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54화 (55/91)

54.

멀뚱멀뚱―

민환은 다소 얼이 빠진 얼굴로 정호를 올려다봤다.

오른쪽 뺨에서 올라오는 화끈거림으로 인해,

눈 깜작 할 사이에 벌어진 그 어이없고 당황스러움에

화가 나기에 앞서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나 쳤어요?”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비린 실소를 내 뱉으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호를 향해 빈정거린다.

“나 친 거냐고 묻잖아, 씹새야!”

그러다가 별안간 거친 욕설을 내 뱉었다.

별 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을 없는 사람 다루는 듯 하면서도

교묘하게 내리 깔은 정호의 시선에 폭발하고 말았다.

마치 스프링이라도 깔아두었던 것처럼 민환의 몸이 휙 하니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정호의 멱살부터 틀어잡는다. 이렇다 할 틈도 없이 주먹을 내리 뻗었다.

“이 새끼가!”

미처, 민환의 주먹이 자신을 향해 곧게 뻗어올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정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외마디 욕설보다 차고 시린 얼굴이었다.

“그러게 사람이 물으면 재깍재깍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민환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어 또 한번의 주먹을 내리 꽂기 위해 그의 팔이 곧게 뻗어나간다.

하지만 이번엔 그 속도보다 정호가 조금 더 빨랐다.

정호는 근사한 차이로 민환의 주먹을 막았다.

“훗. 보기보다 배짱은 있는 새끼로군.”

비릿한 실소가 섞인 정호의 말이었다.

“하지만 넌 눈치가 너무 없어.”

그리고 또 이어졌다.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를 너 같은 놈이 욕할 만큼, 보잘것없는 사람 아니야. 알아?”

“욕? 씨빠빠. 누가 누굴 욕했다는 거야?”

“눈치만 없는 줄 알았더니, 머리까지 나쁜 놈인가 보군. 훗.”

“이런....!!”

따지고 보면 그리 예민하게 굴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예민하게 구는 정호의 행동과

계속해서 빈정대는 놈의 행동이 민환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쥐고 있던 멱살을 더욱 힘껏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때,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아니, 그보다는 익숙한 이름 석자가 들려왔기에

이내 그 음성이 익숙한 음성이었음을 감지 할 수 있었다.

“누가 왔었다고?”

“왜, 그 있잖아. 한 일년 전이었나? 그 때부터 가끔씩 말했던 여자. 신도인가?”

“신도이?”

“그래.”

“언제?”

조금은 의외라는 듯 묻는다.

“씨바, 한참 얘기 할 때 어디 갔다 왔냐?”

한명은 분명 성민임을 확신 할 수 있었지만,

그 옆에서 들리는 음성은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했다.

민환은 진오와 한두 번쯤, 우연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서로 통성명을 했다던가

아니면 짧은 그 어떤 대화든 간에 한 마디라도 나누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왜 온 거래?”

근데 참 이상했다.

의외라는 듯 물었을 때는, 그 음성 속에 미세하게나마 반가움이 깃들여졌었지만

다시 묻는 말에는 차가운 한가기 느껴졌다.

“너한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던데?”

“할 말?”

“그래.”

“무슨 할 말?”

“난 모르지.”

자기 일이 아니기에 심드렁히 말하는 진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환은 정호의 멱살을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풀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정호를 밀어버렸다.

약한 힘이었지만 정호는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민환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왜긴 왜야?!”

“…….”

느닷없이 버럭, 소리치는 민환의 등장에 성민의 고운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이거 뭐야? 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앞을 쏘아본다.

그러나 이내, 의외의 인물이 자신의 아지트 앞을 당당히 지키고 서 있는 모습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뭐야? 도민환?”

그러나 성민보다 더욱 당황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환이었다.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성민의 변화 된 모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물론 다희에게 대충 듣기는 했지만 이토록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도민환이지 누구겠냐?”

그러나 곧, 민환은 거만하게 팔짱을 괴고 말했다.

성민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왔다.

“네가 여긴 왜 있어?”

“왜? 내가 오면 안 돼?”

뻔뻔스러운 물음이었지만 성민은 개의치 않는다.

다만, 여전히 민환의 존재를 탐탁지 않아하는 정호의 안면엔 한층 더 심한 굴곡이 생겼다.

“뭐, 그런 건 아니지만.”

“한다희 만났었다며? 어제.”

“한다희가 알려줬나 보네.”

“이제는 누나 아니고 다희야?”

“훗.”

“학교는 왜 안 나오는데?”

“그런 걸 굳이 너한테까지 보고 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는데.”

“새끼,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네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다 안다고.”

예전이라면 생각지 못했을 딱딱한 반응에

민환은 조금은 껄렁껄렁한 면모를 보이면서 빈정거렸다.

당사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여전히...

그 옆에 있는 정호는 그리고 더불어 진오는 민환의 그런 행동을 불쾌히 여겼다.

“어디서 터졌는지, 그 몰골로 잘도 지껄인다?”

“그러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 아냐?”

“아 참!”

다희가 왔을 때는 왜 인지, 차갑게 굴었던 성민이었지만

민환에게는 다희에게 굴었던 것처럼 차갑게 굴지 않았다.

“도이누나 말인데, 혹시라도 소식 전해들은 거 있냐?”

“너 역시 신도이 때문이야? 친구에 이어 후배라....

훗.... 정말 대단한 여자네.....

주변에서 이렇게들 챙겨주니.... 보기보다 복 있는 여자란 말이지.

근데 왜 하나같이 그 여자일로 나를 찾는지 모르겠네.”

너무나 냉정하게 말 하는 성민이었지만

그 냉정함 속에서 베어 나오는 쓸쓸함을 민환은 용케도 읽어냈다.

“새끼, 존나 정떨어지게 말하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니까.”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는 많았지만 그냥 가줬음 좋겠네.”

“진심이야?”

“너 같은 놈 맞대고 헛소리 지껄일 만큼 할 일 없는 놈 아니다.”

“이게 원래 네 얼굴이냐?”

민환은 살짝 찌푸려진 얼굴로 말했다.

늘 보던 놈이 아니라는 말에 어느 정도 놀랄 것은 감안하고 오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다른 모습에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성민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민환을 무시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기에 그를 등졌다.

하지만 순순히 그를 보내줄 민환이 아니었다.

“그럼 하나만 묻자.”

“…….”

“신도이가, 차유민과의 결별을 선언했다는 건 아냐?”

결별이라는, 그 단어 하나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던 성민의 걸음이

일순간 멈춰 섰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잘못 들은 거겠지? 하면서도

기대하는 듯 그의 눈동자가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씨바, 그러니까 두 사람 약혼인지 지랄인지, 안 한 거 알고 있냐고!!”

다시금 들려오는 민환의 말에 성민은 왜인지 기뻤다.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분이 되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차분하면서도 여전히 냉정함을 잃지 않고 말 한다.

“그,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정말 상관없냐?”

하지만 민환은 성민의 음성에서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너 때문이라는데, 그래도 상관없어?”

“진오야, 내 바이크 키 좀 가져와라.”

“어?”

“내 바이크.”

“알았다.”

정곡을 찌르는 듯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에 성민은 진오를 지하로 내려 보냈다.

그가 옆에 있는 게 어쩐지 신경이 쓰였던 탓이다.

그를 눈치 챘는지, 진오는 정호를 끌고 내려갔다.

“아무래도 신도이가 권성민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래도 상관없어?”

진오와 정호가 퇴장을 한 후,

등 뒤에서 교묘하게 입술 꼬리를 말아 올리며 민환이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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