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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2. 질투 (2/9)

STEP 2. 질투

영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애무해 드리겠어요......"

수화기를 통해 상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가에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감미롭고 자극적이었다. 

"좋아......."

영호는 눈을 감고 상윤이 자신의 다리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강아지처럼 몸을 핥고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만족스러웠다. 

그는 두 손으로 미끈한 상윤의 다리를 들어올리고 몸을 밀어 넣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불만족스러웠다. 뭐지? 뭣 때문이지?

딩동!

그때 호텔의 초인종이 울렸다. 

"좋아, 그만." 

영호는 바지를 추려입고 호텔 문을 열었다. 화장이 진하지 않은 늘씬한 미녀가 서있었다. 오늘 낮에 주관했던 패션쇼에 나왔던 모델이었다.

그녀는 다소곳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요조숙녀라도 되는 듯한 몸가짐이었다. 영호가 천박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여자는 수줍게 옷을 벗었다. 영호는 속옷차림이 된 여자를 바라보았다. 슬리브 하나만을 걸친 여자는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좀 전에 그가 상윤을 상대로 상상했던 것처럼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페니스가 반응하자 영호는 여자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아......"

여자가 몸을 젖히며 교성을 질렀다. 격렬한 운동을 하던 영호는 자신이 무엇에 불만족했던 것인지를 깨달았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이 상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움직임에 터질 듯한 신음을 질러대는, 흥분으로 매달리는 상윤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자도 다른 남자도 아닌 바로 상윤 그 자체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녀석이 직업적 연기로 흥분된 모습을 보이더라도 바로 그 녀석을 안고 싶은 것이다. 상윤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네가 아니면 안돼는데 너는?' 

문득 조금전 상윤의 친구라는 녀석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상윤은 녀석과 어떤 사이지? 내가 지금 너의 생각을 하는 동안에 너는 설마 그 녀석과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영호의 머릿속에는 상윤이 얼굴도 모르는 녀석과 하고있을 행동들이 떠올랐다. 그녀석이 상윤의 아름다운 몸을 만지고 짓누르고. 

그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또한 상윤이 자기가 아닌 다른 녀석과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정말 그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너는 내가 산 나의 것이란 말이야!'

"까악!"

영호는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여자를 침대 밖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허공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편의점 계단 앞에 앉은 태경은 전화 통화를 하는 상윤을 보았다. 돌아서 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긴장한 모습이었다. 

선생님이라면 전학 오기 전 학교 선생님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학원 선생이나 과외선생인가? 오늘 영어시간에 유창하게 영어책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과외를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것도 분명 외국인 강사에게. 

태경이 이 생각 저 생각하는 동안 통화를 끝낸 상윤이 다가왔다. 어이없게도 그는 통화를 끝냈을 뿐인데 얼굴에 상당한 피곤이 몰려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혹시 에너지가 바닥나서 그런 거 아니야? 라면하나 때리고 갈까?"

태경의 쾌활한 목소리에 상윤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야?'

그 미소에 태경은 왠지 가슴 한 곳이 뜨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편의점에서 나온 그들은 CD를 사고 상윤도 얼떨결에 태경의 추천으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라는 이름이 긴 그룹의 시디를 한 장 사왔다. 그리고 태경의 성화에 못이겨 새로 나온 스티커 자판기로 사진도 찍었다. 

파노라마로 여러 개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마를 나란히 맞대고 찍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태경이 머리로 상윤을 밀어내며 화면을 차지하려자 상윤도 머리로태경을 밀어내다가 둘 다 웃어버린 장면이었다.

상윤은 처음이었다. 친구와 함께 이런 사진을 찍게 된 것은. 

태경은 대뜸 상윤에게 다이어리를 꺼내보라고 했다. 상윤은 고객 연락처가 빽빽하게 적힌 다이어리를 주저하며 꺼냈다. 그러자 태경은 제일 앞의 인덱스의 한가운데에 스티커를 붙여준 후 자기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 고녀석 참 잘생겼다."

그리고 가방을 뒤지더니 볼펜을 꺼냈다. 

"참, 내 연락처 적어줄게"

그러면서 상윤의 다이어리를 넘겼다. 팔락이며 다이어리가 펼쳐지자 새까맣게 적힌 메모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윤은 황급히 다이어리를 빼앗았다. 

"우와, 너 웬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태경은 의아한 눈으로 다이어리를 쳐다보았으나 상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연락처 불러 줘 적을게"

연락처를 불러준 태경은 이번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적을 준비를 했다. 

"네 것도 불러 줘."

"집은 거의 비어있을 거야"

"핸드폰 있잖아. 그거"

태경은 상윤의 핸드폰을 가리키며 웃고 있었다. 상윤은 망설였다. 핸드폰은 고객으로부터 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도록 클럽에서 개설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형 꺼라서 가르쳐 줄 수 없고...... 상윤은 이렇게 거짓말을 하려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다시 넘어갔다. 대신 볼펜으로 그의 손바닥에 핸드폰 번호를 적고 있었다. 

"으아아......, 하하하...... 간지러...... 하하......"

태경은 볼펜이 닿는 느낌이 간지럽다며 몸을 비비꼬며 웃었다. 상윤은 그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았다. 청량하고 따듯하고 때묻지 않은. 상윤과는 어쩐지 거리가 먼 것 같은 웃음소리였다. 

이러고 있으니 정말 또래의 평범한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 친구와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들며, 다소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치기어려 보이기도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 

지금으로서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니, 여기까지가 가장 적당했다. 이 이상 가까와지면 상처받을 수 있는 거리가 된다. 

"참, 너 내일 방과후에 시간 있어?"

"방과후에...... 왜?"

"라이브 연주하는 카페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가보면 라이브에 참 맛을 알게 될꺼야."

상윤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어느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호는 모레 토요일 오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괜찮을 거 같아."

* * *

상윤은 집으로 돌아온 후 스티커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희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태경. 웃는 모습이 해맑았다. 한번도 고생이나 고민을 해봤을 것 같지 않은 얼굴이었다. 

태경의 옆에서 덩달아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이렇게 환하게 웃는 자기의 얼굴이 낯설어 보였다. 이건 정말 친한 친구사이로 보일 정도였다.

친구.......

'마지막으로 웃었던 것은 언제였지?'

상윤은 거울 앞에서 입을 벌리고 웃는 시늉을 해봤다. 좀 전과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싱거웠다. 

상윤은 과거 사귀었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모두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열고 생활의 일면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모두 괴물 보듯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끝까지 가면을 벗으면 안돼' 

하지만 상윤은 이렇게 살아온 삶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의 직업은 이 나이에 자신의 힘으로 어엿하게 독립을 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RRRR......

핸드폰이 울려왔다. 영호였다.

"출장 일정이 예정보다 앞당겨 졌다. 내일 오후 회사 앞으로 나와."

"내일은......."

상윤은 조금전 태경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였다. 일을 놓아두고 그 약속을 떠올리다니 자신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다른 고객을 만나기로 했나?"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삼개월간 네 오후의 모든 시간을 산거야. 언제 어느 때 부르더라도 달려와야 하는 건 물론이고 그동안 다른 고객들과는 일체 만나지 말라고 한 걸로 아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녀석 때문인가?"

"누구 말입니까?"

"아까 그 비린내 나는 녀석."

"아닙니다."

수화기 속에서는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내일 6시 30분까지 회사앞이다."

영호는 명령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3개월....... 계약기간이 끝나려면 이제 보름이 남았다. 상윤은 그동안 잘 참아왔다. 이제 보름후면 계약한 잔금을 받게 된다. 그러면 상윤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약간의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충당하고 공부를 하며 밤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영호는 거슬려서는 안돼는 중요 고객이다. 

상윤은 다이어리에 적힌 태경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핸드폰의 다이얼을 눌렀다. 내일의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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