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민환은 경아와 함께 한 페스트푸드점을 찾았다.
2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 곳에서 주문한 햄버거를 들고
창가 바로 옆 자리에 마주 앉았다.
“오빠, 오빠는 방학 언제 해요?”
“둘째 주 월요일.”
“월요일이요?”
“응.”
“왜 그렇게 한대요?”
“그러게. 하루 앞 당겨 토요일 날 방학식 해주면 좀 좋아?”
“맞아요.”
“그런 넌 언제 하는데?”
“우린 그 주 수요일이요.”
햄버거 빵을 수줍게 한입 베어 먹으며 경아는 살며시 웃어 보인다.
“방학하면 오빠 뭐해요?”
“뭐하긴, 놀아야지.”
“뭐하고 놀 건데요?”
“뭐가 그렇게 궁금해?”
정말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경아는 한시를 쉬지 않고 연이어 질문을 해 온다.
다소 형식적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던 민환이 이번에도 맹목적인 대답을 하려다
돌연, 그 이유를 물었다.
경아는 당황을 한건지 아니면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제 얼굴을 바라보는 민환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인지 잠시 그 얇은 입술을 들썩인다.
다소 놀란 얼굴로.
“아니, 왜 그리 긴장을 하시나요, 아가씨?”
“네에?!”
그것도 모자란 지 두 볼이 발그레해졌다.
순간 민환은 경아를 골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 진짜 이상하네? 왜 얼굴은 붉히고 그래?”
“앗...!”
“이제 보니 너, 오빨 많이 좋아하는구나?”
“…….”
“아무튼 이놈의 인기는 사그라질 줄을 모른다니까.”
어쩜 저리 태연하면서도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지...
지금까지 민환의 곁에 여자라고는 다희와 도이가 전부였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이제 보니 민환도 한 왕자병 하는가보다. 더 심각해지면 약도 없을거인데... 쯧쯧.
“하하하. 너 그러니까 내가 무슨 농담을 못 하겠잖아, 바보야.”
진심인 듯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민환은 경아를 놀려먹고 있었다.
“너, 하나도 안 순진한거 다 알거든? 그러니까 제발 얼굴 좀 붉히지 마. 왕 내숭아!”
악의가 없는 말이 분명하지만, 왜 악의가 담겨진 것처럼 들리는 것일까?
아무튼 민환의 그 말로 인해 경아는 또 한번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수줍음이 많아서야 어찌 나태민 같은 인물과 어울렸을까 다소 의심스럽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 어찌하여 같이 앉아있는 것이며
또 어찌하여 아무렇지 않은 듯함께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
“오빠. 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아니, 궁금한 게 또 있어?”
“에이~ 그래봐야 고작 세 개밖에 못 물었다고요.
그것도 마지막 하나는 답변도 안 해 줬으면서.”
“그런가?”
“그러고 보면 오빠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왜? 꼭 있어야 해?”
“당연하죠!”
“그래?”
“그럼요!”
“이런~ 어쩌지? 난 물어볼만한 게 없는데.”
“진짜요?”
“응.”
경아의 표정이 이번에는 표루퉁하게 바뀌었다. 꼭 삐친듯한 모양새다.
“혈액형은 뭔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잘 하는지, 취미는 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는지, 또, 또...
이상형...은 어떤지.... 그런 거 하나도 안 궁금해요?”
“그런 걸 왜 궁금해야 하는데?”
“그럼 오빠는 내 혈액형이 뭔지, 다 알아요?”
“...아니.”
“바로 그거예요! 모르니까 알아가야죠.”
“꼭 그래야 해?”
“아~ 정말~ 몇 번을 말해야 알아요?!”
“얘 좀 봐. 너, 은근히 성깔 있다?”
이상하게도 민환은 무지 뻔뻔스러운 얼굴이다. 전혀 아니라는 듯이!
분명,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을 터인데... -_-;;
“그래서, 궁금한 게 뭐야?”
“이번에도 답 안 해줄 거면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
“하기 싫어? 궁금한 거 없어? 빨리 물어. 나 성질 급한 사람이야.
나중에는 대답 안 해줘.”
“아~ 누가 없대요?! 할거예요! 할 거라고요!”
“후훗.”
아이참~ 나 정말 왜 이러지? 오빠가 날 어떻게 보겠어? 우엉~
처음에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버럭, 소리치는가 하면, 살포시 투정까지 부리는 모습에 민환이 얇게 웃는다.
“오빠는 왜 여자친구 안 사귀어요?”
“궁금하다는 게 그거였어?”
“네.”
“간간히 성질까지 부리기에 뭔가 대단한 질문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그렇게 말 하지 마요. 나한테는 무지 중요한 문제라고요.”
경아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이유 없어.”
“...그때 그 여자 때문 이예요?”
“그 여자라니...?..... 아~ 후훗.”
“왜 웃어요?”
“개랑 나랑 그런 사이 아니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오해란 사절이라고.”
“오해?”
“다 먹었네. 일어날까?”
민환은 자신의 대답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경아를 본채 만 채 했다.
그런 민환의 행동에 경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차마 오빠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오해라고 하는 말.
민환의 입장에서는 오해라고 말하기 쉬울지는 모르나 경아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오해라고 말 하는 민환의 모습에서조차 어떤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분명, 오해가 아니다. 오해가 아닌... 사랑.. 그래.. 사랑이다...
그러나 경아는 민환의 말대로 그것이 단순히 자신의 오해였으면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야만 태민을 버리면서까지 온 자신의 행동에 당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아가 태민을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니, 현실은 도민환이라는 존재로 인해 성립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민환의 존재만 없었더라면...
아니, 민환의 존재가 그토록 간절하게 다가오지만 않았더라면
경아는 여전히 태민의 곁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오빠를 좋아해요. 오빠를 많이 좋아해요.”
경아는 이미 밖으로 향하는 민환의 뒤를 말없이 바라보도가 나지막이 지껄였다.
그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들어줘야 할 그 단 한사람이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껄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