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미, 민환아!!”
병원으로 옮겨지고, 민환이 수술실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 가운데 도이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 아끼는 동생임을 알고,
오랫동안 그녀의 곁에 머물렀던 민환임을 알기에 성민이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엉엉... 민환아... 민..환아...”
“도이야...”
온 통 눈물 가득한 얼굴에 울먹울먹 거리는.. 갈라지는 음성으로
민환을 찾는 도이를 성민이 잡아 세웠다.
그리고는 말없이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걱정 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흐엉.....”
“울지 마... 울지 마....”
성민은 가슴이 아팠다.
아연실색할 노릇으로 널브러진, 너무나 당황스러워
차마 뭐라 말 할 수도 없었던 민환의 모습에서 고통을 느꼈던 것보다 더 큰 아픔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좋아하는 한 여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
아무리 사이가 각별하다고는 하나
그 사람 때문에 목 놓아 우는 모습에 기분 좋을 남자는 그 어디도 없을 것이다.
“누나....”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른 태영이 도이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제야 살펴본 주변의, 하나같이 잔뜩 눈물을 흘렸을 법한 몰골의 아이들.
그들에게서 풍겨지는 차가움이나 거친 면 보다
도이는 그들에게서 자신과 같이 존재하는 눈물에 기운이 빠진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누나... 미안..해요... 미안해...
민환이... 그.. 자식... 그렇게.. 둬서... 미안..해요....”
잔뜩 목이 메인 소리로, 힘겹게 울음을 삼키는 갈라지는 소리로 태영이 말했다.
누군가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원하지 않아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게 여자의 심리고 어찌 보면 자연적인 현상인데,
도이의 앞에서 엉엉 목 놓아 울어버리는 수많은 저 인형들.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해 가면서 미안하다고 말 하는 태영이.
도이는 원치 않게 더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을 텐데....
그 때.. 본 강경아.... 그 계집애 소식을....
내가.... 내가... 전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큰...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태영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 자식... 데이트.. 한답..시고...
혼자.. 행..동...할.. 때... 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다른.. 놈..들..이라도... 흐윽....
같이.. 붙여..놨...더라면... 귀..찮..아..해도.. 하아..
그래도... 그래도... 시시때때로.. 전화라도...
하다..못해... 전화...라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일이...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도이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태영이 하는 수차례 끊어지면서도 이어가는 말을 들으며
하염없이 많은 눈물을 쏟아낸다.
좀처럼 추슬러지지 않는 감정에 힘겨워 하면서도 멈추지 않은 눈물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수술은 장시간 지속되었다.
워낙 다친 곳도 많았고 피를 흘린 양도 많았기에 어려워지는 모양이었다.
몇 시간을 지속하여 끊이지 않는 눈물을 쏟아낸 그들도 이제는 지쳤는지,
시끌벅적하던 수술실 앞이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또 긴 시간이 흘러갔다.
동이 틀 무렵에 수술실의 문은 그들을 향해 활짝 열렸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민환의 부모님. 그리고 다희.
모두가 슬픔에 절어 도통 열릴 줄 모르는 수술실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을,
초조하고 불안하고 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건 누가 더고, 누가 덜 하고가 없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반가운 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의사가 전해줬던 소식.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장담 할 수 없는 의식에
마음에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을 전했다.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 상황.
너무나 암담한 상황에 수술실 앞은 또 한번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한참을, 흘려도 흘려도 마를 줄 모르는 눈물을 쏟아붇고 나니
또 다시 감정에 무뎌진 그들은
이제는 수술실 앞이 아닌 응급실 앞에 진을 치고 앉아있었다.
“..오랜만이네.... 나, 기억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담배냄새가 짙게 배인 상준이 천천히 도이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도이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도이의 곁을 떠날 줄 몰랐던 성민은
이 심각한 와중에도 도이로 인해 상준을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상준은 그 눈빛을 아주 가볍게 무시했다.
“기억... 해요.... 은호오빠.. 친구...”
“기억 할 거라고 생각은 못 했는데... 그래도 기억을 해 주니 고맙네...”
“내가 오빠를 기억 못 할 일이 없잖아요....
민주를... 좋아했었던... 오빤데....
나한테... 우리한테... 얼마나 잘 해줬던 오빤데....”
상준이 낮게 웃었다. 쓴 웃음이었다.
성민은 왜인지,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거론하며
쓴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빠져줘야 할 것 같은 상황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일어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민주가 그렇게 떠나고... 은호가 그렇게 떠나고...
세상이 참 절망적이었어.... 그래서 모든 것이 귀찮고 싫었어....”
“이해.. 해요.....”
“그냥 귀찮다는 이유로만 모든 것을 버렸는데...
그래서 다시 너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민환이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어요.
민주를 잃고 괴로워하는 민환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도이는 또 한차례 눈물을 쏟아내었다.
상준은 제법 가볍게 도이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그런데....
“너... 설마... 아직도?”
멍하게 들려오지만 분명한 도이의 말에 돌연,
잔뜩 놀란 듯한 상준의 음성이 성민의 귓가를 자극했다.
도이는 쓴 웃음을 한번 지어 보이고 고개를 내 저었지만
(성민을 의식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 더욱 더 기분이 나빠지는 성민이다.
“도민환 환자 보호자 분, 누구시죠?”
그 때, 기적을 바라는 그들의 앞으로 간호사가 등장했다.
많은 시선이 한순간 간호사에게 쏠렸고 한껏 운 탓에
잔뜩 목이 가라앉은 민환의 어머니가 부랴부랴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우, 우리 아들. 괜찮아요? 일어났나요? 아무 일 없죠? 아무 이상 없는 거죠? 그런 거죠?”
그 물음에 간호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어요. 아주 기적적인 일이죠.
어서 들어가 보세요. 환자가 가족 분들을 만나고 싶어 해요.”
간호사의 말에 곳곳에서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기쁨, 그 하나의 감정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끼리 얼싸 부등께 않고 기뻐하는 아이들.
민환을 알고 지낸지는 오래됐지만 녀석의 존재 하나에,
안부 하나에 이렇게 함께 울고 웃는 친구들이 많음에 괜스레 뿌듯해지는 도이였다.
그들은 천천히 몇 번이고 나눠서 인사를 하라는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서둘러 민환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너무나 고집스럽고 대책 없는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질 만도 했지만
간호사는 그저 넉넉한 웃음을 보일 뿐, 그들을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꺄호~ 기적이야! 그래, 이건 기적이야! 우리한테도 기적이 찾아온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