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66화 (67/91)

66.

“같은 교실 쓰나?”

식사는 계속 이어졌고 이번에는 권 회장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아, 아버지. 나보다 한살 위예요.”

“그럼 연상?”

“네.”

같은 교실을 쓰느냐는 질문에 도이는 괜히 긴장을 했지만 성민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 모습이 어째 좀 더 부담스러웠지만

도이는 자신이 느낀 부담이 아닌 다른 연유에서 또 한번 놀랐다.

“연상 연하 커플이라.”

“요즘 트렌드잖아요.”

“그렇지.”

“이 아들도 시대의 대세를 따라가고자 했죠.”

“녀석, 보기보다 센스가 있는데?”

“그럼요. 내가 누구 아들인데.”

“그럼, 누구 아들인데!”

“하핫. 아버지 그런 의미에서 이 파전 한번 드셔보세요. 엄마가 해 주는 것처럼 맛있어요.”

넉살스러운 웃음을 띠며 성민은 파전 한 조각을 아버지 앞에 놓여있는

그릇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권 회장을 그것을 맛있게 받아먹었고, 두 부자는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여보. 그러고 보니 당신이 해준 파전 안 먹은 지도 꽤 됐어요.”

“내일쯤에 한번 해 드릴게요.”

“허허. 기대 되는구려.”

“아버지.”

두 부부가 너무나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사이를 불쑥, 성민이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자꾸 전화가 오는데 받고 올게요.”

“그러려무나.”

“도이 괴롭히지 마세요.”

“원~ 녀석. 누가 들으면 내가 네 여자친구를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구나.”

“불안하니까 그렇죠.”

“그러면 전화를 받지 말던가.”

“그건 안 돼요!”

“저런, 기껏 자식 놈이라고 애지중지하게 키워놨더니 부모보다는 여자친구가 먼저다,

이거냐?”

“암튼, 전 전화 받고 와요.”

성민은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쩐지 자기가 없는 데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낸다던지

아니면 어렸을 적 자신의 이야기 등을 꺼내면서 흉을 본다던지...

그럴 분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아가씨는 우리 아들, 어디가 마음에 들어?”

성민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자 이번에는 권 회장 족에서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아.....”

“그냥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 해 봐요.”

“그냥.... 어디가 마음에 든다는 건 없어요. 특별히 좋아 보이는 것도 없고요.”

“그래요?”

권회장은 흐지부지한 도이의 대답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성민의 배경 따위가 나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말은 외려,

배경이 마음에 든다는 가시 박힌 시선보다 더 짜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냥 첫 인상이 이제까지 성민근처에 어슬렁거리던 계집들보다 수수해 보였기에

유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만도 아닌 것 같아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이어지는 말에 그 생각은 금세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

“네. 그냥, 그냥.... 그 자체가 좋아요. 권성민이라는 그 자체 말예요.”

“그 자체라면 어떤 거지? 구체적으로 말이야.”

“음 꾸밈없는 웃음이요.

처음 성민이를 봤을 때 성민이 얼굴에 머물렀던 웃음이 좋았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녀석이 아가씨를 보며 웃었나보지?”

“네. 무척 기분 좋은 웃음이었어요. 자꾸만 보고 싶고 생각나는 웃음이었고요.”

“녀석이 그런 웃음을 보였단 말이야?”

“네.”

“정말 별일이 다 있군. 녀석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런 웃음을 다 지어보이고 말이야.”

“그게 전부는 아녜요.”

“그래? 그렇다면 또 들려줄 수 있나? 아비 된 도리로써 녀석의 그런 면을 전혀 몰랐으니,

더 궁금한데 말이야.”

권회장은 자연스레 다음 말을 유도했다.

“음.... 이상하게도 성민이랑 있으면 편했어요.

그리고 가끔씩 보여주는 돌발 행동에 끊임없이 절 즐겁게 해 주기도 했고요.”

“돌발행동?”

“네. 가끔씩 생각지 못했던 행동들로 놀래키거든요.

아, 얼마 전에는 같이 놀이공원을 갔었는데요, 제가 그때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거든요?

근데 성민이 덕분에 그 일을 잊고 잔뜩 웃을 수도 있었어요.

꼬마 애들이 좋아할 법한 풍선에 머리띠에, 그런 것들로 저를 웃게 해 줬거든요.

그리고.... 아... 이 일은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이야기로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혹시라도 녀석이 가담해 있는 서클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

“아, 알고 계셨어요?”

“그럼. 알지. 그 일로 사고를 어찌나 많이 쳤다고.”

그 때 잠시, 양쪽 부모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도이는 미세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말을 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런 성민이의 모습이 나쁘게만 보이실지 모르지만,

너무 나쁜 쪽으로만 보지는 말아주세요.

전 오히려 성민이의 그런 모습으로 인해 더 많은 성민이를 알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모습이 가장 좋아요.”

“그다지 납득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로군.”

“이해하실 줄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성민이는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그런 존재였어요.

마치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같았고,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존재 같기도 했거든요.

근데 매일 보던 성민이의 얼굴조차 금세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있는 그 모습에

적잖게 놀랐어요.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했으니까요.

클럽에 속해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이미 누군가를 두렵게 할 만큼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더 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었어요.”

“어째 서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 같은 거예요.

뭐라고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이요.”

“그럼 아가씨도 성민이의 그 자리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솔직히 전 성민이가 그 무리에 속해 있는 게 싫어요. 위험하잖아요.

폭주라는 놀이도 그렇고, 아직까지 본 적은 없지만, 주먹을 쓰는 일도 그렇고요.

무엇보다 그 안에서 보여 지는 성민이는 너무나 낯설고 무섭기도 해요.”

“그럼 아가씨가 한번 만류를 해 보는 건 어떤가?”

“..죄송해요. 성민이가 위험한 건 싫지만, 그 속에 있는 친구들을 버리는 것도 싫거든요.”

“흐음.....”

“그 친구들을 만나봤어요. 근데 생각처럼 나쁜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모두 성민이를 좋아하고 성민이 역시 그들을 좋아해요.

뭐라고 말은 안 해도 그 안에서 오고가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래?”

“네.... 그래서 전 성민이가 그들을 좋아한다면 굳이 떼어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들을 사랑하는 모습도 성민이니까 할 수 있는 거고,

그 안에 속해있는 것도 성민이니까 가능한 일인걸요.”

“우리 성민이를 많이 좋아하나보군. 그런 모습까지도 다 감싸 도는 걸 보면 말이야.”

“그 모습까지 모두가 성민이인걸요.”

“아가씨 참 진솔해. 요즘 젊은 사람들 같지 않아.”

어느새 식사를 마쳤는지 모두가 젓가락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훈훈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난 진솔한 사람을 참 좋아하지. 그래서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

“아직 때 묻지 않은 그런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야.

왜 우리 아들이 아가씨를 좋아하는지,

그렇게 소개시켜 주고 싶어 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네.”

“…….”

“왜 우리 아들이 아가씨로 인해 아파했는지까지 말이야.”

넉넉한 웃음을 담아 흘러나오는 권회장은 지난 일을 하나하나 되새겨봤다.

그리고 그 때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성민의 말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안 올 거예요... 잊을...때.. 까지는.. 안.. 올 거예요... 그래서 그래요...”

“십년이 지나도.. 이십년이.. 지나도... 잊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아요.”

너무나 고독하고 지독히도 슬프게 들렸던 그 말.

그 때는 그저 어떻게든 시간을 보류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기 위한 얄팍한 수작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그 말들.

깊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말의 참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아이와 잠시 사이가 벌어졌기에 그런 말을 한 건 아닐까?

이렇게 좋아해서 자기 앞에 데려다 놓고 싶어 했던 성민이라면

이미 자신이 모르는 오랜 시간을 되돌아가야 시작의 위치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아이를 좋아하는데... 사이가 벌어졌기에

잊겠다 다짐했던 어떤 일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따지고 보자면 그 아이를 잊는 일 또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은,

그 만큼 긴 시간이 지나도 쉽게 마음에서 버릴 수 없다는 말임을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권회장은 모처럼 성민이 마음에 들었다.

내기의 승부는 이미 판가름 났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완벽한 성민의 승리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이를 왜 이제야 데려왔나 싶을 정도로 권회장은

도이가 마음에 들었다.

성민의 마음을 단단히 손에 쥔 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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