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이유는?”
“아오~ 이것들이 정말!”
성민은 참으로 징하게도 방해공작에 들어갔다. 도대체 왜 그리 과민 반응인지 모르겠다.
“형수, 어쩌죠?”
“뭘요?”
“짱이 저렇게 과민반응 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지라......”
“뭐, 저러다 말겠죠. 너무 신경 쓰지 마요.”
“그럼, 계속 할까요?”
“당근 빠따죠!”
어느새 도이는 녀석의 말을 배웠다. -_-;
“뒷감당은 형수가 하기예요.”
“알았어요.”
“진짜죠?”
“아~ 당근 빠따라니까요!”
“좋아요. 그럼 형수를 믿고 시작해 보죠.”
그 때, 성민은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감지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물론 절대 고울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을 안으로 이끈 철문이 무지막지한 굉음을 내며 열렸다 닫혔다.
그러나 그 소리를 의식하고 긴장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다들 풋, 하며 짧고 굵은 웃음을 터뜨린다.
이래 뵈도 짱 인데.
이름은 다소 코믹하긴 하지만, 그래도 폭주족 사이에서는
명성 꽤나 날리는 이글의 총장이기도 한데....
여자 앞에서 이렇게 무능력(?)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다고!
딱총 같은 새끼(별 의미 없음) 헛소리만 지껄여봐라.
내 이름 석자 걸로 널 가만 두지 않을 테야. 정말로!
그러고 보니 아까도 조금 많이....
아니, 그래, 상당히 코믹스러웠잖아?
천하의 권성민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안절부절 하며 발이나 동동 구르지 않나.
도이가 나를 어떻게 보겠어?
성민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욕을 퍼 붓는 사이에도 안에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었다.
“짱은 원래 여자 안 좋아하거든요.”
“여잘 싫어한다는 말예요?”
“네.”
“왜요?”
“그렇잖아요. 짱 인물이 어디 보통 인물 이예요? 여자 꾀나 울릴 얼굴이죠.”
그 때, 주변에서 낄낄낄 거리며 웃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음....”
그들과 다르게 도이는 살며시 말을 끌면서도 인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어느새 성민이 앉아있던 자리를 차고앉은 놈이 배시시 웃어 보인다.
만일 성민이 그랬다면 묘한 매력이 발산 되었을 텐데,
어쩐지 이 놈은 그저 귀엽다는 생각만 든다.
“그래서 더 붙어 다니는 여자가 많단 말이죠. 근데 짱은 그걸 무지 싫어하고요.
죽자 살자 따라다니는 인간들이 좀 많거든요.
아니, 심하게 많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데, 어느 골빈 놈이 좋다 하겠어요?”
“그런 거예요?”
“그런 거죠.”
“아~ 그렇구나.”
귀엽상한 놈이 또 웃었다.
“그래서 짱이 한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무슨 말?”
“내 입에서 누군가를 지목으로 내 여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이상은
나랑은 절대적으로 관련이 없는 여자다.
고로, 그 누구도 나와 함부로 연결 짓지 마라.
아울러 난 내 가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여자가 아닌 이상 사귀지 않는다.”
“가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여자?”
“당시, 그 말이 얼마나 멋지게 들리던지..... 제 가슴이 다 짠~ 하더라니 까요?”
어쩐지 녀석의 말을 듣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동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있어도 멋있는 놈인데, 왜 이런 식으로 까지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그러고 보니 아까 성민이가 그렇게 오버액션을 취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남자의 자존심 문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싹트는 감정에 대한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아니었을까?
도이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드리워졌다. 꼭 울 것 같은 얼굴로 웃는다.
“근데 조금 의외인 면도 없잖아 있어요. 솔직히.”
“의외라뇨? 그건 무슨 말 이예요?”
“솔직히, 짱이 형수 같은 여잘 좋아할지 몰랐거든요.”
“내가, 많이 부족하긴 부족하죠?”
“어우~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녜요!!”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되요. 나도 인정 하는 사실이라고요.”
“형수!! 혹시라도 짱 앞에서 그런 말 마세요.”
“왜요?”
“그랬다간 저는 둘째 치고, 형수도 큰일 난다구요.
우리 짱이 평소 성격이 온화한 편이라 그렇지, 한번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데요.”
“왜 화를 내요?”
“당연하죠! 형수는 짱이 선택한 여잔데, 그런 말을 짱이 좋아하겠어요?
나 같아도 내 여자가 그런 생각 하면 싫다고요.”
“그런 거예요?”
“그럼요.”
“그럼 그건 무슨 뜻 이예요?”
“그냥, 어떤 뜻이 있다기보다는 느낌 이예요.
따로 떼어놓으면 모르는 사실을 둘이 붙어 있으면 의식하게 되거든요.
너무 잘 어울리기도 하고. 그냥 막 옆집 누나 같은 이미지도 있고.
그래서 좋다는 뜻이었어요.”
“아..... 좋은 거네요?”
“당근 빠따죠!”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요, 지금껏 성민이는 사귄 사람이 몇 명이나 되요?”
“에이, 형수는. 지금까지 내 말 뭘로 들었어요?”
“응?”
“형수는 처음으로 짱의 가슴을 차지한 여자라고요.”
“처음? 내가?”
꼭 무슨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나 자기가 처음이라는 말을 듣길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도이는 더 큰 기쁨을 얻었다.
살짝 윙크를 하는 놈을 보며 도이는 이상하게도 마구마구 성민이 보고 싶어진다.
“얘기 고마웠어요. 기회 되면 우리 또 봐요.”
“그래만 주신다면 저는 영광이죠.”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은 모습에 도이는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소 다급해 보이는 모습으로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그리곤 성민을 찾는다.
도이가 박차고 나간 문을 보고 안에서는 이런저런 웅성거림이 많아졌다.
“형수도 보기보다 한 박력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왠지 어리버리 해 보이기도 하는 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참 잘 어울린단 말이야.”
“야야, 아까 그 당황하던 모습을 보라고.
난 우리 짱이 여자 앞에서 그렇게 얼굴을 붉힐 줄은 몰랐다고. 두고두고 남을 일이지.”
“근데 두 사람, 이렇게 보니까 진짜 잘 어울리지 않냐?”
“근데, 호야, 나 걱정이 된다. 짱이 무서워진다.”
“왜?”
“왜, 있잖아. 며칠 전에.”
“아, 맞다. 그때 너 형수 상대로 장난질 쳤잖아.”
“아우~ 난 아까 두 사람이 딱 들어와서는 짱이 자기 여자라고 말 하는데,
이 심장이 얼마나 덜커덩 했는지 아냐? 존나, 암울한 인생 여기서 종치는 줄 알았다고.”
“넌 그래도 싸, 인마.”
“뭐어?”
“그러게 왜 아무나 상대로 장난을 쳐? 장난을. 쯧쯧.”
“아오~ 혈압 올라. 어서 이런 것도 친구라고!!”
이렇듯 한쪽에서는 정호패거라기 이렇게 말을 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어떠냐?”
“뭐가?”
“두 사람.”
“잘 어울리네.”
“시비조로 말하지 말고.”
“넌 내 말이면 다 시비조로 들리냐?”
“솔직히 네 말투가 좀 시니컬하냐?”
진오의 말에 송은 잠시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한다는 얘길 들어서 그런가?”
“뭐가?”
“송아. 어쩐지 난 두 사람이 저렇게 영원했으면 좋겠다.”
“…….”
“성민이, 정말 오랜만에 우리 앞에서 웃은 거 너, 아냐?”
“뭐.....”
“저 누나라면 난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 계집이 누나라고.”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불러야하지 않을까?”
“…….”
“근데 넌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몰라, 새꺄!”
계속 되는 진오의 물음에 송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빠져나간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왔다.
그 때, 송은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평상시대로,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건방지게 담배를 꼬나 문 성민의 모습과
그 뒤에서 그를 꽉 끌어않은 도이의 모습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있는 것을.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과, 다시 보니
정말, 잘 어울린다는 말만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성민아, 너 진짜진짜 멋있어. 정말 최고야.”
기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송의 얼굴에 복잡 미묘한 웃음이 잠시 머물렀다가
홀연히 떠나간다.
작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도이를 보면서,
그 앞에 하얀 두 볼에 수줍은 홍조를 띄운 성민을 보면서, 지난겨울이 그리워지는 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