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77화 (78/91)

77.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 너희?”

어둑어둑 해가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두 대의 바이크가 한참을 달려왔다.

이내 어느 이름 모를 작은 강줄기 앞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췄다.

예쁘게 물든 붉은 노을을 바라보다가 진오가 물었다.

“일이라.... 그런 거 없어.”

“정말?”

“...그래.. 정말...”

“그런데 왜....”

성민은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 노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노을이 참 예쁘다. 저 놈이 새삼 멋있어 보이네.

다음번엔 우리 도이 한번 데리고 와야겠다.”

아무래도 도이의 소식을 물어올 것 같은 진오의 말을 막고 성민이 말했다.

“좋아하겠지?”

“그럼.”

“후훗.”

얇게 퍼지는 웃음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억지스레 웃는 성민의 얼굴은 붉게 물든 노을도,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도록 쏟아져 내리는 여름비라도 가려줄 순 없을 것이다.

.

.

이젠 방학까지 했다고 그나마 널 볼 수 있는 시간도 줄었네.

덩달아 널 볼 수 있는 기회도 줄었고,

정해진 시간에 가서 온 종일 널 기다려도 널 볼 수가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어디 있는 거니? 왜 그렇게 꽁꽁 숨은 거야? 그렇게 내가 미웠니?

미안하다... 널 실망시키는 못난 놈이라서....

그저 내 마음에만 급급해서 네 아픔을 전혀 몰랐어....

그래서 더 미안해 차마 용서해달라는 말도 못하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널 포기했다고는 생각지는 마.

지금은 잠시 한 발작 물러만 줬을 뿐이니까.

다시 널 찾아 갈 거고 내 자리를 찾아 올 거야.

...두려워져. 하지만 두려워져. 내 자리를 반드시 찾아 올 테지만,

그 과정까지가 무척이나 두려워 하루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미칠 것 같아.

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잖아.

그래서 네 눈에서 내가 멀어진 사이 네 마음에서 내 자리가 영영 없어지면 난 어떡하지?

그거 아니? 원하지도 않는 끔찍한 생각들로 전에는 없던 두통까지 생겨버렸어.

너라는 존재 하나로 내가 이렇게 아파. 천하의 권성민이 병신이 다 돼 버렸어.

하지만 이 말은 널 원망하는 말은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럼 좀 이 답답한 가슴이 진정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나마 이렇게 예쁜 노을도 보고 바람이라도 쐬니

널 찾던 내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속으로 하며

성민은 도이와 함께 웃었던 짧았던 시간을 그리워했다.

.

.

“슬슬 라이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을이 예쁜 것은 마음속에서 영원할지는 몰라도

제 모습을 비추다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성민은 진오와 함께 다시금 바람을 가르며 속력을 냈다. 그리고 달렸다.

아지트가 있는 그곳까지.

금세 해가 지고 어둑어둑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밝은 때에 들어선 아지트에서

제일먼저 성민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바로 저 소석이었다.

라이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성민으로썬 가만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첫 타깃이 최형준.”

어차피 경오의 일도 일이거니와

사실은 근 일주일간 자리자란 마찰도 겪었던 터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민환의 일도 자신이 해결해 주고 싶었다.

그를 지켜서라도 아무런 일 없이 늘 같은 얼굴로 웃어주길 바랐다. 도이의 옆에서....

잠시 자신이 공백을 갖는 다해도 민환이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친 오누이 이상으로 가까웠던 두 사람이라면

자신이 빠져나온 도이의 옆 자리를 채워 줄 것 같았다.

“어떻게 됐는데?”

“뭐, 가볍게 밟아줬지.”

“형준이는?”

“좀 있으면 도착 할 거다.”

“그래.”

“곧 두 번째 타깃도 정해질 거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간다.”

“좋지.”

“준비 해 둬, 다들. 언제 어디서 기습을 해 올지 모르니까.”

“그래.”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당장이라도 OK라고.”

어떤 특별한 말이 있던 건 아니다.

어디로 가고, 그 곳에서 어떻게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그런 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성민의 움직임과 말 하나로 인해

모두가 적당한 수로 흩어지듯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몇몇이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도 오늘 밤 거대한 파티가 시작 될지도 모르겠다.

일인자와 이 인자를 가르는 운명의 한판승.

그 시작을 알리기 위해 성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그렇게 운명의 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도이는 오랜만에 민환을 만났다.

한동안은 학교에서 마주치는 게 잠깐이었는데 오늘은 따로 민환이 도이를 불러낸 것이다.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는 핑계였지만 민환의 옆에는 경아가 있었다.

경아를 바로 앞에서 직접 첫 대면한 도이는 여간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인사 해. 내 여자친구.”

민환은 경아와 단 둘이 있을 때와는 달리

늘 도이 앞에서 보이던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 웃음은 분명 가식이 틀림없지만 어찌나 연기 솜씨가 좋은지,

전혀 거짓웃음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없었다.

“뭐?!”

“내 여자친구~”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소리에 도이가 심하게 당황했다.

학교 앞에서 민환을 기다리며 그를 따라가던 경아를 봤을 때만 해도 얼마나 놀랬던가.

마치 환각을 보는 듯함에 얼마나 머릿속이 어지럽기까지 했던가?

“뭘 그렇게 놀래? 못 볼 것 본 사람처럼.”

“...그, 그게....”

“왜? 아직도 민주로 보여?”

“응?”

“훗. 병신....”

민환은 나지막한 쓴 웃음을 내 뱉었다. 그리고 이번엔 경아에게 도이를 소개시킨다.

“인사해. 우리누나.”

“누나?”

“응. 누나. 내 누나. 도민환 누나.”

왜 민환은 경아에게 도이를 우리누나라고 소개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냥 아는 누나라는 호칭보다는 우리누나라는 호칭이

더 듣기엔 좋은 말이었지만 어째, 민환의 음성이 무척이나 무겁다.

너무나 외롭게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바, 반가워요.”

어서 인사나 나누라는 민환의 재촉에 경아가 먼저 인사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썩 반가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마도 언젠가 백화점에서 봤던 도이의 모습이 기억났을 것이다.

어느 남자에게 이끌려가면서 민환의 표정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던 그 날의 일이.

사실, 그 날, 그 표정만 아니었더라도

경아는 이토록 민환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근데, 이름이 뭐예요?”

“네?”

“언니 이름 말예요.”

“신도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경아의 등장과 다소 차갑게 들려오는 질문에

도이가 잔뜩 긴장을 한 듯한 얼굴로 대답을 못하자, 민환이 대신 대답을 했다.

자연히 다음 질문은 그 뒤를 따랐다.

“왜, 오빠랑 틀려요?”

“뭐가?”

“누나라면서요? 그럼 도씨여야 하는 거 아녜요?”

“누나라고 꼭 성이 같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

“하지만....”

왜인지, 경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민주 친구야.”

무언가 불만스럽다는 듯 딱딱하게 굳어지는 경아의 얼굴을 보며

민환은 지독히도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말하는 듯 한마디를 했다.

민주의 친구라는 그 한마디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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