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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화 (1/199)

1화 프롤로그

프롤로그

나는 어려서부터 흙이 좋았다.

친구들이 컴퓨터로 게임하고 놀 때도 나는 흙을 만졌다.

단순하게 흙을 좋아한 게 아니라 흙이 만들어내는 생명을 좋아했다.

부모님이 부농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모든 걸 해볼 수 있었다.

내게는 딱 좋은 환경이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작물을 직접 재배했다.

듣고 배울 수도 있지만, 빼곡하게 기록하면서 내가 직접 살펴봤다.

태양은 얼마나 필요한지 보고, 물도 직접 줬다.

작물이 자라는 걸 보면 설렜고, 시들해지면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부터 늘 이렇게 살았기 때문일까?

대학도 자연스럽게 농대를 선택했다.

게다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최고 국립대학인 한국 대학교에 합격했다.

원래도 꿈이 컸는데, 입학증을 받으니 꿈이 더 커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발로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가 선택한 길은 한국 농업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

공부하다 보니 과학의 산물인 현대 농업이 아니라 전근대의 농법에 흥미가 갔다고 해야 할까?

남들 새로운 농업을 공부할 때 나는 전근대의 농서를 탐독했다.

30살을 훌쩍 넘었으나 나는 부지런히 공부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러니까 비도 적당히 오고 천둥도 치던 그런 날이었다.

연구실에서 논문 잡고 씨름할 때

“선배. 재밌어요?”

대뜸 나타난 학부 후배 한 놈이 물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그래요?”

“뭐. 사실 돈이 급한 게 아니라서 이럴 수도 있고. 집이 아주 잘 사니까.”

“부모님이 부농이라고 하셨죠?”

“그렇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진짜 부농이었다.

그냥 땅만 많은 게 아니라 아예 부농이었다.

돈이 정말 많은 ‘부’농.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그냥 밀어주셨다.

“뭐. 우리 집안에서 박사 나오는 거 한번 보자 하시더라고? 그래서 공부만 하면 돼.”

“그래요?”

“그런데 갑자기 이건 왜?”

“아.”

후배 놈은 대뜸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선배처럼 전통 농법에 박학다식한 농학자가 과거로 가면 어떨까요? 전근대요.”

“굳이 예를 들면 과학자는 뭘 하려고 해도 인프라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농학자는 아니잖아. 어지간한 과학자 100명보다 더 엄청나지 않을까?”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는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묘한 느낌을 받을 때였다.

“그러면 선배가 과거로 가도 잘하겠네요? 과학자 100명보다 더?”

“응? 갑자기?”

“보통 이런 거 갑자기 하잖아요.”

본능적으로 느낌이라는 게 왔다.

그래서 그냥 바로 물어봤다.

“아. 너 그거구나? 과거로 보내주는 산신령 같은 거.”

“티 나요?”

“응.”

나는 후배 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디로 보내줄래?”

“의외네요?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는데. 보통 싫어하거든요. 욕은 기본이었고요.”

“당황스럽긴 한데, 이런 건 거절한다고 해서 안 가는 것도 아닌 거 같더라고?”

“그건 그렇죠? 보통 물어본다는 건 이미 무조건 보낼 생각이긴 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밌을 거 같아서?”

후배 놈은 방긋 웃었다.

정말 기분 좋은 거 같았다.

“시대와 장소는 제가 마음대로 했는데, 선배는 호의적이네요. 좋아요. 기분 좋아졌어요. 원하는 곳을 말씀하세요. 그쪽으로 보내드릴게요.”

“음.”

생각해봤는데 고려가 적당할 거 같았다.

조선은 어느 정도 발전했고, 삼국 시대는 너무 멀고.

“고려가 좋겠네.”

“고려요? 의외네요. 가까운 조선을 원할 줄 알았는데.”

“보내주기나 하고 말해. 아.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오는 건가?”

“그때 보고요.”

후배 놈은 애매한 말을 하며 여전히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선배. 무운을 빕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는데

“씨발 새끼······.”

정말로 고려로 오긴 했다.

온달과 평강공주로 유명한 평원왕 시절의 고려로.

장수왕 이후 고구려가 고려로 불렸으니 고려는 맞다.

그리고 나는 온달은 아니고 막리지 왕고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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