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82화 (83/91)

82.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민환은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그래서 태민과의 정면 승부를 겨뤄보고 싶었지만

태민은 뒤에서 느긋하니 팔짱을 괴고 지켜볼 뿐 달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대신에 일곱 명의 떨거지들을 앞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되었다.

“하아... 하아....”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민환은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많은 놈들을 상대하느라고 많이도 지쳐 보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버린 지 오래였다.

가뜩이나 피를 흘리고 난 후에 시작된 싸움이었기에 전적으로 민환이 분리한 입장이다.

더군다나 숫자적으로도 그쪽이 우세한 반면 민환은 오로지 혼자였다.

참으로 치사하고 비열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하아... 하아..... 미치겠네, 정말.....”

가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이쪽에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날아왔고,

저쪽에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다리가 날아왔다.

또 어디선가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결이 고르지 못한 각목이 날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환은 제법 잘 견디고 있었다. 생채기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공격까지 감행하는 건 버거워 보여도 막는 것 하나로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오히려 저쪽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놈들도 더러 있었다.

좀처럼― 이제까지 봐왔던 민환의 모습이 아니다. 너무나 새롭고 놀라운 모습이었다.

도대체 민환은 어떤 놈인지, 이제는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후훗. 제법인 걸?”

멀찌감치 에서 여유롭게 민환을 지켜보는 태민은 자신의 매끈한 턱을 어루만지며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민환이 눈에 차지 않는 짓을 했다 해도 녀석의 솜씨는 제법임에

높이 사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이었다.

라이더의 총장이라는 이름이 따라오는, 나태민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을 건 문제였다.

즉, 제 아무리 민환의 솜씨가 제법임을 인정 한다 해도 좋게 봐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제법 경쾌하고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린다.

크지는 않았지만 작지도 않은 그 소리는 분명 누군가의 핸드폰 소리가 분명했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 벨 소리에 태민의 인상이 한껏 구겨졌고,

괜스레 옆에 있는 놈들이 긴장을 한다.

“하아.... 하아.....”

태민이 예민하게 그 소리에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거친 숨을 몰아 내쉬던 민환이 이상하게도 자꾸만 기회를 본다.

한발 한반, 신중하고도 정확한 계산으로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고 다소 긴 시간이 흘렀기에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계산적인 움직임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쯤, 도대체 몇 번을 전화를 한 것인지, 시끄럽게 울려대던 벨소리가 멈췄다.

기회는 지금 뿐이야.

민환은 위험을 감수하며 어디선가 날아오는 각목을 맞고 바닥으로 몸을 내 던졌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과 제법 큰 충격으로 인해 잠시나마 정신이 아찔했지만,

덕분에 그들에게서 거리를 벌 수 있었다.

계산대로 안정된 착지는 아니었지만 바닥으로 던져진 몸을

몇 번이고 굴려 거리를 번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민환은 충격도 충격이지만, 일부러 더 끙끙거리며 바닥에 붙어 있었고,

아주 신중한 움직임으로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단축키 하나를 꾹 눌러 액정을 바닥으로 향하게 놔두었다.

하늘을 향하게 놔둔다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눈들 중에 어느 하나가 잠시라도

밝은 빛을 내는 액정에 수상함을 인식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선 간절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그것은 고의적으로 전화를 걸어놓고 수를 쓴 다기 보다는

많은 충격으로 인해 누군가의 것이 날아간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쉬웠다.

그렇다고 싸움 도중에 자신의 핸드폰이 떨어져 나갔다고

그것을 잡고 끙끙거릴 사람은 없었으니

따지고 보면 등골이 오싹할 만큼 무섭고도 치밀한 계산이었다.

“애송이 같은 게, 보기보다 꽤 오래 버티는데?”

장시간 지속된 싸움에 이제는 시야마저 분명하지 못한 민환이었다.

몇 안 되는 놈들이지만

(공터 안에는 수십 명의 라이더 멤버가 집합해 있었지만,

민환을 공격했던 놈들은 미리 언급한 대로 총 일곱 명이었다.

그 중에 이미 세 명 정도는 진작 나가떨어졌고 남은 네 명이 차례대로,

그러나 쉴 틈을 주지 않으며 민환을 공격해 왔다.)

상황은 라이더 쪽도 별반 달라보이진 않았다.

“그러는 그 쪽도 꽤나 오래 버티는 군.”

힘없고 가느다란 풀 한포기 잡고 있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민환은 잘도 지껄였다.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좋으실 대로.”

“훗.”

퍼억-

겨우 상채만 바닥에서 떼었을 뿐,

힘없는 두 팔에 무게를 싫고 간신히 버티는 민환에게 묵직한 다리가 날아왔다.

제법 힘을 싫은 공격이었기에 민환은 또 다시 바닥으로 너부러지고 말았다.

깔깔깔깔. 주변에서 민환을 비웃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들려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은 일어설 수 없는 지친 몸을 보고 잔인한 웃음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민환의 고통이 그들에게는 곧 즐거운 일이었으니....

퍼억― 탁―

으윽― 하아― 으윽―

끊임없는 매질이 시작되었다.

휙, 하며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몇 개의 각목이 민환의 몸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 덕에 민환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민환이 뒹굴고 있던 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짙게 묻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서설 수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으로 민환은

조금씩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하하― 깔깔깔―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즐거워하는 놈들.

아주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비열하고도 또 비열한 놈들.

주변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민환의 정신은 점점 더 몽롱해져간다.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운 듯 간신히 지탱하던 정신을 놓아버릴 즈음에....

하필이면 어서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민주가 보인다.

“민환아, 민환아, 어서 와.”

민환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는 민주가 보인다.

그리고 그 때 쯤, 민환의 핸드폰 너머로 분주함이 느껴진다.

놈들은 하하호호깔깔깔, 웃어대는 통에 그 분주한 소리를 듣지 못했을 테지만,

민환은 분명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느다란 정신을, 끊어질 듯 위태로운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민환이 말했다.

“형....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내 간신히 지탱하던 그 정신을 놓아버렸다.

.

.

“하성택. 하성택!”

“왜, 왜 그러세요? 형?!”

작은 호프집에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신중한 이야기를 나누던 제법 많은 아이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상준이 무척이나 높은 언성으로, 다급한 언성으로 성택을 불러댄다.

성택은 상준의 바로 앞에 앉아있었는데도 말이다.

갑작스러운 상준의 부름에 성택은 제법 놀란 기색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분명, 걸려왔던 전화와 그 안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호프집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마저 뚫고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어쩐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애들 풀어!! 당장 움직여!!”

“무, 무슨 일이예요?”

“라이더가 움직일 만한 곳은, 라이더가 있을 만한 곳은 모조리 뒤진다. 어서!!!”

“네?!”

“도민환, 그 자식 찾으란 말이야!”

상준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작은 호프집에 가득 울려 퍼진다.

크고 위험 있는, 무척이나 화가 난 음성에 놀라기에 앞서 성택은,

그리고 태영은 민환의 이름에 화들짝 놀란다.

분명한 이유를 듣지 않아도 민환에게 일이 생겼음을 감지 할 수 있었다.

“네!”

아주 짧은 대답이었지만, 바삐 그 대답을 내 던지고는

곧장 몇몇의 아이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뛰어나가는 태영과 성택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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