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식사시간은 무척이나 따분하게 느껴졌다.
꼭 가시 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싸늘하게 처다 보는 경아의 시선은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다.
도이는 어서 시간이 지나가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시간이 왔다.
“왜 그래, 오늘?”
경아는 분명 민환이 자신을 바래다 줄 것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민환은 경아의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상관없었다는 듯,
시큰둥한 경아의 표정을 크게 관여 하지 않았다.
아주 가벼운 손짓 하나로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 그 안에 경아를 태워 보낸다.
그리고는 도이를 데리고 가까운 카페를 찾고 싶었지만,
도이의 완강한 거부로 인해 산책을 즐겼다.
“먹는 것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면서.”
“별로 입맛이 없어서.”
“에이~ 설마, 천하의 신도이가?”
덕분에 한층 표정이 밝아진 도이다.
그래서 이렇듯 작은 빈정거림에도 금세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민환을 흘겨본다.
또 그 모습에 마음이 놓이는 민환이다.
“경아 때문에 그렇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 민주 때문인가?”
“…….”
“표정이 왜 또 그래?”
흐릿한 말로 흘러가듯 한 말이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꺼낸 한 마디가
못내 야속하게 들려온다.
왜 일까? 왜 민주를 그토록 쉽게 이야기 하는 것일까?
친 누나 임에도 사랑을 느꼈고,
이미 드넓은 하늘위로 보내 버린 지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그런 민주를 말이다.
“아니 그냥.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고.”
“뭣 좀 더 먹을래? 오랜만에 이 멋진 동생님께서 한턱 쏘겠다니까?”
“아냐. 됐어.”
“내가 안 됐어. 그러니까 먹어.”
“협박이야?”
“응. 협박이야.”
다정스레, 또한 자연스레 도이의 어깨위에 제 팔을 두르고 민환이 빙그레 웃는다.
“글쎄, 됐다니까?”
“그러지 말고 뭣 좀 먹지 그래? 집에 가서 양푼에다가 밥 비벼먹지 말고. 무식하게.”
“씨이~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
도이는 정말 감칠맛 나는 음식을 앞에 둔 것 마냥 침이 고였다. 입맛을 다진다.
민주는 민주고, 밥은 밥이다. 뭐 이런 건가? -_-;;
“여튼, 못 말린다니까.”
“그건 나도 인정해.”
“아니 다행이네.”
“뭐. 후훗.”
“볶음밥 사 줄까? 근처에 새우볶음밥 잘 하는 데 있는데.”
“싫어. 안 먹어.”
“왜 안 먹어? 왜? 도대체 왜 안 먹는 다는 거야?”
“왜 성질이지?”
“다이어트라도 하냐?!”
“그래 볼라고.”
“...하긴, 누나는 좀 빼긴 빼야해.”
조잘조잘 거리면서 버럭, 화라도 낼 것 마냥 언성이 높아져만 가던 민환의 언성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어쩐지 기분이 젠장 이다!
보통 여자가 다이어트를 이야기 할 때 남자들은 생긴 대로 살아라,
내지는 너는 안 빼도 돼와 같은 말을 해 주는 일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물론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해 주는 경우이고
민환은 도이의 남자친구가 아니기에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렇지만 도이는 다이어트를 해야 할 만큼 통통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좀 찌우는 게 좋을 듯싶은 게 다소 보기가 안쓰러울 만큼 깡 말라있단 말이다. -_-;
“근데 그 자식은 통통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 같았는데.”
“그 자식?”
“...왜 모른 척 해? 권성민말야. 권성민!”
“…….”
“만나봤어?”
“…….”
“말이 없는 걸 보니 아직인가보네? 화해 안 할 거야?”
“화해는 무슨.... 우리가 언제 싸운 적이나 있었나?”
“그럼 그건 싸운 거 아님 뭐냐?”
“…….”
한참 밥 이야기로 웃을 만 하다 싶었는데 자연스레 거론되는 성민의 이야기.
자연스레 표정이 어두워지는 도이의 얼굴.
무언가 복잡하게 얽힌 회로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 듯한 도이의 모습을 보며
민환은 참 못되게도 성민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유~ 병신들. 누가 쌍쌍바 아니랄까봐 정말.”
“어유~ 그 놈의 쌍쌍바 소리 또 나오네. 누가 도민환 아니랄까봐. 훗.”
“웃음이 나오냐?”
“뭐, 그럼 통곡이라도 해 주리?”
힘들게 만나고, 힘들게 시작하고, 어렵게 확인을 했던 그런 감정이기에
민환은 도이가 성민의 생각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눈물을 흘린다거나
침울해 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도이가 그런 반응을 보여주길 바라거나
좀 울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힘들게 만났던가?
또 얼마나 힘들게 사랑을 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생각 하는지...
도이도, 어느새 성민도 잘 알게 된 민환이 모를 일이 없다.
그래서 도이는 두 사람이 어서 빨리 이 위기를 극복하고 전처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웃기를 바란다.
허나 도이는 민환이 생각했던 반응 대신, 오히려 성민의 옆에서보다 밝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이 어찌 보면 밝아서 좋아도 보이지만 또 달리 보면 더욱 안쓰럽게 다가왔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흘리는 편이 보는 사람도 나을 것만 같아 보인다.
“근데 어떡하냐? 울 일이 없다. 안타깝게도.”
“없긴 왜 없어? 벌써 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걸.”
민환은 도이의 눈에서 눈물이라도 한바탕 쏟아지길 바라는 것일까?
굳이 도이를 자극 시킬 건 없다고 보는데,
왜 자꾸만 성민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도이를 자극시키는지 모르겠다.
눈물도 꼭 메말라 버렸는지 건조하게 보이는 눈가를 보면서 없는 말까지 가져다 붙인다.
“뻥쟁이. 내 눈에 눈물이 어딨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집에 가서 질질 짜는 건 아닌 가 몰라.”
“내가 뭐 어린앤가?”
“차라리 어린애라면 걱정을 안 해.”
“피이~”
“들어가.”
분명 산책을 한다고 걸었던 길인데 문득,
주변을 의식하니 너무나 익숙한 동네,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도이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어쩐지 절대 포근한 느낌이 들지 않는 크고 웅장한 담벼락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을 떠미는 민환을 작게 불러본다.
“민환아.”
“왜?”
민환은 피곤하기라도 한지 어서 도이를 들여보내고
자신의 침대위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왜 그런지 보내고 싶은 마음이 안 선다.
그냥, 오랜 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예전처럼 집으로 끌고 들어가
이것저것 군것질도 하면서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진다.
아직도 성민을 향한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 뒤죽박죽 하기만 한데,
그렇다고 성민이 정말 미운 건 아닌데,
오히려 더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 게 사실인데도 이상하게 보내고 싶지가 않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많이 좋아해?”
“뭘?”
“아까 그 애.....”
“…….”
“그래서 사귀는 거지? 그렇지?”
뭐가 그리 걱정이 되고 궁금하고 또 신경이 쓰이는 건지,
도이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물었다. 민화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내 한 마디 말을 내 뱉었다.
“...울일 있으면 전화 하던가.”
도이가 궁금해 하는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대답을.....
더 있어봤자 괘난 일로 서로가 인상을 찌푸릴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민화는 바로 돌아섰다.
마치 더 있어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듯 하다.
도이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갈 것 마냥 굴었는데도 등을 보이는 걸 보니 말이다.
그렇게 벌써 민화는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달려가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이는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발을 억지로 그 자리에 붙여놓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