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45화 (46/91)

45.

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희가 그 뒤를 따라 일어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카페 정 중앙의 테이블께로 다가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도이에게로 집중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마냥, 새하얀 정장을 입고 있는 도이의 모습이

너무나 화사해 보였던 탓이다.

“휘익~”

주변에서 간혹 도이를 환호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도이는 기쁘지 않았다. 기쁠 수가 없었다.

이 순간에야 비로소, 이것이 잘못 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참, 도이야!”

많은 시선과 환호를 동시에 받으며 정 중앙 자리에 다다른 도이는

사뿐히 그녀를 위해 준비 된 의자에 앉았다.

그런 도이의 곁에 다급하게 다가와서는 무엇인가를 속삭이는 다희.

잠시 도이를 환호하던 소음이 웅성거림으로 바뀌었다.

다희의 행동에 여러 가지 의문을 품은 소음이었다.

“일단은 웃어. 아직 내가 한 마디를 못했는데....

그 말 때문에 표정이 굳어있을 순 없잖아. 저 많은 시선들 속에서 말이야.”

“왜? 뭔 대?”

“알아서 하는 건, 네 몫이고, 내 몫은 아직 끝이 나질 않았거든.”

다희는 주변의 동태와 더불어 출입문을 살피며 이야기 했다.

무엇보다 유민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내가 다른 놈이랑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그 놈이 한 말을 너한테 못 전했잖아. 유민오빠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야?”

도이는 자신에게 집중되어 도무지 거둬지지 않는 시선이 불편했다.

“응. 중요해.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꼭 해야 돼.”

“빨리 해줘. 저 시선도 시선이지만, 곧 유민오빠 들어와.”

도이의 서두름에 다희는 주저 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지금 이 장면을 유민에게 보여서 그다지 좋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좋아한데.”

“응?”

“권성민이 신도이 너를 좋아한데.”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표정부터 풀어.”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말 그대로야.”

“…….”

어안이 벙벙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순간, 저 말 한마디에 도이의 마음이 크게 동요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세한 건.....”

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자 더욱 큰 웅성거림이 들렸고,

그 틈을 타 유민이 들어왔다.

다희는 뭔가 찔리는 사람처럼 하려던 어떤 말을 감춘 채로

어색하게 웃으며 어색하게 큰 소리를 내어 말 했다.

“너, 저렇게 멋진 신랑 옆에 두고 자꾸 그렇게 딱딱하게 앉아 있을 거야? 하하....

기.. 긴장 좀 풀어...

평소에는 전혀 긴장이란 것도 모르던 녀석이 왜 이리 긴장을 하는지.. 하하....”

어색함이 줄줄 흐르는 말을 하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다희를 바라보는

유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아아. 그럼 오늘의 두 주인공이 다 모인 관계로 오늘의 중대한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사회자로 보이는 이가 이번에는 제법 진지하게 마이크를 잡자

곳곳에서의 웅성거림이 줄어들었다.

유민은 터벅터벅 느릿한 걸음을 걸으며 가운데 자리로 다가왔다.

그의 표정이 어둡다.

“자, 먼저 오늘의 이 언약식은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행복하고 아름다운 신랑 신부가 될 차유민군과 신도이양의

진실 된 사랑을 축복 해 주는 자리입니다.

비록 양가의 부모님은 불참을 하셨지만, 그 분들의 몫까지 아낌없는 환호와 격려를

먼저 부탁드리며 오늘의 이 성대한 의식을 시작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두 주인공은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언약식이라고는 하지만 예상 외로 거창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 사이, 사회자가 마이크로 몇 마디의 말을 내 뱉는 동안

정면의 케익으로 가려진 공간에서 유민의 손이 도이의 길고 가느다란 손을 꽉 움켜잡았다.

너무나 큰 힘이 느껴진다.

피가 통하지 않는지 손 마디마디가 저며 오기도 했다.

도이는 살며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표정이 너무나 어두워 차마 더 이상은 바라볼 수가 없었던 탓이다.

“도이야.”

유민이 도이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한번 만 더 물을게. 정말 마지막으로 물을게.”

“…….”

“....후회 하지 않지?”

유민은 도이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의 커다란 눈이 곱게 감겼다.

그는 혹시라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도이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혹여나 아무런 대답도 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 도이를 두려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 눈 대신 차라리 두 귀를 열었다.

도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민이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더욱 말 할 수가 없었다.

다른 때보다도 더 혼란스럽기만 한 이 순간....

도이는 유민보다도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먼저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의식은 계속하여 치러지고 있었다.

“좋아한데...”

좀 전의 다희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그 녀석의 목소리가 어른거린다.

유민의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이는 유민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온 관심을 쏟고 있었다.

무엇을 먼저 정리 해야 하는지.. 그것조차 알기 힘든 순간에...

이상하게도 성민의 생각이.. 다희의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 누나, 내가 누나한테 한 가지 부탁해도 되요?”

“그거.... 안 하면 안 되나요?”

콩닥콩닥― 맥없이 올라가는 정상적이지 못한 심장의 맥박 수만큼 설레게 했던 말.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던 말. 그때의 진심어린 그 눈동자.

그 때는 분명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지만,

자지자란 파장으로 인한 혼동을 남기고 갔었다.

그 말에서 느껴졌던 행복함. 그 때의 그 기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생각해보겠다는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인해 기분이 좋았는지,

가벼운 발걸음을 떼며 멀어져갔던 성민의 뒷모습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성민을 떠올리는 도이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걸쳤다.

부드럽고 또한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애가 타게 대답을 기다렸던 유민.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보지만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자

불안하게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그녀를 바라봐야 하나 말아야 하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정말 크게 마음을 먹고,

눈을 질끈 감는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보이는 것은.....

그 순간 유민은 도이의 미소의 참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이제는 오늘 두 주인공의 반지 교환식이 있겠습니다.”

짝짝짝, 사회자의 말에 뒤를 이어 박수갈채소리가 카페 안을 한가득 매 꾼다.

“사실,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요, 우리의 차유민군!

이번기회를 통해 얼마나 팔불출인지 알았습니다.

글쎄 반지 교환 식은 꼭 해야 한다면서, 그것도 느릿느릿 뜸 들이지 말고 후딱!!

해 달라고 어찌나 닦달을 하던지, 장난 한번 쳤다가 진땀 뺐습니다. 하하.”

사회자의 귀엽상하면서도 우스운 발언에 주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유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보고 싶다.....

도이는 순간, 화들짝 놀란다.

아무리 입 밖으로 내 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주어 담을 수 없는 그 말.

자신이 한 그 말.

그리고 지금 그녀의 온 신경회로를 차단시켜 놓은 그 정체.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그 녀석의 웃음이 좋았는지....

그때의 그 말 한마디에 설렘을 느꼈는지.....

가벼운 걸음을 걸으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왜 그리 기분이 좋았는지......

무엇보다 처음 오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려 진행시켰던 순간,

왜 그리 큰 허전함과 그리움을 느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날의 그리움이 진정, 무엇이었는지까지....

더 나아가 지난 며칠 보이지 않는 그 녀석의 소식이 궁금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자자, 신랑! 그만 부끄러워하고 얼른 신부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셔야죠? 하하.”

점점 어두워져가는 도이를 알지 못한 채 매끄러운 미간에 옅은 홍조를 띠며

유민은 반지케이스를 집었다.

그 안엔 한 쌍의 예쁜 커플링이 들어있었다.

아니, 커플링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결혼반지를 대신하는 보석이 담겨있었다고 해야

정상이겠지.

“도이야, 고마워. 정말 많이 고마워.”

조명을 받아 예쁘게 빛을 내는 보석을 들고 유민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반지를 들고 있는 손이 도이에게로 가까워진다.

유민의 왼손은 이미 도이의 오른손을 잡아 끌어온 지 오래였다.

유민의 예쁜 눈이, 도이의 예쁜 손가락을 응시한다.

주변에서 그들을 축복하는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열렬한 환호성 속에서 작은 반지가 도이의 손가락 바로 앞까지 왔다.

…!!

그런데!!

“오빠.....”

일순간 카페 안에 침묵이 휩싸였다.

아주 중요한 순간, 무엇보다 의미 있는 그 순간....

도이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 유민의 손 위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유민의 동공이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안.....”

“…….”

“미안 오빠.....”

유민이 질끈, 두 눈을 감으면..

푹 수그러진 도이의 눈에서는 투명하고도 굵은 물방울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온 얼굴을 촉촉하게 적신다.

“...미...안... 오..빠.....”

목이 메어 터져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는 듯한 갈라지는 음성을 계속해서 내 뱉는 도이.

유민은 차마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할 수가 없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스쳐 지나갔던 그녀의 눈물이 무엇을 말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민은 당장이라도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다리에 버티고 서 있을 힘이 없었다.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웃음에 안심이 되었는데.... 도대체 유민이 봤던 그 웃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우..린... 여기..까진가 봐... 정말.. 미..안...”

“…….”

“정말 미안...”

도이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미쳐 손을 뻗어 잡을 세도 없이 다급하게 뛰어 나간다.

유민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주변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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