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진득이 퍼져나가는 비릿한 피 비린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때 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마치, 죽은 송장마냥 꼼짝도 하지 않는 민환을 보면서
녀석들은 그저 웃고 떠들며 즐길 뿐, 어느 하나 쓰러져버린 민환을 걱정하는 놈이 없었다.
참으로도 독하고 무서운 놈들이었다.
“이로써 피라미 한 마리는 해결 됐군. 축하한다. 나태민.
그렇게 눈에 가시박혀버린 놈을 처단한 일을 말이다.”
늘어질 듯한 몸으로 제법 편안하게 바닥에 털썩 앉은 세준이 기분 좋은 톤으로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실패였어도, 두 번째는 대 성공이군. 그렇지?”
“첫 번째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그래, 그래.”
“자, 그럼 세 번째 타깃을 정해볼까?”
태민 역시 제법 기분이 좋아 보인다.
사람하나를 반병신은 족히 되게끔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서도 말이다.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물론, 일이 잘 풀리는 날 모든 걸 풀어도 좋긴 하겠지만.”
“일이 잘 풀리고, 말고를 떠나 눈에 박힌 가시는 얼른 잡아 빼야 상책이지.”
“그럼 세 번째 타깃은 이미 정해졌겠군.”
곧장 받아치는, 제법 눈치 빠른 세준의 말에 태민이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영섭아.”
“네, 총장!”
“지금 바로 전화 넣어라. 그리고 말해라. 내가 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말이야.
하하하.”
간사한 웃음을 흘리는 태민.
그리고 그의 명령에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영섭이라는 아이.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온통 칠흑 같은 검은 어둠을 자랑하고 있었다.
.
.
성민은 라이더 쪽이 이상하게도 잠잠한 것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오가 전해준 소식.
라이더의 제 2대총장이 다시 얼굴을 내 보일 것이라는 소리에
태민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무언가 대책을 세우는 지도 모른다고....
너무나 단순하게 치부해 버렸다.
한동안 시끌벅적했기에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성민이다.
덩달아 이글 전체가 작지만 편안한 아지트 내에서
한참 여러 가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잠잠하던 성민의 핸드폰이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도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 노래 가사 말이.
“전화 안 받아?”
“모르는 번혼데?”
성민은 별로 받고 싶지 않다는 듯,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그러나 누군지, 집요하게도 몇 차례를 반복하여 걸려오는 탓에
성민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드디어 통화를 시도한다.
“네, 여보세요.”
“권성민, 안녕하신가?”
기분 나쁜 음성. 무언가를 잔뜩 비꼬는 듯한 비린 웃음소리에 성민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야?”
“글쎄, 내가 과연 누굴까?”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탁하고 굵은 목소리가 기분 나쁜 성민은 전화를 끊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전화를 끊을 수 없었던 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을 알고 있는 상대방의 멈출 줄 모르는 비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라면 그다지 이런 일에 일일이 반응하고 날카롭게 굴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일이 엉켜있는 탓에 더욱 끊을 수 없었대도 옳은 말일 것이다.
“뭐, 목숨이 여러 개 되는 모양이지?”
“어이쿠, 무서워라.”
“네놈이 누구인지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만,
그저 이런 실없는 소리나 하자고 전화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는 이리로 와 보면 곧 알게 되겠지.”
“정말이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새끼로군. 어디서 누굴 오라가라....”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지금 나를 협박이라도 하는 거냐? 천하의 권성민을?”
“뭐, 그건 좋을 대로 생각 하라고.”
“용건이 뭐냐? 네 놈의 용건이 뭐야?”
“아아,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그래봤자 피차 좋을 건 없으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는 게 피차, 네 놈한테도 좋을 텐데.”
“후훗. 그 성격은 역시, 소문대로군.”
“본론이나 꺼내, 새꺄!!”
“좋아, 좋아.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래주지. 이봐, 권성민.
지금 내 눈앞에 뭐가 있는 줄 알아?
....그래, 그래. 모르겠지. 그렇다면 특별히, 아주 특별히 알려주지.
아주 기가 막힌 놈이 너부러져있다고. 근데 그 놈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
조금 더 진득한 비소를 날리는 투박한 음성에
성민은 온 미간을 구길 수 있는 최대한으로 구겼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모를 일에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해 본다.
“음....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아직 누군지를 모르는 모양이군.”
“…….”
“저런, 저런~ 혹시라도 이 놈이, 멀쩡히 깨어나게 된다면 참 많이 서운해 할 거야.
그렇지 않아? 자신의 짱이, 자신의 친구가
제가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좋아할 놈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야.”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누굴 데리고 있는 거야?!”
“궁금하면 직접 와서 확인을 해 보라고.
우리의 총장께서도 네 놈을 보고 싶어 하시니까 말이야.”
하하하 웃는 소리와 함께 딸칵, 끊어져버린 전화를 붙잡고 부들부들 떠는 성민이다.
“무슨 전화야?”
“뭐야?”
여기저기서 성민의 행동에 놀라며 질문을 던져왔고,
그들에게 돌아가는 성민의 대답은 참으로 간결하고 또한 분명했다.
“나태민.... 이 씹새끼!!”
.
.
부릉부릉―
넓고도 넓은 공터에 수십 대의 바이크가 가까워진다.
두런두런 앉아서 그저 여유만 즐기던 놈들이 태민의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리고 그들의 발 앞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민환. 그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길이길이 역사의 남을 전쟁이 되겠군.”
숫자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조용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엄청나게 지표면을 뒤흔드는 엔진소리를 느끼며
그들은 예의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피의 전쟁.
단순히 반항을 일삼고 즐기는 청소년들의 집단과
그들 사이의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모하고 등골이 오싹할 만큼 무서운 전쟁을 앞두고서 느긋하게 웃는 그들.
아아.... 저들이 과연 사람이 맞는단 말인가.
끼이익―
기다리던 시간이 무척이나 가깝게 다가왔다.
태민의 지시대로 영섭이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를 끊은 지 고작 오 분도 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영섭은 고의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뭐, 그렇다고 라이더라는 폭주족의 위치를 모를 성민도 아니었지만....
“여, 권성민. 동작 하나는 제법인....”
“나태민.....”
태민은 여유의 미소를 흘리며
친구를 생각하는 그 의리 하나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지만,
그 비웃음이 중간에 소리 소문 없이, 흔적 없이 어둠속으로 묻혀버렸다.
태민의 동공이 급속도로 흔들린다.
덩달아 세준의 동공이 흔들렸고, 수뇌부측에 있는 몇 놈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 너는....!”
저벅저벅 다가오는 그 무리들.
이글이라고, 성민이라고 생각했던 무리 속에서 기다리던,
낯익은 얼굴이 없음에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살기 가득한 시린 눈으로,
마치 조각같이 차갑기만 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저 눈동자. 상준의 저 눈동자.
그 순간 태민은,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 잘못 돌아갔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