에 똥 이야기만 했습니다. 밥이 넘어가겠습니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내가 실수한 게 분명했다.
멋쩍게 웃으며 빨리 먹기를 권하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미안하네. 그러니 어서 들게. 다 먹고 이야기하지.”
“됐습니다.”
“자네 왜 이렇게 옹졸하나?”
“형님! 하. 됐습니다.”
결국, 연자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나가버렸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더러운 인분으로 농사를 짓자는 말을 누가 쉽사리 동의하겠는가.
현재 지구상에서 나만 하는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이다.
“왕을 찾아가 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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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 서책을 읽던 을지문덕은 모처럼 반가운 방문객을 보며 활짝 웃었다.
“문진. 자네 왔는가.”
“하하하. 문덕. 잘 지내셨는가.”
을지문덕의 벗, 이문진은 맑게 웃으면서 마주 보며 앉았다.
“뭐 하고 있었나?”
“병법서를 읽고 있었네.”
“병법서 맞나?”
“정확하게는 우리 고구려의 전술과 전략이지.”
“자네도 참으로 대단하군.”
진심 어린 감탄이었다.
이문진은 누구보다도 을지문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고구려의 그 누구도 을지문덕처럼 하지 않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고구려의 전쟁사를 분석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과 인내심을 동반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말로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은 무엇을 살펴보시는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는가.”
“외교사를 분석하고 있었나 보군.”
“그렇다네.”
이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보태도 되겠는가?”
“하하하. 자네가 거들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
을지문덕은 크게 웃으면 기뻐했다.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기에 아직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문진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학자이며 외교적 안목이 탁월하다는 걸 말이다.
물론, 을지문덕 역시 한미한 가문이었기에 빛을 보지는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이문진이었다.
“우리 고구려의 외교는 광개토태왕께서 국세를 크게 확장하신 이후로 지향하는 바가 아주 간단하지. 한 마디로 울타리를 치는 것일세.”
“암. 고구려 외교의 최우선 가치는 바로 동방의 패권이었으니 말일세.”
“그렇다네. 우리의 관심사는 동방이니까. 하지만, 울타리라는 게 참으로 묘하지 않나?”
“자네 말대로 묘하지. 울타리는 성벽이 아니니까.”
자고로 울타리라는 건 경계선에 불과할 뿐 밖에서도 안에서도 서로 다 볼 수가 있다.
내가 뭐 하는지, 남이 뭐 하는지 훤히 보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더욱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넘어올 수도 있으니 상호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이문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해서, 일찍이 장수 태왕께서는 대 북위 외교에 국력을 기울이셨네.”
“서토의 남쪽과도 외교 관계를 수립하긴 하셨으나 큰 의미가 없긴 하지. 우리는 동방의 패권을 천하에서 공인받는 것이 중요할 뿐 서토의 땅을 탐한 게 아니었으니 말일세. 그러나 국경을 마주하는 북위가 중요할 뿐, 남쪽은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지.”
장수왕 이래 고구려의 전통적인 외교 방침은 동방의 패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것이었다.
“문덕. 자네도 알겠지만 그건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네.”
“그렇지. 북위로서도 우리의 패권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니 말일세. 그래서 백제가 대군을 일으켜 북진하겠으니 대군을 파병해달라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지 않은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아닌가. 막상 우리가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걸 가장 두려워했던 북위가 배후의 백제와 그런 작당을 했다는 사실이 말일세.”
“그리한 이유는 다른 게 없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건 고구려가 남쪽과 동맹을 체결하여 공격하는 것이었네. 해서, 자신들도 우리의 배후를 흔들 수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네.”
과거 백제 개로왕은 북위에 고구려 정벌을 청했고, 북위는 크게 흥미를 보였다.
즉, 북위가 ‘동방은 고구려가 영역이 아니라 언제라도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다!’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데, 당시 장수 태왕께서는 오히려 치열하게 대 북위 외교를 펼치셨네. 문덕. 자네는 이를 어찌 생각하는가.”
“······.”
“어째서 말이 없는가.”
“감히 내가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네. 그러나 굳이 답변을 요구한다면······.”
을지문덕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틀리셨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과거 신라가 북상하여 우리의 영토를 범하였네. 그러자 북제는 신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우리를 압박하지 않았던가. 고구려가 가졌던 동방의 패권을 흔들어버리는 행위였지. 이때 우리 폐하께서 어찌하셨는가?”
고양성의 대처는 장수왕과는 달랐다.
“과감하게 대 북제 외교의 단절을 선언하셨어. 오히려 신라를 압박하여 우리의 영토까지 되찾으셨네. 이렇게 신라가 모든 전선에서 퇴각하자 북제는 부랴부랴 우리에게 사신을 보내며 동방의 패권은 오직 고구려의 것이라고 떠들지 않았나.”
“그랬지.”
“당시 폐하께서 펼치신 외교로 서토의 남쪽 그리고 왜국까지 사신을 파견하여 북제와 신라의 배후를 압박하는 상황을 도출하셨네. 장수 태왕께서 수립하셨던 일방 외교에서 완벽하게 탈피한 새로운 외교술을 정립하셨다는 말일세. 결과는 어떤가. 전보다 더 고구려의 위치가 공고해졌네. 적어도 외교적으로는 말일세.”
을지문덕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되돌아보면 우리 고구려의 국세가 가장 강성했던 때는 장수 태왕의 치세였네. 당시 만일, 우리 폐하께서 수립하셨던 외교가 펼쳐졌다면 어찌 되었을지 늘 생각해본다네.”
“음.”
이문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확실한 긍정의 뜻을 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을지문덕도 재촉하지 않고 벗의 말을 기다렸다.
“문덕. 나는 작금의 고구려 외교가 탄력적일 수 있는 계기는 영주의 무려라와 무려성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북위가 내전에 허덕일 때 안장왕은 요서 아니, 영주의 무려라와 무려성을 확보했다.
물론, 고구려가 북위를 적대시했다거나 요서 지역을 고구려의 강역으로 포함하고자 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혼란에 빠진 북위의 정세에 발맞춰서 제한적인 군사 행동을 한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혼란을 수습한 북위도 이 사안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을지문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결국, 사정이 다르다는 걸 말하는 것인가?”
“하하하! 아닐세. 이런 사정만으로 자네의 말을 반박하기에는 그때와 지금의 국세 차이가 너무 크게 나는 것이 사실이니 말일세.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네.”
“무엇인가.”
“만일,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 고구려의 전통적인 외교 질서를 답습하셨다면 동방의 패권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라는 사실일세.”
그 말을 끝으로 이문진은 가볍게 말을 돌렸다.
“최근 왕 대인께서 어찌 지내시나?”
“평소와 다름이 없네. 음. 문진.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대인을 만나보는 건 어떤가.”
“이런. 조금 더 기다려주게. 내가 고민이 많아서 그런다네.”
“원. 자네 고집은 고구려 제일일 것이네.”
“칭찬으로 생각하겠네. 다만, 왕 대인께서 모종의 정치적 결단을 하면 내게 일러주겠는가?”
“물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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