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86화 (87/91)

86.

상처로 인해 퉁퉁 부운 눈을 가늘게 뜨고 힘겨운 웃음을 지어보이는 민환을 보며

그들은 또 한번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렇게 의식을 회복해 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들의 눈물에, 친구들의 눈물에 뭐라 말은 하지 않지만 같이 눈물을 흘리는 민환.

헌데 어쩐지 그 눈물이 너무도 슬퍼보였다.

“도이야.... 도이야.....”

그런데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말인가?

보통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부모님을 먼저 찾고, 그들을 먼저 안심시킬 테지만

이상하게도 민환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눈에 보이지 않는 도이를 먼저 찾았다.

그에 조금 멀찌감치 에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 민환을 바라보며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내던 도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곁으로 다가와 섰다.

“...나... 여깄어... 여기.. 있어... 민환아....”

참으려던 눈물은, 꾸역꾸역 참아내던 눈물이

민환의 바로 옆에 서자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눈물은 하염없이 터져 나왔다.

“울...지.....마......”

잔뜩 갈라지는, 너무나 희미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그 음성에 도이는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이 느껴졌다.

분명 민환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

비록 다친 몸이긴 하지만, 어디 하나 성할 데가 없는 몸이긴 하지만

이렇듯, 미세하게나마 자신을 봐주며 웃고 있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것일까.....

왜 이리 두려워지는 것일까......

“...울...지...마....신....도........이......”

전에는 한번도 없었던, 누나라는 호칭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민환.

성민이 그랬던 거서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민환이

낯설지만, 단지 말하기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도이였다.

“..몸은... 어...때..? 괜찮아? 많이... 많이... 흑.... 많이... 아..프..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뿌옇게 바래져가는 시선을 억지로 밝게 비추며,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연신 씻어 내리며 도이는 힘겹게 웃음을 지어본다.

“....꼭... 하고... 싶은... 말...이.... 하아......”

“미, 민환아. 왜 그래? 응?”

“...하아.. 괜....찬....아.....”

“힘들면, 힘들면 애기 하지 마.... 너... 아프잖아.... 아프잖아....

그러니까... 다... 나으면... 다... 나으면.....”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어......”

힘겹게 이어지는, 작은 목소리에 도이는 순간 아찔했다.

도무지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민주가... 민주......자꾸만.... 자..꾸..만... 부르는....데....”

“미, 민환아?!”

“...내..가... 잠깐만.....기다리라고.... 그..렇..게....

말.. 했어..... 그래서... 얼른... 얼른... 말 하고... 가....야.... 돼.....”

희미한 웃음을 지울 줄 모르는 민환을 보며 도이는 맥없이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곁에 있던 태영이, 그리고 상준이

힘겨워 하는 도이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민환으로 인해 놀람도 잠시,

위태로워 보이는 도이의 가는 허리를 꽉 움켜잡고는 쓰러지지 않도록 힘이 되어 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어딜 간다는 거야? 왜 민주를... 민주가 왜.....”

하아, 하아, 연신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호흡이 가빠지는 성민을 보면서 모두의 호흡이 가빠진다.

멈추지 않는 도이의 눈물을 보면서, 절망적인 표정의 도이의 얼굴을 보면서

또 다시 눈물바다가 이뤄진다.

기분 좋은 간호사의 말에, 그녀의 언성에

기적이라도 일어났다는 듯 기뻐했던 게 얼마나 됐다고,

민환은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수술이 잘 못 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나같이 이상한 말을 해대는 민환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불안함에 몸서리를 쳤다.

“...미...안....했...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보다 더 작아진 목소리로 민환이 말했다.

모두가 눈물은 흘려도, 차마 볼 수 없는 상황에,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만 같은 절망적인,

한심한 자신들의 모습에 민환에게로부터 등을 보였고,

꾸역꾸역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삼키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민환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지만 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모두가 터져 나오는 울분을 참으며 그 음성 하나하나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탓이다.

“..네...마....음.....뻔....히....알...면....서.....”

“나, 난 괜찮아. 다 지난 일이잖아.

그러니까 그런 말은...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마.... 응?”

“...모른 척...했..던..거.....”

“..제발.... 제..발... 흐엉......”

“근데... 그... 보다.... 더.... 내가.... 하아... 윽.....”

눈물이 멈추지 않는 도이를 보면서 애써 힘겨운 웃음을 띠던 민환의 눈에서도

촉촉한 물기가 흘러내린다.

눈가를 타고 하얀 베게를 흥건히 적신다.

“..하...고... 싶...었...던.... 말...은....”

“하지...마.... 하..지...마.... 민환아.....”

“..........ㅆ...어........”

“..흑....흐읍......”

“....나도.... 널... 사... 하..아.......사...랑..... 했......”

“...하아... 흐읍.....”

간신이 이어지는, 점점 더 힘겨워 보이는 민환의 말에

도이는 잔뜩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곧, 그 표정은 거두어졌다.

그리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은....

너... 보...다... 민...주...를.... 도...민..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널... 널... 지켜.... 줄.... 수...가.... 없...었.......어....”

“…….”

“...미...안....해......”

흐엉...... 너무나 서러운 울분이 토해져 나왔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민환의 말... 고백...

그리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이별 앞에서 도이는 주최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몇 차례, 같은 일을 반복해 왔지만,

이미 숫하게 겪었다면 겼어봤을 일이지만...

반복되는 이별 앞에서는 여전히 나약하고 어리기만 한 도이였다.

“하...지...만.... 하...지...만..... 다...음.... 생...에....는......”

“흐엉.... 흐엉.... 흡... 흐흡.....”

“꼭... 꼭... 내가... 먼저... 널... 찾......아.....갈.....게.......”

“흐엉... 엉.... 엉.....”

“....그... 때...는.... 죽...어...도... 죽...어...도....

...너... 아..프....지.... 않...게.... .내...가... .지...켜.......ㅈ.........”

“미, 민환아!!”

“...하......아.......”

“미, 민환아!”

“...하....아... 약... 속... 해.......줘............”

“..흡... 흐읍..... 민환아..........”

“다...음... 생... 에...선.... 꼭... 내...게... 기..회...를... 주..겠...다...고....”

“흡.... 흐읍.... 그러지.. 마... 그..러..지.. 마.....”

“..하아......”

“마지막 인 것처럼... 제...발.... 그렇게... 말... 하지... 마......”

“...해.... 줘.... 약... 속.......”

“흐엉... 흡... 엉... 흐엉.....”

“ㅃ....ㅏ.....리.........”

아주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던 민환의 음성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주 작게나마 자신을 바라봐주던 민환의 눈동자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도이는 무척이나 놀랐는지, 두려웠는지, 민환의 몸을 부여잡으면서 말 했다.

아니, 말이 말이지 거의 소리치듯 그렇게 절규했다.

“그럴게... 그럴게... 민환아...!!!!

약속할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아... 다..행.....ㅇ...................”

“미, 민환아.........?”

“……”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지는 민환을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몇몇의 친구들이,

민환의 친구들이 다급하게 의료진을 부르러 갔고,

도이는 쓰러지듯 민환의 침대의 기대 그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그 때, 아주 희미하게 민환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다..음... 생..에..서.. 꼭... 다..시... 만..나...자........”

“…….”

“..그..때는... 이.. 생..에..서.... 못 ..다... 준.... 사..랑...

.... 모...두..... 주.............ㄹ....”

띠띠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차가운 기계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 아주 슬픈 소리가 들려왔다.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앉아버린 도이. 실없이 흘러나오는 웃음.

소리조차 없이 흘러내리는 슬픈 눈물.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백.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맞이한 이별.

도이는 정신이 몽롱했다.

한 없이 밀려드는 슬픔을 주최 하지 못한 채 이제까지 흘린 양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한동안 민환의 침대 주변에 고요한 정직이 흘렀다.

도무지 믿을 수도 없는, 믿겨지지 않는 상황에 모두가 정신을 추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내, 부리나케 달려온 의료진이 서둘러 민환을 살피지만....

이미 손 쓸 수 없는 시신을 안타까워하며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얼굴에 하얀 시트를 덮어버린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어이없는, 기가 막히게 아찔한 현실 속에서

그 곁에 있던 모두가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리며

미친 듯이 웃어재끼다가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한다.

마치 설움을 토해내는 듯한 그들의 통곡 속에서

민환의 시신은 차게 식어져갔고,

멀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의 슬픈 이별 식을,

믿을 수 없는 이별 식을 바라보던 성민만이,

오로지 성민만이 조용히 그 안에서 등을 돌린다.

터벅터벅, 맥 빠진 얼굴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가는 성민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그를 의식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곳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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