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겨울 방학 Ⅰ
12월 19일, 알렉스
윤은 내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오스틴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아빠는 괜찮은데 엄마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내가 덧붙이자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이었다. 윤이 나에게 말했다.
“나도 한국에 안 가.”
“왜?”
“연말이라 비행기 표는 비싼데, 방학은 한 달밖에 안 되잖아. 비효율적이야.”
나는 윤의 합리적인 설명을 듣고 바로 납득했다.
* * *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내가 제안한 여행지는 콜로라도주였다. 내가 콜로라도주에서 가 본 곳은 아스펜뿐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겨울이면 아스펜으로 스키 여행을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스펜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콜로라도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덴버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이야기했다. 콜로라도주가 어떤 곳인지 설명하자, 윤은 좋다고 했다.
이곳에서 콜로라도의 주도인 덴버까지는 차로 열세 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당연히 자동차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윤이 나를 말렸다.
“너 혼자 열세 시간 운전을 하려고?”
당연히 아니었다. 윤과 번갈아 가며 운전할 생각으로 자동차 여행을 이야기한 것인데, 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윤, 국제 운전면허도 없어?”
“안타깝게도 나는 한국 면허만 있어.”
“아…….”
“너 혼자 운전하면 너무 힘드니까 비행기 타고 가자.”
윤이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연말이라 비행기 예약이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특가 항공권을 구했다. 그다음은 호텔이었다. 우리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덴버 1박 호텔을 알아보다가 포시즌스 호텔 특가 프로모션을 발견했다. 프로모션을 해도 특급 호텔이라 숙박비가 비싸서 망설이고 있는데, 윤이 환에게 용돈을 받았다며 화끈하게 결제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는 적당한 호텔을 찾아 예약했다. 덴버 공항에서 픽업해서 3박 4일 동안 타고 다닐 렌터카로는 평소에 타보고 싶었던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골랐다.
크리스마스 이브, 윤
사실, 내 연애사는 정말 빈약했다. 스무 살에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는 공대 캠퍼스 커플이었다. 형은 네 살 연상이었고, 키가 나보다 10cm 정도 크고, 모난 데 없이 잘생긴 사람이었다. 우리는 학교 성 소수자 동아리에서 만났고, 불같은 연애를 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형은 나를 기다렸다. 형은 주말마다 강원도 인제까지 면회를 왔고, 나는 외박과 휴가를 전부 형과 보냈다. 내가 제대하고 나서도 우리는 2년 반을 더 사귀었다.
형은 어려운 집안에서 자랐다. 형은 어릴 때부터 큰 기대를 받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에 들어왔는데, 찌질하고 궁색 맞은 구석이 있었다. 과외를 하고 집에서 용돈도 받는 내가 데이트에 돈을 많이 내면, 형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성질을 부렸다. 그래서 형과는 거의 자취방 데이트만 했다. 대학생 커플이 자취방에서 할 일이 섹스 외에 뭐가 있나? 덕분에 우리는 섹스에 매우 익숙해졌지만, 그것도 맨날 하면 지겨웠다. 게다가 형은 가끔 콘돔 사는 돈도 아까워해서, 나는 사귀는 동안 굉장히 서러웠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형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신수가 훤해졌다. 형은 차를 샀고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렸고 가끔 나에게 명품도 사 줬다. 형은 나와 외국에 가서 결혼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고, 나는 형을 믿었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가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형은 여자를 소개받아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했고, 나는 호구처럼 형의 양다리를 묵인했다. 나는 형이 나에게 결혼을 말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를 택할 줄 알았다.
내 예상은 틀렸다. 형은 소개받은 그 여자와 애가 생겨 결혼했다. 그는 나에게 청첩장을 건네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처참하게 차이는 것은 나인데, 왜 형이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형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았다. 결혼식까지 갔으면 진짜 등신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형이 첫사랑이라는 사실에 미련이 남아서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나는 빌어먹을 첫사랑 때문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입고 한동안 사람을 피했다. 석사 과정에 입학하고, 혹시 몰라 여자 친구를 사귀어 봤지만 헛수고였다. 미국에 가면 바쁘고 적응이 힘들어 연애를 못 할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첫 학기부터 썸을 타고 연애하고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은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 * *
우리는 22인치 슈트 케이스 두 개에 단출하게 짐을 싸고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국내선이라 탑승 수속을 금방 했고, 덴버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떠난 지 네 시간도 되지 않아 덴버 땅을 밟게 되었다.
예약했던 렌터카를 찾고, 트렁크에 슈트 케이스를 실었다. 나는 조수석에 타고 알렉스가 운전석에 탔다. 내가 자리에 앉자, 롱패딩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알렉스는 그 소리를 듣고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롱패딩은 한국에서 자주 입고 다니던 것이었고, 누나가 가져온 짐 속에 들어 있었다. 내가 롱패딩을 입을 때마다 알렉스는 나를 빤히 보곤 했는데, 오늘은 기어코 한마디를 했다.
“그 침낭 같은 것은 왜 입는 거야?”
“너는 텍사스 사람이라 추위를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이게 없으면 겨울을 날 수 없어.”
“그래, 우리는 텍사스에 살고 있어. 추워 봐야 화씨 20도1)라고. 그런 건 에베레스트에 갈 때나 입는 거 아냐?”
“어쨌든, 겨울이잖아.”
“추우면 히터 세게 틀 테니까 춥다고 말해.”
“근데 너 몇 살이야?”
나는 말대답을 일삼는 알렉스가 괘씸해서 나이를 물었다. 알렉스가 나보다 어린 것은 확실했다. 나는 군대에 다녀왔고 석사학위가 있지만, 알렉스는 학부만 졸업했고 군대에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알렉스의 정확한 나이를 알고 싶었다.
알렉스는 제가 태어난 연도와 나이를 말했다. 알렉스는 만 스물네 살이었고, 나보다 네 살이나 어렸다.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내가 우리의 나이 차이를 재미있어하고 있는데, 알렉스가 운전하다 말고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윤은 몇 년 생이야?”
나는 내가 태어난 연도를 말했다. 알렉스는 예상했던 대로 별 반응이 없었다. 미국에는 형, 동생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알렉스가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네 생일은 언제야?”
“4월 3일. 너는?”
“7월 30일.”
나는 아이폰을 꺼내 알렉스의 생일을 저장했다. 알렉스의 생일을 저장하고,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12월 18일도 기념일로 저장하려고 했다. 이제 보니, 12월 18일은 세계 이민자의 날이었다. 12월 18일은 평일인 줄 알았는데 기념일이 있기는 하네. 나는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과 알렉스의 생일을 저장하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 * *
체크인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포시즌스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특가에 예약한 방인데도 전망이 좋아서 대니얼스 앤 피셔 타워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킹사이즈 침대가 있고, 짙은 베이지색 인테리어로 마감한 방이 따뜻하고 아늑해 보였다. 창가에는 일인용 소파 두 개와 테이블이 있었다. 자기 전에 여기에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면 좋을 것 같았다.
샤워 부스와 욕조가 따로 있는 욕실도 크고 아늑해 보였다. 욕조가 아주 커서 두 사람이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알렉스는 욕조를 보고 있는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는 커다란 두 손을 내 티셔츠 밑에 넣고, 내 배를 문지르면서 물었다.
“이따 둘이 거품 목욕 할까?”
“그럴까?”
우리는 킥킥 웃으며 가볍게 키스하고 방을 나섰다. 우리는 라리머 스퀘어에 나가서 늦은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유명한 여성 셰프 듀오가 운영하는 지중해 스타일 레스토랑에 갔다.
나는 조개 탈리아텔레 파스타를 시켰고, 알렉스는 양고기 버거와 피크닉 샐러드를 식사로 시켰다. 샐러드와 파스타가 먼저 나왔다. 파스타는 오일 베이스라 담백하고 맛있었다. 파스타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알렉스가 시킨 양고기 버거가 나왔다. 서버가 거대한 수제 버거와 감자튀김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을 테이블에 놓았다. 알렉스는 물티슈로 손을 닦고, 버거를 손에 들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양고기 버거를 보면서 말했다.
“나도 한 입 줘.”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는 왜 매번 음식을 한 입만 달라고 해?”
“어?”
“버거 먹고 싶어? 하나 더 시킬까?”
“아니, 그게 아니고…….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시키면 한 입씩 바꿔 먹어 보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진짜?”
“응.”
“……혹시 친구나 직장 동료끼리도 음식을 바꿔 먹어?”
“응.”
“그렇단 말이지.”
알렉스는 잠깐 망설이다가 나에게 버거를 먹어 보라고 내밀었다. 나는 버거를 한 입 깨물어 먹었다. 패티가 겉만 구워져 있어 안은 온통 새빨갰지만 맛있었다. 알렉스가 나에게 물었다.
“맛있어?”
“응.”
“솔직히 다른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면 더러워서 싫은데, 너는 괜찮아.”
“왜?”
“나는 너와 키스하는 게 좋으니까.”
알렉스는 태연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갑자기 사랑 고백을 들으니 부끄러워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렉스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파스타 한 입 줘.”
나는 포크에 파스타를 돌돌 말고 조갯살을 하나 찍어 알렉스의 입가에 가져갔다. 알렉스가 나를 보며 씩 웃었고, 입을 와앙 벌려 파스타를 먹었다. 알렉스가 입안에 든 것을 씹어 삼키고 나서 말했다.
“맛있네.”
“그러면 진짜로 키스할까?”
내 질문을 듣고, 알렉스는 웃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손등으로 입을 막고 웃다가 주변을 쓱 훑어보면서 말했다.
“여기 공공장소인데.”
“싫어?”
“아니.”
알렉스의 손에 기름기가 많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알렉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내 얼굴을 비스듬히 틀어 키스했다. 나는 그와 입술이 닿는 순간 눈을 감았다. 알렉스가 말한 대로 여기는 공공장소라서 입술과 혀끝만 가볍게 얽는 입맞춤을 했다. 알렉스에게서는 방금 먹었던 버거의 치즈 맛이 진하게 나고, 파스타 맛도 조금 났다.
나는 키스를 마치고 눈을 떴다. 실눈을 뜨고 가까이서 본 알렉스의 얼굴이 새빨갰다. 알렉스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와…….”
알렉스가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게 웃었다. 나는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었다. 알렉스를 만나고, 그가 처음으로 나보다 어린 티를 내서 재미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알렉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다니엘스 앤 피셔 타워까지 걸어갔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레스토랑과 타워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5분 정도 걸으니 타워에 도착했다. 우리는 방문객이라 다니엘스 앤 피셔 타워의 1층 로비만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회색과 흰색이 섞인 대리석으로 마감한 바닥과 벽, 하늘색으로 포인트를 준 천장이 예뻤다.
우리는 타워에서 나와 16번가 쇼핑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걸어 다닐 만했다. 우리는 걸으면서 거리를 둘러보았다. 크리스마스라 일루미네이션 장식이 화려했고, 16번가를 가로지르는 스타우트 스트리트를 따라 운행하는 전차도 볼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는 여행을 급하게 계획했기 때문에 일정을 상세하게 짜지 못했다. 나는 아이폰을 꺼내 사파리 창을 켜고 구글에서 덴버의 관광 명소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클리포트 스틸 미술관이 저녁 여덟 시까지 열려 있었다. 그곳은 유명한 현대 추상 화가의 작품을 전문으로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었다. 평을 보니 괜찮은 곳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가자고 말했고, 윤은 좋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호텔에 들러 렌터카를 가지고 미술관까지 갔다. 미술관까지 가는 동안, 나는 윤에게 미술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윤은 미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 윤의 대답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미술에 관심이 없고, 윤도 미술을 모른다. 게다가 현대 미술은 어렵다. 아무래도 일정을 잘못 정한 것 같았다.
다행히 나의 걱정은 쓸데없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림을 열심히 보게 되었다. 추상화이지만 색채나 형태가 간결한 편이라 그림의 주제를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40년 동안의 작품은 모두 일관성 있는 스타일과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캔버스에 물감이 얇게 발려 천의 질감이 드러나 보이는 곳도 있었고, 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지나간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다.
* * *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뮤지엄 샵에서 도록을 사서 나올 때,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여섯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작품이 생각보다 우리의 취향에 잘 맞았고, 그림을 유심히 보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예약한 레스토랑에 갔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이고,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유명한 곳이었다. 급하게 예약하다 보니 좋은 자리를 받지는 못했다. 가장 구석에 있는 2인용 테이블이었고, 화장실 근처 자리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우리는 스테이크를 하나씩 시켰고, 고기에 어울리는 와인을 한 병 추천받아 주문했다. 와인을 마시며 전채 요리를 먹는 동안, 길고 두툼한 소 갈비뼈가 붙은 스테이크 두 접시가 나왔다. 스테이크는 아주 훌륭했고, 와인은 소고기와 잘 어울렸다. 우리는 식사하는 내내 매우 즐거웠다. 서로의 얼굴만 보아도 웃음이 나왔다.
식사는 내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윤이 식사에 팁까지 계산했다. 그래서 나는 객실에 가져가서 마실 샴페인 한 병을 샀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객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에게 바싹 안겨 왔다. 나는 윤의 허리를 안고, 그의 이마에 늘어진 앞머리를 걷고 이마와 입술에 키스했다. 중간에 다른 투숙객이 엘리베이터에 탔으면 민망했을 텐데, 다행히 아무도 타지 않았다.
마침내 객실에 들어왔다. 윤은 롱패딩을 입은 채, 내 목을 끌어안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나와 윤은 침대에 옆으로 누워 서로를 마주 보았다. 윤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고 웃었고, 나도 윤을 향해 웃었다. 윤이 중얼거렸다.
“나 피곤해. 졸려.”
“안 돼.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
나는 침대에서 먼저 일어났고, 윤의 두 손을 잡고 그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윤은 나에게 잠투정을 부렸고, 나는 그를 한참 달랬다. 그리고 윤의 침낭 같은 검은색 롱패딩을 벗겨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같이 거품 목욕하기로 한 거 잊었어?”
“아니.”
윤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윤
콜로라도 여행을 확정 짓고, 집 근처 드러그 스토어에서 예쁜 배스 밤 다섯 개 세트를 샀다. 나는 목욕과 온천을 좋아해서,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배스 밤이나 입욕제를 챙겼다.
욕실 어메니티를 뜯고, 일회용 스펀지로 욕조를 닦았다. 욕조를 닦고 나서 욕조 마개로 배수구를 막고 뜨거운 물을 틀고 핑크색 배스 밤을 욕조에 던져 넣었다. 욕조에 물이 차오르며 연분홍색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내가 욕조를 뿌듯한 눈길로 보고 있는데, 알렉스가 맨투맨 티셔츠를 머리 위로 벗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물 받는 동안 같이 샤워하자.”
우리는 옷을 벗어 욕실 옷걸이에 걸고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머리 위의 해바라기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샤워 부스 안에 희뿌옇게 김이 서렸다. 알렉스는 나와 당장 섹스하고 싶은 티를 냈지만, 나는 목욕을 즐기고 싶어서 알렉스의 손길과 한숨을 외면했다. 내가 샤워를 마치고, 샤워 부스에서 나가서 욕조 수전 밸브를 잠그는데 알렉스의 웃음소리가 따라왔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알렉스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알렉스와 손끝만 스쳐도 서는데. 알렉스가 나에게 정욕을 느껴서 기쁘고, 그와의 섹스가 기대되고, 그가 밋밋하게 생긴 나를 이토록 좋아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목욕을 꼭 하고 싶었다.
내가 먼저 욕조에 들어가서 몸을 담갔고, 알렉스는 욕실을 나갔다. 잠시 후, 알렉스는 샴페인 병과 객실에 비치되어 있던 와인 글래스 두 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알렉스는 욕조 가장자리에 와인 글래스와 샴페인 병을 내려놓고 욕조에 들어왔다. 알렉스가 앉자마자 욕조 수위가 불쑥 올라와서 물이 넘칠락 말락 했다. 알렉스가 글래스를 집어 샴페인을 따라 나에게 먼저 건넸고, 다음 잔에 샴페인을 따라 제 손에 들었다. 우리는 가볍게 건배하고 욕조에 마주 보고 앉아 샴페인을 마셨다.
“맛있다.”
“가격 대비 정말 괜찮은 스파클링 와인이거든.”
“와인을 좋아해?”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알아.”
알렉스는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알렉스는 부모님이 상황을 받아들이실 때까지 두 분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부모님과 거리는 두지만, 얘는 여전히 두 분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나는 알렉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었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뭐가?”
“부모님.”
내 말을 듣고, 알렉스는 픽 웃기만 했다. 그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내가 그 난리를 쳤는데도 생활비는 잊지 않고 보내 주시던데?”
“…….”
“방금 그 말은 농담이고……. 두 분은…… 아주 많이 슬퍼하고 계실 거야.”
“…….”
“나도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슬퍼. 하지만 부모님 때문에 나를 바꿀 수는 없잖아.”
“쿨하네. 나는 누나한테 혼나고 나서 나를 바꾸려고 노력했었는데. 물론 그게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에게 왜 혼났어?”
“내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맨날 울었거든. 그랬더니 누나가 사내새끼들끼리 사귀는 게 말이 되냐고, 이참에 성향을 바꾸라고 호되게 혼냈어.”
“환은 네 첫사랑이 남자인 것을 알고 있었어?”
“응.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가족에게 커밍아웃했어. 그 새끼가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나를 책임질 테니까 가족에게 말하라고 꼬셔서 한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어.”
“……그 남자와는 어쩌다 헤어졌는데?”
“그 새끼가 여자와 바람피우다가 애가 생겨 결혼했어.”
“충격받을 만하네.”
“그래서 나도 홧김에 여자 친구를 사귀려고 해 봤어.”
“결국 안 됐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는 샴페인을 모두 마시고, 병을 들어 빈 잔을 스스로 채웠다. 내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는데, 알렉스가 나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는 어떤 사람이었어?”
“……너, 별걸 다 물어본다?”
“궁금하잖아.”
“……같은 학교 석사 과정이고 동갑이었는데 정말 착한 애였어. 내가 이성애자였다면 그 애에게 결혼하자고 했을 거야.”
나는 진심이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별짓을 다 해 봤다. 앱으로 남자를 만나 시시덕거리다가 원나잇을 했고, 게이 정모에도 나가 봤다. 하지만 어느 것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자포자기로 혜민과 사귀었지만, 우리는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성적 지향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한국을 벗어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더는 나를 속이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알렉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좋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여자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나 봐.”
“그러면 뭐 해, 헤어졌는데.”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알렉스는 짓궂게 물었다.
“그 사람과 잤어?”
“……근데 우리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이제 다른 이야기 하자.”
나는 애써 말을 돌리려고 했다. 내일 일정을 이야기하며 화제를 돌리면 무난할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했다.
“우리 내일 올림픽 센터와 파이크스 피크에 갈 거지?”
“시간 되면 공군사관학교까지. 그래서 그녀와 잤어?”
“안 잤어. 정확히는 안 된 거지만, 됐어?”
나는 짜증을 내면서 남은 샴페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손을 뻗어 샴페인 병을 집으려고 하는데, 알렉스가 대신 병을 집어 나에게 샴페인을 따라 주었다. 알렉스는 샴페인 병을 욕조 가장자리에 내려놓고, 물 안에서 팔을 뻗어 내 허리를 안았다.
“이리 와.”
알렉스가 나를 안자마자 짜증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좋지. 내가 얘를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다. 나는 알렉스의 몸에 등을 기대고 물속에 잠겼다. 뒤에서 느껴지는 알렉스의 성기가 생각보다 잠잠해서 놀랐다. 알렉스가 한쪽 팔로 내 허리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샴페인 잔을 들었고, 나는 알렉스의 어깨에 뒷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애인과 함께 따뜻한 물과 거품에 잠긴 채 맛있는 샴페인을 마시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래서 자꾸 졸렸다. 알렉스가 등 뒤에서 물었다.
“자?”
“아니. 근데 졸려.”
“자면 곤란해.”
알렉스가 등 뒤에서 웃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웃는 바람에 그의 몸이 울리고, 나에게도 진동이 전해졌다. 나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알렉스의 목덜미에 입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샴페인을 모두 마셨을 즈음, 욕조의 거품이 사라지고 물이 식었다. 알렉스는 제 잔을 욕조 가장자리에 내려놓았고, 내 잔도 가져가 욕조 가장자리에 내려놓았다. 알렉스가 내 몸을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나는 욕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알렉스와 키스했다. 알렉스는 내 입술을 부드럽게 열고 들어왔지만,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난폭해졌다. 그래서 나는 알렉스가 많이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렉스는 한참 키스하다가 나를 번쩍 안아 들고 욕조에서 일어섰다. 나는 깜짝 놀라서 몸을 버둥거리다가 팔다리로 알렉스의 목과 허리를 끌어안았다. 내가 코알라 새끼처럼 알렉스에게 매달리자 알렉스가 웃었다. 알렉스는 그대로 침대까지 걸어가 나를 안은 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우리는 몸이 젖은 채로 침대를 가로질러 눕게 되었다.
알렉스는 나에게 다시 키스해 왔다. 나는 정신없이 알렉스의 혀를 빨았다. 알렉스의 커다란 손이 내 얼굴과 목, 어깨를 지났고 가슴팍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는 두 손으로 내 유두를 쥐고 굴리다가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알렉스가 키스하면서 젖꼭지를 만질 때마다 몸이 비틀리고 튀어 올랐다. 그런데도 알렉스는 집요하게 내 젖꼭지를 지분댔다. 나는 좋으면서도 괴로웠고, 얼굴을 돌리고 매트리스에 발뒤꿈치를 긁어댔다.
“그, 그만, 아파-”
알렉스는 내 아랫입술 아래 오목한 곳에 키스하다가 입술을 점점 턱에서 목덜미로 옮겨갔다. 기다란 손이 내 몸을 쓸어내렸다. 알렉스의 두 손이 허리를 쥐었고, 그의 입술은 가슴팍을 더듬었다. 알렉스가 피어싱이 박혀 있는 내 오른쪽 젖꼭지를 앞니로 크게 물었다.
“아, 흐응!”
내 목에서 물기 어린 소리가 나는데도 알렉스는 멈추지 않았다. 알렉스는 일부러 질척한 소리를 내면서 젖꼭지와 피어싱을 빨고 핥았다. 그가 내 젖꼭지를 혀로 길게 핥아 올리면서 질문했다.
“이건 왜 한 거야?”
“으응- 하지 마아-”
“대답.”
“처, 첫사랑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알렉스가 키스로 내 입을 막았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알렉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섹시해서 좋기는 한데.”
“아, 하아, 아.”
“그 새끼 취향, 존나 쓰레기야.”
알렉스가 그를 한껏 비웃으며, 예고도 없이 내 몸을 뒤집었다. 시야가 뒤집혔고 활짝 열린 커튼 사이로 유리창 밖의 야경이 보였다. 문득 우리가 붙어먹는 모습이 밖에서 보일까 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내 목덜미에 키스하며 엉덩이를 손으로 주무르는 알렉스에게 부탁했다.
“커튼 닫자.”
“나는 좋은데.”
알렉스가 내 귀 뒤에 키스하며 말했다. 알렉스는 귀 뒤와 목덜미를 지나 척추를 따라 입 맞추었다. 등허리를 지나 엉치뼈 위에 빠짐없이 키스한 알렉스는 혀를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나는 혀가 입구에 닿고 안을 파고드는 생경한 느낌에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다. 리밍을 받는 것이 난생처음이라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알렉스에게 두 손으로 허리를 잡혀 끌려갔다. 입구에 축축한 살덩이가 닿고 원을 그리며 안을 적시는 기분이 이상했다. 다시 앞으로 기어가 도망가려고 했지만, 알렉스에게 오른쪽 엉덩이를 가볍게 맞았다. 몸이 예상하지 못했던 아픔에 펄쩍 튀어 올랐다.
“아파!”
“가만히 있어.”
알렉스가 안에서 꿀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구멍을 핥고 쪽쪽 빨았다. 두껍고 긴 혀가 회음부를 길게 핥아 내렸다. 나는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처럼 엉덩이를 쳐든 채 시트를 움켜잡고 끙끙 앓았다. 수치스러워서 눈물이 나는데도 알렉스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고, 알렉스에게 울면서 애원했다.
“그거 싫어…….”
알렉스가 나를 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펼쳐 놓은 슈트 케이스를 향해 걸어갔다. 알렉스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가 그의 배를 툭툭 쳤다. 몸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알렉스는 내가 미처 몸을 뒤집기도 전에 침대로 다시 올라왔다.
알렉스가 매트리스 위에 젤과 콘돔 한 줌을 던지고, 베개를 집어 나에게 쥐여 주었다. 등 뒤에서 콘돔 껍질 까는 소리, 콘돔 끼는 소리, 젤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갑고 질척한 액체가 엉덩이골을 타고 흘러내리고, 손톱을 짧게 깎은 손가락이 입구에 닿았다. 입구를 간지럽히고 만지던 젖은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손가락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뒤에 힘을 풀었다. 손가락이 들어오며 느끼는 곳을 누르자,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으…… 흐응…… 흐으….”
길고 마디진 손가락이 안을 문질렀다. 손가락 하나가 추가로 들어오며 내벽을 넓혔고, 내 성기가 질질 쿠퍼액을 흘렸다. 나는 베개를 안고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두 개가 노골적으로 한 곳만을 문지르고 눌렀다. 나도 모르게 힘을 주어 내벽을 좁혔고, 내 신음은 베개에 묻혔다. 알렉스의 몸이 내 등에 닿고, 그의 입술이 목덜미와 귀 뒤에 차례대로 닿았다. 긴장을 풀어 주려는 키스에 몸이 완전히 흐물흐물해졌다.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왔다. 알렉스의 손가락이 힘있게 가위질하며 안을 넓히고 안쪽 깊은 곳을 눌렀다. 나는 내 몸이 열리는 감각이 좋아서 몸을 떨었다. 이제 알렉스는 나와의 섹스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입구를 금방 풀 수 있게 되었다. 알렉스가 손을 돌리며 내벽에 길을 내다가 손가락을 단숨에 뽑았다. 부드럽게 열린 구멍이 벌름거리는 것을 느껴졌다. 이제 알렉스가 들어올 것이다. 나는 베개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숨을 고르려고 했지만, 알렉스가 더 빨랐다.
“아, 아, 하아, 아…!”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알렉스가 엇박으로 들어오면서 나를 단숨에 끝까지 꿰뚫었다. 내 입구에 알렉스의 음모와 고환이 느껴졌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너무 아픈데, 짜릿하기도 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알렉스가 내 허벅지를 양손으로 쥐고 몸을 숙여 내 등에 기댔다. 알렉스의 체온과 무게가 등으로 느껴졌다. 알렉스가 크고 두꺼운 몸으로 나를 짓누르니 무섭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목을 긁으며 숨을 몰아쉬는 알렉스의 신음이 귓가에서 들렸다. 맹수 같은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을 가늘게 떨면서 울었다.
“너무 좋아.”
“아, 천천히- 아파-”
“후우, 안이 나를 물어뜯어.”
알렉스가 내 귓불을 베어 물면서 속삭였다. 알렉스가 내 등에 몸을 기댄 채, 허리만 조금 움직여 귀두로 내벽 가장 깊은 곳을 후볐다. 나는 뒤로 잘 느끼는 편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예민했다. 나는 배 속을 꽉 채운 쾌감에 정신없이 흐느꼈다.
알렉스가 한 손으로 내 턱을 쥐어 저를 보게 했다.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얼굴이 쉽게 돌아갔다. 알렉스는 내 메마른 입술과 혀를 빨면서 입안을 계속 휘저었다. 알렉스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내 몸은 침대 위에 힘없이 납작하게 처박혔다. 그러자 알렉스가 내 손목을 등 뒤로 당겨 잡고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하아, 아, 아파!”
알렉스에게 잡힌 두 손목이 아팠다. 손목이 아픈데도, 달아오른 내벽이 알렉스의 성기에 한껏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알렉스가 들어와 스팟을 찍으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풀렸다. 나는 알렉스가 나가는 것이 아쉬워 허리를 흔들고 힘을 주어 그를 붙잡았다. 내벽으로 알렉스를 붙잡으면, 그는 목 안에서 숨을 그르렁거렸다.
어느 순간, 내벽이 내 통제를 벗어나 경련하기 시작했다. 내 구멍은 알렉스를 열렬하게 반기며 빠끔거렸다. 알렉스가 내 손목을 놓고, 내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아 엉덩이만 쳐들게 했다. 나는 베개를 부여잡고 알렉스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흔들었다.
“하아, 하. 하아.”
등 뒤에서 들리는 알렉스의 숨소리가 야했다. 우리의 엉덩이와 허벅지가 부딪힐 때마다 나는 질퍽한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알렉스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고 펑펑 울었다. 그러다가 온몸에 통제할 수 없는 쾌감이 내달리는 것을 느끼며 사정했다.
“아!”
기분이 너무 좋은데, 몸은 너무 힘들었다. 침대 시트 위로 내 정액이 길게 흩뿌려졌다. 나는 헐떡이면서 방금 적신 시트 위로 몸을 늘어뜨렸다. 숨을 쉬고 싶어서 베개에 묻었던 얼굴을 옆으로 돌렸지만,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자꾸만 호흡이 달려 캑캑거렸다. 내가 숨이 모자라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알렉스는 몸을 바들바들 떠는 나를 안고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나는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알렉스가 계속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숨을 조금 고르고 나서 얼굴을 돌려 알렉스의 입술에 키스했다. 알렉스와 내 입술이 음란한 소리를 내며 맞붙고 혀가 얽혔다. 우리가 키스를 나누는 동안에도, 알렉스의 성기는 쉴 새 없이 구멍을 느릿하게 파고들고 물러났다.
알렉스가 나에게 키스하면서 내 등을 짓누르고 올라타려고 했다. 나는 후배위가 너무 힘들어서 키스하던 입술을 떼고 한쪽 다리를 들면서 몸을 뒤집었다. 내가 몸을 움직이면서 구멍 안에서 미끄러진 알렉스의 귀두가 입구까지 밀려났다. 그래도 알렉스의 성기를 몸에 담고 자세를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
“유연한데?”
알렉스가 웃으면서 내 입술에 키스했다. 나는 알렉스가 내 다리를 벌리고 무릎 뒤를 잡아 허리를 들어 올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알렉스는 제 양쪽 어깨 위에 내 두 다리를 올리고 깊숙이 들어왔다. 체위를 바꾸면 나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성감이 한껏 오른 내벽은 알렉스의 성기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모양과 형태를 낱낱이 느껴댔다.
“이거, 흑, 싫어, 으흑, 흑…….”
“거짓말.”
알렉스는 내 양쪽 어깨를 누르며 발정 난 개처럼 흘레붙었다. 나는 알렉스의 육중한 몸에 짓눌린 채,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죽을 것 같은 쾌감을 견뎌야 했다. 눈앞이 온통 하얗고 빨갛고 까맣고 난리였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자꾸만 오그라들었고,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팠다. 알렉스가 시트를 꽉 움켜쥔 내 두 손을 펼쳐 제 두 손과 깍지를 꼈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불길이 타오르는 지옥으로 온몸이 곤두박질치는 감각을 느끼며 다시 한번 사정했다.
내가 사정하는 순간, 알렉스의 신음이 내 귓가에서 터져 나왔다. 그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내벽 안에서 알렉스의 성기가 꿈틀거리고, 그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알렉스도 사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알렉스는 어깨와 등을 들썩거리며 만족스럽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 역시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알렉스가 나보다 먼저 숨을 고르더니 몸을 일으키고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너무 많이 울었네.”
“너, 나한테 왜 그래?”
“너무 좋아서 자제가 안 됐어.”
알렉스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따라 알렉스가 유난히 사납게 굴었고,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힘겨웠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몰아붙인 알렉스가 너무 미웠다. 나는 코를 훌쩍거리며 알렉스를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온몸을 밀착한 채,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알렉스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양쪽 엄지로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알렉스의 작은 쓰다듬질에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내 입술에 연신 입을 맞추면서 속삭였다.
“사랑해.”
알렉스가 깍지 손을 풀고, 내 몸을 덮쳐 누르듯 안았다. 그의 두 팔이 내 몸을 끌어안았다. 알렉스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거렸다. 알렉스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다정하게 안아주자, 서러웠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나는 울다가 웃으며 알렉스의 목과 어깨를 마주 안고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크리스마스, 알렉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시작한 첫 번째 섹스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거칠었다. 윤과 잠자리를 갖기 시작한 이래, 윤을 내키는 대로 혹독하게 다룬 것은 처음이라 미안했다. 그래서 두 번째 섹스는 부드럽게 했다. 내가 침대 헤드에 기대앉고, 윤이 내 허벅지 위에 마주 앉은 체위로 관계를 가졌다.
나는 윤의 몸을 꽉 끌어안고 아래를 느리게 쳐올렸고, 윤은 내 목을 끌어안고 허리와 골반을 천천히 흔들었다. 온몸이 빈틈없이 맞닿은 채, 윤의 내벽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느끼는 일체감이 좋았다. 하지만 그 체위는 얼마 가지 못했다. 윤은 제가 위로 올라가는 자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내 목을 안고, 매트리스 위에 등을 대고 누우면서 정상위로 자세를 바꾸었다.
나와 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키스하고, 숨결을 나누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뜨겁고 농밀한 감각이 한없이 달콤했다. 우리는 아주 서서히 절정으로 올라갔고 서로의 몸이 주는 쾌락을 오래도록 느꼈다. 나는 윤이 한껏 느끼며 우는 얼굴을 보면서, 내가 그에게 열락을 선사할 수 있어 기뻤다.
* * *
암막 커튼을 열고 잤더니, 해가 뜨자마자 눈이 저절로 뜨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암막 커튼을 닫고, 도로 윤의 곁에 누웠다. 윤은 계속 잠들어 있었다. 잠든 그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그가 30분 정도 더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깨웠다. 우리는 얼른 씻고 조식을 먹고 출발해야 하니까. 오늘의 일정은 어제보다 빡빡할 예정이었다.
* * *
조식을 먹는 내내, 윤은 뒤가 아파 자리에 똑바로 앉아 있기 힘들어했다. 나는 조식을 먼저 먹고 약국에서 진통제와 연고를 사 왔다.
우리는 조식을 먹고 객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를 침대에 눕히고, 그에게 연고를 발라 주기 위해 곁에 누웠다. 그는 바지와 속옷을 벗었고, 나는 손가락에 연고를 묻히고 밤새 붓고 까져 피가 비쳤던 구멍에 연고를 꼼꼼히 발랐다.
연고를 바르고 나서, 그를 안고 내벽을 손가락으로 짓궂게 괴롭혔다. 윤은 펑펑 울면서 절정을 느끼다가 사정했고, 나는 윤에게 손으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한 발을 뺐다. 우리는 한 번씩 사정하고 나서 나른해졌고, 잠깐 눈을 붙였다.
우리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하여 렌터카를 타고 파이크스 피크로 출발했다. 윤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비스듬하고 이상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윤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열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우리는 톱니바퀴 열차가 출발하는 마니투 스프링스 마을에 도착했다. 여행을 처음 계획하면서, 열두 시에 파이크스 피크까지 올라가는 톱니바퀴 열차를 예약했다. 우리는 빨간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한 시간 반 동안 달려 해발 14000피트 고지대까지 올라갈 것이다. 역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윤이 내 옷차림을 보고 말했다.
“옷이 너무 얇은 거 아니야?”
“정상에는 잠깐 있을 건데.”
“그래도 패딩 입어.”
나는 윤이 시키는 대로 겨울용 패딩을 껴입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역사에 앉아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얼마 뒤, 기차가 도착했다. 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나란히 앉아 창밖을 보았다. 고도가 높아지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그러자 승객들은 창문을 닫았다. 골짜기를 지나자 눈 내린 키 큰 침엽수림을 지나 호수가 보이고, 눈 덮인 평원이 끝없이 펼쳐졌고,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떠갔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귀가 멍해졌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기차는 눈 덮인 로키산맥 능선을 따라 달리다가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이제는 아무리 침을 삼켜도 귀가 계속 멍멍했다. 게다가 산꼭대기는 정말 추웠다. 옷을 껴입으라는 윤의 충고를 들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윤이 입고 있는 롱패딩이 부러웠다. 롱패딩이야말로 이곳에 오기에는 최적의 옷차림이었다.
우리는 역에서 파이크스 피크의 명물인 도넛을 여섯 개 사서 나누어 먹었고, 풍경을 구경했다. 저 멀리 우리가 출발한 기차역이 있는 마을이 보였다. 우리의 발아래 보이는 눈 덮인 호수와 산맥, 골짜기가 아름다웠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셀피를 찍었고, 윤은 사진을 환에게 보냈다.
고지대라서 귀가 멍하고 아팠고, 산소가 부족해서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멀미도 났다. 마침 기차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윤이 내 어깨에 기대어 졸기 시작했고, 나도 그에게 기대어 한참 졸았다.
기차에서 내린 것은 오후 세 시가 넘어서였다. 다행히 마니투 마을로 내려오니 두통과 멀미가 사라졌다. 배도 고팠다. 파이크스 피크에서 간식은 먹었지만, 점심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윤이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한식당을 찾았다며, 한국 음식을 먹자고 했다. 나는 윤이 찾았다는 한식당의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운전했다.
우리는 30분을 달려 한식당에 도착했고,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하나씩 들고 읽었다. 내가 메뉴에 대해 물어보면, 윤은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하지만 메뉴 설명을 읽고 그의 설명을 들어도,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음식들이라 맛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메뉴판을 내려놓고 윤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추천하는 것을 먹겠어. 너무 맵지 않은 것으로 추천 부탁해.”
“알았어.”
윤은 한국계 직원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생선구이와 부대 전골 핫팟이라는 음식을 시켰다. 윤이 음식을 시키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이 정도는 매워도 먹을 만할 거야.”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따뜻한 보리차를 마셨다. 서버가 와서 작은 접시에 담긴 전채 요리처럼 보이는 것들을 테이블 가득 내려놓았다. 주로 채소로 만든 것이었고 가짓수가 많았다. 이것들은 전채 요리일까? 나는 윤이 어떻게 하는지 관찰했다. 윤은 젓가락으로 까만 콩을 집어먹으려다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이거는 전채 아니야. 밥과 같이 먹는 거야.”
“네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면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다 먹을 뻔했어.”
“맛만 봐.”
나는 포크로 떠서 음식들을 조금씩 맛보았다. 대체로 담백한 맛이었지만 아주 매운 것들도 있었다. 서버가 다시 왔고, 그는 스테인리스 스틸 보울에 들어 있는 밥과 휴대용 버너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커다랗고 넓적한 냄비를 버너 위에 올렸다. 냄비 안에는 빨간색 스튜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테이블에 버너를 올리다니. 나는 상식을 파괴하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지만, 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찌개가 끓으면 앞접시에 담아서 먹으면 돼.”
윤은 한국 음식을 보고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얼마 뒤, 서버는 생선구이까지 가져왔다. 윤이 젓가락 통에서 새 젓가락 한 쌍을 집어 들면서 나에게 말했다.
“끓으면 국자로 저어. 그동안 나는 생선 뼈를 해결할게.”
윤은 놀랍도록 정교한 젓가락질로 생선 뼈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생선을 가르고 등뼈를 들어내고 살점을 젓가락 끝으로 긁어 잔뼈를 발라냈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은 뼈를 젓가락 끝으로 하나하나 뽑았다. 윤이 나에게 스튜가 끓는지 지켜보라고 했지만, 나는 스튜 대신 그가 생선 뼈를 바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젓가락질을 정말 잘하네.”
“고마워.”
윤은 젓가락을 놓고, 끓고 있는 스튜를 국자로 저었다. 그새 스튜에 들어 있는 라면이 익어 있었다. 윤은 국자로 스튜를 떠서 앞접시에 담았고, 그것을 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먹어 봐.”
나는 스튜를 한 입 먹었다. 한국 요리는 매운맛이 강하지만 담백한 편이었다. 수빈이 만들었던 김밥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한국 요리는 달큼하고 담백한 일본 요리와도, 기름에 볶은 매콤한 맛이 인상적인 중국 요리와도 달랐다. 나는 포크를 써서 김치와 햄, 콩, 국수를 떠먹었다. 윤은 생선구이 반절을 빈 접시에 담으면서 말했다.
“내가 반을 먹을 테니까 나머지 반은 네가 먹어.”
“알았어.”
“내가 요리를 잘하면 한국 요리를 많이 해 주겠지만, 나는 요리를 못 하니까 여기서 많이 먹어.”
윤이 생선구이가 든 그릇을 건넸다. 나는 생선구이가 든 그릇을 받아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았다고.”
* * *
늦은 점심을 먹고 레스토랑을 나서니 네 시가 넘었다. 공군사관학교까지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올림픽 센터만 가기로 했다. 하지만 올림픽 센터에 도착하니 네 시가 마지막 입장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군사관학교도 올림픽 센터도 보지 못했다. 다음 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로 호텔에 체크인했다. 이곳은 윤이 골랐다. 시내에 있는 4성급 호텔이라 위치가 좋고 분위기가 좋지만, 인테리어는 약간 낡았다. 이곳은 윤의 기준에 딱 맞는 곳이었다. 내가 몇 달간 윤을 관찰해 본 결과, 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가격 대비 성능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첫날 호텔에 예산을 많이 썼기 때문에 저렴한 호텔을 고를 수밖에 없기도 했다.
짐을 풀고, 윤이 먼저 씻는다고 욕실에 들어갔다. 나는 윤의 뒤를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 윤이 샤워 커튼이 반쯤 닫힌 욕조 안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나도 옷을 벗고 샤워 커튼을 열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윤은 눈을 감고 샴푸 거품을 헹구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나를 발견한 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야?”
“같이 씻으려고.”
“안 돼. 나 아프단 말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는 코웃음을 치며 샤워 커튼을 닫았다. 윤은 나를 무시하고 보디클렌저를 묻힌 배스 릴리를 온몸에 문질렀다. 머리를 감고 나서, 나는 윤에게 물었다.
“등 닦아 줄까?”
“닦기만 해.”
하지만 닦기만 하고 끝날 수는 없었다. 내 손길이 닿자마자 윤의 성기가 서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윤은 울상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어떡해……?”
“내가 해 줄까?”
“뭘?”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몰라…….”
윤은 의외로 부끄러움이 많고, 부끄러울 때마다 대답을 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나는 윤이 벽을 향해 서게 하고, 그의 두 손목을 잡아 타일 벽을 짚게 했다. 윤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넣을 거야?”
“아니. 아프잖아.”
나는 윤의 허벅지를 배스 릴리로 문질렀다. 양손으로 그의 고관절을 움켜쥐고, 그가 허벅지를 꽉 붙이고 서도록 했다. 젤이 없지만 비누 거품 때문에 괜찮을 것이다. 내 의도를 깨달은 윤이 심호흡하며 숨을 크게 삼키는 소리가 났다.
윤이 손가락을 세워 타일 벽을 긁으려고 했지만,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발기한 성기를 윤의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허릿짓을 했다. 한 손으로 윤의 허리를 안고 다른 손으로 윤의 성기를 잡았다. 그의 성기를 뿌리부터 살살 긁으며 치대다가 빠르게 흔들기 시작하자, 윤이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아…… 이상해…….”
“다리에 힘줘.”
“흐으…… 아파…….”
내가 윤의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거세게 문지르자, 그는 타일 벽에 구애하듯 이마를 비비다가 몰려오는 쾌감에 무릎을 꺾었다. 나는 휘청거리는 윤에게 말했다.
“나를 보고 서 봐.”
“어?”
“얼른.”
윤은 벽을 등지고 돌아섰다. 나는 윤을 안아 벽에 기대고, 윤의 두 다리를 모아 내 왼쪽 어깨에 걸치려고 했다. 하지만 윤이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쳤다. 그가 내 목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안 돼, 이러다 떨어져!”
“그럼 어떻게 해 줘?”
“내가 누울게…….”
“알았어.”
윤은 욕조의 비스듬한 면에 등을 대고 누웠다. 나는 윤의 두 다리를 겹쳐 내 왼쪽 어깨에 올리고, 윤의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다시 묻고 움직였다. 허벅지와 성기가 마찰하며 금방 열이 올랐다. 흥분한 윤의 허리가 휘며 욕조 바닥과 몸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나는 그 틈으로 팔을 넣어 윤을 안고, 다른 손으로는 윤의 성기를 흔들었다. 윤이 헐떡이며 칭얼거렸다.
“뜨거워, 알렉스.”
“괜찮아.”
윤이 두 팔로 내 목을 감아 안았고, 나에게 먼저 키스했다. 나는 입을 벌려 윤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나 역시 흥분했고, 성기를 윤의 허벅지에 거칠게 마구 치댔다. 윤도 숨을 헐떡이며 잔뜩 흥분했다. 어느새 배어 나온 우리의 쿠퍼액이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에 씻겨 내려갔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과 타액이 오가고, 나는 더욱 빠르게 손과 성기를 움직였다. 윤이 갑자기 입술을 떼고 얼굴을 홱 돌렸다.
“나 갈 거 같, 아아… 아!”
윤이 먼저 사정했다. 윤의 납작한 배와 내 배에 정액이 튀었다. 내 손에도 윤의 정액이 묻었다. 묽은 정액은 샤워기가 흩뿌리는 뜨거운 물에 금방 녹아 사라져버렸다. 사정하고 힘이 빠진 윤은 헐떡이며 늘어졌다. 윤이 잔뜩 풀린 눈을 들어 흥분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윤의 허벅지를 두 팔로 끌어안아 조이고 허벅지 사이에 페니스를 세게 비볐다. 나도 사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윤에게 말했다.
“키스.”
윤은 내 말대로, 내 목을 두 팔로 안고 키스해 왔다. 나는 윤과 입술을 섞다가 파정했다. 윤의 배와 가슴팍에 내 정액이 잔뜩 튀었다. 윤의 정액보다는 진하고 양이 많았다. 숨을 몰아쉬다가 윤의 다리를 놓았다. 그러자 윤의 예쁘고 매끈한 다리가 힘없이 벌어졌다. 나는 손바닥을 펴서 윤의 몸에 정액을 문지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말갛게 올려다보는 윤에게 말했다.
“엎드려.”
윤은 욕조에서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나는 윤의 허리를 안고 욕조 가장자리를 잡고 엎드리게 했다. 윤이 등 뒤에 있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넣을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고, 윤의 허벅지를 모아 두 손으로 옥죄고 그의 뺨에 키스하며 말했다.
“한 번만 더 하자.”
* * *
우리는 욕조에서 몇 번이나 서로의 성기를 비비고 만져 주었다. 그러다가 윤이 욕조에서 나에게 펠라치오를 해 주었다. 태어나서 펠라치오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지만, 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너무 좋기도 해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정했다. 윤의 입 안에 사정한 후, 미안하고 민망해서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자 윤이 나더러 보란 듯이 입을 벌렸다. 윤의 붉은 입 안과 혀 위에 허연 액체가 엉겨 있었다. 윤은 일부러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정액을 꼴깍 삼켰다. 윤이 내 정액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윤은 입 안에 든 것을 삼키고, 혀로 입술을 핥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윤은 미안해하는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서 웃었다.
우리는 욕실에서 나왔고,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침대에 바로 눕고, 윤은 내 배를 베고 누웠다. 우리는 TV를 켜고 넷플릭스로 예전에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한참 드라마를 보다 보니 밤 아홉 시가 넘었다. 우리는 배가 고파 룸서비스로 페퍼로니 피자와 맥주를 시켰다. 맥주와 피자를 먹고,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마저 보았다. 내가 드라마를 보다가 술기운에 깜빡 졸고 있는데, 윤이 나를 깨웠다.
“졸리면 이 닦고 세수하고 자. 나도 피곤해서 일찍 잘래.”
“그래.”
우리는 세면대 앞에 나란히 서서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윤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 나도 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잠기운에 눈이 감기려고 하는데, 윤이 나에게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알렉스.”
“메리 크리스마스, 윤.”
내가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자, 윤이 내 품에 안겨들었다. 그는 나의 오른쪽 광대뼈 위에 있는 흉터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를 마주 안으니 살며시 웃음이 났다. 이내 잠이 몰려왔고, 나는 행복하게 잠들었다
12월 26일, 윤
일찍 자고 푹 쉬기를 잘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 상태가 좋았다. 나와 알렉스는 조식을 먹으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오늘은 올림픽 선수촌, 신들의 정원, 공군사관학교에 갈 것이다.
호텔과 올림픽 선수촌이 무척 가까워서, 선수촌부터 갔다. 선수촌의 역사에 대한 영상물을 보고, 투어 가이드와 함께 올림픽 역사박물관에 가서 설명을 들었고,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수영장과 훈련장을 차례대로 방문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 시설은 정말 훌륭했다.
나는 훈련장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을 보았다. 하지만 미국 선수들을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크게 가지는 않았다. 반면 알렉스는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유심히 보고 훈련장도 열심히 보았다. 심지어 알렉스는 기념품 가게에서 국가 대표 선수들이 입는 기모 맨투맨 티셔츠를 두 장이나 샀다.
“하나는 네가 입어.”
알렉스가 티셔츠 한 장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뜻밖의 선물을 받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 * *
렌터카를 타고 신들의 정원으로 갔다. 신들의 정원은 차를 타고 한두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붉은 기암괴석 바위산 아래, 키 작은 나무가 숲을 이루는 풍경이 계속 펼쳐졌다. 모래바람에 깎여 나간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보일 때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위들을 구경했다.
우리는 신들의 정원을 둘러보면서 드라이브를 하고 음악을 들었다. 알렉스가 먼저 선곡했다. 알렉스가 고른 음악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이었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바흐 음악은 좋아했다. 공부할 때 들으면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었다. 알렉스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연주자나 오케스트라도 가려듣는 편이야.”
“그럼 이 연주자는 누구야?”
“안드라스 쉬프2).”
“……나는 네가 락이나 힙합을 좋아할 줄 알았어.”
“힙합은 별로지만, 락은 좋아해.”
“어떤 밴드를 제일 좋아해?”
“라디오 헤드. 너는 어떤 음악을 좋아해?”
나에게 라디오 헤드는 너무 어려웠다. 예전에 몇 번 들어보려고 했지만, 너무 난해해서 결국에는 듣지 않게 되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취향이 없어서 아무거나 들어. 클래식도 듣고 케이팝도 듣고 재즈도 듣고.”
“제일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은?”
“음…… 핑크 레드?”
나는 사실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핑크 레드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사실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알렉스가 내 대답을 듣고 나서 말했다.
“그러면 핑크 레드 노래를 틀어봐. 궁금하다.”
나는 애플 뮤직으로 핑크 레드를 검색했다. 맨 위에 있는 노래를 재생하자마자, 들려오는 리듬과 가사가 무척 발랄했다. 노래를 듣자마자, 알렉스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알렉스의 반응 때문에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알렉스가 가만히 있는 나를 보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취향이구나.”
“별로야?”
내 질문을 듣고, 알렉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귀여워.”
* * *
우리는 공군사관학교에 갔다. 민간인 방문객이 공군사관학교에서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방문자 센터와 카뎃 채플, 카뎃 채플까지 가는 산책 코스뿐이었다. 우리는 방문자 센터에 있는 전시관에서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영상물을 통해 어떤 훈련을 받는지, 어떤 과목을 공부하는지 보았고, 실제로 착용하는 제복이나 기숙사 모형 같은 것들도 볼 수 있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나와 예배당까지 가는 산책 코스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걸어가는 동안 캠퍼스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건물만 보면 평범한 대학 캠퍼스 같았지만, 건물 사이에 연병장이나 전투기와 작은 활주로가 있어서 공군사관학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에도 사관학교에 진학한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어릴 때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사관학교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좋아하지만, 사관학교에 갈 만큼 신체 능력이 특출나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알렉스의 집안은 군인 집안이니 다를 것이다. 나는 알렉스에게 물었다.
“집안에 공군사관학교 졸업생도 있어?”
“아니. 우리 집안 사람들은 전부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야.”
“그렇구나.”
우리는 금방 카뎃 채플에 도착했다. 채플 지붕에 뾰족한 첨탑 여러 개가 서 있었다. 유리로 마감한 건물 안에 들어가니,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이 실내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실내에 장식된 십자가는 군인들이 차는 의장용 검 모양이었다.
나는 교회나 성당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좋아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랄까?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있는데, 알렉스가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다 말고 나에게 물었다.
“너는 종교가 없다고 했지?”
“없어. 난 무신론자야.”
“그럴 수 있지. 내가 잠깐 기도해도 될까?”
“그래.”
알렉스는 채플 의자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도를 하는 알렉스의 곁에 앉아 아이폰으로 저녁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레스토랑을 골랐을 무렵, 알렉스는 기도를 마치고 나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아이폰을 롱패딩 주머니에 넣고 알렉스를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채플에서 방문자 센터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아까 보았던 것과 다른 연병장과 건물이 보였고, 이번에는 훈련하는 생도들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알렉스의 오른손을 내 왼손으로 감싸 쥐고 롱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나를 향해 웃었다.
알렉스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무신론자이지만, 기도가 개인의 아주 내밀한 체험이라는 사실은 아니까. 그런데 알렉스가 내 볼에 뽀뽀하고 물었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안 물어보네?”
일부러 물어보지 않은 건데. 알렉스는 그에게 무슨 기도를 했는지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바라는 대로 했다.
“무슨 기도를 했는데?”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 기도했어.”
“소중한 친구였어?”
내가 묻자, 알렉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알렉스는 조금 슬퍼 보였다. 그러다가 알렉스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은 내 첫사랑이야.”
“아…….”
“정말 착한 애였는데…… 열일곱 살 때 죽었어.”
알렉스는 슬프게 말하면서,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나는 대답 대신 알렉스의 손을 더욱 힘주어 마주 잡았다. 내 손의 온기가 알렉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 * *
늦은 오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내로 돌아왔다. 우리가 돌아온 시각은 마침 음식점의 브레이크 타임인 시간대였다. 그래서 우리는 호텔에 차를 세우고,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으면서 저녁 영업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봐둔 식당은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두 명을 위한 셰프 특선 모둠 고기 요리와 소고기 필레 요리를 시켰고, 콜로라도 특산 생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에일 맥주에서는 과일 향이 많이 났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식전 빵을 먹으며 요리를 기다렸다. 이윽고, 서버가 모둠 고기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서버가 모둠 고기 요리에 들어 있는 재료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토끼 고기라는 단어뿐이었다.
고기마다 맛이 달랐고, 내 입에는 전부 맛있었다. 알렉스도 마찬가지인 듯 열심히 먹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애가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진짜 맛있나 보네. 나는 알렉스가 여기 음식을 좋아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미디움으로 구운 소고기 필레도 맛있었고, 음식의 양도 충분했다. 덕분에 우리는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저녁은 알렉스가 샀다. 우리는 계산을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길을 걷다가,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조그마한 케이크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의외로 베이커리를 찾기 어려웠다. 나는 케이크를 사기 위해, 구글 지도 앱을 켜고 베이커리를 찾았다. 걸어서 15분이 걸리는 거리에 베이커리가 하나 있기는 했다. 거기에 가자고 말해볼까? 그때, 알렉스가 자리에 서서 아이폰만 보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뭘 보고 있어?”
“케이크를 먹고 싶어서 근처에 베이커리가 있나 찾아봤거든. 걸어가면 15분 걸리네.”
“그럼 가 보자.”
알렉스는 좋다고 말했고, 우리는 가게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가게에는 자그마한 오페라 케이크가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 케이크를 채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재빨리 직원에게 말했다.
“오페라 케이크 하나 포장해 주세요.”
케이크 값을 결제하고 나니, 직원이 나에게 예쁘게 포장한 케이크 상자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베이커리에서 나왔고, 크리스마스 시즌와 연말을 맞아 가로수와 건물을 일루미네이션으로 예쁘게 장식한 거리를 걸어갔다. 케이크 상자를 손에 들고 걷는 내 발걸음이 의기양양했다.
이번에는 알렉스가 주류 판매점에 들르자고 했다. 우리는 호텔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주류 판매점에 들렀고, 알렉스는 스파클링 와인을 한 병 샀다. 각자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것을 하나씩 들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다.
12월 26일 알렉스
우리는 호텔 방 소파에 나란히 앉아 케이크와 샴페인을 먹었다. 나는 윤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고, 그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했다. 윤은 술기운에 발갛게 물든 얼굴로 웃다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 갈까?”
윤의 질문을 듣고,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서울에 가야지.”
“어?”
“너는 여름 방학에 조카를 보러 갈 거잖아? 나는 서울에 가 본 적이 없으니까,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아.”
“나와 정말 서울에 같이 갈 거야?”
윤은 나에게 질문을 하면서 아랫입술을 수줍게 깨물었다. 나는 윤의 입가에 묻은 버터크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주면서 대답했다.
“응.”
내 대답을 듣자마자, 윤은 나에게 열렬하게 키스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손으로 닦아 줄 필요가 없었다.
* * *
늦잠을 자느라 조식 시간에 늦었다. 우리는 여행 첫날 못지않게 뜨거운 밤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늦게 일어났어도 샤워는 거를 수가 없었고, 간신히 체크아웃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덕분에 시그나기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지 아슬아슬해졌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후, 렌터카를 타고 곧장 덴버 공항까지 갔다. 운전하는 동안, 다음 여행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어젯밤에 약속한 대로,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서울이 될 것이다. 나는 윤이 태어나서 나를 만나기 전까지 살았던 도시에 그와 함께 갈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디에 가야 할까? 뉴욕? 샌프란시스코? 아니면 외국에 갈까?
그러다가 깨달았다. 그다음 여행지는 당연히 오스틴이 되어야 했다. 나의 고향이며, 윤이 어린 시절 일부를 보낸 곳. 나는 생각만 해도 행복한 계획에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