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도이는 병원 영안실 쪽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을 연거푸 얼굴에 가져다 댔다.
온 종일 쏟은 눈물은 한 일이 년 치 쏟을 양을 다 쏟아 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았지만 좀처럼 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요즘은 왜 인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흑... 흐읍.....”
마르지 않는 눈물은 계속해서 도이를 괴롭힌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이미 몇 차례 경험을 한
영원한 이별 앞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무너지고 만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표현은 하지 못했어도...
아니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었어도... 사실은 도이의 첫사랑이었는데...
민환이 바로 도이의 첫 사랑이었었는데....
죽음 앞에서, 영원한 이별 앞에서 사실은 나도 너를 사랑했었다고 말 한 민환.
그 녀석이 너무나 밉다.
그렇게 바라 봐 주길 바랐을 때는 바라봐 주지도 않았으면서....
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 하래놓고는...
막상 본인이 이렇게 눈물, 콧물을 쏙 빼 놓다니....
민환도 도이를 좋아했으면서
다른 남자 옆에 서는 도이를 한번도 막아주지 않았던 모진 녀석.
오로지 도민주만 아는 멍청한 녀석. 바보 같은 녀석.
속으로는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잘 되라고
다리를 놓아주었던 녀석.
아아.... 도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녀석의 그 배려.... 아니, 바보 같은 짓을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이제 와서 이렇게 무작정 그런 어마어마한 말을 터트려 놓고,
일만 처 놓고 뒷수습은 모두 도이에게 떠맡기고 무책임하게 떠나가 버리면
도대체 어찌 하라는 말인가.
도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울어서 기운이 빠져 아팠고.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팠고.
너무나 복잡한 일들을 한꺼번에 던져놓고 간 민환으로 인해 머리가 아팠다.
그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자신의 마음이 어떤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머리가 아팠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듣고 난 후에,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제는 민환보다 성민으로 인해 가슴이 아픈 자신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아팠다.
마음이 아프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만 같았다. 생의 최악의 고통이었다.
“도이야, 도이야!!”
거짓이 없는 거울.
모든 것을 그대로, 꾸밈없이 고스란히 빨아들여 때로는 더욱 슬프게 하는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거울 속에서 우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 내는데,
문 쪽으로부터 다급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다희였다.
“큰일 났어!”
다짜고짜 크게 외치는 다희.
이제는 놀랄 것도 없는 것 같은 도이에게
또 한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만 같은 소리를 내 뱉는다.
“큰일이라니?”
“싸움 났대! 싸움!”
“그게 무슨 소리야?”
“성민이가, 성민이가....”
“뭐? 성민이?”
“민환이 그렇게 보낸 사람 찾아갔나봐. 민환이 대신 복수한다고 찾아갔나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상준오빠도 갑자기 사라졌고, 태영이랑 성택이도
이상한 전화 받고 막 어디론가 뛰어갔어.”
“어디로? 어디로 갔다는 거야?”
거짓말 같이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뚝 그쳤다.
“그게, 잘은 모르겠는데..... 어디 경찰서라고 그랬던 것 같아.....”
“뭐? 겨, 경찰서?”
.
.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태민의 아지트에서 가까운 강북구의 한 경찰서.
그 안은 때 아닌 집단 싸움으로 인해 여기저기 멍투성이인, 피투성이인 아이들이 가득 찼다.
한가로웠지만 갑자기 분주해져버린 경찰서. 그 안에서 꼼짝없이 취조를 받는 아이들.
제일 중심축이 되어버린 성민과 상준. 그리고 태민.
그 중에서도 유난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성민은,
멀찌감치 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딱딱한 언성에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꽤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조용히 돈 봉투를 내미는 아버지의 비서. 그리고 재빨리 그 봉투를 챙기는 경찰관.
정말이지 성민의 표현대로 하자면 씨빠빠 같은 상황이었다.
타닥타닥, 자판기 두들기는 소리와 탁탁탁,
얇은 일지 같은 것을 들고 책상 따위를 두들기는 소리가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
간간히 욕설을 내 뱉는 경찰관들도 꽤 보인다.
“못 난 놈.”
한참, 그 경찰관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가온 아버지.
권 회장은 망설임 없이 성민의 따귀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짜악― 하는 살과 살이 닿아 만들어 낸 마찰음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경찰서 내에 가득 울려 퍼졌다.
시끌벅적했던 경찰서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당장 짐 싸! 당장 외국으로 나가 버려! 이 자식아!”
무척이나 화가 난 듯한 권회장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성민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다못해 죄송합니다, 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꼭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두 눈엔 초점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였다.
그 모든 모습들이 권회장의 화를 부추겼다.
짜악― 화가 난 아버지의 손이 또 한번 성민의 뺨을 내리쳤다.
약하디 약한 피부에서 실핏줄이 터져나가고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금세 푸른 멍이 자리 잡았다.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경찰서 안에 있던 몇몇의 경찰관과
그를 따라온 비서가 잔뜩 흥분한 권회장을 만류 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이지 네 놈은 내 피를 말리는 구나! 도대체 뭐가, 뭐가 그리 부족하다고!!”
“…….”
“못 난 놈! 썩어빠진 놈!”
“…….”
짧고 굵은 한숨을 토해낸 권회장은 여간 골치가 아팠는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비서가 끌어다 준 의자에 앉아 연신 거친 호흡을 내 쉬었다.
좀처럼 어찌 할 수 없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고자 함 인 듯 보인다.
성민은 차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아버지 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무척이나 속상해 하는 아버지,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아버지에게
시선을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를 외면한다고 돌려버린 시선이,
죽어도 이런 모습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한 인형을 가져다주었다.
안쓰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리고 이 안의 상황으로 인해 제법 놀란 듯한 다희의 옆에 있는 한 인형.
작은 체구로, 몇 시간 사이에 더 헬쑥해저 버린 듯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음에도 또 눈물을 흘리는 도이가
저기, 입구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민아.....”
퉁퉁 부운 눈으로, 퉁퉁 부은 얼굴로,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도이.
성민은 정말이치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지금이 너무나 싫었다.
잔뜩 피로 얼룩진 자신의 옷이. 잔뜩 생채기가 생겨난 얼굴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차라리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도이를 외면하고 말았다.
하지만 도이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성민의 눈을 마주했다.
상처 난 그 하얀 얼굴에 조심히 손을 가져가 본다.
“...이..게...뭐야... 얼굴이... 이게... 뭐..야.....”
자신을 바라보는 근심 가득한 눈동자. 근심 가득한 음성.
눈물은 삼키는 소리로 간신히 말을 하는 도이를 보니,
성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미안...해.....”
취조를 할 때에도, 잔뜩 화가 난 아버지 앞에서도 열릴 줄 모르던 성민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