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72화 (73/91)

72.

“아직도 몸이 안 좋아? 어제 그 일 때문이야?”

아침부터 내내 안색이 좋지 않는 도이를 보며 성민은 하루 종일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성민이 뭐라고 한 마디 묻거나 근심걱정이 가득 깃든 눈빛을 한두 번 보낼 때마다

도이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내 저을 뿐이다. 힘없이 미약한 웃음을 띤 채로.

막상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도이는 그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랑했던 사람인데, 큰 갈림길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이 찾아 헤매던 사람인데,

헤어지자는 그 한 마디를 내 뱉는 게 어찌 쉽겠는가.

“누나, 미안한데 오늘 도이 옆에 좀 있어 줄 수 있어요?”

도이의 복잡한 심정을 전혀 모르는 성민은 자신에게 찾아올 위기도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다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로 인해 도이를 그냥 두고 가기가 편치 않은 모양이다.

“뭐,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지만 왜? 너, 무슨 일 있어?”

“뭐, 일이랄 건 없는데, 급하게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래?”

성민은 미약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살며시 웃었다. 그 웃음엔 미안한 기색도 함께 했다.

“그렇다면 걱정 말고 얼른 가 봐.

다행이도 오늘은 오빠가 집안 행사 때문에 시간이 비었거든.”

“번번이 미안해요.”

“뭐, 아니 다행이네. 후훗.”

“전화할게.”

기분 좋게 웃는 다희를 보며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성민은 전화 한다는 말을 한마디 남긴 후에도

몇 차례 뒤를 돌아보다 이내 저 멀리로 사라졌다.

“참, 별일이네. 천하의 권성민이 너를 다 뒷전으로 놔두다니.”

.

.

성민은 부랴부랴 자신의 아지트를 찾았다.

육교시가 막 끝나갈 즈음에 진오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이다.

[정보입수 했다. 근데 문제가 좀 생겼다. 급히 좀 보자.]

가볍게 온 몸을 떠는 핸드폰이 전해주는 아주 간단한 메시지였다.

정보를 입수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반가울 일이 없었다.

잠시, 아침부터 안색이 어두운 도이로 인해 따로 전화를 좀 해 볼까, 싶었지만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듯 했기에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던 것이다.

안색이 좋지 못한 도이를 등지면서까지.

“민진오!”

쿵!

마음이 어찌나 급했던지, 성민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면서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그 바람에 커다란 소음이 발생했지만,

성민의 성대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진오의 이름은 그 소음을 충분히 뛰어넘었다.

“어, 왔냐?”

서둘러 진오를 찾은 성민은 급하게 소파위에 앉으면서 다짜고짜 물었다.

“그래, 어때?”

하지만 진오는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담배를 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미약한 웃음을 흘리며 뜸을 들일 뿐이다.

그런 진오의 행동은 성민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묻잖아, 인마!”

“알아, 인마!”

“그럼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휙, 성민의 손바닥이 진오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물론, 감정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그보다 먼저,”

“근데, 분위기가 왜들 이래?”

진오가 무겁게 맞닿아 있던 얇은 입술을 떼는데 성민이 물었다.

내가 왜 이렇게 도민환의 일에 전전긍긍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급하게 들어오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안의 공기 흐름이 이제야 피부로 느껴진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다.

“....경오가 다쳤어요, 짱.”

“그게 무슨 소리야?”

“나태민쪽 움직임이랑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접근했다가 그만...”

“뭐어?!”

“조심한다고 했는데, 새끼들이 워낙 눈치가 백단이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게...”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 새끼야!!”

성민의 언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됐겠냐?”

반면에 여전히 차분한 진오가 간략하게 물어왔다. 성민의 동공이 흔들린다.

“전치 8주 나왔다. 완전 개차반이 다 됐다고.”

“씨빠빠...”

“하지만 문제는 경오가 아니야.”

보기 좋은 미간이 순식간에 오만가지 상으로 일그러졌다.

나지막한 욕설은 자연히 따라왔다.

“전면전이야....”

“…….”

묵직하지만 단호한 말에 성민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이미 예상이라도 했는지 비교적 덤덤해 보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덤덤해 보일지는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경오가(경오는 도이가 성민과 함께 이 곳을 찾았을 때, 줄 곳 맑은 웃음으로

도이의 옆에 있던 녀석이다. 성민에 대한 이야기를 꼬치꼬치 전해 줬었던 녀석이다.)

다쳤다는 말에 동공이 흔들릴 만큼 친구라는 개념을 무척이나 소중히 하는 성민이다.

비록 같은 나이에 짱이라는 타이틀과 구성원이라는 개념으로

늘 경오가 성민을 존중해 온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 안의 그 어느 놈이라도 성민이 아끼지 않은 놈이 없었다.

그 어느 놈이라도 친구로 생각하지 않은 놈이 없었다.

“어떻게 할 거야?”

감은 눈을 뜨지 않는 성민을 향해 이번엔 백송의 쪽에서 물어왔다.

“뭘?”

“라이더.”

“무슨 답을 원해?”

“…….”

다소 단조롭게 들려오는 성민의 질문에 송은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분명히 말 하고 있었다.

경오에 대한 일을 분명히 해 달라는 말과, 짱으로서의 명령을 내려달라는 그런 말 정도를.

성민이 감았던 눈을 뜨며 주변을 한 차례 훑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집중되어있는 녀석들을 향해 분명하게 말했다.

“걱정마라, 경오가 다쳤는데 가만 놔둘 순 없잖냐.”

분명, 엄청난 일을 예견하는 말 이었지만 성민의 한 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한층 가벼워진다.

모두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친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함께 했다.

아픈 친구만큼은 아니라도 같이 아파하고 그 친구를 위해 주먹을 다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보기 좋은 일이라고는 말 할 순 없지만...

아니,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초자 가늠하기 어렵지만 사내들의 우정이 이렇구나, 싶은게

그들의 친구를 생각하는 의리는 높게 사고 싶다.

“하지만, 너무 섣부르게는 움직이지 마라. 일단은 내 지시를 기다려야 해.

지금 당장 우리가 몰려간다면 오히려 그 놈들은 얼씨구나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야.

무엇보다 난 경오부터 좀 만나봐야겠다.”

모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도 성민의 이런 결단에 반대를 하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성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마도 경오에게 가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한 번 더 진오가 잡았다.

“아직 중요한 얘기가 남았잖아.”

“중요한 얘기?”

“입수한 정보.”

“아!”

성민은 경오의 일로 잠시 그 일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어떻게 됐어? 움직임이 좀 보여?”

“상당히 조용해. 조용한데, 상당히 분주해.”

“조용한데 분주하다?”

“시끄럽게 움직일 놈들인데, 의외란 말이지. 아마도 그래서 경오가 그렇게 됐을 테지만.”

“또 다른 건?”

“그 움직임이 강경아라는 인물에서 비롯되었고.”

“강경아?”

“나태민의 전 여자친구지. 흘러 다니는 소문대로 그 계집한테 까였더라고.”

“그 계집은 어떤 계집인데?”

“뭐, 특별한거라고는 달리 입수 못했지만 진영중학교 다니더군. 그리고 이거.”

진오는 성민의 앞으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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