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일주일의 시작이 좋았다.
아침에는 성민과 함께 등교를 했다. 성민이 구태여 도이를 마중 온 것이다.
그것도 다희네 집 앞으로.
(지난 밤 도이는 하루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전하느라 다희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뜬 눈으로.)
도이로써는 처음 갖는 데이트였다.
유민이 해 주던 것처럼 편안하게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것이 아닌,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빼곡한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또 성민의 보호를 받으며, 간간히 걷기도 하며, 그렇게 등교하는 것이 말이다.
사실, 유민의 곁에 머물면서도 성민과 둘만이 갖은 시간은 종종 있었고,
이제까지 도이가 사귀었던 남자친구라곤 유민이 전부였다.
그래서 인지 오늘따라 기분이 더 좋기만 하다.
“아이쿠, 입이 찢어지네. 찢어져.”
성민과 도이의 데이트를 위해
오 분 늦게 등교한 다희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도이를 찾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도이는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도착한 지 십 분이 지나서야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티 없이 밝게 웃는 도이의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만, 약간은 샘이 난 듯 하다.
“연애하는 거 티 내냐?”
“응.”
“그렇게 좋아?”
“응.”
“후훗.”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얼굴에선 한시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자율학습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 쯤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민아를 의식했고, 그 후부터는 최대한 좋은 티를 내지 않았다.
괜히 그녀와 시비 아닌 시비가 붙어봤자 피곤할 뿐이기에.
머릿속에 한 가득, 성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다보니 하루는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벌써 하교 시간이 되었고 저기 교문 앞에는 벌써부터 성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종례가 늦게 끝나는 걸 어떡해?”
“누가 노처녀 아니랄까봐서 히스테리부리네. 정말.
그러고 보니 너희 담임 히스테리 대 마녀라며?”
“그건 또 어서 주어 들었대?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어서 주어 듣긴 뭘 어서 주어 들어. 도마뱀한테 주어 들었지.”
“도마뱀?”
“응. 도마뱀.”
“그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도민환이지.”
“뭐어?! 푸훗.”
“왜 웃어?”
“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렇지?”
“응.”
두 사람은 환하게 웃었다.
“가자.”
“어디 갈 건데?”
“가 보면 알아.”
“어딘데?”
“가 보면 안다니까?”
“그래도 살짝, 말 해주면 안 돼?”
“응. 안 돼.”
“피이~ 궁금한데.”
궁금하다며 투덜거리는 도이를 보며 성민은 그저 예쁜 입술은 꾹 다문 채
미세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놓칠 새라, 도이의 그 작은 손을 꽉 잡고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버스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실은 버스는 빠르지 않게 학교를 벗어난다.
그리고는 굽이굽이 골목길을 달리듯, 몇 차례 방향을 틀어가며 장거리를 이동해 왔다.
버스에 앉아있던지 대략 삼십 분정도 되었을까?
성민은 여전히 놓지 않은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주변의 여러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다.
몇 번인가 와 봤던 곳이다.
한참 성민을 찾아 해매일 때,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왔던 태진 고등학교 앞.
그의 아지트가 있는 곳.
“여긴.....”
“내 친구들하고 정식으로 인사 해야지.”
“엉?”
“사실 어제 그 길로 당장 오고 싶었는데, 참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성민은 자신의 친구들을 생각 하며,
그 앞에 당당히 도이를 내 세울 것에 대해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그래서 더, 도이의 불편한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저 안에 들어가면, 그 때, 그 녀석들도 있겠지?
성민아, 나 그냥 저기 안 가면 안 될까?
그냥 제일 친한 친구 몇 명만 불러내서 따로 만나면 안 될까?
도이는 딱,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쩐지 정호의 얼굴이 막 떠올랐다.
그 때 자신을 상대로 빈정거렸던 그 얼굴이 생각난다.
아무리 성민을 극복 해 냈더라도
(따지고 보면 정말 무서운 것은 그들이 아닌 성민이 아니겠는가?)
정호라면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자, 가자~”
지하 계단을 밟아 내려가며 휘파람까지 불어대는 성민을 보자니 나오는 것이 한숨이다.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네?”
묵직한 한숨소리에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성민은 걸음을 멈췄다.
처음엔 그저 왜 그러나 싶은 생각으로 걸음은 멈춘 것이었지만
파리하게 변한 도이의 얼굴을 보며 흠칫, 놀라고 만다.
“아냐. 안 아파.”
“어디 아픈 게 맞는데, 뭘.”
“아니, 괜찮은......”
“어제 바이크 타고 와서 감기 걸렸나? 열 있는 거 아니야?”
“감기는 무슨, 이 여름에.”
“얼굴도 새빨갛고. 가만있어 봐. 열 있나 좀 보자.”
성민은 다급히 손을 가져다 도이의 이마 위에 올려놓는다.
“세상에, 세상에! 이 열 좀 봐!!”
뜨끈하다.
펄펄 끓어오르는 게, 체감온도만으로는 39도는 족히 되는 것만 같다.
사실은, 내리쬐는 땡볕과, 갑자기 거리를 좁혀오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손을 가져오니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지만.
암튼, 이마뿐이 아닌 얼굴 전체가 뜨끈한 건 사실이다. 성민으로서는 걱정 할 만도 하다.
“아니, 이렇게까지 아프면 말을 해야지!! 너, 바보야?!”
“아, 아니 성민아. 난 정말 괜찮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진짜 괜찮은데.....”
“후우... 내가 바보지... 내가 병신이야...
여자 친구가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나 좋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성민은 그야말로 팔불출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진상이다.
“병원부터 갈까? 그리고 약 먹고 푹 자자. 응?”
“…….”
“참, 아지트에 해열제 있을 텐데. 송이송이가 한동안 좀 심하게 타락했었거든.
그 때, 무슨 미친 짓을 그리 해 대는지,
근데 또 죽어도 병원은 싫어하는 놈이라 해열제가 떨어지지 않았단 말이지.
일단 내려가자.”
도이는 자신의 발간 얼굴에 안절부절 못하는 성민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긴장이 되고 그래서 잠시나마 온 몸이, 안면 근육이 빳빳하게 굳어졌었다고도 하나,
이건 도무지 웃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어? 왜 웃어?”
“푸훗.”
“어어?”
“너, 너무 웃겨.”
“뭐어?!”
“너무 귀여워. 진짜 귀여워.”
잔뜩 긴장되었던 얼굴이 자연스레 풀어지고
한가득 웃음꽃이 만발 하는 가운데 성민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덕분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긴장감을 떨쳐 버리고,
도이는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서 지하의 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이미 안면이 있는 녀석들부터 해서 꽤 많은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너무나 강렬하게 개성을 과시하는 그들의 외모나 차림새 등만 따지고 본다면
문을 연 순간부터 또 다시 주눅이 들어버리고 말 것 같았지만,
성민의 그 귀엽상한 행동 때문인지 도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고 곤욕을 치렀다고나 할까?
그렇게 다소 즐거운(?) 만남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