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왜 이렇게 조용하지?”
기분 좋은 첫 승을 알리는 형준이 합류하고 나서
이글은 대략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눠졌다.
권성민, 백송, 민진오를 시작으로 이글의 최고 수뇌부 다섯을 중심으로 말이다.
화려한 밤을 꿈꾸며 밤의 사냥을 나선 이글과 성민.
그간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핵심지인 라이더의 아지트를 중신에 두고 저격 물을 찾지만,
총을 겨눌만한 제물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우리 움직임을 읽었나?”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지 않아? 설마 우리가 무서워 꼬리를 감출 놈들은 아닐 텐데.”
주변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가만히 자신을 따르는 녀석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던 성민이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더 큰 것을 노리는 지도 모르지.”
“더 큰 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짱?”
“첫 전쟁부터 단번에 내 머리에 앉으려는지도. 훗.”
성민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성대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음성은 차고 날카로웠다.
“더 큰 우물에서 그 우물로 헤엄쳐 올 피라미를 기다린다는 거지.”
무언가 대단한 말을 한 것 같지만 그 말의 참 뜻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일단, 얘들한테 연락부터 돌려라. 다시 아지트로 간다.”
.
.
“으윽.....”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머리가 묵직하니 깨질 듯한 통증에 눈을 떴다.
꼭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만 같이 몸이 나른하다. 무겁다.
입가에서는 비리고 짠 맛이 났다.
머리가 무거운 게 아마도 뒤통수 어딘가가 보기 좋게 깨진 모양이다.
그리고 그 피는 머리를 타고, 볼을 타고 흘러 입가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민환은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총장. 일어난 것 같은데요?”
흐릿한 시야에 몇 차례 눈을 깜박였봤다.
그랬더니 조금씩 눈앞의 모든 것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흐릿하게 들려오던 주변의 소음도 차츰 선명하게 들려왔다.
터벅터벅,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온다.
“설마, 나를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반가운 만남이 아니었다. 기분 나쁜 만남이었다.
민환은 바닥에 납작이 엎드려있던 상채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법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여유롭게 담배까지 찾는다.
예전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태민은 기가 찼다.
언젠가 한번은 마주쳤을 때,
자신 앞에서 설설 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콧방귀를 뀌는 저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건방진 새끼.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하지?”
“뭐?!”
“나도 그쪽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피차 마찬가지라고.”
“훗.”
“오랜만이네. 그렇지 않아도 빚진 게 있어 한번은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난 죽어도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거든.”
배짱이 다가 아니었다.
상당히 뻔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게, 아니, 어찌 보면 살짝 머리가 어찌 된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머리가 깨졌다고 그세 문제가 생긴걸 아닐 테고.”
“그래서야 안 되지. 그쪽이랑 해결 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말이야.”
“훗. 그것 참 재밌는 말이군.”
“앞으로는 더 재밌어 질 거야.”
“시건방진 새끼. 살려달라고 벌벌 기어도 봐줄까 말깐데 가지가지 하는군. 정말.”
“그것 참 안타까운 이야기군.
차라리 죽었음 죽었지 네깟 놈 앞에서 벌벌 길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적어도 이제는.”
태민의 안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주최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는지 두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그나마 곧장 주먹을 뻗지 않는다. 이상하지만 분명 많이 참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면.....”
“…….”
“라이더 3대 총장 나태민.... 네 놈은 여기까지니까.....”
씨익 웃는 민환의 얼굴이 곧장 돌아갔다. 상당한 마찰력이 느껴졌다.
가볍게 옆으로 쓰려져버린 몸을 일으키는 민환은
입가에 번지는 비릿한 향에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정말이지 꼭 정신이 어찌 된 것만 같아 보인다.
지극히 평소대로라면, 정상적인 흐름대로라면 민환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을 거다.
누구 말대로 배시시 웃을 줄만 알지
싸움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으로 인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민환의 모습이 어떤가?
과연 이제까지 알고 있던 민환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그 누구도 감히 그렇게 말 할 수 없다고 나는 자부한다.
“시작이 상당히 거칠군.”
“시건 방 떠는 건 이제 그쯤 접어두는 게 네놈 신상에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아?”
“원한다면.”
민환은 제법 가볍게 일어섰다.
물론, 얼마나 되는 양인지도 모르는 피를 흘린 탓에
머리가 알싸하게 아파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이내, 곧은 주먹을 뻗는 민환이다.
태민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예고도, 기척도 없이 말이다.
태민의 발이 주춤 몇 발작 움직였다.
민환의 파워가 생각했던 것 이상인지 다소 놀란 듯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과거의 민환이 조금씩 현재로 돌아오고 있었다.
또 그렇게 운명의 밤이 깊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