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5 파경.(破鏡)
"이건 스키드 로우의 음악이야. 이 그룹의 보컬은 사실 노래를 썩 잘 부르는 타입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음치라고도 하지."
태경은 스키드 로우의 CD를 오디오에 집어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세바스찬 바하의 매력적인 보이스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태경은 상윤이 앉아있는 침대위로 올라왔다. 상윤은 귀를 기울이고 한동안 듣다가 말했다.
"그렇게 못 부르는 것 같지 않은데."
"녹음할 때 한소절 한소절 끊어서 부르고 나중에 편곡을 했다고 해.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면 약간 어색한 부분도 있어."
태경은 상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리모콘으로 볼륨을 약간 높혔다.
"어때?"
태경이 상윤을 돌아보며 묻자 그는 입술 위에 가만히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상윤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있었다. 길다란 속눈썹이 그의 눈 아래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붉게 다문 입술은 키스를 하고 싶을 정도로 섹시했다. 태경의 가슴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울렁거린다고 해야하나?
취할 것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태경은 지금 음악에 취해있었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창가로 길게 드리워졌다. 그래 태경은 지금 붉어진 노을 빛에 취해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아무도 없다.
조용하다.
그리고 둘 뿐이다.
"말을 듣고 보니......"
상윤이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태경과 눈이 마주쳤다. 태경은 나쁜 짓이라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하, 하지만 그래도 인기가 있는 건 보컬의 목소리에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서......"
상윤은 허둥대는 태경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난 보컬의 목소리보다 네 목소리가 더 듣기 좋은걸. 아직도 변성기가 덜 지난 듯 약간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
그는 태경의 가슴에 얼굴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뭐, 뭐 하는 거야?"
"말해봐."
"뭘?"
"뭐든지. 네가 말할 때마다 가슴이 울리면서 들리는 소리가 정말 좋아."
태경의 얼굴이 타는 듯이 붉어져왔다. 가뜩이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봐 조바심을 내는 사람의 가슴에 귀를 대고 말을 하라니.
"좋아......"
"응?"
"네 심장 뛰는 소리가 정말 듣기 좋아."
상윤은 그의 가슴에 더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댔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위험해!. 그의 경보장치가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태경이 고개를 내리자 턱 바로 아래 상윤의 목이 다가와 있었다.
네크라인이 넓은 쉐터가 뒤로 제껴져 길고 시원한 목선과 어깨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위에 매달린 조각처럼 섬세한 귀.
석양 빛에 목덜미와 귓바퀴에 보드랍게 돋아있는 솜털이 반짝였다.
태경의 머릿속에 울리는 경보장치는 이제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상윤의 귓볼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혀를 내밀어 조심스럽게 핥았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상윤의 귓속으로 새어들어갔다. 그의 입술은 목선을 타고 내려와 어깨선에 닿았다.
"하악......"
상윤이 고개를 들려고 하자 태경은 자신도 모르게 상윤의 팔을 누르고 침대에 쓰러뜨렸다.
태경은 온몸의 돌기들이 일제히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상윤과 눈이 마주쳤다. 태경은 음란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상윤이 누워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닫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미, 미안해. 내가 정말 어떻게 됐었나봐."
태경은 상윤을 외면하며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는 귓볼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상윤은 너무나 당황해 하는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사실은 자신도 조금전 그를 상대로라면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태경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상황도 상윤이 일부러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너에게 그 동안의 나를 모두 알려준다면 넌 그래도 내 옆에서 웃고 있을까?'
만일 태경이 상윤을 안게되면 자신의 일을 조금쯤은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토미와의 일이나 이제까지 겪어왔던 그런 일들을. 그러면 정말 마음을 열 수 있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상윤은 태경의 뒤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내밀었다.
"정말 특별한 친구가 되고 싶어?"
그러나 태경은 그 말을 친구가 되고 싶다면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로 듣고있었다. 그리고 죄지은 자의 입장에서는 어딘지 혐오를 담고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미안해, 어떻게 네게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어. 내가 정말 혐오스러워 죽을 것만 같아."
태경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며 벽에 세차게 찧었다.
"같은 남자끼리...... 정말 혐오스러워!"
상윤은 태경의 어깨에 올리려던 손을 다시 걷어들였다.
태경은 상윤의 일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류가 분명했다. 지금의 일만으로도 그의 머리 속이 얼마나 혼란스러울 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대개의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상윤이 그렇게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인터폰이 울렸다. 태경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듯 방을 뛰쳐나갔다.
'역시 그에게는 안되겠구나'
혼자 남겨진 상윤은 멍하니 앉아있었다.
상윤은 가방을 메고 2층 태경의 방에서 나왔다. 아래층의 현관이 열리며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현관에는 긴 생 머리에 네이비 블루의 원피스를 입은 경은과 태경이 서있었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것이 매우 닮은 남매였다.
상윤은 계단을 내려와 경은의 앞에 마주섰다.
"내 친구 상윤이야."
"어머, 상윤이가 너였구나. 귀엽게 생겼다."
상윤이 인사하자 경은은 생긋 웃어준 후 현관 뒤에 대고 얘기했다.
"석원씨 들어와. 마침 동생이랑 친구도 와있네"
순간, 상윤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졌다.
"인사해. 우리 석원씨야. 얘는 태경이고 옆에 있는 애는 친구 상윤이래."
경은은 함께 들어온 남자에게 태경과 상윤을 소개시켰다.
"반가워요."
잘 다려진 잿빛 쟈켓을 걸친 석원은 미소를 지으며 태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상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상윤의 손을 쥔 석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웃었다. 그것은 승리자의 미소였다.
이영호. 상윤은 그의 본명이 석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왜? 벌써 가려고?"
경은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석원도 덩달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내가 방문한 게 못마땅한 게 아니라면 좀더 있다가지 그래."
"석원씨도 참. 그래 조금만 더 있다가라."
경은의 부탁 어린 얼굴에 상윤은 태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태경은 상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외면했다.
이러한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채지 못한 경은은 부엌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아줌마!"
"아줌마 오늘 못나오셨어"
"그래? 태경아 그럼 누나 옷 갈아입는 동안 먹을 것 좀 내올래?"
경은이 총총걸음으로 이층으로 올라가고 태경은 투덜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드넓은 거실엔 이제 영호와 상윤 둘만 남았다.
"감격적인 재회지?"
영호는 쇼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으며 물었다.
"계획적인 건가요......?"
"반은, 나도 경은의 동생이 네 친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좀 놀랐지. 이런걸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후후... 네게는 악연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동안 느긋이 기다릴 수 있었지."
영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상윤을 마주보았다. 그는 승리에 취한 눈을 하고 있었다.
"......."
"어때? 그동안 내가 준 휴가는 잘 보냈나?"
상윤은 더이상 영호와 마주 할 수 없어 황급히 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영호는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흥분하지 말고 앉지 그래. 설마 그동안 네가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난 당신과 더이상 상관없다고 분명히 말해둔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는 눈쌀을 찌푸리며 상윤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손가락으로 천천히 얼굴을 더듬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상윤의 이마를 타고 내려와 눈썹을 더듬는다. 그리고 뺨을 지나 턱을 타고...
"훗, 깜찍하게도 이러고 있으니 얌전한 모범생 같군. 오늘은 좀 더 색다른 기분을 낼 수 있겠는걸."
상윤의 얼굴을 만지던 그 손은 어느새 목을 타고 내려와 그의 앞가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상윤은 영호의 손을 밀쳐냈다.
"그만하세요."
그러나 영호는 막무가네로 상윤을 쇼파로 밀치며 눕게 했다. 그의 입술이 상윤의 입술을 거칠게 부벼댔다. 그의 뜨거운 혀가 상윤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했다.
"읍... 미쳤군요. 사람이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서 더 짜릿한 걸"
"당신 애인이 볼텐데요?"
"내가 갖고 싶은 건 너 뿐이야. 참, 너는 사랑하는 친구가 보면 곤란하겠지만 말이야."
"읍..."
상윤이 영호의 혀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두 입술을 악물며 고개를 돌리자, 영호는 상윤의 귓가에 혀를 집어넣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요동치지마. 소리가 나면 들켜..."
영호의 한 손은 상윤의 뒤쪽 허리로 돌아가 엉덩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소름끼칠 듯 차가운 손이 상윤의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윽!"
"쉬잇..."
영호는 상윤의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의 손은 상윤의 애널을 후비며 들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하나가 그리고 또 하나가 계속 애널 사이를 넓히며 그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 기분 나쁜 감촉 때문에 상윤은 전신에 벌레가 쓸고 지나는 느낌이었지만 소리를 내지 않기위해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흐으... 윽... 윽..."
영호의 손가락이 드디어 상윤의 애널을 헤집기 시작하자 상윤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틀며 영호를 밀어냈다.
발소리가 들려왔다. 영호는 자리에서 재빠르게 일어나 앉았다.
태경이 음료수와 몇 가지 다과들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쇼파 위에 스웨터가 반쯤 벗겨지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누워있는 상윤과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는 영호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친구가 갑자기 답답하다며 쓰러져서."
"괜찮아?"
영호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태경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상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 그만 가서 쉬어야겠어."
"잠깐! 기다려 할말이 있어."
태경이 상윤의 뒤를 따라 나가려하자 영호가 그를 붙잡았다.
"수고스럽겠지만 누나가 나올 동안 처남은 집 구경 좀 시켜주겠어?"
태경은 현관 문을 나서는 상윤과 쇼파에 서있는 영호를 번갈아보며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 * *
상윤이 집에 도착하자 핸드폰이 울렸다.
"집인가?"
"......"
영호의 목소리였다.
"태경이라는 친구 널 많이 걱정하던데. 다시 보니 근사한 친구더군. 몸도 모델처럼 잘 빠지고. 과연 네가 반할 만 하더군."
"용건이 뭔가요?"
"그런 친구가 널 벌레보듯 한다는 건 참을 수 없겠지?"
"사실이 알려지면 당신도 좋을 게 없을 텐데요."
"파혼을 당하겠지. 하지만 상처받는 건 그쪽일거야. 경은은 내게 몸과 마음을 모두 줬으니까. 최악의 경우 나는 기분 전환 겸 몇 년간 외국지사에 나가있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네가 잃는 걸 가르쳐줄까? 너는 다시는 학생이 될 수 없을 거야. 친구도 더 이상 사귀지 못하고 물론 클럽같은데에서 일도 못하겠지. 내가 그렇게 만들테니까. 그러면 넌 또 다시 더러운 양키새끼들 꺼나......"
"원하는 게 뭐야?"
상윤의 얼굴은 찡그려졌으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정말 화가 날 때는 분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그의 무기이기도 했다.
"다시 계약을 맺고 싶다. 좀 더 지속적이고 깊은 관계로."
"기억해 둬. 나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불리하지만 최악의 경우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하하하...... 그것은 협박인가? 하지만 나와 계약을 한다면 네가 얻는 것은 아주 많을텐데. 반대로 나를 거절할 경우 네가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겠지. 물론 태경군마저 떠날테고."
"......."
"알고 있나?"
"......?"
"너는 요즘에 내게 최고의 쾌락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맹수를 길들이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거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사납게 해달라고. 너는 그편이 훨씬 더 매력적이니까."
상윤은 핸드폰을 끊었다.
잠시후 크락숀 소리에 나가보니 연립 구석에 영호의 차가 서있었다. 상윤은 영호의 차 옆에 가서 섰다. 코팅된 차창 유리가 내려오고 영호의 얼굴이 보였다.
"차 안에서 얘기하지."
상윤은 차 문을 열고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
"용건만 말해요."
"너와 계약하는 거라고 했을 텐데."
"......"
"저번에 태경군과의 일은 오해해서 미안해. 몇 마디 나눠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지. 생각외로 학교에서 너는 꽤나 얌전한 모범생이더군. 네 담임에게 얘기 들었어."
영호는 두 눈을 살짝 찌푸리며 상윤을 보았다.
"정말 매력없는 남자였어. 그런 주제에 너를 넘보다니 말이야."
상윤은 흠칫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학교에 가서 무슨 짓을 한거죠?"
"아, 안심해 우리의 관계를 밝힌 것은 아니니까. 단지 그런 녀석이 네 담임으로 있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었지."
"당신이......"
"네 장래의 꿈이 외교관이고 했나? 넌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야."
"뒷조사를 하고 다니셨군요."
"좋아 좋아, 그렇게 성난 목소리를 할수록 나는 더 흥분되거든. 어때 다시 계약하는 것이?"
영호는 지갑에서 수표와 자줏빛 케이스를 꺼내 운전석 앞에 올려놨다. 호텔에서 영호가 상윤에게 건네주었던 반지케이스였다.
"이건 이번 계약금이야. 저번 것은 네가 파기했지만 선금은 돌려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은 저번에 내가 준 선물이다. 그것의 주인은 이미 너로결정된 거야. 필요없다면 직접 버리도록해."
상윤은 영호를 노려보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봐."
상윤은 그것이 누구에게서 왔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 동안 그 예감이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태경이"
"응."
"집에 잘 들어갔나 해서."
태경은 여전히 어색한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상윤은 운전석에 앉아있는 영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상윤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영호의 손은 상윤의 머리사이를 헤치고 뒷목을 쓸어가더니 붉은 혀가 목을 핥아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끈적끈적하고 후끈한 열기가 전달되어 왔다. 마치 그것은 영원히 상윤을 얽매어 놓을 것만 같았다.
상윤은 소름끼치는 것과 동시에 어쩐지 몸 속의 돌기들이 일제히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그, 그래....... 자...... 알 갔어."
"나...... 말이야. 아까 일 때문에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흑!"
상윤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집어 삼켰다. 어느새 영호의 손이 무방비 상태로 반응하고 있는 다리사이의 것을 힘껏 쥐었기 때문이다.
"후후..."
식은 땀을 흘리는 상윤을 보며 영호는 야비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왜 그래?"
한편, 수화기 저편에서는 태경이 걱정스럽고도 불안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아니야.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상윤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 녀석에게 이 번호를 가르쳐 주었나? 이건 고객 전용선일텐데. 후후...... 그 정도로 좋아한단 말이지. 그러니까 녀석을 지키고 싶으면 너는 내게서 떠나면 안돼."
그는 상윤이 앉아있는 좌석을 뒤로 재끼며 한 손으로 상윤의 지퍼를 내렸다.
"네가 나를 계속 만나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거야. 나는 경은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질거고 너는 네가 원하는 미래를 가질 수도 있지. 그리고...... 그 녀석에게는 좋은 친구의 기억으로 남게되고."
상윤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원할 때마다 나를 갖게 되고요."
"역시 똑똑한 걸."
영호의 손은 유연하게 상윤의 팬티사이로 들어갔다. 소름끼치도록 싸늘한 손이 상윤의 것에 닿았다.
상윤은 영호의 손을 빼냈다.
"이거 한가지는 알아두세요. 내가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단지 내게 좀 더 편한 걸 선택한 거예요."
상윤은 차 문을 열었다.
"기다리세요. 옷 입고 나올게요."
영호는 상윤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켰다. 다리 사이에 있는 그의 것이 한껏 팽창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 보였다.
"그럴 필요 없어. 난 당장 하고 싶어 미칠지경이니까."
상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적이 드물긴 해도 이 고급 승용차는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띄었다. 누구나 한번쯤 차안을 들여다보고 갈 것이었다. 어쩌면 가끔씩 그와 마주쳤던 사람들이 보게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들어가요."
* * *
전화를 끊은 태경은 왠지 불안해졌다.
그에게 상처주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누구의 손도 닿지 못하게 하던 상윤이 겨우 마음을 열고 다가왔는데, 결국 짐승과 같은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황급히 뛰쳐나간 상윤의 뒷모습은 아무래도 다시는 그를 상대해줄 것 같지 않았다. 영호마저 태경에게 '저 친구 뭔가 단단히 화가 난 거 같은데?'라고 말해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무슨 짓을 한 거지? 태경은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아까 그 마음은 정말 한때의 흥분만은 아니었다. 매일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는 상윤을 몇 번씩 범하는 꿈을 꾸었다. 그를 눕혀놓고 온갖 음난한 짓을 하고 있는 꿈에서 깰 때면 언제나 옷이 젖어있었다.
태경은 상윤이 어떤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발 상윤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랬다. 아니, 이해해 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떠나지 않기를 바랬다.
이제 그가 곁에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곁에만 있어준다면 평생을 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제발 이 상태로 계속 곁에 있어줬으면.......
태경은 겉옷을 걸치고 일어났다.
상윤에게 거절당하더라도 이러한 자신의 마음만은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하며.
* * *
영호는 상윤의 집안을 둘러보았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긴 했지만 그런데로 내부는 잘 정돈되어있었다.
"초록색을 좋아하는군. 직접 그린 건가?"
"......."
"그림에 상당한 재능이 있는 걸. 배운 적이 있나?"
"원하는 것부터 말하세요."
상윤은 벨트의 버클을 푸르고 바지의 단추를 풀렀다.
"잠깐.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그러자 영호는 손을 저으며 상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상윤의 귓가에 대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찰칵! 그는 벽에 붙은 스위치를 내렸다. 방안은 깜깜해지며 창 밖의 스텐드 불빛이 희미하게 안을 비추었다.
그는 상윤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상윤은 그와 어느정도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뒷걸음질쳤다.
"!"
다리에 침대가 부딪치며 그의 걸음이 막혔다. 이제 더는 뒤로 갈 수 없었다.
상윤의 낭패스러운 얼굴을 보는 영호는 기쁨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로 상윤의 허리를 감싸안고 왼팔로는 상윤의 목을 쓰다듬었다.
영호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무너져오자 그의 몸무게를 실은 상윤의 허리는 뒤로 꺽여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중심이 흔들리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영호의 몸이 상윤의 앞에 밀착되며 침대가 출렁였다. 배 위로 그의 것이 느껴졌다.
"거짓된 흥분은 연기하지 않아도 돼. 나는 바보가 아니거든."
영호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 있는 상윤의 벨트를 빼냈다. 그리고 천천히 바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도 눈은 상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윤도 지지않고 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영호가 욕망에 불타오르고 있는 것과 달리 상윤의 눈은 유리를 밖아넣은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차가운 눈. 좋아 좋아. 곧 뜨겁게 소리치게 만들어주지"
영호의 손에 의해 상윤이 입었던 밀크진이 벗겨져 내려갔다. 상윤의 다리는 바닥에 닿아있었기 때문에 바지가 빠져나가는 동안 그의 두 다리는 허공에 들려졌다.
영호는 바지를 입지 않은 상윤의 맨 다리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보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매끈하고 아름다운 다리.
부연 가로등 불빛을 받은 그의 긴 다리는 신비롭기까지 했다.
여성처럼 굴곡이 심하지도 않았고 남성처럼 거칠고 우람하지도 않은 그냥 자체로 아름다운 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간적인 존재의 완벽성이다. 영호는 그렇게 칭찬해 주고 싶었다.
영호는 상윤의 발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발등 위에 키스를 했다.
"신들은 성별이 없다지. 그래서 분명 아름다웠을 거야.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영호는 상윤의 발가락을 입안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그의 혀가 낼름거리며 발가락 사이들을 하나하나 맛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은 다리를 소중하게 쓸어 올라갔다.
잠시후 그의 발에서 입을 떼어낸 영호는 손을 따라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그동 안에도 상윤은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 영호가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흥분을 연기하지 않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자신의 노예를 바라보는 도도한 귀족을 연상하게 하는 얼굴이었다.
영호의 입맞춤은 점점 종아리로 그리고 무릎으로 허벅지로 올라왔다. 마침내 그의 탐욕스러운 입은 팬티를 끌어내리고 상윤의 사타구니사이를 핥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손은 상윤의 페니스를 움켜쥐더니 입안에 집어넣었다. 차가운 그의 체온과는 달리 뜨겁고도 끈적끈적한 느낌이었다. 상윤은 잠시 양미간을 가볍게 일그러뜨렸다.
"...!"
영호는 그의 페니스를 아래위로 움직이며 혀로 귀두의 민감한 부분을 살살 자극시켰다. 그러더니 문득 이빨을 세워 그것을 가볍게 깨물었다.
"흑!"
상윤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한번 뒤척였다. 원하지 않았지만 그의 돌기는 어느새 반응을 일으켰다. 영호의 혀 놀림이 점점 더 빨라져 가며 페니스를 빠는 힘도 더욱 거세어졌다. 상윤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이 하나씩 아득하게 지워져 가기 시작했다. 잠시후 상윤의 페니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한껏 팽창되어 있었다.
"흐흠... 매일 밤마다 이 날을 꿈꿔왔지."
어떻게 알았는지 영호는 씨익 웃으며 상윤이 페니스에서 입을 떼어냈다. 그리고 이번엔 꼭 다물고 있는 입술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페니스와는 달리 상윤의 입은 영호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영호의 끈적끈적한 혀가 그의 입술 주위를 가볍게 더듬었다. 그리고 손은 상윤의 다리 사이를 터트릴 듯 힘껏 쥐었다.
"아...... 윽!"
상윤은 거친 호흡을 하며 몸을 틀었다. 그 바람에 상윤의 입이 벌어지고 영호의 입안으로 달콤한 입김이 들어왔다.
"후후..."
영호는 상윤의 입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혀로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을 감았다.
손은 상윤의 것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상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이 흔들렸다. 상윤은 영호에게 굴복해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침대 시트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으... 으윽!"
그러나 어느덧 상윤의 몸 안에 있던 정액이 흘러나와 영호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어때 흥분되나?"
영호는 상윤의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며 상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상윤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즐기는 듯 야비하게 웃고있었다.
상윤은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노여움을 담고있었다. 그러나 그런 표정은 더욱 영호를 자극시켰다.
"이런,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군. 그럼 이제 더욱 재미있게 해주지."
영호는 상윤 두 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마주보며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넥타이를 푸르고 바지를 벗고 드디어 알몸이 된 영호는 상윤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영호는 매트 위에 풀어놓은 넥타이와 벨트를 집어들었다.
"미친, 무... 무슨 짓을!"
상윤이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영호는 벨트를 휘둘렀다. 짜악!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벨트가 상윤의 가슴에 차악 감겼다. 벨트가 훑고 지난 자리에는 새빨갛게 붉은 줄이 생겨났다. 그는 상윤의 허리 위에 올라앉으며 귀에다 속삭였다.
"잊었나? 우리는 지금 계약중이라는 것을? 너는 내가 하는데로 따르기만 하면 돼"
영호는 벨트와 넥타이로 상윤의 손목을 묶어 침대의 양 모서리에 묶기 시작했다. 상윤은 체념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영호는 침대의 한가운데 양팔을 벌리고 누운 상윤의 아름다운 몸을 한번 훑어보았다. 조금전 가슴에 생겨난 붉은 자국 위를 가볍게 핥았다. 그리고 몸 구석구석에 키스를 해가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시작되어 목을 지나고 분홍빛 돌기를 난폭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허리를 지나 다리로 내려왔다.
그는 마치 상윤의 몸이 자신의 것이라는 표시라도 해두듯 여기저기에 키스마크를 새겼다. 어느새 상윤의 몸에는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영호는 매끈하고 흰 피부에 붉게 새겨진 무늬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것봐 정말 아름답군. 이건 이제부터 네가 나의 것이라는 증거야."
영호는 상윤의 발목에 걸쳐진 팬티를 끌어내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두 무릎을 상윤의 다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상윤의 다리가 벌어졌다.
영호는 상윤의 다리를 들어올리며 그의 다리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제 마지막 키스만 남았군."
그의 혀는 이번엔 상윤의 애널 사이를 핥아갔다.
"!"
문득 애널 주위를 간지럽히듯 더듬어가던 혀 대신 다른 무언가가 찌르며 들어온 것이었다. 영호의 긴 손가락이었다. 상윤은 허리를 비틀며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침대에 묶인 손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상윤은 체념하며 고개를 늘어뜨렸다.
조금전 태경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호의 손가락이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쪽의 손가락이 들어오더니 느닷없이 애널 사이를 쫘악 벌렸다.
"악!"
상윤의 애널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시트위로 흘러내렸다. 상윤은 고통을 참느라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린 상태였다.
"왜 아무 소리도 안 지르지?"
"빠... 빨리 끝내기나 해요."
"글쎄, 빨리는 안될걸"
이윽고 손가락 사이로 거대한 영호의 페니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찢어진 애널의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지며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따라왔다. 상윤은 한층 더 이를 악물고 묶인 손에 힘을 주었다.
영호는 상윤의 두 다리를 들어올리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신을 꿰뚫고 들어오는 통증과 마찰로 인해 상윤의 온몸은 불이붙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영호는 사정을 할 때쯤 되면 상윤의 몸밖으로 페니스를 빼어냈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아파...... 윽"
드디어 상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질러댔다. 그러나 영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메트 위에 있는 상윤의 몸은 망가진 인형처럼 정신없이 흔들렸다.
"하아...... 아윽......"
토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다. 토미 제발. 그러나 그는 마치 짐승처럼 달려든다. 상윤은 죽을 것만 같은 공포로 도망친다. 그러나 토미의 커다란 손은 그의 양 어깨를 내리 누른다.
"아악! 제발......"
긴 시간이었다.
영호는 한참만에 상윤의 머리를 잡아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상윤은 가물가물해지던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감고 있는 상윤의 두 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손을 묶고 있던 넥타이와 벨트를 풀렀다.
상윤이 오래된 공포와 고통스러운 기억 속을 헤메며 두 손에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손목에 묶였던 자국은 찢겨져서 붉게 피가 베어나와 있었다.
상윤은 두 손이 풀린 후에도 손을 앞으로 모으고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태아와 같은 모습이었다.
"좋아, 이것으로 계약은 성립됐다."
영호는 옷을 집어들다가 상윤의 신음같은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추워......"
상윤은 몸을 더욱 웅크렸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영호는 상윤에게 다가가 천천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등뒤에서 상윤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제까지 쾌락과 흥분하던 감정과는 다른 것이 전달되어왔다.
따뜻함. 편안함. 그리움...
영호는 두 사람이 살을 맞대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은 쾌락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품안에서 떨고 있는 그 몸을 느끼자 어쩐지 슬픔 같은 것이 밀려들어왔다.
"빠른 시일 내에 집을 알아봐 줄테니 옮기도록 하고 학교도 옮기는 것이...... 아니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 네 성적이면 검정고시로 졸업해도 충분할 테니까. 그리고 너와 계속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은 네가 하고 싶어하는 공부도 하게 해주지. 이미 외국어 학원에도 등록해 놓았어. 하지만 누구하고도 친해지는 것은 금지다."
"훗...,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영호는 상윤에게 몸을 일으키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욕실문은 반투명 유리로 되어있어 욕실 불빛에 방안이 조금전보다 밝아졌다. 문 뒤로 영호의 탄탄한 알몸이 비쳐보였다.
상윤은 계속해서 몸이 떨려왔다. 죽을 것만 같은 추위. 시트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태경...... 상윤은 지금 왜 그 이름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태경아, 지금 네가 필요해. 나를 안아 줘. 추워......
어디선가 삐그덕거리며 문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그 앞에 태경이 서있었다. 상윤은 아무래도 지독한 병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를 너무나 보고 싶어한 나머지 환영을 본 것이라고.
그런데 태경의 모습은 움직이고 있었다. 태경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
상윤은 그때서야 그것이 환영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태경...? 무슨 일이야!
태경은 당황스러움과 난처함등 수십가지의 복잡한 생각을 한꺼번에 담은 듯한 얼굴로 상윤의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상윤도 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흐트러진 침대와 그의 팔을 묶었던 넥타이, 주위에 널린 옷가지들, 그리고 유리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이는 영호의 뒷모습. 상윤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이 아득해져왔다.
"......내가 때를 잘 못 맞춘 거 같구나"
태경은 황급히 몸을 돌려 문을 나갔다. 상윤도 그를 따라 뛰어나갔다. 몸에 전달되는 통증 따위는 이미 상관없었다. 감겨있던 시트가 흘러내려 그는 알몸으로 쫒아갔다.
"태경, 태경아!"
태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던 상윤은 문득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지?'
뛰어가서 잡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태경이 본 것은 오해가 아니었으니. 그가 매형이 될 사람인 영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았다.
상윤은 계단 난간 사이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싸늘한 금속 특유의 질감이 느껴졌다.
"킥......, 바보같이. 킥킥......"
입술사이로 웃음이 비져 나왔다. 역시 너무 많이 가까워진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정상적이고 보통의 학생인 그 경계에서만 만났더라면 분명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었을텐데.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누구나 이런 모습을 보게되면 떠나갈 것은 분명한 것인데.
설마 그가 이해해주길 바란 걸까? 그가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여기까지 견뎌오느라 힘들었겠다며 토닥여주길 기대한 것일까? 바보같이.
상윤이 느린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오자 샤워를 마친 영호가 서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집었다. 그리고 시트가 흘러내려 알몸이 된 상윤에게 걸쳐주었다.
"봤겠지? 이것이 보통의 인간들이야. 너는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혼란만 줄꺼야."
상윤은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무 것에도 초점이 닿아있지 않았다.
"돌아가요."
메마르고 잠겨있는 목소리였다. 어쩌면 꺼질 듯 힘겹게도 들리기도 했다.
영호는 처음 왔던 때와 같이 말쑥한 옷차림을 하고서 상윤의 집을 나갔다. 쿵, 하고 나직한 문소리가 들리자 상윤은 무너지듯이 자리에 주저 않았다.
'또 이렇게 끝난건가?'
두 손으로 바닥에 뒹굴고 있는 시트를 끌어당겼다. 시트를 움켜쥔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시트를 끌어당겨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고개가 바닥으로 쳐밖힌다.
"우욱......"
짧은 소리가 새어나오고 그리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시트를 적셨다.
"......"
그는 소리내지 않고 우는 법에 익숙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법은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