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61화 (62/91)

61.

“안녕하세요?”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들 앞에서라면 잔뜩 주눅이들 도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방긋 웃는 얼굴로 활기찬 인사부터 건넨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도이의 등장에 멍~ 해진 그들이 보기에도 좋았다.

이상하게 덩달아 웃음이 나온다.

“앗, 그런데 누구시더라?”

안면이 있는 얼굴보다 초면인 얼굴이 더 많았기에,

군데군데서 도이의 정체를 물어오는 질문이 만발한다.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도이는 유쾌한 답변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곧장 그 말을 하려는데....

“어디서 형수님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

“형수님?”

“지금부터 내 눈동자랑 마주치는 눈동자, 어떻게 되나 보자? 응?”

계단을 내려올 때 까지만 해도

팔불출의 표본을 리얼하게 보여주던 성민의 모든 행동이 싹 바뀌었다.

그의 한 마디에 도이를 향했던 시선이 모두 거두어졌음에 화들짝 놀란다.

그저 낯설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묵직하고 딱딱한 음성.

직설적이고 차가운 성민의 음성에

도이는 그 웃던 얼굴에 웃음을 지우고 살며시 뒤를 돌아봤다.

(도이가 성민보다 대략 서너 발쯤 앞서있었다.)

도이는 다소 뻘줌함을 느끼며 성민을 봤는데,

그 순간 성민은 아주 뻔뻔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스치듯 보긴 한 거지만 얼핏 봤던 그의 표정은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성민이 도이의 앞에서 이토록 차갑고..

아니, 차라리 차갑다는 말도 할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괜스레 ‘내가 뭐, 잘못 한 거라도 있나?’ 싶어 도이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계단 위에서 귀엽다며 놀려댄 것 때문에 화라도 났나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화를 낼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뭐해? 거기 서 있을 거야?”

“어어?”

“와서 앉아.”

아지트 치고는 모든 면에서 꽤나 잘 갖춰진 실내.

성민은 그 정중앙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는 정 가운데 위치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놈은 성민이 다가가던 순간 냅다, 자리를 비웠다.

그 행동이 기가 막히게 빨랐다.

이런 게 일진이고, 이게 바로 짱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인가?

새삼 성민이 달리 보인다.

“뭐해? 이리 오라니까.”

한참을 멍하니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하는데,

그 많은 생각들을 떨치게 하는 그의 억양이 들려왔다.

처음 이 곳을 들어왔을 때처럼 묵직하고 차가운 음성.

다시 들어보니 그 음성에서는 어떤, 무시 할 수 없는 지배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벗뜨!!

가운 데 자리에 다리를 꼬고 떡 하니 앉아서

손가락질로 도이를 부르는 성민의 모습이 상당히 건방져 보인다.

그 건방짐이 상당히 잘 어울려 보인다. 그래서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진다. 젠장!

차라리 아프다고 할 걸 그랬나?

화가 난 것이 아니라면, 아프지 않다고 바락바락 우겼더니

더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도이는 문 밖에서의 일이 후회되기도 했다. 조금 많이.

“형수님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도이가 성민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모습.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분명,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고 보자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다.

그 누구의 시선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특히나 성민이 머리도 자르고 염색을 하면서 외모적으로 많은 변화를 추구한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인마, 묻잖아. 어떻게 된 거야?”

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잠시 버려두었던 혼을 찾아온 진오가 성민에게 물었다.

“들은 대로.”

“둘이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그러니까 형수님이라지.”

“커헉~ 정말?”

“새끼. 놀라긴.”

“정말 사귀는 거야?”

“내가 언제 실없는 소리 하던?”

“그건 아니지만.....”

놀람을 금치 못한 진오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었다.

별로 도이의 등장이나 그녀의 존재를 싫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 여자라서만은 아니다.

뭐, 몇 명뿐이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보다 한살 누님이시란 말이지.

그러니까 더욱 각별히 모셔라. 길 가다 마주치면 깍듯이 인사도 하고,

혹시라도,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또 모르는 일이니까,

나 없는데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노라면 주저 말고 도와주기도 하고.

대신, 혹시라도 집적거리는 놈은 없길 바란다.

뭐, 겁대가리 없이 내 여자한테 직접일만큼 담이 센 녀석도 없어 보이지만.”

성민은 아지트 내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단조로우면서도 여전히 지배력이 강한 음성으로 그들 앞에 도이를 소개했다.

당당하게 내 여자라는 말을 강조에 또 강조를 하면서.

그런 성민의 말에 그 누구도 주저 없이 알았다며 대답을 했고,

그를 지켜 본 도이는 그저 성민이 멋있어만 보인다.

콩깍지가 씌워졌어도 단단히 씌워졌다.

“근데요, 짱.”

“왜?”

“어떻게 만났어요? 두 분.”

이번에는 도이가 팔불출이 되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성민의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모습에 그저 흐뭇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까딱 하단 침이라도 흘릴 태세다.

그 때,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한 녀석이 넌지시 질문을 던져온다.

이제까지 봐온 사람들과는(그래봤자 진오와 송. 그리고 정호패거리가 전부였지만) 달리

처음 성민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나게 하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왜, 궁금하냐?”

그 녀석을 보며 성민이 말했다.

그런데 녀석, 참으로 이상한 녀석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들어온다.

이유인즉슨,

한껏 폼 잡으며 차갑고 무뚝뚝하게 이야기 할 때는 언제고

늘 도이에게 보여주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살포시 얄미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성민의 말투 하나에 한결 더 편안해지는 분위기에

다시 한번 녀석의 대단함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그들 무리 속의 자신의 존재가 떳떳해지는 것도 같았고

처음과 달리 가지각색의 시선들이 부담스럽지만은 않아졌다.

“당근 빠따죠, 짱!!”

“근데 어떡하나?”

“뭘요?”

“가르쳐주기 싫어서. 후훗.”

“엥?!”

이제는, 잔뜩 기대를 한 모양인지 유난스레 달라붙어서는

귀를 기울이는 녀석을 놀려먹는 성민이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미운 네 살이다.

하지만 녀석은 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성민에게는 그 어떤 답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방향을 바꿨다.

도이가 화들짝 놀랐다.

“누가 먼저 고백했어요? 형수님!”

냉큼, 자신의 앞에 다가와서 묻는 녀석을 보며 도이는 적잖이 당황한다.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성민의 눈에선 레이저광선이 쏘아진다.

그러나 녀석, 무슨 시본지 아예 그 시선을 달리한다.

쪼끔 많이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만일, 이 상황에 정호라면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형수가 먼저 고백했어요? 아님 짱이 먼저 고백 했어요?”

“…….”

“짱이 먼저 좋아하기 시작했을 것 같은데, 맞죠?”

“야야!”

“이것 봐. 벌써 반응이 오잖아. 하핫.”

녀석의 질문에는 단순히 궁금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확신이 함께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주위의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이를테면 성민의 눈총 따위)

물어오는 녀석이 도이의 눈에도 귀여워 보이나보다.

첫 질문을 받았을 때는 심하게 당황스러워 하더니

이제는 아주, 녀석과 같은 표정으로 눈을 마주했다.

어쩜 성민의 예민한 반응에 장난질을 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가지 바에 없거든요.”

“한 가지?”

“짱이 여자를 사귀는 이유 말 이예요.”

“야야!!”

“궁금하지 않아요?!”

“너, 거기서 그만 안 할래?! 앙?!”

“에이~ 짱은. 그만 하란다고 그만 할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죠. 안 그래요?”

“너, 지금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거야? 씨빠빠. 이게 또 오랜만에...”

“헉!! 말씀을 하셔도.... 감히 제가 어떻게 그래요?”

“그러는 게 아니면?!”

“이건 어디까지나 짱을 위해서가 아닌 형수님을 위해 하는 말이라고요.”

“어딜 봐서 그게 신도이를 위하는 일이냐? 내가 보기엔 날 골탕 먹이려는 수작...”

“그건 어디까지나 형수님이 받아들이시기에 따라 다르다고요.”

녀석은 불끈하면서도 심하게 이맛살을 구기는 성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성민아. 그건 내가 판단할게.”

“누구 맘대로?”

“당연히, 내 맘대로지.”

“널 위한 일이 아니면 어쩔 건데?”

“뭐, 그건 그 때가서 생각 해 보지.”

“누구 맘대로?!”

왜 그러는지 상당히 흥분한 성민을 보며, 도이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더욱 그 녀석을 재촉하기에 이른다.

“그러지 말고 우리 저녁 먹으러 갈까? 쓸데없는 얘기 들어서 뭐해?”

“싫은데?”

“어쭈? 지금 서방님 말씀을 무시하겠다는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상황에 그래야만 한다면, 그것도 나쁠 것 같진 않아.”

“뭐어?!”

“듣고 싶다고.”

“하~ 참!”

성민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이상하게도 붉어진 얼굴로 안절부절 못했고,

도이는 성민의 그런 반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어쩜, 그래서 더 즐기는지도 모르지만.

사악한 영혼 같으니라고....

아무튼, 녀석의 말이 이어졌다.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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