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에필로그
겨울 방학 Ⅱ
12월 20일, 윤
시그나기 교외의 아담한 단층집. 방 세 개, 욕실 두 개. 차고와 작은 마당이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 거주 지역의 주택. 바로 우리 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알렉스와 함께 앞마당에 내린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차고에서 차를 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눈을 치웠다. 때늦은 신혼여행을 가려면 앞으로 30분 안에 공항으로 도착해야 한다.
나는 군대에서 제설하던 실력을 발휘하여 삽질을 열심히 했다. 알렉스는 나를 보고 따라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알렉스는 내 제설 실력에 놀라면서 나에게 물었다.
“이것도 군대에서 배운 거야?”
“응.”
눈을 치우고 나서,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지은 지 30년 정도 되었지만, 정성 들여 관리되었고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쳐 깨끗한 집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집을 사려면 몇억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혼집의 가격은 13만 달러로 비교적 저렴했다.
신혼집은 알렉스의 할머니가 결혼 선물로 사주셨다. 우리는 집을 받는 대가로 결혼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 조항 때문에, 나와 알렉스는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정계에서 은퇴하실 때까지 우리의 사생활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다. 어차피 사생활에 대해 떠들고 다닐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장갑을 벗고 손을 씻다가 결혼반지를 보았다. 내가 바랐던 대로 아무런 장식 없는 플래티넘 반지였다. 결혼반지를 볼 때마다 결혼식이 떠오른다. 결혼식은 정말 간소했다. 알렉스가 인턴 근무를 마치고, 우리는 시그나기에 돌아왔다. 결혼하기 전에 공식 결혼 허가서를 받아야 하고, 허가서를 받으려면 증인 한 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는 알렉스의 친구인 조슈아를 급하게 불러 결혼 허가서를 받았다.
3일 후. 우리는 시청에서 판사의 주재로 식을 올렸다. 증인으로 수빈과 밍 교수님, 시드니와 조슈아를 불렀다. 내 가족 중에서는 누나―누나는 휴가를 내느라 파트너 변호사와 대판 싸웠다고 했다―와 자형이 왔다. 알렉스의 가족 중에서는 부모님과 할머니, 발렌티나 아줌마가 오셨다.
우리는 결혼서약을 하고, 증인과 하객이 보는 앞에서 키스하고 결혼사진을 찍었다. 결혼식을 주재한 판사가 우리를 대신하여 법원에 서류를 제출했다. 며칠 뒤, 우편으로 혼인 신고서를 받았다.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1주일 뒤, 우리는 결혼 공증 서류를 받았다. 나는 공증 서류를 받고 나서, 학생 비자를 영주권으로 바꾸느라 관공서를 여러 번 방문해야 했다. 영주권을 받는 절차는 정말 귀찮았다. 영주권을 받으려면 아직 여러 절차가 남았는데, 귀찮은 것은 질색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가을 학기 내내 복잡한 절차를 거쳤고, 마침내 겨울 방학을 맞았다. 우리는 이제야 미루었던 신혼여행을 떠난다. 미리 싸두었던 짐을 낡은 도요타 캠리에 싣고 공항으로 달려간다. 목적지는 발리, 열대의 섬이었다.
12월 22일, 알렉스
눈을 뜨니 서까래가 박혀 있는 낯선 목조 천장이 보였다. 우리 집 천장에는 서까래가 없는데. 서까래를 보고, 나는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저녁. 우리는 발리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프라이빗 풀 빌라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저녁을 먹었고 신혼여행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사랑을 몇 번이나 나누다가 지쳐 잠들었다.
나는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윤은 내 왼팔을 베고 알몸으로 자고 있었다. 윤의 몸 위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안 그래도 뽀얀 몸이 햇살에 하얗게 빛났다. 잠든 그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남편. 내 반쪽. 내 파트너. 내 동지. 내 친구. 내 애인. 내 가족. 나와 똑같은 반지를 나누어 낀 사람. 나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 그리고 나와 하나의 묘비 아래 같이 묻힐 사람.
그를 농구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 남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반년 전에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고 지금은 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잠든 윤의 볼에 입 맞추고, 입술에도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윤이 눈을 떴다. 윤은 얼굴을 찡그리며 나에게 물었다.
“몇 시야?”
“일곱 시.”
“더 잘래.”
윤은 눈을 도로 감으며 말했다. 나는 윤이 잠들지 못하게 윤의 왼쪽 젖꼭지를 꼬집었다. 윤이 입안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매트리스 위에 앉았고, 윤의 팔을 잡아당겨 그를 깨우려고 했다.
“아침 먹고 수영하러 가자.”
“이 꼴로 바다에 가자고?”
윤이 제 몸을 가리켰다. 윤의 몸에는 내가 남긴 잇자국과 입술 자국이 가득했다. 나는 윤의 왼쪽 젖꼭지를 또 꼬집었다. 그러자 윤이 손을 들더니 내 등을 가볍게 한 대 때렸다. 오른쪽 젖꼭지에 있던 구멍은 윤이 화재 사고로 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의료진들이 피어스를 빼는 바람에 막혔다. 대신, 이제는 윤의 왼쪽 젖꼭지에 피어싱이 박혀 있었다.
나는 윤에게 결혼 선물로 왼쪽 젖꼭지를 뚫어달라고 부탁했다. 윤은 짜증을 내면서도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윤의 오른쪽 젖꼭지에 피어싱을 뚫어 놨던 그의 전 남친을 변태라고 비웃었던 과거의 나는 반성해야 했다. 나는 젖꼭지 피어싱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꼴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 여기 풀 빌라잖아. 우리끼리 수영하는데 누가 보겠어.”
나는 웃으면서 윤의 허벅지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윤의 흰 허벅지 안쪽에 피멍이 들도록 새로운 잇자국을 내고, 보드라운 안쪽 살을 따라 입 맞추며 내려갔다. 윤이 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근데 자기야, 방금 아침 먹으러 가자고 했잖아.”
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나는 윤의 성기를 손에 쥐었다. 아침이라 반쯤 서 있던 성기가 내 손길이 닿자 완전히 빳빳하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의 귀두를 살짝 혀로 축였다가 놓으며 말했다.
“한 번만 하고 가자.”
“과연 한 번 만에 끝날까?”
윤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대답 대신 윤의 성기를 빨기 시작했다. 그가 내 머리카락을 헤집는 손길이 점점 다급해졌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윤의 낮은 신음이 교성으로 바뀌고, 나는 목구멍 안까지 윤의 성기를 삼키고 빨았다. 입에 담지 못하는 부분은 손으로 쥐고 주물렀다. 윤의 손가락이 내 귓불을 만지고, 나는 윤의 성기를 계속 입으로 애무했다. 이제는 나도 펠라치오를 제법 잘한다. 윤에게 배운 대로 하다 보니 잘하게 되었다.
윤이 내 입에 사정하고, 나는 정액을 삼켰다. 정액이어도 그리 역하지 않았다. 어젯밤에 윤이 하도 많이 싸서 물 같은 것만 나왔기 때문이었다. 약간 비린 맛이 나는 키스를 나누며,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몸을 천천히 포갰다. 나는 윤의 두 다리를 내 팔에 걸고, 어젯밤의 정사로 정액과 젤에 젖어 있는 내벽 안으로 들어갔다.
윤이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부드러운 키스를 오래도록 이어갔고,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며 서로의 몸을 기분 좋게 느꼈다. 윤이 웃음을 터뜨리며 내 귓가에 속닥속닥 말했다.
“아침으로 쌀국수 먹고 싶어.”
“나는 스크램블 에그.”
나는 윤의 말에 대답하며, 윤이 느끼는 곳을 찍어 올렸다. 윤이 웃다 말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바짝 안겨들었다. 그가 내 목을 꽉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좋아. 사고를 겪기 전보다 허스키해진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 좋아, 거기 더, 응, 좋아.”
윤이 킥킥 웃으며 안을 조였다. 윤의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허리를 세게 쳤다. 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 너무 세-”
윤이 짐짓 엄살을 부렸지만, 윤의 말을 무시하고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윤이 앓는 소리를 내다가 내 목을 놓고 축 늘어졌다. 나는 그의 팔을 내 목에 감았고, 속도를 조금 늦추고 윤을 마주 보았다. 윤이 웃으면서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고 나에게 입 맞춰 왔다. 그 순간, 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윤과 입술을 붙인 채, 나는 윤의 몸을 깊이 파고들면서 말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사랑을 말하고, 윤은 웃으면서 나에게 다시 키스했다. 나는 윤의 허리를 두 손으로 안으며 일어나 앉았다. 우리는 몸을 이은 채, 침대 위에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윤이 내 두 손을 제 가슴 위에 끌어다 놓았다. 나는 윤의 판판한 가슴과 젖꼭지를 두 손으로 조물거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그는 내 왼손을 가져다가 결혼반지 위에 입을 맞추고,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내 거야.”
윤이 매트리스에 두 무릎을 살며시 대고 섰다. 그는 내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허리와 골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윤의 허리를 안고 윤에게 맞추어 내 성기를 같이 쳐올렸다. 나에게 쏟아져 내리는 열대의 아침 햇살과 윤의 젖은 신음과 체온,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 내벽의 열기를 느끼며, 끝없는 충만함을 느꼈다.
완전히 다른 대륙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가 어느 소도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하나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우리의 만남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하느님이 우리의 여정을 인도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랑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니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이 순간만을 영원히 살아도 좋겠다. 나는 가슴이 벅차서 윤의 붉게 물든 눈가, 눈물로 젖은 뺨과 입술에 차례대로 입 맞추고 그를 소중하게 꽉 끌어안았다.
* * *
조식은 못 먹었다. 우리는 조식을 거르고, 점심까지 섹스하고 낮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늦은 오후가 되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나와 저녁을 사 먹었다. 저녁 식사 메뉴는 바비굴링이라는 이름의 발리 전통 돼지 요리였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손을 잡고 해변을 걸으며 야자수 잎을 흔드는 바닷바람을 느꼈다. 해가 지면서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이내 하늘과 바다가 어두워졌다. 검푸른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기분 좋게 살랑거렸다. 사람들은 해변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끝없는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윤의 어머니가 우리를 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어서도 아들이 걱정되어 눈을 감지 못해, 윤의 아버지가 눈을 감겨주었다던 윤의 어머니. 나는 그녀에게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이제 윤의 곁에는 내가 있고, 우리는 평생을 약속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나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윤은 팔로 내 허리를 안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팔을 두르고 하얀 모래 위를 걸었다. 한참 걷다가, 윤은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나중에 결혼 10주년이 되면 여기에 다시 오자.”
“좋아.”
내 대답을 듣고, 윤은 나에게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정말 나와 10년이나 같이 살 거야?”
“10년이 뭐야, 100년은 같이 살아야지.”
“나중에 무르기 없기야?”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웃다가 가볍게 입을 맞추고 코끝을 비비며 또 웃었다. 코끝을 비비다가 다시 깊고 진한 키스를 나누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서로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사랑에 들뜬 심장은 서로를 향해 쉴 새 없이 쿵쿵 뛰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마 윤의 생각도 내 생각과 같을 것이다. 윤의 심장 소리를 듣다가, 나는 그를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허리를 안고 끝없이 펼쳐진 아름답고 흰 모래밭을 걸어갔다.
# 주석
1) 화씨 20도: 섭씨 영하 6도 정도
2) 안드라스 쉬프: 헝가리 출신의 영국 국적 피아니스트. 바흐 작품의 해석과 연주의 대가이다
3) 프로시딩: 발표 목적으로 만든 학술 연구 논문의 모음집
4) 패트리어츠: 동부 보스턴 근교 폭스보로 연고 팀
5) 패커스: 위스콘신주 그린베이 연고 팀
6) 판다 익스프레스: 미국식 중국 요리 체인점
7) 칙필레: 미국 남부에서 유명한 치킨 패스트푸드 체인
8) 여기가 오대호 연안은 아니니까: 오대호 연안은 폭설이 자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9) 주니어: 여기서는 아들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할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알렉스의 아버지는 아들이다
10) 왓어버거: 미국 텍사스주를 본거지로 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전문점
11) 델 새턴 병원: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 캠퍼스 부속 대학병원의 별명
12) 롱혼스 출신이면 매튜 매커니히를 만난 적이 있겠네요?: 헐리우드 배우 매튜 매커니히는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졸업생이며, 엄청난 롱혼스 팬으로 유명하다
13) 하부브: 사막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먼지 모래 폭풍. 주로 봄철에 발생한다
14) 알링턴: 텍사스 주 포트워스와 댈러스 사이에 있는 대도시
12월 18일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