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도이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흐른다.
이미 온 얼굴이 흥건히 젖어버린 지 오래였다.
언뜻―
그 젖어버린 눈에서는 무엇인가를 향한 간절함이 보인다.
도이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원하는 것일까?
그녀의 발걸음이 다급하게 움직인다.
많은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시선은 온 주변을 쉼 없이 훑는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포착한 순간...
기쁨의 눈물과 함께 오랫동안 갈망해온 무엇을 비로소 찾은 듯, 미세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
.
그 시간―
성민은 그 어느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은 한적하고도 한적한 외길을 달리고 있었다.
여름 태양빛에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검정색의 바이크에
몸을 싫고.. 마음을 싫고.. 그리고 시간을 싫었다.
성민의 상채가 앞으로 뉘어지고 또 뉘어질 록 바이크의 속도는 점점 더 올라간다.
귓가가 따가울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폭발한다.
그 굉음 속에 성민의 억눌린 함성소리가 파묻힌다.
어쩐지 외로워 보였지만 성민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두 대의 바이크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성민의 바이크 만큼은 아니지만 못지않게 눈부신 바이크였다.
그 눈부심 속에서도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한번 사로잡은 시선은 도통 자유롭게 풀려나질 못하는 강한 압력이 느껴진다.
제일 가운데서, 제일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분명 성민이다.
그렇지만 전혀 그가 아닌 것 같은 이 이질적인 느낌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 길고 부드러웠던 머리는 어찌하여 짧고도 짧게 잘려있는 것이며,
거멓지만 햇볕을 밭으면 자연스레 흐려지던 갈색의 머리는
어찌하여 샛노랗게 탈색이 되어 있는 것일까?
전에는 없는 피어싱이 오른쪽 귀 밑에서, 왼쪽 코 위에서,
어쩜 저리도 어색하지 않게 자기자리임을 과시하듯 으스대는 것일까?
또한 늘 단정하던 옷 차림새는
왜 이리 거추장스러워 보이고 산만해 보이기만 하는 것일까........
빵빵―
부우웅― 하며 세대의 바이크가 엄청난 굉음 속에서 무한질주를 하고 있는데,
한적하던 외길에
상당히 딱딱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급의 세단이 연이어 달려온다.
한 두 대의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빵빵―
뒤에서부터 달려오던 세단이 연신 클랙션을 울려댄다.
한두 번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고, 한두 대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도 아니었으니,
그 소리는 무려 세대의 바이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을 뚫고
그들의 귓가에 닿을 수 있었다.
분명, 그들의 경적은 멈추라는 신호였다.
“씨빠빠.....”
무시를 해 보려 하지만 무시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성민의 입에선 한차례 욕설이 터져 나온다.
서서히 그가 몰던 바이크의 속력도 줄어들었고, 이내 멈춰 선다.
덩달아 진오와 송의 바이크도 속력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멈췄다.
탁― 하며 약간은 묵직한 소리가 나면서
차안에서 몇 명의 사내들이 연이어 몸을 내린다.
그리고는 큰 보폭으로 성민의 앞까지 다가온다.
“뭡니까?”
“호출 이십니다.”
그들은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성민의 앞에 섰다.
“꼰대?”
“네, 도련님.”
“씨빠빠.”
그들의 등장과, 호출이라는 명목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코 반가운 등장이 아니었는지 성민은 한껏 인상을 구겼다.
그 구겨진 미간이 평소에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너무나 차가워 보였고 낯설기만 하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표정과는 다르게 여유로움이 보이는 성민.
속도가 다 내려간 바이크 위에서 상체를 늘어지듯 앞으로 숙이고는
정면을 응시하며 한 남자를 향해 물었지만, 그는 마땅한 대답을 하지는 않는다.
“나 미행했어요?”
“…….”
“....그런 모양이네.”
어느새, 대답 없는 남자를 보는 성민의 표정이 무료하다.
“알았어요. 가세요.”
“같이 가셔야죠.”
“알았으니까 먼저 가시라고요.”
“도련님.”
“아, 이 놈은 끌고 가야 할 거 아닙니까?”
성민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바이크는 저희가 끌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는....”
“아~ 진짜, 사람 말기 참~~ 못 알아들으시네.”
“…….”
“뒤 따라 간다잖아요. 따라 간다고!”
“하지만,”
“나 못 믿어요?”
“…….”
“아님,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요?”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말을 하지만,
아랫사람을 다루는 듯한 어투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지만..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 것은 성민이었다.
“네.”
긍정을 표하는 너무나 간단명료하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단조로운 음성.
그 음성에 가뜩이나 차가워 보이던 성민의 표정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어서, 올라타시죠.”
남자가 성민의 팔을 살며시 잡아끌었다.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성민은 맥없이 바이크 안장에서 몸을 내린다.
그리고는 제일 앞쯤에 있는 차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어느 한 사내가 바이크를 끌고 먼저 출발을 하면
여러 대의 세단이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세단들은 하나같이 바이크의 뒤를 쫓는다.
“설마, 뭔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지?”
멀어져가는 성민과 검고 차갑기 그지없는 커다란 차들. 이내 보이지 않는 그들.
진오는 멀어져가는 그 모든 것들을 보면서 한껏 근심과 걱정이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그에 송은 표정 없는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꺼트린 시동을 다시 걸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
.
겉보기만으론 몇 층인지를 가늠할 수 없는 높고도 높은 빌딩 앞에 성민의 바이크가,
여러 대의 세단이 멈춰 선다.
그러면 어디선가 나타난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도어맨이
성민의 좌석 문을 신속히 열어젖힌다.
【신일그룹】
높고도 높은 이 건물의 지칭이다.
이는 현,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top3 이내의 성장 기업으로써
성민의 아버지인 권만세 회장의 사업지이며,
훗날 성민과 그의 형인 성현이 이어갈 거대기업이다.
띵동, 하며 성민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정확히 17층의 높이에서 멈춘다.
꽉 닫혀있던 문이 열리면 성민은 자신을 경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회장실이라고 써 있는 팻말 앞까지 느릿하지만 또한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다가간다.
똑똑―
단조롭지만 예의의 노크소리가 몇 번 들리고 나면, 안쪽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온다.
성민은 자신을 경호해오던 사내들을 두고 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경호원들은 문 밖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며 대기 중이었고,
문이 닫힌 회장실 안쪽에서 보이는 성민의 모습은 긴장이라도 했는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