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In bed, the kiss
알렉스는 결혼을 앞두고 성공회 예배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유신론자라 종교를 포기할 수 없었는데, 침례교에서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2). 그래서 알렉스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파 중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진보적인 종파인 성공회를 선택했다. 알렉스가 침례교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집안 어른들은 난리를 쳤지만, 알렉스는 무시했다.
* * *
윤은 자신만의 가족을 간절하게 꿈꾸면서도, 자신이 결혼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해 왔다. 한국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니까 미국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유롭게 연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박사 공부를 하면서 연애에 쏟을 시간을 내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은 저와 인연이 없는 단어라고 여겨 왔는데, 그런 제가 결혼을 한다. 윤은 제 꿈이 이루어져서 행복했고, 매일 들떠 있었다.
* * *
윤은 자신만의 가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기에 간소한 결혼식을 올려도 괜찮았다. 결혼을 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알렉스와 결혼 계약서를 쓰러 갔을 때,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이 상황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상원의원이 꿈에 그려왔던 장손의 이상적인 결혼은 이러했다. 장손의 결혼 상대는 장손과 비슷한 배경에서 자란 백인 신부. 신랑의 조부인 그는 결혼 소식을 전국구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알리고, 저명한 사회 명사들을 초대하고, 아내와 함께 경건한 침례교 결혼 예배와 성대한 피로연에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손이 데려온 결혼 상대는 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고, 상원의원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혼 계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첫째, 상원의원이 결혼을 허락하고 신혼집을 사 주는 대신, 두 사람은 그가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결혼에 대해 함구한다. 둘째, 윤은 알렉스의 성을 따르지 못한다. 셋째, 두 사람이 이혼하면, 윤은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알렉스는 윤이 자신의 성을 쓰지 못하게 되어 매우 미안해했고, 할아버지가 윤을 손자사위로 인정하지 않는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정작 윤은 별생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부부 별성제를 쓰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성을 바꾸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윤은 계약서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사인했고, 알렉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인했다. 상원의원은 손자가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고, 이렇게 소리쳤다.
“결혼식을 올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나는 안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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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과 알렉스는 상원의원이 꿈꾸었던 결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혼을 계획했다.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을 증인으로 세워 시그나기 시청에서 식을 올리고(오스틴 시청은 보는 눈이 많아 피해야 했다), 성대한 피로연을 여는 대신, 하객들과 함께 오붓하게 식사하기로 했다.
윤과 알렉스의 결혼식의 하객은 열한 명이었다. 윤의 누나와 자형, 조카, 알렉스의 부모와 할머니, 발렌티나 아줌마. 수빈, 밍 교수, 시드니, 조슈아. 결혼을 앞두고, 알렉스의 부모가 두 사람을 위해 결혼식에 입을 옷과 구두, 시계를 결혼 선물로 사 주었다. 윤의 누나는 두 사람의 결혼반지를 사 주고, 결혼식과 피로연, 서류 처리, 신혼여행 비용 등 결혼할 때 드는 비용을 모두 대주었다. 윤과 알렉스는 나중에 취직하면 갚겠다고 말했지만, 알렉스의 부모와 윤의 누나는 웃으면서 거절했다. 둘이 행복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 * *
간소한 결혼식 준비는 비교적 금방 끝났다. 윤과 알렉스가 협의한 후, 인턴으로 일하느라 바쁜 알렉스 대신 윤이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거나 예약했다.
결혼 준비를 마쳤을 때, 결혼식까지는 한 달이 남아 있었다. 알렉스와 그의 부모님이 출근하면, 윤은 고양이들과 놀아주며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발렌티나 아줌마가 일주일에 두 번 집안일을 봐주러 오면 그녀와 어울렸다.
발렌티나 아줌마는 처음부터 윤을 마음에 들어 했고, 윤이 케이팝 아이돌처럼 아름답게 생겼다며 칭찬했다. 윤도 그녀가 친절하고 따스하며 정이 많은 사람이라 좋았다. 하지만 그녀의 오지랖은 예외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오지랖에는 적응할 수가 없었다.
윤은 그녀가 출근하기 전에 침대보를 빨아 건조기에 돌리고, 알렉스와 제 옷도 빨아서 건조기에 돌렸다. 오스틴에 온 이후, 매일 그렇게 하고 있었다. 발렌티나 아줌마는 사소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윤에게 말했다.
“요새 알렉스 방에서 빨래가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저희 빨래는 제가 하고 있어요.”
“아유, 집안일이 내 일인데.”
“괜찮아요.”
윤은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집안일은 발렌티나 아줌마가 하게 두었지만, 두 사람의 빨래는 윤이 직접 했다. 그들의 성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알렉스의 부모님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알렉스의 방은 2층에 있고 부모님의 침실은 1층에 있어서 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도, 윤은 섹스할 때마다 소리를 참았다.
오늘도 윤은 섹스하는 내내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았다. 알렉스의 배 위에 앉아서 한껏 허리를 흔들다가 신음이 새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움직였다. 알렉스는 윤이 제가 낸 소리에 놀라 입을 막을 때마다 안이 한껏 조여서 좋았지만, 끙끙 앓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 알렉스는 섹스가 끝나고 윤의 땀에 젖은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소리 내도 되는데.”
“여기서는 싫어.”
윤은 정색하면서 화를 냈다. 알렉스는 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를 달래 보았다.
“네가 소리 내도 아래까지 안 들려.”
“그래도 싫어.”
“자기야.”
“말 시키지 마.”
윤은 짜증이 나서 알렉스를 등지고 누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윤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새삼 문화 차이를 느꼈다. 예전 여자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알렉스의 집을 드나들었고, 제 방에서 섹스할 때 부모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은 제 부모님을 매우 의식하고 있었다. 어차피 부모님은 둘이서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싫다는데 어쩌겠나. 신혼집에 들어갈 때까지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는 아쉬워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 * *
어느 주말, 윤과 알렉스는 드라이브를 했다. 윤이 어린 시절 살았던 노스웨스트 힐즈를 거쳐 트래비스호에 가고, 호수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윤이 옛날 주소를 외우고 있어서 알렉스는 그곳을 향해 운전했다. 시에라 드라이브 길가의 그 집은 여전했다.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고 아담한 단층집. 두 사람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 집을 밖에서 바라보았다. 윤은 차 안에서 옛집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신기하다.”
“그치?”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았었다니 신기해.”
알렉스는 윤의 왼손을 잡았다. 윤은 이 집에 처음 이사 왔던 날을 떠올렸다. 알파벳만 겨우 외웠고, 영어는 한마디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사 와서 짐을 풀고, 근처 동네의 차고 세일을 기웃거리고, 엄마와 아빠는 집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이웃들과 인사하고.
“여기에 살던 3년은 어땠어?”
“나는 여기에 올 때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거든. 그래서 엄청나게 고생했어. 언어는 1년 정도 지나니까 괜찮아졌어. 근데 이곳 생활에 적응해서 잘 지내게 될 즈음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지.”
“네가 계속 이곳에 살았다면 우리가 일찍 만나지 않았을까?”
“그야 모르지.”
윤은 웃으며 대답했다. 알렉스는 낭만적인 대답을 기대했는지, 윤의 담백한 대답을 듣고 실망한 티를 냈다. 학창 시절에 운동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 친구 사귈 시간도 없었다면서. 그래도 알렉스가 달콤한 말을 하는 것이 고마웠다. 알렉스가 하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들으면, 그가 자신을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알렉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서, 윤은 알렉스에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지금 만나서 더욱 기적 같아.”
알렉스는 윤의 대답을 듣고 좋아했다. 윤은 저를 만나서 손해 볼 것이 많아질 알렉스에게, 그 손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잘해 주고 싶었다. 먼 훗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저를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죽는 날까지 알렉스에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 * *
트래비스호는 맨스필드 댐을 만들면서 생긴 호수였다. 트래비스호 근처에는 근사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았다. 두 사람이 간 곳은 호숫가의 레스토랑이었다. 그 레스토랑은 트레비스호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중 가장 이름난 곳이고, 이곳에서 석양을 보면서 식사하는 것은 유명한 관광코스였다.
알렉스가 레스토랑 이름을 말했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윤은 레스토랑에 도착한 순간, 이곳에 가족들과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이 실내 장식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 예전에 가족들과 여기에 왔었어.”
“그럴 만하지. 유명한 곳이니까.”
알렉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윤은 이곳에 여러 번 와 봤지만, 정작 오스틴에서 나고 자란 알렉스는 이곳에 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레스토랑의 테라스로 나갔다. 오늘따라 날이 무척 더웠다. 7월이라 기온이 섭씨 40도 가깝게 오를 정도였지만, 트래비스호의 풍경과 석양을 보려면 테라스에 앉아야만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야외 테라스 좌석에 앉았다. 그들의 자리 위로 커다란 파라솔이 그늘을 드리웠기 때문에 직사광선은 피할 수 있었다.
오늘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 1년 되는 날이었다. 윤은 1년 전을 회상했다. 처음 만났던 날. 두 사람은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농구를 했다. 윤은 알렉스가 저에게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다고만 생각했고, 그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어서 친절한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지 멀쩡한 남자가 같은 남자인 저에게 호감을 대놓고 보일 리 없다고 믿었으니까. 윤은 그날을 회상하며, 혼자 피식피식 웃었다. 윤이 혼자 웃는 모습을 보고, 알렉스가 물었다.
“무슨 생각해?”
윤은 웃으면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그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윤이 메뉴판을 받아들면서 장난으로 대답했다.
“첫날밤에 무슨 이벤트를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이벤트?”
“나와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거 없어?”
“그게 무슨 뜻이야?”
“페티시 없어?”
알렉스는 페티시라는 말을 듣자마자 뜨악해했다. 페티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정색할 만한 화제인가? 윤은 알렉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했고, 알렉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런 거 없어.”
“정말?”
윤은 알렉스를 보았다. 윤도 알렉스가 매우 건전한 취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성적인 호기심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윤에게 해맑게 물었다.
“뭐 주문할 거야?”
“소고기 파지타와 치킨 엔칠라다, 연어 샐러드.”
“치킨 파지타 더 시켜도 돼?”
“응. 내가 쏜다.”
윤은 시원스럽게 말했다. 윤이 저녁을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렉스는 웃었다. 윤은 알렉스가 서버를 불러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뜨끔했다. 독실한 침례교 가정에서 밝고 건전하게 자란 사람에게 괜한 것을 물었나. 윤은 물을 마시며, 알렉스에게 야한 질문을 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 * *
알렉스는 페티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윤은 이상한 의무감을 거둘 수가 없었다. 명색이 첫날밤인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그러면 야한 속옷이라도 준비하는 게 어떨까? 그래서 윤은 알렉스와 그의 부모님이 출근한 후, 인터넷에서 남성용 허니문 속옷을 찾아보았다.
남성용 허니문 속옷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팬티는 레이스 소재로 되어 있었고 페니스를 끼우는 주머니와 고환을 끼우는 주머니가 따로 있었다. 알렉스는 얌전한 것을 좋아하는데, 이건 너무 남사스러워서 그가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성용을 입을 수도 없었다. 윤이 보기에는 브래지어와 티팬티, 망사 스타킹, 슬립이 세트로 구성된 여성용 허니문 속옷도 남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윤은 손바닥보다 작은 레이스 팬티를 입고 알렉스를 유혹할 자신이 없었다.
윤은 한참 인터넷을 뒤졌고, 아마존에서 무난한 것을 찾았다. 윤이 찾은 것은 여성용 레이스 바디 슈트였다. 여성 모델의 착용 사진을 보니, 바디 슈트만 입었는데도 정숙해 보였다. 구매자들의 후기 사진을 보니, 바디 슈트를 캐미솔처럼 이너로 입는 사람도 많았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 가격을 확인해 보니 가격도 괜찮았다. 15달러. 여성용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윤은 눈을 딱 감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 * *
이틀 뒤. 아마존 프라임으로 바디 슈트가 배송되었다. 모두가 출근하고 집이 비었을 때, 윤은 혼자 택배를 뜯었다. 검은색 꽃무늬 레이스가 보들보들하고 예뻤다.
윤은 불량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바디 슈트를 입어 보았다. 바디 슈트를 입고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자마자, 윤은 제가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가슴 부분이 명치까지 파여 있는데, 윤은 가슴이 없어서 옷 태가 볼품이 없었다. 여자가 입었다면 가슴골이 드러나서 정말 예뻤을 텐데. 게다가 바디 슈트에 안감이 없어 젖꼭지와 배꼽, 성기가 비쳤고, 등은 허리까지 파였고, 어깨끈은 등 한가운데에서 엑스자로 교차하였다. 이것은 여자가 입어서 예쁜 거였구나. 윤은 짜증을 내면서 바디 슈트를 벗어 방구석에 처박았다. 속옷이라 환불도 안 되는데, 아무래도 돈을 날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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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알렉스의 인턴 근무가 끝났다. 둘은 미리 사들인 시그나기의 새집으로 이사했다. 결혼 계약서를 쓰는 조건으로 받은 집이었다. 윤은 새집이 마음에 들었다. 새집은 아직 어수선했지만, 무척 아늑했다. 전 주인이 1년 전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개인 사정으로 급하게 처분한 집이라 깨끗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웃들이 점잖은 노인들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라면 끔찍한 일을 또 겪지는 않겠지.
* * *
환과 자형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그나기에 왔다. 누나와 자형은 바빠서 휴가를 길게 내지 못했고, 2박 3일 일정으로 시그나기에 왔다. 심지어 산이는 오지 못했다. 누나는 산이가 비행기를 타기에는 너무 어려서 시댁에 맡겼다고 했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윤은 조카를 만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알렉스의 부모님과 할머니, 발렌티나 아줌마도 시그나기에 도착했다. 윤과 알렉스는 결혼식을 앞두고, 알렉스의 부모님과 할머니, 발렌티나 아줌마, 윤의 누나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을 먹었다. 알렉스가 요리했고, 윤이 그를 도왔다. 알렉스는 니스 샐러드, 코코뱅, 포토푀, 라따뚜이를 만들었다.
가족 모임은 화기애애했고, 레드 와인을 곁들인 식사는 맛있었다. 식사하는 동안, 누나는 끝내주는 화술로 알렉스의 부모님과 할머니, 발렌티나 아줌마를 사로잡았고, 자형은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누나는 주로 오스틴에 살던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환은 기억력이 좋아서 윤이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했고, 다들 그녀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 * *
결혼식 날 아침이 밝았다. 그날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미용실에 가서 준비를 마치고, 준비한 슈트를 입었다. 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검은 슈트를 입고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낸 청년이 잔뜩 긴장해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알렉스를 보니, 저와 똑같은 슈트를 입고 이마를 드러낸 알렉스는 씩 웃고 있었다. 윤을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근사했다.
시청에 가서 결혼 신청을 하고, 대기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 윤과 알렉스는 오늘 처음으로 결혼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 후, 가족들과 증인들이 왔다. 그들 모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알렉스와 윤은 두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부부가 된다. 윤은 긴장했고 입 안에서는 침이 말랐다. 재킷 주머니 안에 넣어 둔 반지 케이스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윤이 자꾸 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고, 알렉스는 윤의 손을 더욱 굳게 잡아 주었다.
* * *
두 사람의 순서가 되었다. 두 사람과 하객들은 법정에 들어갔다. 이윽고 젊은 판사가 법정에 들어왔다. 히스패닉계 여성 판사는 검은 법복을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빈틈없이 틀어 올렸고, 큼직한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환영합니다. 저는 이 결혼식을 주재할 마리아 가르시아 판사입니다. 오늘 결혼하실 두 분의 성함이 알렉산더 줄리안 케인즈 테신 4세와 주윤 맞습니까?”
“네.”
윤과 알렉스는 동시에 대답했다. 윤은 떨면서 대답했고, 알렉스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대답을 듣고, 판사는 위엄 있게 물었다.
“두 분은 오늘 부부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맞습니까?”
“네.”
“두 분, 마주 보고 두 손을 잡으세요.”
판사가 지시했다. 윤과 알렉스는 판사가 시키는 대로 마주 보고 두 손을 꼭 잡았다.
“좋습니다. 음, 주윤 씨부터 서약할까요? 저를 따라 하시면 됩니다. 나, 주윤은 알렉산더 줄리안 케인즈 테신 4세를 적법한 남편으로 맞아, 지금, 이 순간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당신을 평생 사랑하고 공경하겠습니다.”
판사가 말한 문장들은 결혼식에서 흔히 하는 결혼서약이었다. 윤은 판사가 말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한 번 되새겨 보고, 있는 힘껏 알렉스의 두 손을 잡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 주윤은 알렉산더 줄리안 케인즈 테신 4세를 적법한 남편으로 맞아, 지금, 이 순간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당신을 평생 사랑하고…. 공경하겠습니다.”
윤이 결혼서약을 마쳤을 때, 알렉스는 윤과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윤은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오늘까지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윤은 엄마를 생각한 순간,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윤이 결혼서약을 마치고 울자, 밍 교수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윤의 누나도 울고 있었다. 알렉스는 윤이 울어서 마음이 아팠다. 좋은 날이니까 많이 웃기를 바랐는데, 윤은 많이 울었다. 그래서 그는 서약하기 전에 잠시 윤의 두 손을 놓았다. 알렉스는 두 손으로 윤의 눈물을 닦고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활짝 웃었다. 우느라 눈과 코가 빨개진 윤의 두 손을 다시 잡고, 알렉스는 결혼서약을 시작했다.
“판사님, 부탁드립니다.”
“좋습니다. 저를 따라 하세요. 나, 알렉산더 줄리안 케인즈 테신 4세는 주윤을 적법한 남편으로 맞아, 지금, 이 순간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당신을 평생 사랑하고 공경하겠습니다.”
알렉스는 윤을 보았다. 윤은 훌쩍거리면서 알렉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윤의 두 손을 굳게 잡고, 차분하게 말했다.
“나, 알렉산더 줄리안 케인즈 테신 4세는 주윤을 적법한 남편으로 맞아, 지금, 이 순간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당신을 평생 사랑하고 공경하겠습니다.”
알렉스가 결혼서약을 마쳤다. 이번에는 알렉스의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발렌티나 아줌마도 훌쩍거렸다. 알렉스의 아빠는 아내의 어깨를 안았고, 알렉스의 할머니는 활짝 웃고 있었다.
“좋습니다. 두 사람은 반지를 교환하세요.”
판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각자 재킷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윤이 먼저 반지 케이스를 열고 반지를 집었다. 바랐던 대로 아무런 장식 없는 플래티넘 반지였다. 윤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반지를 집고, 왼손으로 알렉스의 왼손을 잡았다. 저보다 손가락 두 마디나 큰 손이었다. 윤은 알렉스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이번에는 알렉스가 반지 케이스를 열고 반지를 쥐었다. 오른손에 반지를 쥐고, 왼손으로는 윤의 왼손을 잡았다. 저보다 손가락 두 마디가 작은 손이었다. 알렉스는 윤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왼손에 반지를 끼고 나서, 윤은 용기를 내어 알렉스에게 물었다.
“우리 키스할까?”
“그래.”
알렉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알렉스는 허리를 숙이고 윤은 까치발을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가족들과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짧지만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둘이 입 맞추는 모습을 보고, 윤의 누나는 깜짝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수빈과 시드니는 손을 들고 환호했다. 키스가 끝나고, 판사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축하합니다. 이제 두 분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두 분이 앞으로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판사가 결혼의 성립을 선포했다. 가르시아 판사는 단상에서 내려오더니 양팔로 윤과 알렉스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따뜻한 목소리로,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두 사람에게 행운을 빕니다.”
축복의 말을 건네고 나서, 그녀는 두 사람을 놓아주었다. 가르시아 판사가 말했다.
“이제 기념사진을 찍읍시다.”
하객들은 신혼부부의 곁으로 하나둘씩 걸어갔다. 조슈아가 손을 잡고 서 있는 두 사람에게 걸어오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결혼식 비디오 찍었어. 메일로 보내 줄게!”
“고마워.”
알렉스는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판사와 하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윤은 결혼사진을 찍기 위해 알렉스와 팔짱을 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아무런 장식 없는 플래티넘 반지를 똑같이 나누어 끼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식을 올리기 전에는 불안하고 긴장되었고, 결혼서약을 할 때는 한없이 울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내 남편. 남편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발음해 보니 정말 좋았으니까. 그래서 윤은 사진작가가 시키는 대로 활짝 웃을 수 있었다.
* * *
알렉스는 조슈아의 말을 듣고 놀랐다. 결혼식을 하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하지만 조슈아가 메일로 보내준 비디오의 길이를 확인해 보니, 결혼식은 정말 5분 만에 끝났다.
알렉스와 윤은 가족들, 하객들과 함께 시그나기에서 가장 좋은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식사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식사 분위기는 즐거웠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진심으로 두 사람을 축복하고 있었다.
하객들은 신혼여행 계획에 대해 물었다. 둘은 겨울 방학에 발리에 가기로 했다. 신혼여행을 겨울에 가는 대신, 오늘은 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첫날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개학이 임박하여 신혼여행은 갈 수 없지만, 첫날밤은 근사하게 보내고 싶었으니까.
* * *
가족 및 하객들과 헤어지고, 둘은 예약한 스위트룸에 들어왔다. 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킹사이즈 침대에 가로로 누웠다. 긴장이 풀려서 무척 피곤했다. 알렉스는 두 개의 슈트 케이스를 구석에 놓고, 윤의 곁에 가로로 나란히 누웠다.
“피곤하다.”
“나도.”
윤은 알렉스를 향해 돌아누웠다. 알렉스도 윤을 향해 돌아누웠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윤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한 번 축이고 알렉스를 불렀다.
“여보.”
여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알렉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윤은 알렉스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킥킥 웃으며 말했다.
“맞잖아.”
“그래, 여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소리 내어 한참 웃었다. 한참 웃고 나서, 두 사람은 키스했다. 서로의 입술을 제 입술로 더듬고 혀를 얽고 빨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과 혀가 달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둘은 숨이 차고 얼굴이 시뻘게질 때까지 키스했다.
“같이 씻을까?”
알렉스가 물었다. 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같이 씻으면 미친 듯이 섹스하게 될 게 뻔했다. 그러면 첫날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겠지. 게다가 밍 교수가 선물로 준 돔 페리뇽3)도 마셔야 하는데.
“내가 먼저 씻을게.”
윤은 웃으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알렉스는 피식 웃으며, 욕실로 들어가는 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윤이 샤워를 마치고, 목욕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알렉스가 욕실로 들어갔다. 윤은 욕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슈트 케이스를 열었다. 슈트 케이스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고, 그것을 몇 번이나 손에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예전에 샀던 바디 슈트였다. 이것을 입는 게 좋을까? 제가 이것을 입으면 보기 흉할 텐데, 그리고 너무 민망한데. 윤은 한참 생각하다가, 그래도 첫날밤인데 알렉스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것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알렉스가 목욕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객실은 비어 있었다. 객실의 블라인드는 모두 내려져 있었고 조명의 조도는 낮아져 있었다. 알렉스는 거실로 나갔다. 윤은 목욕 가운을 입고, 거실의 1인용 소파에 앉아서 아이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커피 테이블 위에는 치즈, 과일 카나페, 와인오프너, 샴페인 글라스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돔 페리뇽은 아이스 바스켓 안에 꽂혀 있었다.
“네가 룸서비스 시켰어?”
“응. 아이스 바스켓 시키면서 같이 시켰어.”
알렉스는 3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는 와인오프너를 집어 와인을 따고, 두 개의 샴페인 글라스에 똑같은 양을 따랐다. 그리고 알렉스는 윤에게 말했다.
“이리 와.”
윤은 소파에서 일어나 알렉스의 곁에 앉았다. 알렉스는 윤에게 샴페인 글라스 하나를 건넸다. 알렉스도 손에 샴페인 글라스를 들었고 윤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으며 물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을 위해 건배할까?”
“그래.”
둘은 건배하고 샴페인을 한 모금씩 마셨다. 차게 식힌 돔 페리뇽은 여태까지 마셔 본 샴페인 중에 가장 맛있었다.
* * *
두 사람은 CNN 주중 8시 뉴스를 보면서 샴페인을 마셨고, 실없는 농담과 이야기를 했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데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기쁜 날이고, 긴장이 풀린 데다가 술기운까지 올라서 그런 것 같았다.
윤은 알렉스가 대학 시절, 경기에서 지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락커룸 벽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웃을 일은 아니야.”
“알아. 근데 웃기잖아.”
윤은 웃으면서 말했다. 윤의 반응을 보고, 알렉스는 윤의 손에서 샴페인 글라스를 뺏어 커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자기, 취했네.”
“응. 나 취했어.”
윤은 알렉스의 목을 끌어안고 헤헤 웃었다. 평생 유지해 왔던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윤은 평소와 다르게 나른하고 말랑말랑했다. 윤이 알렉스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면서 말했다.
“여보.”
알렉스는 윤의 등을 토닥였다. 알렉스의 가운이 윤의 눈물로 축축해졌다. 가운이 눈물에 젖어 드는 것을 느끼고, 알렉스는 말없이 윤을 끌어안았다. 어느새 윤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마워.”
윤은 울먹이며 말했다. 알렉스가 윤의 등을 쓸어 주면서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속상해.”
“그래도 정말 고마워…….”
“나도 고마워. 그러니까 우리, 행복하게 잘 살자.”
알렉스가 윤을 다독였고, 윤은 서럽게 울었다. 알렉스는 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를 안고 달래주었다. 윤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저에게 얼마만큼 고마워하는지 느낄 수 있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 *
윤은 한참 울고 나서 알렉스에게 키스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 키스로 말하고 싶었다. 키스의 끝에 눈물의 맛이 묻어났다. 알렉스도 눈물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눈물의 맛은 당연히 짰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달콤했다.
키스가 깊어졌다. 알렉스는 키스를 멈추고, 윤의 엉덩이를 받쳐 안아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윤을 안고 은은한 조명이 밝혀져 있는 침대로 쓰러졌다. 윤은 알렉스의 몸 아래 누웠고, 알렉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둘은 다시 키스했다. 알렉스의 오른손이 목욕 가운 안으로 들어와 윤의 왼쪽 무릎을 잡았다. 알렉스의 손이 무릎부터 허벅지 안쪽을 쓸어 올렸다. 커다란 오른손이 허벅지 뒤로 돌아들었고, 윤의 왼쪽 엉덩이를 쥐었다.
“어?”
알렉스는 깜짝 놀라며 입술을 떼고 윤을 내려다보았다. 윤은 알렉스의 시선을 피했다. 알렉스가 윤의 목욕 가운 끈을 풀고, 가운 자락을 벌렸다.
“하.”
알렉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한 감탄사를 뱉었다. 윤은 목욕 가운 안에 검은색 레이스 바디 슈트를 입고 있었다. 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첫날밤이니까…….”
알렉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 제 이마를 오른손으로 짚었다. 알렉스의 반응을 보고, 윤은 지금이라도 바디 슈트를 벗어야 하나 고민했다. 알렉스가 윤을 보고,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런 거에 관심 없는데.”
알렉스의 말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윤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알렉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싫어?”
“아니.”
알렉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 * *
알렉스는 제 목욕 가운을 벗어 침대 밖으로 던졌다. 그는 완전한 알몸이었다. 윤은 알렉스의 몸을 보며 침을 삼켰다. 잘생긴 얼굴, 두껍고 긴 목, 넓은 어깨, 두툼한 가슴과 등, 탄탄한 배, 길고 강한 팔다리, 그리고 크고 잘생긴 핑크색 페니스. 알렉스가 결혼반지를 낀 왼손으로 윤의 목욕 가운을 벗겨 침대 밖으로 던졌다. 윤은 알렉스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저를 끈적하게 핥아 내리는 것을 즐기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알렉스가 윗입술을 혀로 축이면서 물었다.
“이건 누구 아이디어야?”
“내 아이디어야.”
알렉스는 윤의 대답에 만족한 것 같았다. 그는 웃으면서 매트리스를 두 손으로 짚고 상체를 숙였다. 윤은 두 팔로 알렉스의 목을 끌어안아 제 쪽으로 당겼고, 두 다리를 벌려 알렉스의 몸을 제 다리 사이에 가두었다.
알렉스가 커다란 두 손으로 윤의 조그마한 얼굴을 쥐었다. 알렉스의 손이 얼굴에서 목덜미, 어깨, 바디 슈트를 입은 가슴과 배까지 진득하게 쓸어내렸다. 알렉스는 두 손으로 윤의 허리를 잡았다가 엉덩이를 쥐었다. 레이스 바디 슈트는 윤의 엉덩이를 반만 겨우 덮었다. 윤은 알렉스의 두 손에 제 두 손을 겹치며 나긋하게 웃었다. 알렉스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알렉스는 윤의 귓불을 빨기 시작했다. 윤은 바디 슈트 안에서 제 성기가 완전히 발기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윤의 귓불을 빨면서 두 손으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때때로 알렉스의 손가락이 바디 슈트 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윤은 알렉스의 손에 얹은 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윤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며, 윤의 목덜미를 빨다가 깨물었다. 윤은 너무 아파서 저도 모르게 알렉스의 두 손을 놓쳤다. 그의 입술과 혀가 목덜미를 지났고, 어깨를 깨물었다. 윤은 아파서 침대 시트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알렉스가 바디 슈트 위로 윤의 가슴을 입술로 더듬어 내려가다가 오른쪽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윤은 화재 사고로 입원한 이후, 젖꼭지에 피어스를 하지 않았다. 의료진들이 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피어스를 빼서 막혔기 때문이었다. 알렉스는 오른쪽 젖꼭지를 빨고 깨물다가 왼쪽 젖꼭지로 옮겨갔다. 왼쪽 젖꼭지에서 젖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그것을 물고 빨다가 깨물었다. 윤은 지나친 쾌감에 벌써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침에 젖은 가슴팍은 축축했고 성기에서는 쿠퍼액이 새고 있었다.
알렉스는 바디 슈트 어깨끈을 양쪽 모두 아래로 끌어내렸다. 흘러내린 양쪽 어깨끈은 팔오금에 걸렸고, 윤은 알렉스에게 촉촉이 젖은 가슴팍을 내보이게 되었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복숭아색 젖꼭지 한 쌍이 바짝 서 있었다. 알렉스는 두 젖꼭지를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굴렸다. 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알렉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젖꼭지를 애무하면서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윤은 알렉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해졌다.
“알렉스?”
“…….”
“자기야?”
윤이 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가 젖꼭지를 놓고, 갑자기 윤의 어깨를 잡고 돌아 눕혔다. 단숨에 시야가 뒤집혔다. 윤은 침대 위에 엎드리게 되었고,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알렉스가 윤의 몸 위로 올라왔다. 그가 흉흉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윤의 엉덩이골 위에 비비면서 상체를 숙였다. 알렉스의 두 손이 윤의 가슴을 쥐었다. 윤이 알렉스에게 말했다.
“젖꼭지 만져 줘.”
알렉스가 왼손으로 윤의 왼쪽 젖꼭지를 만지면서 오른손, 네 손가락을 전부 윤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알렉스는 윤의 등 위로 몸을 숙였다. 윤의 등과 알렉스의 가슴과 배가 완전히 맞닿았다. 그는 삽입한 것처럼 허리를 치면서 바디 슈트를 입은 윤의 엉덩이 위에 제 성기를 치댔다.
“빨아.”
알렉스는 윤에게 말했다. 윤은 정성껏 알렉스의 손가락을 빨고 적셨다. 알렉스의 입술이 윤의 귓불과 목덜미를 게걸스럽게 애무했다.
“흐읍, 읍, 으으.”
“급해. 빨리.”
“흐으, 흐, 흐으읍, 흡.”
윤은 흐느끼면서 알렉스의 손가락을 빨았다. 알렉스는 손가락이 충분히 젖자 그것들을 윤의 입에서 뺐다. 알렉스는 왼손으로 바디 슈트의 회음부 부분을 잡아 젖히고, 오른쪽 손가락 세 개를 한꺼번에 입구에 밀어 넣었다.
“아, 아! 아파, 알렉스으, 흐으, 아파, 흑…….”
“힘 빼. 자기야.”
윤은 두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 알렉스는 윤의 귓불과 귓바퀴를 사탕처럼 핥고 빨면서 손가락으로 내벽을 넓혔다. 하지만 침에 적신 손가락으로는 내벽을 넓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레이스 바디 슈트가 뭐라고, 알렉스는 어느 때보다 흥분했다. 당장 안에 성기를 처박고 싶은데, 오늘따라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알렉스는 구멍에서 손가락을 모두 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을 적실 것이 필요한데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왼손으로 바디 슈트 자락을 계속 잡고 있느라 불편했다. 여러모로 바디 슈트가 성가셨다.
알렉스는 결국 바디 슈트의 엉덩이 부분을 동그랗게 찢었다. 윤은 레이스가 찢어지는 소리를 듣고 기겁했다. 저도 모르게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지만, 알렉스에게 두 고관절을 잡혀 뒤로 끌려갔다. 알렉스가 두 손으로 윤의 엉덩이를 벌리면서 말했다.
“엉덩이 들어.”
“그거 싫어-”
윤이 애원했지만, 알렉스는 그의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처박았다. 윤은 혀가 구멍에 닿자 몸서리를 쳤다. 찢어진 레이스가 침에 젖어 엉덩이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뾰족하게 선 혓바닥이 구멍 안을 채우고 핥았다. 내벽에 혀의 돌기가 축축하게 비벼지고, 윤은 수치심에 울면서 괴로워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민망한 소리를 내면서 구멍을 빨고 적셨다.
“제발, 그만, 흑, 흑, 그거 싫어, 흐으…….”
윤이 울어도, 알렉스는 갈급하게 구멍을 애무했다. 구멍이 충분히 젖자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차례대로 넣으며 안을 넓혔다. 알렉스의 가슴과 배가 윤의 등과 포개졌다. 윤은 몸에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알렉스의 왼손이 윤의 왼쪽 젖꼭지를 꼬집고, 윤의 입술에 질척하게 키스했다. 윤은 울면서 알렉스의 입술을 열심히 빨았다. 그러면서도 알렉스의 손가락은 윤의 내벽에서 윤이 가장 느끼는 곳을 충실히 찔렀다. 느끼는 곳을 만지면서 안을 넓히자, 내벽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알렉스는 손가락으로 안을 부지런히 넓히다가, 완전히 부드러워진 내벽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뺐다.
윤이 도망가려고 버둥거리는데 알렉스가 들어왔다. 안 그래도 좁은데, 침에 젖은 내벽은 평소보다 훨씬 뻑뻑했다. 알렉스는 인상을 쓰면서 제 것을 밀어 넣었다. 많이 풀린 것 같았지만 여전히 조임이 만만치 않았다. 윤은 울면서 애원했다.
“천천히, 제발, 흐윽, 으, 자기야!”
“여기서는 소리 잘 내네.”
“응, 응, 그러니까, 흐으, 응!”
알렉스는 윤에게 키스하면서 윤의 몸을 녹였다. 윤의 양쪽 젖꼭지가 알렉스의 손에 짓이겨졌다. 윤은 아픔을 잊으려고 알렉스의 혀를 허겁지겁 빨았다. 윤이 알렉스의 입술에 매달리는 동안, 알렉스는 서서히 안으로 들어왔고 절대 물러나지는 않았다.
마침내 알렉스의 고환이 윤의 회음부에 닿았다. 윤은 숨이 차서 알렉스의 혀를 밀어냈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침이 길게 늘어났다. 알렉스는 두 손으로 윤의 골반을 잡고 들어 올려 허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 하아, 하, 으, 응!”
“예뻐.”
알렉스가 움직일 때마다 윤이 입고 있는 바디 슈트의 어깨끈이 팔오금에 걸린 채 흔들렸다. 윤은 필사적으로 손에 시트를 쥐고 버티면서 허리를 흔들고 안을 조였다. 잔뜩 구겨진 침대 시트가 윤의 눈물과 침에 젖어 들었다.
윤은 느끼는 곳을 찔릴 때마다 달콤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알렉스에게 엉망으로 박히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알렉스가 제 몸에 푹 빠져 쾌락을 느끼며 으르렁거리는 것도 좋았다. 혼인이 성립되고, 이제 세상에서 저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알렉스라서 행복했다. 알렉스가 허리를 과격하게 쳐올리다 말고 윤에게 물었다.
“여보, 읏, 페티시 없냐고, 하아, 물었지?”
“응, 흐응. 그랬어. 아, 하아!”
“생긴 것, 흣, 같아.”
“아읏, 뭔데?”
“젖꼭지, 뚫어 줘.”
“아아, 응, 읏, 흐으!”
“왼쪽.”
“아! 흡, 거기! 아! 하아, 좋아…….”
“알아, 하아, 들었어?”
“응, 흐응, 피, 피어싱!”
“그래.”
알렉스는 윤이 좋아하는 내벽 가장 깊은 곳을 강하게 몇 번이나 찔렀다. 윤은 눈앞이 하얗게 머는 것을 느꼈다. 마침 알렉스가 윤의 어깨를 깨물었다. 온몸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짜릿한 쾌감이 지독하게 내달렸다.
“아아! 앗! 아아…. 아, 하아!”
윤은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사정했다. 사정하면서 안이 잔뜩 조여들었다. 알렉스는 내벽의 떨림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잘 알아들었네.”
“흐으…. 흑…….”
오르가즘 때문에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사정하고 힘이 빠진 윤은 울면서 흐느적거렸다. 쾌감을 너무 느끼다 보니 서럽기까지 했다. 윤은 흐느끼면서 알렉스에게 말했다.
“얼굴, 흡, 보고, 흐윽, 해….”
알렉스는 윤을 돌아 눕혔다. 윤은 눈이 빨갛게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지만, 알렉스는 그를 봐주지 않았다. 바디 슈트에 하얗게 엉겨 붙은 윤의 정액을 보면서, 알렉스는 제 것을 마구 들이박기 시작했다. 어느새 윤의 두 다리는 알렉스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윤은 몸이 반으로 접힌 채, 알렉스를 받아 냈다. 몰아치는 쾌락에 윤의 발가락이 잔뜩 오그라들었다.
“흐응! 아, 아, 아아, 흐으…….”
“세상에서 제일 예뻐.”
“응, 으응, 으, 아!”
윤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고, 알렉스는 윤을 다시 한번 절정으로 끌고 올라갔다. 윤은 정신없이 신음하며 알렉스에게 휘둘렸다. 앞을 만져 주지 않았는데도 윤의 성기는 정액을 줄줄 토해 냈다. 극심한 절정을 연달아 느낀 윤의 몸이 덜덜 떨렸다.
알렉스를 안고 싶은데 너무 힘들어서 안을 힘이 없었다. 윤은 흔들리는 시야로 알렉스를 좇다가, 간신히 팔을 들어 알렉스의 목과 날갯죽지를 안았다. 귓가에 알렉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헐떡이는 숨소리를 듣다가, 윤은 눈을 크게 뜨며 알렉스를 보았다. 윤의 턱 끝에 알렉스의 땀이 떨어졌다. 알렉스의 땀을 맞는 순간, 알렉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정사에 열중한 알렉스는 절정으로 치닫는 쾌감을 쫓으며 두 손으로 윤의 허리를 꽉 쥐었다. 그래서 윤은 알렉스가 곧 사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아, 하, 하아, 아!”
윤의 귓가에 알렉스가 황홀해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게 좋아서 윤은 알렉스의 목을 꽉 안았다. 알렉스가 탄성을 지르며 성기를 가장 깊은 곳까지 찔러 넣고 사정했다. 알렉스는 사정하면서 윤의 내벽을 여러 번 긁었고, 윤은 몸을 떨면서 알렉스를 받아 냈다.
사정이 끝나고, 알렉스는 안에 잠시 머무르다가 성기를 뺐다. 알렉스는 윤의 옆에 붙어 누웠고, 윤을 품에 당겨 안았다. 윤은 알렉스와 마주 보고 옆으로 눕게 되었다. 알렉스와 윤은 이마를 맞대고 서로를 보았다. 윤은 숨을 헐떡이면서 떨리는 손으로 알렉스의 두 뺨을 감싸 쥐었다. 알렉스는 윤을 보고 씩 웃었다. 윤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페티시 없다면서.”
“없어.”
“거짓말쟁이.”
윤은 알렉스의 품에 폭 안겼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짓을 했지만,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첫날 밤을 보냈다. 이런 짓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두 번은 못 할 것 같았다.
알렉스는 윤을 안고, 그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입구가 있는 부분만 찢어진 바디 슈트에 묻어 있던 제 정액이 손가락에 감겼다. 알렉스는 제 품에 안겨 있는 윤을 보았다. 두 어깨끈이 팔꿈치까지 흘러내린 새까만 레이스 바디 슈트를 입고, 제가 남긴 자국이 가득한 목덜미와 어깨, 가슴팍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는 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음란했다. 알렉스는 윤의 야해 빠진 모습을 감상하다가, 제가 바디 슈트를 찢어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렉스가 걱정하면서 물었다.
“이거 비싼 거지?”
“아니.”
윤은 알렉스의 질문에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렉스는 윤의 뺨에 키스하고 물었다.
“얼마 주고 샀어?”
“15달러.”
“다행이네.”
알렉스의 말을 듣고, 윤은 얼굴을 붉혔다. 알렉스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제 입술 자국과 잇자국이 남은 윤의 왼쪽 가슴과 부어오른 젖꼭지를 오른손 검지 손톱으로 긁으며 말했다.
“잊지 마.”
“뭘?”
“왼쪽 젖꼭지 피어싱. 결혼 선물로 뚫어 줘.”
알렉스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윤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얼떨결에 대답한 거였는데. 젖꼭지를 다시 뚫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그런데도 윤은 알렉스가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윤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대답했다.
“……알았어.”
* * *
첫날밤은 바디 슈트와 함께 불태웠다. 알렉스가 세 번 사정하고 윤은 몇 번이나 사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섹스가 끝나고, 윤은 잇단 오르가즘의 여파로 몸을 덜덜 떨면서 젖은 바디 슈트를 벗었다. 바디 슈트는 완전히 망가졌다. 두 사람의 정액에 푹 절었고, 엉덩이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가 찢어졌다. 윤은 바디 슈트를 침대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지만, 알렉스가 말렸다.
“빨아서 가져가자.”
“이걸 왜?”
“첫날밤의 추억이잖아.”
“너…. 이상해.”
“맞아. 나 이상해.”
“…….”
“근데 네가 나를 자꾸 이상하게 만들어.”
알렉스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윤은 알렉스의 말이 너무 웃겨서 킥킥 웃었다. 그리고 윤은 바디 슈트를 들고 욕실로 갔다. 욕실까지 걸어가는 잠깐 사이에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것을 빨고 몸도 씻어야지. 그냥 자고 싶지만, 몸에 온갖 체액이 고이고 말라붙은 것이 찜찜했다.
윤이 세면대에서 바디 슈트를 빨려고 하는데, 알렉스가 욕실에 따라 들어왔다. 알렉스는 윤을 안아다가 욕실 싱크대 위에 앉혔다. 윤은 거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어메니티 포장을 뜯고 비누를 꺼내 바디 슈트를 빨았다. 알렉스의 다시 발기한 성기를 보고, 윤은 오늘 밤에 잠들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이 어리고 건강한 것도 문제였다. 오늘은 기절할 때까지 섹스해야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는 빨래를 마치고, 바디 슈트를 수건걸이에 걸었다. 이윽고 알렉스가 윤이 앉아 있는 욕실 싱크대 앞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윤의 다리를 벌렸다. 윤은 알렉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어서, 그를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알렉스가 윤에게 말했다.
“빨아 줄게.”
윤은 알렉스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이 그를 놀리면서 말했다.
“너, 빨 줄 모르잖아.”
“그러니까 가르쳐줘.”
“진심이야?”
“응. 이게 내 결혼 선물이야.”
“뭐라고?”
“나는 너를 알아. 내가 너에게 결혼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면, 너는 분명히 괜찮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고 할 거야. 그게 말이 돼? 그런 이야기를 듣느니, 내가 먼저 결혼 선물을 골라서 너에게 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윤은 알렉스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웃었다. 젖꼭지 피어싱과 펠라치오를 결혼 선물로 교환하다니, 나쁘지 않았다. 윤은 알렉스에게 알려주기 위해 머릿속으로 빠는 순서와 방법을 생각했고, 여유 있게 말했다.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배워.”
알렉스는 긴 속눈썹이 예쁘게 돋은 눈으로 윤을 올려다보았다. 윤은 알렉스의 눈을 보면서, 알렉스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제일 중요한 건, 빠는 동안 이를 내면 안 된다는 거야. 입술로 이를 감싸고 빨아야 내가 아프지 않아. 혀에 힘을 풀고 내 것을 감싸듯이 빨아 줘.”
“그리고?”
“요도구를 계속 자극하는 것도 중요해.”
“그다음은?”
윤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알렉스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앞으로 평생 내 것을 빨아 주겠다고 할 만큼, 얘가 나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학생이 마침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니 잘 가르쳐줘야겠다. 윤이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알렉스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하면서 알려 줄게. 그러니까 입 벌려 봐.”
알렉스는 그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입을 벌렸다. 윤이 알렉스의 뒤통수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성기를 삼키기 전, 알렉스는 윤을 올려다보았다. 알렉스를 내려다보며 나른하게 웃고 있는 윤의 뺨과 입술이 정사 후의 열기로 발그레했다.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훌륭하니 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는 윤의 성기를 삼키면서 웃었다.
* * *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밤을 보냈고,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체크아웃하기 전, 알렉스는 덜 마른 바디 슈트를 챙겨 슈트 케이스에 넣었다. 그리고 윤은 바디 슈트를 챙기는 알렉스를 일부러 모른척했다.
두 사람은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새 침대에 누웠다. 알렉스의 키에 맞춰 주문 제작한 킹사이즈 침대는 매우 크고 튼튼했다.
알렉스의 부모님과 할머니, 발렌티나 아줌마는 결혼식이 끝나고 바로 오스틴으로 돌아갔고, 윤의 누나와 자형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누나 부부는 오늘 샌 마르코스 아웃렛에 간다고 했다. 내일은 누나 부부와 식사하고, 그들을 공항까지 바래다주어야 한다. 내일 식사 메뉴는 뭐가 좋을까. 천장을 보며 식사 메뉴를 고민하다 말고, 윤은 옆에 누워 있는 알렉스를 힐끗 보았다. 알렉스는 벌써 윤을 향해 돌아누워 있었다. 윤이 알렉스의 코끝을 오른손 검지로 콕 누르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
윤은 알렉스의 대답을 듣고 웃었다. 알렉스는 오른손으로 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너에게 고마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지. 나도 이상해.”
“그러니까.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
알렉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윤은 알렉스의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제 존재가 알렉스의 인생에 짐은 아닌 것 같았고, 제가 알렉스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좋아서 행복했다.
* * *
다음 날. 알렉스와 윤은 누나와 자형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다. 윤의 연구실과 법학 도서관을 보여 주고, 차를 타고 학교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학교 정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학교 박물관도 관람했다.
누나와 자형은 학교 기념품 가게에서 티셔츠와 머그잔을 세 개씩 구매했다. 둘은 회사에서 입을 후드 집업도 하나씩 샀다. 검은색 바탕에 학교 로고가 자수로 새겨진 것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선물로 돌릴 펜과 형광펜 세트도 여러 개 샀다.
점심은 윤과 알렉스의 단골집인 크레센트 문에서 먹었다. 그들은 평소에 즐겨 먹던 메뉴를 시키고, 맥주도 시켰다. 운전해야 하는 알렉스만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점심을 먹다가, 환이 알렉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혼식에 할아버지는 안 보이시던데…… 혹시…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거야?”
“아뇨. 할아버지는 저희 결혼에 반대하셔서 안 오신 거예요. 마침 그날 워싱턴 DC에서 상원 회의가 있기도 했고.”
“그게 무슨 말이야?”
환이 되물었고, 윤은 황급히 알렉스의 입을 제 손으로 틀어막았다. 알렉스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윤이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결혼 계약서를 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윤은 주변에 한국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알렉스 할아버지, 텍사스 주 연방 상원의원이야.]
[뭐어?]
환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자형도 놀라서 알렉스를 보았다. 윤은 누나와 자형의 반응을 보고 머쓱해졌다. 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야, 구글에 검색해 봐.]
자형이 아이폰을 꺼냈고, 구글에서 키워드를 검색했다.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 그러자 두 개의 이름이 나왔다. 알렉산더 테신 주니어. 에드워드 마르티네즈. 자형은 윤이 사실을 말했다는 것을 알고 기겁했다. 그는 아내에게 아이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환은 이름을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누나, 자형.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요. 우리는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고 다니지 않을 거라고, 알렉스 할아버지와 결혼 계약서를 썼어요.]
[알았어. 비밀 지킬게.]
누나가 말했다. 자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윤은 그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들이 방금 알게 된 이야기는 당연히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윤도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상원의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매우 놀랐으니까 말이다.
* * *
윤의 누나와 자형을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두 사람은 낡은 캠리에 탔다. 알렉스는 구글 맵으로 피어싱 샵을 검색하고 목적지로 지정하고, 아이폰을 거치대에 놓았다. 윤은 내비게이션 화면에 뜬 주소와 상호를 확인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약속은 약속이야.”
알렉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윤은 웃고 있는 알렉스를 보며, 입 안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으으…….”
“그리고 나는 너에게 결혼 선물을 줬어. 그러니까 너도 나에게 결혼 선물을 줘야지.”
알렉스의 논리는 완벽했고, 윤은 알렉스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피어싱 샵에 도착했다. 윤은 알렉스를 잠시 노려보다가 차에서 내렸다. 알렉스는 윤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피어싱 샵은 생각보다 살벌했다. 온갖 종류의 피어싱이 진열되어 있었고, 시술 예시 사진이 벽에 잔뜩 붙어 있었다.
알렉스는 매니저에게 윤의 왼쪽 젖꼭지를 뚫어달라고 말했다. 알렉스가 매니저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윤이 피어싱을 골랐다. 서지컬 스틸 재질의 바벨이 양쪽에 달린 기본 피어싱이었다. 알렉스가 윤을 등 뒤에서 안고, 반팔 티셔츠 자락을 가슴 위까지 들어 올려 단단하게 잡았다. 윤은 제 가슴팍에 난 잇자국과 입술 자국이 너무 선명해서 부끄러웠지만, 피어싱 샵 매니저는 프로답게 민망한 자국들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매니저는 뚫을 자리를 확인하고, 그곳을 알콜 스왑으로 닦아 소독했고, 통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윤의 젖꼭지를 손톱으로 세게 꼬집었다.
“아!”
윤이 아파서 비명을 지르자, 알렉스가 같이 움찔거렸다. 매니저는 윤에게 무심하게 물었다.
“아파요?”
“네.”
“괜찮아요. 이제 안 아플 거예요.”
매니저가 일회용 바늘을 꺼내는 순간, 윤은 눈을 감았고 알렉스는 얼굴을 돌렸다. 매니저는 일회용 바늘로 윤의 왼쪽 젖꼭지를 뚫고, 그 자리에 연고를 묻힌 피어싱을 끼웠고, 펜치로 바늘을 잘라 티슈에 싸서 알콜 스왑과 함께 버렸다.
시술을 마치고, 피어싱 샵 매니저는 두 사람에게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윤은 일주일 동안 술을 마시면 안 되고, 샤워하고 나서 헤어드라이어의 찬 바람으로 물기를 말리고, 순한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야 하고, 한 달 동안 그곳에 자극을 주면 안 되었다. 주의사항을 차례대로 말하던 매니저는 두 사람의 결혼반지를 발견하고, 알렉스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특히 남편분,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안 돼요. 제가 무슨 말씀 드리는 건지 아시죠?”
“네.”
알렉스는 공손하게 말했다. 윤은 그들의 대화 내용이 너무 노골적이라 민망했다. 그래서 알렉스를 가게에서 먼저 내보내고 제 돈으로 시술비를 계산했다.
두 사람은 피어싱 샵에서 나왔다. 집까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윤은 왼쪽 젖꼭지가 얼얼하고 아파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알렉스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윤은 그게 짜증이 나서 알렉스에게 물었다.
“좋아?”
“응.”
알렉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알렉스의 웃는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치솟았던 짜증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윤은 자신의 감정 변화가 기막혀서 헛웃음을 지었다. 이내 윤은 진심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래, 잘생긴 남편을 얻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내가 잘생겨서 봐줬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 웃고 나서, 윤은 알렉스에게 말했다.
“네가 좋으면 됐어.”
“화났어?”
“아니.”
윤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렉스는 운전하다가 윤을 흘낏 보았다. 윤은 저에게 짜증을 내다가 갑자기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고, 이제는 눈물이 고일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왜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를 웃게 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알렉스는 윤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그를 웃게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이 웃게 해 줘야지, 알렉스는 마음속으로 새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