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에취―”
코끝이 간지러움에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하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에취―”
“후훗. 성공!”
민환은 성민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씩~ 날려주었다.
반면 아직 잠이 덜 깬 도이는 정신이 몽롱하다.
눈앞에 민환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가 왜 자기 앞에 있나 싶은 것이 꿈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예의 날카로운 한마디를 쏘아 붙이는 건 잊지 않는다.
“맞을래?!”
“그러게 누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디비자래?”
“남 이사!”
그때, 주방 쪽에서 이모의 말이 들린다.
“와서 밥들 먹어.”
“네, 이모!”
씩씩하게 대답하는 민환을 잠시 가는 눈으로 흘겨보다가
낯설지만 분명 낯설지 않은 인물이 도이의 검은 눈동자에 비춰진다.
시선이 마주치자 성민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에 덩달아 웃는 도이지만 민환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누구야? 친구야?”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묻는 도이의 행동에 두 사람은 모두 벙졌다.
성민은 내심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를 모르는 도이는 태연하게 또 다른 말을 한다.
“못 보던 친구네.”
“…….”
“참 신기하단 말이야....
정작 본인은 별 볼일 없는데 어서 친구라고 물고 오는 놈들은
하나같이 인물이 받쳐 준단 말이지.
태영이도 그렇고, 성택이도, 어디 하나 빠진 인물은 아니잖아.”
잔뜩 약을 올릴 심산인지 교묘하게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민환이 다소 어이없다는 듯, 허무하면서도 미약한 실소를 내 뱉고 말 한다.
“물고오긴 뭘 물고 와? 내가 멍멍이야?”
“또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내가 뭐가 어디가 어때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해 봐.”
“뭘?”
“태영이가 났니? 네가 났니?”
“그, 그야 당연히!! 내가 났지!! 그것도 허배 낫다고!!”
“우길 걸 우겨.”
똑 부러진 민환의 대답에 도이는 그저 고개를 설래 설래 젓는다.
그에 민환이 불끈 했다.
뭐라고 한 마디 쏘아 붙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까,
그 짧은 사이 또 고민을 한다.
허나, 그 고민은 헛수고가 돼 버렸다.
도이가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훗.... 근데... 네 친구 이름 뭐야?
되게 낯익다. 어서 봤나? 아! 그러고 보니 성민이를 조금 닮은 것도....”
“…….”
“잠깐만! 엉?! 어어?!”
한참을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지껄이던 도이의 행동이 멈췄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시끌시끌하던 그 입도 다물어졌다.
몇 차례 눈을 비볐다. 꼭 헛것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취한 행동이다.
이내, 경악을 금치 못하는 당황스러움에 입을 쩌억 벌린다.
“너!!”
“아무리 잠이 덜 깼기로서니 어쩜 그렇게 못 알아봐요?”
“성민아!”
“요 며칠 못 봤다고 그새 내 얼굴 까먹었어요?”
“너, 성민이 맞아?”
“그럼 내가 권성민이지 누구겠어요?”
“어머, 어머!”
“안 반가워요?”
“아, 아니! 반가워!!”
화들짝 놀람도 잠시, 성민이의 물음에 다급하게 답을 하고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그런 도이의 모습을 보며 성민은 자신을 못 알아 봤다는 사실에 영~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내 웃고 만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그로서도 감당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잘 잤어요?”
“어? 어어....”
도이는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런 바보, 성민이가 나를 어떻게 봤겠어?
어쩜 그렇게.. 누가 온지도 모르고 퍼질러 잤으니...
아아~ 정말, 어쩜 좋아?
도이는 딱,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배 안 고파요? 난 배고픈데.”
“밥 안 먹었어?”
“네.”
“이모!! 나 배고파!!”
슬며시 미소 짓는 성민의 얼굴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찌 하지 못해 덜컥,
고함부터 지르고 본다. 그 모습이 가히 코믹스러웠다.
“밥 차려놨어. 얼른 가서 밥 먹어.”
“응. 응. 이모.”
발개진 얼굴로 주방으로 향하는 도이를 보며 모두가 웃었다.
무엇보다 이모는 처음 성민을 봤을 때, 자신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에 기분이 좋았다.
.
.
“여기 경치 꽤 좋다.”
두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은 채 산책을 나왔다.
어쩐 일인지 민환은 이모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난 후, 바로 서울로 돌아갔다.
발신을 모르는 전화 한 통화 때문이었는데, 도이는 그것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모네 집까지 굳이 찾아온 성민을 보면서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또한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분명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을 성민이지만 그 할 말이 무엇인지 짐작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찾아갔던 걸 알고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유민과의 일 조차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찾아온 것인지...
가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환이라면 그저 막무가내로 성민을 끌고 왔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막무가내로 끌려 왔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무시할 순 없다.
더군다나 지금 성민은 늘 취하던 행동을 그대로 취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성민의 모습.
다희에게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지만...
얼핏 보았을 때는 미처 알아보지도 못했던 그 낯선 모습이 내심 걸렸다.
새삼, 잘 지내던 그와의 사이가 틀어진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고,
전에는 없던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도이는 다가갈 수 없는 사람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며칠 새 확연히 변한 성민의 모습은....
“이렇게 좋은 데를 혼자만 알고 있음 좋아요?”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성민이 물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나온 곳은 이모네 집 뒤쪽으로 뻗어있는 외길이었다.
그 길의 끝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는데,
저수지보다도 그 주변의 풍경이 무척이나 볼만 했다.
“앞으로는 혼자만 알지 말고 나도 알려줘요. 알았죠?”
“응.”
“이야~ 진짜 좋다.”
성민은 주저 없이 풀밭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연신 좋다는 감탄사를 날렸다.
반면에 도이는 두어 발치 뒤에서 성민이 취하는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성민이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어떤 질문이 나오면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더불어 자신 또한 궁금했던 그 이야기를 묻고 싶었다.
정말 나를 좋아하느냐고.....
아니, 그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면 너는 어떤 마음이 들겠느냐고....
...그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유민을 상대로 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오랜만에 찾아온 이 설레는 감정에 진실하고 싶었다. 또한 충실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더는 아프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거예요?”
“응?”
“이리로 와 봐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드디어 녀석이 도이를 부른다.
자신의 가까이로.
“나, 누나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