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미, 민환아!”
“도민환!”
태민은 꼭 환각을 보는 것만 같음에 그 자리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상준이 보내는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리고 그 때, 상준의 뒤에서 상준과 함께
차갑고 딱딱한 시선을 보내던 태영과 성택이 태민의 발밑에 떡 하니 누워있는,
온 몸에 피 칠을 한 민환을 보게 되었다.
주변에 불빛이라고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작은 가로등 하나가 전부인지라
민환이 쓰러져있던 곳은 대체로 어두웠다.
때문에 곧장 봐야 할 제일 중요한 문제를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포착하게 된 것이다.
태영과 성택은 가히 입이 쩍 벌어질만한 민환의 모습에 경악을 하고 뛰어든다.
아연실색 할 노릇이었다.
다행인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이는 없었다.
아마도 이 모두가 눈앞에 존재하는 상준 때문 일 것이다.
최상준.
느닷없이 나타난 존재.
성택을 통해 민환을 불러들였던 존재.
은호의 절친한 친구였고 아주 오래전부터 민환과의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온 존재.
미안하다는 민환의 말에 약해빠진 소리는 듣기 싫다며 호통을 쳤던 존재.
그는 사실 라이더의 제 2대 총장이었다.
즉, 경오에게 들려주었던 성민의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가물가물했던 그 존재가 최상준.
지금 나태민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저 자란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결론과 확신 하나. 아니, 둘.
라이더의 제 1대 총장은 민주를 데리고 이미 먼 여행을 떠난 백은호라는,
프랑스 이름으로는 엠마뉴엘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던 자라는 사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민환 역시, 라이더의 주 멤버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굳이 밝히자면, 상준이 말 한 제4대의 라이더 총장 자리.
사실 그 자리에 상준은 민환을 생각 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아니 예상보다 꽤나 오랜 시간.
우상이라며 섬기던 선배를 잃고, 사회에서는 불륜이라고 말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던 누나를 잃고 방황을 하며
조용히 그 무리를 떠나버렸던 민환이었지만,
누구보다 그 주먹의 쓸모는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부릉부릉 끼익―
상준이 이곳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또 다른 무리가 어마어마한 굉음을 폭발하며 지표면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헤드라이트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본래 기다리던 성민이 도착 한 것이다.
“나태민!”
끼이익, 거친 소리와 함께 제일 앞에서 달리던 바이크 한대가 아무렇게나 내던져졌다.
동시에 태민을 부르는 거친 음성이 토해져 나왔다.
태민과 상준이 대립된 그 가운데로 성민이 우뚝 섰다.
도착한 성민. 이번에는 성민이 놀랄 차례였다.
경오가 들려줬던 라이더의 2대 총장 최상준.
그가 벌써 이 곳에 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독히도 살벌한 공기가 흐르는 이 곳의 상황.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한 함정일까, 아니면......
“형! 상준 형! 이 새끼, 이상해요! 이 새끼 이상해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이번에는 제법 익숙한 음성이 성민의 귀를 파고들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쓰러져있는 민환과 민환을 부여잡고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태영과 성택에게로....
“...박..태영....? 하.. 성택...?”
“…….”
성민의 존재에 놀라거나 신경 쓸 여유가 지금 그들에게는 없었다.
“숨을.... 숨을 안 쉬어.... 이 새끼가 숨을.. 안.. 쉬고 있어요... 형....”
“뭐, 뭐?”
살짝 민환의 몸을 움직여 보지만 아무런 기척도,
그렇다고 끙 하며 앓는 소리도 없는 민환이 이상한 나머지
태영은 민환의 가슴에 귀를 가져가 보고,
입가에서 느껴지는 호흡을 읽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읽혀지는 것이 없었다.
오싹한 한기가 들어오면서 문득 불안해졌다.
괜스레 눈물이 다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그 둘은 꼭 민환을 잃어버린 것처럼 엉엉,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목을 놓아 울어버렸다.
상준이 민환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움직임과 함께 상준의 주변에 있던 몇 놈들의 움직임도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성택과 태영처럼 어둠에 익숙해져버린 성민은 볼 수 있었다.
성택과 태영의 눈물의 원인을....
“도..민...환....?”
성민의 동공이 급속도로 커져간다.
뭐라, 차마 말 할 수 없는, 눈앞에 벌어진 암담한 상황.
축 늘어져버린 민환의 모습. 코끝을 자극하는 비린 냄새들.
그리고 그 앞에서 통곡을 해대는 낯익은 저 두 인형들. 무척이나 다급해 보이는 상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불안해하는 그들의 모습.
그를 둘러싸고 울어대는 수많은 인형들의 슬픔이 성민에게도 전해졌다.
“도민환... 도민환... 도민환!!”
멍하니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만 있던 성민이 민환에게로 뛰어갔다.
성민의 표정 또한 이루 말 할 수 없이 경직되어 있었다.
“뭐야? 뭐야?! 이 새끼, 이 새끼 왜 이래?”
넓은 공터에 성민의 욕지거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살짝 갈라지는 것이 여간 놀란 게 아닌 모양이다.
또한 성민의 하얀 볼 위에도 어느새 촉촉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진오, 민진오!!”
“어? 어....”
“바이크, 바이크 가져와!! 어서!”
성민은 불안해 할 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머리가 새 하얗게 바래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는 그들과는 달리 재빠른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병원이 시급함을.... 한시가 급함을 인식 한 것이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이제까지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 느껴졌다.
언젠가, 송의 분신이었던 정아의 죽음을 함께 맞이했다 해도,
그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기분. 슬픔.
뭐라 말 할 수 없이 밀려드는 슬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꼭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 마냥 암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성택, 이 새끼, 뭐하는 거야? 이렇게 넋 놓고 보고만 있으면 어떡해?”
성민은 땅 바닥에 주저앉은 체 눈물만 쏟는 성택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업혀! 어서 내 등에 업혀!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고!!”
“…….”
“안 살릴 거야? 도민환 안 살릴 거야? 이대로 내버려 둘 거야?!
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흐르는 눈물을, 북받혀오는 감정을 꾸역꾸역 삼켜가면서 성민이 소리쳤다.
그에 퍼뜩 정신이 든 여럿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성민은 진오가 바로 앞까지 끌고 온 바이크에 바삐 올라탔다.
등에 의식조차 없는 민환을, 그리고 민환을 잡아줄 성택을 싫은 채로.
그리고 그 바이크는 무한질주를 시작했다.
민환을 살리기 위해서..... 한시가 급함에 따라서...
그렇게 성민이 먼저 빠져나가고, 이글이,
그리고 라이더의 2대 멤버들이 하나둘씩 성민을 뒤따른다.
다만,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는데, 그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조각같이.. 아니... 이제는 조각보다 더 차고 섬뜩하게만 느껴지는
시린 시선을 태민에게 고정시켜 놓은 상준이었다.
“나태민.....”
상준의 지독히도 가라앉은 저음의 언성이 태민을 나직하게 불렀다.
“만약에라도 말이다... 만에 하나라도 말이다.....”
“…….”
“도민환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말이지....”
“…….”
“그 때는, 나도, 뒷일을 장담할 수가 없다.”
태민은 좀처럼 복잡한 머릿속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저, 이글의 똘마니중 하나려니 생각 했던 민환이,
아니면 그저 권성민이라는 한 인물의 벗이려니 생각했던 민환이,
어찌하여 제 2대 총장이었던 최상준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지난 날, 자신을 처참하게도 밟아버렸던..
깎아내렸던 그 존재와 관련이 있단 말인가.
또 어찌하여 상준은 민환의 일에 저렇게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세상에 다시 나온 이상, 라이더 제 2대 총장의 명예를 걸고,
라이더 초대 총장의 이름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을 너로 인해 잃었다면,
그 대가는 충분히 치러야 하는 게 바로 이 세계의 법칙이지.”
“…….”
“차기 총장감이 잘못 되는 것을 두 눈뜨고 지켜볼 나도 아니거니와....
아무튼.. 조만간 다시 꼭 보게 될 거다.... 나태민....
각오.. 해 두는 게 좋을거야....”
분명한 뜻을 전달한 상준.
그는 자신의 바이크를 몰고 급히 그 곳을 빠져나갔다. 민환에게로.
물론 마지막 순간,
반쯤 빠져나가고 자신의 곁에 머물던 녀석들을 그 곳에 세워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장담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
더군다나 성택이 한번 언급했던 바대로 민환을 끔찍이도 아끼는
상준이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를, 민환을 그리 만들어뒀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용서 할 수 없는 악행을, 태민은 이미 저질렀다.
그렇기에 당장은 아니지만 상준은 태민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일은, 처음에 태민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단순히 여겼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어찌 수습을 해 볼 수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