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병원을 나온 성민은 곧장 아지트로 향했다.
밤새 성민을 기다렸는지, 아지트에 모여 있던 많은 아이들이
성민의 모습에 이것저것 질문을 던질 기세로 달려들지만,
너무나 복잡해 보이는 그를 보며 들썩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일이야?”
조심히 백송이 물어왔지만 성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착잡했다.
도대체 눈앞에 벌어진 이 웃지도, 울지도,
그렇다고 화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늘 함께 해오던 송이나 진오처럼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던 민환.
늘 도이와의 관련된 일에서,
하다못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 되던 순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민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너무나 쉽게 친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던 한 녀석.
그 녀석의 죽음.
잠시 방심한 사이에 일어났던 그 녀석과의 이별.
생전 처음으로 가져보게 된 슬픔이라는 감정. 누구를 잃는 것에 대한 아픔을 전해준 녀석.
그런데 그 녀석이, 다름 아닌 그 녀석이 자신의 여자인,
자신의 단 하나의 사랑인 도이를 사랑했었다니....
“하아....”
“…….”
“씨빠빠..... 뭐가 이렇게 엿 같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가운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근처에 있던 어떤 정체 모를 물건을
뻥 걷어차는 성민이었다.
분명 화가 나는 것 같지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화가 나는 그 양보다 슬픔이 느껴지는 양이 월등히 앞서니 갑갑하기만 할 뿐이었다.
.
.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찬 가운데 민환의 장래식이 시작되었다.
꽤 많은 친구들이 떠나가는 민환의 먼 길을 배웅 나왔고 그를 위해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처음 만남부터가 범상치 않았던 백송.
무척이나 민환을 싫어했었던 것만 같은 백송.
그리고 민환의 존재를 별로 탐탁지 않아했던 듯 보이는 진오까지도,
두 눈가에 촉촉이 물기가 어린 모습으로 그를 배웅 나왔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아직도 전화를 걸으면, 교문 앞에서 떡 하니 서 있으면...
늘 그랬던 모습 그 대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데.....
어디서 듣도 못한, 쌍쌍바라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면서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을 것만 같은데.....
얘기치 못했던 상황으로 실소를 터트리게 할 것도 같은데.........
너무나 생생하기만 한 민환과의 추억이 더 이상은
과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이야기 일 뿐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더 이상은 온기가 존재하지 않는 시신을 보면서도, 도무지 믿어질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은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
.
하늘도 민환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칠흑같이 검고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따뜻했던 온기가 이제는 전혀 남아있지 않을 민환의 시신을 보며
함께 슬퍼하는 것만 같은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밤은 점점 밤은 깊어만 간다.
“진오야......”
“응. 성민아.”
“애들.. 모아라....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것 같다...”
“....알았다.”
혼란스러웠던 오전과는 달리, 민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 이외에도,
얘기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던,
그래서 한 없이 복잡하기만 했던 오전과는 달리 많이 진정이 된 성민은
아주 나지막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오는 딱히, 어딜 간다는 것인지, 도대체 애들은 왜 부르는 것인지,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성민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었다.
진오는 서둘러 주변에 있는 몇몇 아이들에게 뭐라뭐라 행동을 지시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글의 모든 멤버들이 성민의 앞으로 집합했다.
“이 길로 나는 나태민을 만나러 간다. 어제의 그 장소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러 간다.”
완강한 의사가 담겨있는 성민의 말에 주변이 고요했다.
“그 밤이 데리고 간 한 생명. 그 밤이 맞이한 최후가...
너희들에게도 찾아올까 두렵다면 남아도 좋다....
아주 조금도, 그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소리칠 수 있는 놈들만 따라와라....”
뭐라, 그 어느 누구도 한마디의 말을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들의 움직임이나 뜻은 묻지도 않고 독단적인 의견을 던진 후에,
성민은 바이크 안장에 올라탔다. 그리고 어제의 그 곳으로 향한다.
강북구....
도민환이라는 한 사내아이의 목숨을 너무나 쉽게 앗아간 라이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멀어져가는 성민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그 자리에 남겠다고 생각 한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성민의 아픈 마음을 이해라도 하는 것인지...
그가 가는 길을 그대로 뒤따른다.
.
.
성민이 도착 했을 때, 그 곳에는 하루 전,
상준의 지시를 받고 그들을 지키는 녀석들이 제일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태민 정도라면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밀 처내고 자리를 떴을 수도 있는데,
충분히 그런 힘이 그에겐 있는데....
태민은 오늘 새벽의 그 모습 그대로 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일까..... 분명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을 알면서 왜 남아있던 것일까...
그 시간쯤이라면 충분히 어디론가 몸을 피해도,
혹은 다른 곳에서 여유를 즐겨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을 텐데........
“비켜....”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천천히 태민에게 다가가는 성민.
그런 성민의 앞길을 누군가가 가로막는다.
“라이더 구역에 이글이 왜 얼쩡거리는 거냐?”
외려 어느 간 큰놈은 성민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지껄였다.
“그건 네가 상관 할 바는 아닌 걸로 아는데.”
“아니, 그렇지 않아.”
“별로 네 놈과는 말씨름 하고 싶지 않다고.
피 보고 싶지 않다면 이쯤에서 조용히 찌그려져! 인마!!”
성민은 제법 빠른 속력으로 다리를 뻗어 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막았던 녀석의 면상에 그 다리를 보기 좋게 꽃아 넣었다.
으윽.... 짧은 신음을 내 뱉으며 녀석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적어도 나란 놈은, 내 친구를 잃고선 가만있을 수가 없단 말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음성을 녀석을 향해 쏘아붙이는 성민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가운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좀처럼 읽을 수 없는 표정의 나태민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그러나 이번에도 성민을 막아오는 그 놈. 문제의 그 놈!
“친구? 핫, 웃기시는 군.”
“…….”
“이글의 초대 총장 권성민.... 네 놈의 성질은 어지간해서 모르는 놈이 없지...
그래. 더군다나 우리 라이더 쪽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
“하지만 네 뭣같은 성질이면 이 일이 해결 되는 줄 알아?
착각 하지 마!
누군 뭐 성질이 없어서 이렇듯 가만히, 저 원수 같은 놈을 지키고 있는 줄 알아?!”
그 녀석은 눈에 불을 켜고 성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제법 가볍게 성민의 멱살을 쥐어 잡고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며 말했다.
진오나 송을 비롯하여 몇 명의 녀석들이 놈의 행동을 불쾌히 여기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보였지만
성민은 그런 친구들의 행동을 가벼운 손짓 하나로 제지했다.
“친구라고 그랬냐? 그래 친구. 좋지. 참 좋은 말이지...
하지만, 네 놈한테는 도민환이 고작 친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는 그 이상이었어!
알아?! 친구이자 가족이고 또한 우상이었다고!”
“…….”
“저 버러지 같은 놈만 정리되고 나면, 상준 형이 원하는 대로,
상준 형의 지시대로 저 버러지 같은 놈만 정리 되고 나면 말이 4기지,
본래 3기 총장자리에 앉을 사람이었다고!!
우리의 우두머리가 될 인제였다고!! 알아?!”
제법 슬프게 와 닿는 녀석의 말을 들으며 성민은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도민환이라는 녀석의 존재가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것 보다
어느 순간부턴가 물기가 스며들 듯 자연스레 스며들어
도무지 미워하려야 미워 할 수가 없는 놈의 존재에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이런 감정은 정말이지 느껴보지 못할 것 같았는데...
도이의 독단적인 이별선언 앞에서도 다시 그녀를 찾아올 거라며
절망적인 생각 대신 항상 다시 밝아질 앞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작은 아픔을 달래 오던 성민인데,
민환의 존재로 인해 이토록 지독한 아픔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왜 인지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러니까.. 내가... 저 자식을 처단해 주겠다잖아!
넌 네 우상이라고 말하는 놈을, 가족이라고 말하는 놈을 혼자 보내고 싶냐? 응? 그래?”
순간 불끈하게 하는, 놈을 자극하는 성민의 말에 녀석은 자극을 받기보다
오히려 콧방귀를 껴댔다.
그러나 성민은 아주 정확한 각도와 힘으로 비소를 흘리는 놈의 면상을 한껏 갈겨주었다.
아주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인해
그 놈은 저 멀리 바닥을 뒹굴었고 그 사이 성민은 터벅터벅, 나태민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나태민이 자신에게 다가온 성민을 물끄러미 올려 본다.
그리고 이내, 가소롭다는 듯 나지막한 비소를 흘린다.
너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기분 나쁜 비소였다.
초대 라이더 쪽에서는 성민을, 이글을 막으려는 듯 보이지만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민환의 곁에 머물러 있기에
숫자적인 면에서부터 이글이 월등히 앞선다. 그들은 성민을 막지 못했다.
더군다나 송과 진오는 성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 주변을 감싸 돌았다.
몇몇의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도 성민의 가까이에 다가갈 수 없도록...
초대건, 지금의 라이더건....
아무도 다가갈 수 없도록 성민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온몸을 던져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