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미안해... 도이야....”
“…….”
“꼭 복수 해 주고 싶었는데....
도민환 그 자식... 그렇게 보낸 거... 억울하지 않게 해 주고 싶었는데...
나... 나.. 그거 못 했어.....”
자신 없는 목소리.
늘 당당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자신 없는 목소리에 도이는 가슴이 메어왔다.
“네 눈에서 흘린 눈물만큼, 그 자식 눈에서도 피눈물 흘리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근데.... 내가 너무 부족해서... 내가 너무 못나서... 나 그렇게 하지 못 했어....”
도이는 성민의 두 눈을, 항상 예쁘게 웃던 그 눈을 보고 싶었지만
성민은 도이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는 저 아래 발끝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왜... 그랬어... 왜....”
띄엄띄엄 물어 오는 도이의 질문이 무척이나 슬프게 들린다.
“바보 같이... 상처만.. 잔뜩.. 만들고...”
“…….”
“...정말 바보 같이... 상처만 잔뜩 만들고....”
도이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뭐라 말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아팠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거야... 도대체 왜....”
주최 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고스란히 흘리면서 도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성민의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원망이 가득 담긴, 걱정이 가득담긴 행동이었지만
너무나 가슴이 아프게도 아무런 힘이 없는 솜방망이 질에 지나지 않았다.
“네가 이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도대체 나더러 어떡하라고!”
“…….”
“이제는 더 흘릴 눈물도 없는데... 이제는 더 놀랄 일도 없는데..
..이제는... 이제는... 더 잃을 것도 없는데....”
“…….”
“너 까지 잃어버리면... 너 까지...
이제... 이제 하나 남은... 너.. 까지.. 잃어버리면....
..그럼.. 나.. 어떡..하라고... 나.. 어...떡...하라고....”
주최 할 수 없는 슬픔에, 너무나 안타까운 성민의 모습에 서럽게 울어대는 도이였다.
성민은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도이를 울리고자 벌인 일은 아니었는데.
도이를 울리려고 태민을 찾아갔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저 마음이 원해서,
황당하고 전혀 얘기치 못한 말을 했음에도 밉지 않은 민환을 위해서 자초한 일인데...
그 일이 이렇듯 도이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을 원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 잃어.... 나를 왜 잃어... 바보야...”
“…….”
“나, 이렇게 여기 있는데. 이렇게 멀정하게 여기 서 있는데....
네 눈앞에 서 있는데....
뻔뻔하게도... 이렇게 네 눈앞에 서 있는데...
또... 널 울리고 말았는데...”
“...흐읍....”
“설사 네가 날 버려도.... 난.. 어디 안가... 너 두고... 절대 어디 안 간다고.....”
“흐엉....”
“울지 마. 네가 울면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아....”
성민은 도이의 작은 어깨를 와락 끓어 않았다.
그리고는 놓칠세라 도이의 몸을 감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수많은 시선들이나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어떤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도이에게는 성민이 중요했고,
성민에게는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려주는 도이가 중요했다.
“너 마저 잃는 줄 알았어....
민환이 그렇게 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민환이 민주한테 보낸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너 마저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바보같이... 내가 뭐가 좋다고... 내가 뭐 잘난 게 있다고...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데...
근데 넌 왜... 왜... 나 때문에....
날 왜 이렇게 미안하게 만드는거야......”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말....”
“진심이 아니었어.... 그 때 그 말... 진심이 아니었어.... 미안... 해....”
성민의 가슴 안에서 도이는 지난 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이제는 정말 성민마저 곁에 없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은 현실에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자신을 위해, 도이가 흘린 눈물만큼 피눈물을 흘리게 해 주고 싶었다는 그 말 한마디에
성민이라면 유민과의 일 보다 더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는 성민마저 곁에 없다면 정말이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하루하루가 악몽의 연속일 것만 같았다.
어차피 한번은 이기적이어야 한다면.
어차피 간사하고 이기적인 것이 인간이라면
차라리 도이는 닥쳐올 앞날에 지례 겁을 먹기 전에
성민의 손을 잡고 싸워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남들의 시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진다.
이제까지는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이 무척이나 후회가 되었다.
“.사랑.... 한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성민.
정말 큰 아픔이 있었지만 큰 시련이 있었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되돌아온 자신의 사랑.
다시 지켜 줄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 성민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나도... 나도... 성민아.....”
여전히 흐르는 눈물은 더 이상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다시 확인한 사랑으로 인한, 다시 찾은 사랑으로 인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성민은 도이를 않고 있는 팔에 힘을 더해 더 큰 사랑으로 도이를 감싸 않았고
도이는 자신을 감싼 성민의 따뜻한 품에서 맘껏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말이야....”
“응?”
“정말 다음 생에서 도민환 그 자식이랑 만 날거야?”
한껏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잠시,
눈가가 촉촉이 젖은 성민이 도이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어?”
“다음 생에 나 안 만나고 그 자식이랑 연애 할 거냐고.”
웃기게도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전과 같은 모습에서 투덜거리는 성민의 모습.
도이는 뚝, 눈물이 멈췄고 대신에 부드럽고 기분 좋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니, 너 만날래.”
“정말?”
“응. 정말....”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이 난다지만 -_-;;
도이는 오랜만에 성민의 품에서 환한 웃음을 되찾았다.
“민환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이제는... 민환이보다... 네가 더 중요하니까....”
“…….”
“이제는 네가 내 전부니까.....”
너무나 달콤한 말에 성민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자리 잡는다.
“사랑한다.... 죽을.. 만큼.....”
★epilogue.
아직도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해.
참 맑게 웃던 네 얼굴. 당차고 보기 좋은 네 모습.
넌 그렇게 내 앞에 나탔어.
거짓말처럼, 마술처럼 짠! 하고 말이야.
크고 작은 일들이 빈번했던 내 옆에 늘 있어줬던 너.
늘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설레게 했었던 너.
하루라도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 안달이 났던 너.
늘 곁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네 소중함을 몰랐는데,
어느 날 문득 돌아간 시선에 보이지 않았던 네 모습에 난 울고 말았어.
민주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고,
내 모든 고민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들어주었던 그 날의 모습.
그 모든 게 아직도 생생해.
유민오빠를 등지고 너에게로 향하던 날,
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몰라.
늘 아침이면 먼 거리까지 나를 마중 나오는 너.
너무나 부족한 나를, 보잘것없는 나를
친구들 앞에서, 부모님 앞에 당당하게 소개시켜줬던 그 모든 날들.
생각 없이 모질게 내 뱉은 내 말과 행동을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는 너
그저 조용히 나를 기다려 준 너.
갑자기 찾아온 민환이와의 이별 앞에서
내 눈물 때문에 위험을 자초한 바보 같은 너.
그리고 그런 너를 너무나 많이 사랑하는 나.
성민아....
바보같이 이제야 문득 돌아보니
넌 처음부터 내 옆에 쭉 있었던 것 같아.
한시도 빠짐없이 말이야.....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