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짜잔~”
“…….”
멀뚱멀뚱―
“짜잔~”
멀뚱멀뚱―
“.....왜, 왜요? 이상해요?”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도이 앞에
싱긋 웃으며 양 팔을 벌린 채로 나타난 성민.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부리듯 구는 행동에 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마위로 송골송골 진땀이 맺혔다.
“.....그렇게 이상해요?”
멋쩍은 듯 뒷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며 도이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래도 좀 웃어주지. 사람 민망하게.”
‘천하의 권성민이 가오를 다 마다했거늘!!’
성민은 몹시도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가오라니!
물론, 남들 앞에서야 사내의 가오가 다소 느껴지도록.. 위엄 있는...
그런 존재일지는 모르나 어디 그것이 도이의 앞에서까지 통할 소냐.
늘, 도이에게 보여 졌던 성민의 이미지가 어떠한가?
딱 까놓고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그저 귀엽기만 하고, 간혹 엉뚱하기도 한, 상큼 발랄 엉뚱 보이가 아니던가? -_-;
아! 물론 아주 가끔씩,
무지무지 어색한 분위기를 잡아가며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로 인해 해답 없는 수수깨끼를 품고 있는 것도 같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이지 않던가?
불쑥―
성민이 오른손에 들려있던 딸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예쁘게 잘 올라가서 뾰족하니 얇게 솟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참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어서 났어?”
도이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는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성민의 머리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처음 성민이 재등장 했을 때부터.
“뭐가요?”
“머리위에 그거.”
“아이스크림 매장 옆에서.”
성민은 투덜거리듯 뚱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후훗―”
“왜 웃어요?!”
“후훗―”
“어어?”
성민은 웃는 도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도이는 성민의 투덜거림과 자신의 웃음 뒤에 오는 반응까지...
모든 게 귀엽게만 보였다.
“귀여워. 너무 잘 어울린다. 후훗.”
도이의 손이 성민의 머리 위에 예쁘게 올라가있는 미키마우스를 살며시 잡았다.
(성민이 말했던 가오를 버렸다는 것과,
도이가 멀뚱거리는 시선을 일관하다 끝내 웃은 이유였다.
그것은 미키마우스가 예쁘게 웃는 머리띠였다.)
도이는 스프링위에서 성민의 움직임에 따라 춤을 추는 미키마우스의 손을 잡는다.
“진짜 귀여워. 진짜 잘 어울려. 완전 환상이야.”
“마음에 들어요?”
귀엽다는 말을 연신 내 뱉는 도이를 보며
화를 내거나 얼굴을 붉히기 보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성민.
역시나, 사내의 가오와는 다른 면모가 돋보인다.
그러나 왜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을까?
“누나도 한번 써 볼래요? 이·거.”
아니나 다를까.....
성민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빼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키의 단짝 친구 미니였다.
미니의 머리위에는 분홍색의 예쁜 리본이 묶여있었다.
도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아, 아니,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데.’
“굳이 이러지 않아도 괜찮은......”
“누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안 괜찮아요. 그러니까 한번 써 봐요.”
“저, 저기 성민아?”
“잠깐만 이것 좀 들어줄래요?”
성민은 막무가내였다. 도이는 당황스러웠다.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저, 저기 말이야 성민아. 나 갑자기 배가 아......”
“어? 배고파요?
하긴 이 더위에 그 많은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는데, 배고플 만 하죠.
우리 이거 나란히 쓰고 밥 먹으러 가요.”
도이는 배가 아프다는 말을 핑계로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성민은 뻔히, 도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줄을 알면서도
짓궂게 미니머리띠를 도이의 머리위에 씌우고자 열성을 보였다.
“이야~ 멋있을 것 같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특이하고 개성이 넘쳐나는 커플이라고 할 거예요.”
성민은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 그것도 너무 깊게.
“커, 커플?”
“왜요? 유민 형이 아니라 싫어요?”
“아, 아니!!”
도이는 다급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그 순간 후회했다. 자신의 행동을.
‘아~ 바보, 이게 아니잖아.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야?
성민이가 나를 어떻게 보겠어? 바보, 바보 멍청이!’
성민은 웃었다. 보는 사람까지도 기분 좋은, 무척이나 환한 웃음이었다.
반면 도이는 민망함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후훗. 그럼 됐어요.”
“하지만 성민아.....”
“잠깐이면 돼요! 그런 의미에서 잠시 이것 좀 맡길게요.”
도이는 얼떨결에 반쯤 남은 성민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었다.
그 사이, 성민은 무척이나 신속한 손놀림을 선 보였다.
“헤헤. 귀엽다. 잘 어울려요, 누나.”
반자동으로 올라간 도이의 손을 한 손으로 단단히 억압시키고는
마냥 좋은 웃음을 웃는 성민이 도무지 감당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이와 성민의 머리위에 나란히 꽂혀진 머리띠를 보고 실소를 터트린다.
그들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도이는 반 우거지상이 되어서 정말이지 울기 일보직전까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버렸다.
“이제 우리 밥 먹으러 가요.”
“…….”
“고개 좀 들어봐요. 죄 지었어요? 왜 그렇게 고개를 푹 수그리고 그래요?”
“…….”
“예뻐요, 예뻐. 정말 예쁘다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념사진 한방 찍을까요?
아까 이거 팔던데 커플 사진 찍어주는 사람 봤는데......”
묘하게 말끝을 흩트리면서 싱긋 웃는 성민.
우엉~ 도이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
.
여름이라 왜 이렇게 해도 늦게 지는지.
도이를 가히 능가하는 성민의 고집스러움에 도이는 어둑어둑 해가 지는 늦은 8시까지
(때는 늦은 6월이다.)
미키와 미니의 머리띠를 머리위에 달랑달랑 매달고 다녀야만 했다.
물론, 두 사람의 지갑 안에는 똑같은 포즈와 똑같은 표정의
(성민은 너무나 화사하게 웃는 반면 도이는 완전 우거지상이었다.)
사진이 나란히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두 장씩이나!!
(몇 장이고 더 찍고 싶어 하는 성민을 겨우겨우 뜯어 발려 두장으로 합의를 봤다.)
그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무척이나 즐거웠던 하루임은 부인 할 수 없었다.
뜻 하지 않은 사건과 어쩜 사소한 일들 까지도...
도이는 성민의 곁에서 무척이나 오랜 시간 웃을 수 있었다.
“오늘 어땠어요?”
“좋았어.”
“정말요?”
“응. 다만, 아직도 이 녀석은 괴로워. 후훗.”
집 근처, 아니 성북동에서..
그나마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린 두 사람은 어둑해진 밤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나란히 맞춰 걷는 발걸음처럼 나란히 한 손에 들린 문제의 머리띠.
도이가 그 머리띠를 가볍게 흔들며 빙긋이 웃자 성민 역시 빙긋이 웃는다.
“오늘 고마웠어요. 누나.”
“뭐가?”
“단 한번 거절도 없이 데이트에 응해줘서.”
‘그것도 차유민의 전화까지 피해가면서 말예요.’
성민은 가만히 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도이의 손은 따뜻했다.
“나도 고마워. 덕분에 즐거웠어.”
두 사람이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두 사람의 걷는 속도는 늦춰졌다.
“저.... 누나....”
그러다가, 살짝 구비 진 언덕을 오르며 성민이 무겁게 입을 뗐다.
무척이나 뜸을 들이고 있음은 굳이 그렇다고 의식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그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또한 심각하다는 것은
굳이 확인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 누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
어쩐지 긴장감이 맴돌았다.
“참,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
“....결정... 했어요?”
“결정?”
“아니, 이야기가 다 끝난 건가요? 이미?”
“이야기라니?”
“왜요, 차유민하고....”
“아 그거?”
성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내 맑게 웃던 도이의 얼굴에서 그 웃음이 모두 사라졌다.
긴장감이 맴돌았을 때만해도 머물렀던 잔웃음조차도 사라졌다.
대신에 무겁고도 무거운 그늘이 가라앉았다.
“....아니... 아직...”
휴우~ 그 순간, 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럼 누나, 내가 누나한테 한 가지 부탁해도 되요?”
“…….”
“그거... 안 하면 안 되나요?”