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69화 (70/91)

69.

그 길로 성민은 바이크를 몰고 한참을 달렸다.

학교 주변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 민환이 있을 만한 곳을 들렸다.

물론, 민환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꿰고 있을 태영의 도움을 받았다.

민환은 학교에서 제법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이- 이게 누구야?”

성민은 시치미를 뚝, 떼고는 뻔뻔한 얼굴로 자연스레 그 테이블에 합류했다.

민환은 다소 놀란 듯 했지만 성민을 내치지는 않았다.

경아와 둘이서 나누던 어떤 대화는 자연스레 끊어졌다.

“네가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냐?”

“오늘 데이트 퇴짜 맞았거든.”

“에이~ 설마.”

“몸이 안 좋대.”

“왜?”

“하루가 멀다 하고 끌고 다녔더니 병났나봐.”

“그렇다고 혼자 여긴 왜 들어와? 지지리도 궁상인 거 알지?”

“지지리 궁상인 건 아는데, 왠지 이 안에 들어오면 귀인을 만날 것 같더라고.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귀인치고는 나도 솔직히 김샌다고.”

“씨빠빠....”

“왜 내 욕을 네가 쓰고 그러냐?”

성민은 장난스레 민환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면서도 성민은 작은 카페 구석 쪽에 자리 잡은,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인형을 포착했다.

학교 앞에서 봤던 그 놈이 분명했다.

덩달아 그 앞에 또 다른 놈이 있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 아닌 것을 보아하니 그 놈은 수뇌부에 있는 놈은 아닌 것 같다.

“야, 솔직히 불어봐.”

“뭘?”

“너, 나 미행했냐?”

“미행?”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냐?”

“그냥 느낌이었다니까?”

“지랄.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뭐, 믿기 싫음 말던지.”

“그러지 말고 솔직히 불어라.”

“새끼, 이거 은근히 집요한 구석이 있네?”

“후훗. 뭐,”

“웃지 마! 칭찬 아니야!”

“새끼, 앙탈은.”

“지랄.”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 하라니까?”

“씨빠빠.... 그래, 미행했다! 어쩔래? 앙?!

웬 아리따운 아가씨랑 행차 하시기에 파토내고 싶어서 따라 왔다고!! 됐냐?”

성민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민환이 웃는다.

“새끼... 나... 열라 사랑하는구나?”

“에이 씨빠빠.”

지독한 망상에 빠져있는 민환을 보니 나오는 게 욕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성민이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자신을 주시하는 경아였다.

“아니 근데, 이 앞에 계시는 아리따운 숙녀 분은 누구신가?”

성민은 넌지시 화재를 바꿨다.

그러면서 경아의 자태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나태민의 여자친구가 맞는가 싶은 생각에 심기를 건들이지 않고

어떤 질문으로 원하는 답을 유도 할 수 있을지, 잔 머리를 굴리기도 해본다.

“그냥, 아는 동생.”

“아는 동생?”

“어쩌다 알게 됐어.”

“여자친구는 아니고?”

“왜? 맘에 들어? 다리 놔줘? 양다리 걸칠래?”

“에씨바. 뒈진다?”

어느새 과대망상증에서 헤어 나온 것인지, 민환은 장난스레 꺼낸 이야기였지만

그에 성민이 불끈했다.

다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이런 말까지 한다.

“조강지처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나더러 양다리 걸치라고?

네 눈엔 내가 그렇게 파렴치한 놈으로 보이냐?”

“뭐, 그렇다고 파렴치하다고까지 말 하냐?”

민환은 가벼운 손놀림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어디 학교?”

“아, 진영중학교 다녀요.”

경아는 성민이 민환의 친구임을 의식하고 고분고분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곱지 많은 않았다.

한참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왜 방해하느냐는 원망의 눈초리가 섞여 있음을 보았다.

한마디로 민환의 앞에서 평상시의 경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는 것이다.

성민 역시 경아를 보는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사람의 혼을 매혹시킬 것만 같은 빼어난 외모와 눈동자에 멀리서는 그나마,

민환이란 놈이 꽤나 눈썰미가 있는 놈이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바로 코앞에서 보는 경아가 이런 아이라면 외려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진영?”

“네.”

“그럼 내가 알만한 줄은 없는데.....”

성민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아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의 정체가 궁금한지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면서 이것저것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통 진영중학교 쪽으로 뻗어있는 손이 없음에 갑갑하기만 하다.

진영중학교 쪽 인맥이라도 있어야 이 아이에 대해 알아보기가 쉬울텐데 말이다.

특히 나태민과의 관련 여부를 알아보기위해서는

라이더쪽 움직임이나 떠도는 소문따위보다는 그쪽이 더 낳을테니 말이다.

혹시나.. 우려하는 마찰을 줄이기에도 더 없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아니. 그냥 혼자 헛소리 한거야.”

“…….”

“이름이 뭐야?”

“왜, 그걸 오빠한테 말해야 하죠?”

성민은 무심결에 이름을 물었는데 당돌한 질문이 곧장 뒤따랐다.

경아는 성민이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을 무척이나 불쾌해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돌한 질문에 성민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기보다 불쾌했다.

어쩐지 누군가가 자신을 우습게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처음 본 어리디 어린 계집애가 그러는 것은 더더욱 불쾌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짱이라는 타이틀을 뒤에 달았던 습관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이리라.

“아니, 뭐. 그냥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자는 거지.

뭐, 그 쪽이 싫으면 말고.

나도 싫다는 사람 붙잡고 억지로 이름 듣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순간 밀려오는 불쾌함을 이루 말 할 수 없었지만,

성민의 음성이 어느덧 차분하면서도 시니컬하게 들려왔다.

사실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거칠게 걷어차고 싶었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일도 있었고,

추측에서 비롯된 결론 아닌 결론은 말 그대로 추측에 근거한 것이기에

섣부르게 행동 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성민은 북받쳐 오는 화를 억누르고 대신에 시니컬한 음성을 쏟아낸 것이다.

나태민이 좋아할 만한 인물이긴 하네. 보기보다 당돌하단 말이지.

그렇다면 정말 나태민이 까인 건가? 이 계집애한테?

그 이유는 도민환이고?

..마지막 이유는 별로 탐탁치가 않군.

이런 성질만 뭣 같고 별거 없는 놈 때문에 나태민 같은 거물을 버린다?

어쩐지 성립되지 않는다고.

더군다나 나태민을 깠을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을 텐데,

도민환을 나태민의 상대로 내 놓는 건

저 새끼 손 잡고 시궁창 속으로 다이빙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단 말이지.

보기보다 대담한 구석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보기보다 헛 똑똑한 계집이로군.

자우지간 덕분에 여러모로 내가 골치 아프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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