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68화 (69/91)

68.

“성민아, 너 정말 멋있었어. 울트라캡숑짱이야!”

“이럴 때 만요?”

“물론, 아니지. 솔직히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평소에도 멋있지.”

“다 좋은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 뭐예요?”

“그러게. 후훗.”

뭐가 그리 좋은지 세 사람은 연신 끊이지 않는 웃음을 머금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지나가던 몇몇 학생들의 시선을 잠시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뚝, 다희의 걸음이 먼저 멈춰 선다.

“어? 저거 도민환 아니야?”

“민환이?”

“근데 저.. 여자... 어제 그....”

“..도..민..주....?”

다희의 가벼운 손짓에 도이는 별다른 의미 없는 시선을 던졌다. 다희의 손끝으로.

그 순간 아주 묘하게도 민환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낯익지만 낯선 한 존재가 도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민주를 꼭 빼다 박은 듯한 경아의 모습이.....

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치켜뜨고는

입가에 맴도는 말을 맥없이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도민주라는 그 이름 석자를....

“다희야... 어제... 네가 봤다는 사람이.....”

“네 눈에도 보이지? 민주 맞지?”

“민주가, 민주가....”

“봐...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잖아....”

“민주? 2년 전에 죽었다는 도민환 누나?”

성민은 경아의 존재가 궁금한 듯 물어봤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 성민은 대답을 강요하거나 재촉하진 않았다.

다만, 이 두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이미 죽은 친구를 닮았다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경아를 유심히 살필 뿐이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

.

“오빠!”

경아는 초조한 마음으로 민환을 기다렸다.

너무 보고 싶어, 처음에 민환이 경아를 찾아갔듯이 오늘은 경아가 민환을 찾아온 것이다.

“강경아.”

“오빠....”

민환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 소리를 따라갔다.

그리고 보이는 경아의 모습에 잠시 놀라는 듯 하더니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오빠가 보고 싶어서요.....”

조금은 차가운 민환을 향해 자신 없는 대답을 한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일단 가자. 어디라도 일단 가자고!”

경아가 민환을 기다리며 초조해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왜인지, 민환은 경아가 학교로 찾아오는 것이나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아는 감추고 싶은 비밀 같은 게 있는 거라고 어림짐작 해 보지만,

그런 짐작은 오히려 경아에게 더 큰 궁금증을 유발 시켰을 뿐,

민환이 원하는 경아의 모습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민환은 왜인지 주변의 눈치 등을 보는 듯한 제스처를 잠시 취하더니

무척이나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찌나 걸음이 빠르던지, 그 걸음을 쫓는 경아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정말 민주랑 많이 닮았지?”

“…….”

“정말 소설처럼, 공상영화처럼, 부활이라도 한거야, 뭐야?”

“....아니야.”

“응?”

“그런 건 아니라고.”

“그래, 아니겠지.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이건 영화가 아니라고. 이건 소설이 아니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미 사라진 경아를 보면서

다희는 그렇게 말 했지만 도이는 단지 그 의미로만 한 말은 아니었다.

그 순간 언젠가 민환이 보여줬던 한 장의 사진이 생각났다.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도이의 가방 안에, 지갑 안에 들어있는....

이제까지는 민주라고 생각 했던 경아의 사진이.

도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현기증을 느꼈다.

“성민아,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어. 나 그냥 집으로 갈래.”

“…….”

“내 말 듣는 거야?”

“아, 미안.”

“어딜 그렇게 넋을 놓고 보는 거야?”

도이는 끊어질 듯한 머리위에 손을 얹고 물었다.

“뭐, 성민이도 민주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니니까 궁금했나보지.”

성민에게 던진 질문에 다희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그렇게 말 했다.

성민이 넋을 잃고 본 어느 곳은 다희와 도이의 시선까지 한동안 머물렀던 민환과,

경아가 지나간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민은 처음처럼 민주의 존재가 궁금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 곳을 주시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경아가 누군지 궁금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이나,

다급하게 자리를 옮기는 민환의 뒤를 쫓는 검은 그림자를 목격 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민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실없이 웃을 줄만 알지, 버럭 소리치며 성질이나 부릴 줄 알지,

싸움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민환이 성민은 여간 걱정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정말이지 생각 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누군가가 바쁜 걸음으로 어디든 가는 거겠지, 하고 생각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만은 아니었다.

그는 무척이나 몸을 사렸다.

꼭 누구에게 부탁을 받고 어느 대상을 미행하는 것만 같았다.

들켜서는 안 되기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 분명.

무엇보다 성민의 넋을 빼 놓기 충분했던 이유는,

당장은 생각나지 않았던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곧,

폭주족 라이더의 수뇌부에 있는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

총장 나태민의 지휘아래 그 명성을 무성히 떨친 그 폭주족을

이글의 총장을 맡고 있는 성민이 모를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수뇌부 우치에 있는 놈이 직접 민환을 목격한다는 것은

참으로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민환과 나태민의 사이에서 분명 좋지 않을 일이 벌어질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자. 데려다 줄게.”

“미안해. 오늘 친구들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약속 지키지 못해서.”

“그 안색으로 가봤자 놀지도 못할 거, 차라리 쉬는 게 낳아.”

성민은 자신이 본 것이 제발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도이를 향해서는 더없이 자상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괜한 일고 도이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자신이 민환의 일에 이렇게 예민해 지는 것일까?

그냥 도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가서면서 알게 된 그냥 그런 녀석 중 하나가

민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이나 진오를 포함한 폭주족 내의 다른 친구들처럼 소중하다거나

의지하고 싶은 존재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 했던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성민은 민환의 뒤를 쫓는 그림자에

이토록 온 신경이 그쪽으로 몰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

“왜 혼자 와?”

성민은 택시로 도이를 바래다주고는 곧장 아지트로 향했다.

들어오는 그를 보며 여기저기서 도이를 찾는 소리들이 줄을 이었다.

모두가 도이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야, 누가 라이더 쪽 움직임 좀 살펴봐라.”

성민은 그들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에 이 말을 먼저 내 던졌다.

“라이더? 갑자기 라이더는 왜?”

만화책을 보고 있던 송이 보던 만화책을 접으며 물어왔다.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아서.”

“무슨 일? 누가 또 나태민 건드렸어?”

“그걸 모르니까 알아보라는 거 아니냐?”

“하긴 뭐, 슬슬 움직일 때도 됐지. 나태민이 좀 조용했어? 그 성격에 말이야.”

“되도록이면 빨리 알아봐야 해.”

“급한 거야?”

“응.”

“왜? 누가 연류 돼있어?”

특별한 억양이나 굴곡 없는 단조로운 물음이었다.

그런데 그 때, 조금 멀찌감치에서 짝, 하는 손바닥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참, 혹시 그 일 때문에 시끄러워지려나?”

“그 일?”

“짱 아직 그 소식 못 들었어요?”

“뭔데?”

“나태민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는 소문이 돌던데.”

“또 깠대냐? 그 새끼, 여자 까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설마하니....”

“그게 아니던데?”

“그게 아니라니?”

“이번엔 나태민이 까였다는 소리가 들려서요.”

“그거라면 나도 들었어요.”

나태민의 이야기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대다수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놈들이 이미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냥 웃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가보다.

곧 시끄러워 질지도 모른다는 성민의 말에 하나같이 그 일을 운운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렇다면 교문 앞에서 그 녀석은 나태민의 전 여자친구라도 된다는 말인가?

성민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꼈다.

“왜? 누가 연류 됐어?”

“확실 한 건 아닌데, 그런 것 같다.”

“누군데?”

“있어. 좀 성가신 애물단지.”

“애물단지?”

“도이 동생이야.”

자꾸만 엄습해오는 불안 때문인지 범상치 않은 음성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해 주는 말이 도이의 동생이라는 저 말이었고,

많은 녀석들이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뭐어?! 형수 동생이라고?”

“그래, 인마. 그러니까 좀 알아봐. 특히 그 전 여자친구도 그렇고. 빠를수록 좋아.”

“아이, 씨바. 웬만하면 나태민은 피해가지.

재수 없게 왜 형수동생이 그 새끼랑 연류 된 거래?”

어디선가 불만 가득한 말들이 터져 나왔지만 성민은 그들을 향해

딱 한마디를 던져놓고 아지트를 빠져나왔다,

“최대한 마찰을 피해라. 몸 사리고.”

“알았다.”

“정보 입수하면 연락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슨 일 생겨도 연락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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